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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청나라 말, 북경의 공원(貢院, 과거시험장)을 찍은 사진

288호 (2020년 1월 Issue 1)

안동섭
인문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 전공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동양학 박사
1909년 청나라 말, 북경의 공원(貢院, 과거시험장)을 찍은 사진

중국사를 통틀어 ‘사람’의 측면에서 가장 큰 변화가 생긴 시기를 하나만 꼽자면 아마도 송(宋, 960-1279) 대일 것이다. 바로 이때 중국의 통일제국이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에서 벗어나 개봉(開封)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장안 근처에서 발호한 주나라(周, 약 BC1050-BC256) 왕실이 낙양을 건설했고, 낙양을 불태운 동탁(董卓, 138-192)은 장안으로 옮겨갔고, 장안이 부담스러운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는 낙양으로 천도했다. 낙양과 장안은 마치 자존심 강한 두 천재처럼 도읍지 자리를 두고 끝없이 경쟁했으나 송나라 황실이 개봉에 자리 잡은 이후로 체제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만다. 저쪽에 있던 황제가 이쪽으로 오면서 한 시대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