농업은 이제 단순한 작물 재배를 넘어 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인공지능(AI)을 결합한 스마트 혁신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사진은 ㈜대동의 자율주행 운반 로봇. 대동 제공
K-팝, K-드라마 등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한국 농산물에 대한 인기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2025년 9월 기준 국산 배의 수출량은 총 3280t(1억14만8000달러, 약 1450억 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33.4% 증가했다. 사과는 5.6t(19만8000달러, 약 2억8676만 원)을 수출해 전년 동월 대비 140% 증가했으며 포도·감귤·토마토 등 주요 품목의 수출도 전반적으로 늘었다. 한국산 과일은 맛과 높은 당도, 안정적인 품질로 해외시장에서 ‘프리미엄’ 과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출 대상국 역시 미국, 캐나다, 대만, 베트남, 태국, 호주, 러시아 등 전 세계로 확대되는 추세다.
한국 농산물의 경쟁력을 끌어올린 동력은 지난 수년간 빠르게 확산한 스마트팜이다. 자동화된 온실 제어 시스템과 드론을 활용한 병해충 관리, 토양·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밀 영농이 농가 현장에 안착하면서 생산성은 물론 품질까지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대동 ‘자율주행 콤바인’.
농업은 이제 단순한 작물 재배를 넘어 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인공지능(AI)을 결합한 스마트 혁신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IoT를 기반으로 한 센서가 토양 환경과 기후, 작물 성장, 수분 공급 상태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전송하고 AI 제어 시스템이 전송된 자료를 바탕으로 온습도, 이산화탄소(CO₂) 농도, 관수 등을 자동 조절해 농작물 성장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하지만 첨단기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스마트 농산물의 가치를 지켜주는 ‘마켓 파워’가 뒷받침돼야 비로소 ‘혁신’이 완성된다. 이 지점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한·미·EU·ASEAN 등 주요 협정으로 관세 장벽이 낮아지고 통관·검역 등 수출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K-농산물은 경쟁국 대비 유리한 시장 접근권을 확보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미 FTA 효과에 힘입어 국내 딸기 수출량이 전년 대비 15% 증가했고 고추·양파 등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수출 저변을 넓혀나갔다.
정부는 스마트 농업과 FTA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각적 지원 정책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추진 중인 약 39조1000억 원 규모의 ‘FTA 보완대책’은 국내 농업의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품질 향상, 생산성·매출 증대, 수출 활성화까지 연계된 성과를 내고 있다.
연도별로 보면 2022년에는 약 1조7000억 원의 FTA 보완 대책이 추진됐으며 2023년에는 밭작물산업육성, 가축분뇨처리지원, 청정임산물이용증진사업에 약 1조6000억 원을 투입했다. 2024년에는 농업자금이차보전, 축산물도축가공업체지원,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스마트팜ICT융복합확산사업 등에 약 1조4000억 원을 지원했다. 2025년에도 과수품질시설현대화, 과실 전문생산단지기반조성, 스마트팜ICT융복합확산사업 등 핵심사업에 대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농업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은 농업 생태계 전반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 품질 향상과 생산량 증대를 통해 농가 소득이 개선되고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농업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로 평가된다.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감귤을 재배하는 김미정 대표는 정부 지원으로 비가림하우스와 송풍·환풍팬 등을 설치했다. 비가림하우스와 송풍팬 설치로 온도·습도·급수량을 안정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열과(裂果, 과일 껍질이 터짐) 피해가 감소했다. 이에 따라 감귤 품질이 높아졌고 평균 판매가가 3.75㎏당 5000원에서 1만 원 수준으로 올랐다. 수혜 이전보다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20% 줄었지만 판매 가격이 크게 올랐고 수입은 60% 증가했다.
㈜가고파수출영농조합 파프리카 농장.
경남 창원의 ‘가고파수출영농조합법인’은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시설비와 물류비 지원을 받아 스마트 온실 시스템을 구축했다. 7개 농가가 참여해 9만9000㎡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고 있으며 온습도, CO₂ 농도를 자동으로 점검하고 컴퓨터 제어 시스템으로 관리한다. 물과 양액도 자동으로 공급된다. 2024년 수확 물량은 총 28만 t으로 이 중 90%가 일본으로 수출됐다. 지난해 12월에는 필리핀에 첫 수출 물량 600㎏을 항공편으로 보내며 동남아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전북 남원에서 샐러드용 상추를 재배하는 김승현 씨는 센서 장비, 제어 장비, 정보 시스템 등 스마트팜 설비를 지원받아 도입했다. IoT가 적용된 하우스의 1평(3.3㎡)당 생산량은 약 4.5㎏으로 일반 하우스보다 약 1.3배 높아졌고 판매 단가도 일반 상추보다 1㎏당 500원가량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경기도 여주의 ‘참누리 곤충농원’은 고품질 먹이원 균질화 구축 사업과 곤충 가공제품 개발 및 상품화 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스마트 곤충 사육 체계를 갖췄다. 자동 급식 시스템과 항온·항습 시설 등 IoT 기술을 곤충 사육 및 생산시설에 접목해 저비용·고품질·고부가가치 구조를 마련했고 생산, 가공, 유통까지 연계되는 기반을 구축했다. 그 결과 매출은 2022년 약 1억2000만 원에서 2025년 약 5억5000만 원으로 크게 확대됐다.
농업인 대상 교육과정도 농가 현장의 변화를 견인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하는 ‘스마트 농업·FTA 통합 교육과정’은 농업인이 스스로 첨단 영농 기술을 이해하고 동시에 FTA가 주는 시장 접근 이점을 활용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현재까지 전국에서 5000여 명의 농업인을 대상으로 맞춤형 강의가 진행됐으며 교육 내용도 단순 기계 조작법을 넘어 데이터 활용법, 수출 통관 절차, 세제 혜택, 품목별 유망 시장 분석 등으로 폭넓게 구성돼 있다.
교육에 참여한 한 농업인은 “내가 재배한 농산물을 어느 나라에, 어떤 소비층을 겨냥해 팔아야 경쟁력이 생기는지를 알게 됐다”며 “FTA 체결 국가별로 소비 취향이 다르다는 점까지 고려해 마케팅 전략을 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현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또 하나의 축은 스마트 농기계의 고도화다. 자율주행 이앙기와 트랙터는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고 AI를 기반으로 한 4단계 무인 자율주행 트랙터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대동은 데이터 학습을 통해 고숙련 작업까지 수행할 수 있는 이 트랙터를 오는 2026년 3월 출시할 계획이다.
정밀 농업 서비스도 성과를 내고 있다. 농경지 상태, 작물 생육도, 병충해 발생률 등 재배 환경을 분석해 비료와 살충제 투입을 맞춤형으로 처방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대동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농가 대상 실증사업을 진행한 결과 소규모 농가에서는 관행 농법 대비 비료 투입량이 8.4% 감소하는 동시에 수확량은 19.2%까지 증가했다. 50㏊(15만1250평) 이상을 경작하는 김제 들녘경영체도 비료 투입량이 7% 감소하고 수확량은 6.9%까지 늘어나는 효과가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스마트 농법이 농업의 고부가가치를 실제로 만들어내고 있다”며 “FTA는 이렇게 만들어진 성과가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고 시장에서 계속 안정적으로 이어주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고 평가한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성공 사례를 더 넓게 퍼뜨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자체와 농협, 민간 연구기관이 연계해 우수 농가 현장 견학, 기술 멘토링, 품목별 컨설팅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이를 지역 단위로 표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이 열려 있는 지금은 스마트 농업과 FTA가 ‘콤비네이션’으로 맞물려야 성과가 극대화되는 시점이다. 첨단기술로 품질을 담보하고 FTA로 시장 진입장벽을 낮춰야 K-농산물이 전 세계 식탁에 당당히 오르며 경쟁할 수 있다. 농업인과 정부, 민간이 한 방향으로 힘을 모은다면 K-팝, K-드라마로 세계를 열었던 것처럼 K-농산물도 새로운 혁신의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제작 지원: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촌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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