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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 연구

당뇨처럼… 자폐도 맞춤치료 단서 찾았다

동아일보 | 업데이트 2026.09.18
IBS 10년 연구 프로젝트 성과
자폐 생쥐 17종 RNA 1008개 분석
원인 달라도 분자적 특징 ‘두 유형’, 같은 약 투여때 그룹별 반응 달라
분자 분류 통한 맞춤 치료 가능성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는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다뤄진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왼쪽 사진)와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초원. 두 주인공 모두 ASD가 있는 인물이다. ASD는 증상 특성과 정도가 사람마다 매우 다르며 아직까지 핵심 증상을 직접 치료하는 약물이 없다. 동아일보DB·시네라인Ⅱ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는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어려움, 제한적·반복적 행동이 발생하는 신경 발달 질환이다. ASD와 관련된 유전자는 12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펙트럼’이라는 말이 붙은 만큼 원인부터 증상의 종류, 정도가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

국내 연구진이 10여 년에 걸친 장기간 연구로 ASD의 유전적 원인 규명에 근접하고 약물 반응에 따라 집단을 나눠 집단별로 적합한 ‘맞춤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은준 기초과학연구원(IBS) 시냅스뇌질연구단장 연구팀은 서로 다른 생쥐 모델 17종의 전전두엽에서 얻은 유전자 발현 데이터인 ‘리보핵산(RNA) 시퀀싱 데이터’ 1008개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17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 시냅스 연구가 뇌 질환 연구로 이어져
대전 유성구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만난 김은준 IBS 시냅스뇌질연구단장은 장기간 축적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생쥐 모델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자폐 위험 유전자가 공통된 분자 상태로 수렴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IBS 제공

김 단장은 복잡한 ASD를 뇌 속 ‘시냅스’의 관점에서 연구한다. 시냅스는 신경세포끼리 신호를 주고받는 부위로, 뇌 기능의 기본 단위다.

김 단장이 시냅스 연구를 시작했을 당시 이미 시냅스는 뇌 기능을 이해하는 핵심 연구 대상이었다. ASD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 유전자들이 빠르게 발견되면서 이 가운데 15∼20%가 시냅스와 관련된 유전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중요한 이정표가 될 이번 연구 결과 공개를 앞두고 만난 김 단장은 “연구하던 시냅스 단백질이 뇌 질환과 연결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갑자기 뇌 질환을 연구해야겠다는 원대한 꿈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여러 뇌 질환 중 김 단장이 ASD에 집중한 이유는 분명하다. 김 단장은 “ASD는 약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잉행동, 뇌전증(간질) 등 동반 증상을 완화하는 약은 있지만 사회적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나 반복행동 등 ASD의 핵심 증상을 직접 겨냥한 치료제는 아직 없다.

ASD와 시냅스의 연관성을 실제 연구로 증명하려면 유전자를 변형한 생쥐 모델을 만들고 오랫동안 관찰해야 한다. 생쥐 모델 하나를 만들어 기본 분석을 하는 데만 4∼5년, 분자 수준에서 질환이 발생하는 메커니즘과 치료 가능성까지 확인하려면 7∼8년이 걸린다.

2012년 출범한 IBS의 장기·대규모 기초과학 지원은 이런 구상을 실제 연구로 옮길 기반이 됐다. 김 단장은 “오랜 기간 기초연구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구 환경은 사실상 IBS가 유일해 연구단장에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꿈을 가지고 연구하다 보면 ‘ASD 치료’라는 목표를 어쩌면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연구단은 10년간 중요성이 부각된 새 유전자를 연구 대상에 추가하거나 우선순위를 조정하며 현재까지 20∼30종의 ASD 생쥐 모델을 구축했다. 새로운 가설을 곧바로 검증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마련된 셈이다.

● 자폐도 당뇨병처럼 맞춤형 치료 길 열릴까

연구단은 자체 확보한 생쥐 모델들을 기반으로 ASD의 공통적인 발병 기전과 치료 가능성을 찾는 후속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김 단장은 “이제 추수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결실 중 하나가 ASD의 맞춤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번 연구다.

김 단장 연구팀이 서로 다른 생쥐 모델 17종의 전전두엽에서 얻은 RNA 시퀀싱 데이터 1008개를 분석한 결과 유전자 변이가 서로 다른 생쥐들의 유전자 활성 상태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한 그룹에서는 신경세포 간 신호 전달을 담당하는 시냅스 관련 유전자 발현이 줄고 유전자 발현 조절 및 RNA 가공 관련 유전자 발현이 증가했다. 다른 그룹에서는 반대 양상이 나타났다. 자폐를 일으키는 유전적 원인이 서로 달라도 분자 수준에서는 상태가 비슷할 수 있다는 의미다.

두 그룹은 약물 반응도 달랐다. 항우울제 ‘플루옥세틴’과 기분안정제 ‘리튬’을 투여하자 한 그룹에서는 여러 분자 이상이 일관되게 회복됐지만 다른 그룹에서는 회복 양상이 일정하지 않았다. 김 단장은 “이번 연구로 ASD를 분자적 특징에 따라 여러 집단으로 분류하는 ‘서브타이핑’ 연구의 문을 연 것”이라고 설명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진단과 치료를 객관적인 생물학적 지표로 연결하는 것이다. 혈당 수치로 약물 효과를 확인하고 치료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당뇨병처럼 ASD를 치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김 단장은 인간 유래 신경세포와 인공장기(오가노이드) 등으로 연구를 확장해 사람에서도 같은 분류가 가능한지 확인할 계획이다. 김 단장은 자폐인들에게 “아직은 동물 데이터만 확보했지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맞춤 치료에 더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문혜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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