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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인재 전쟁

브로드컴, M&A-성과주의로 생산성 UP
당장의 성과 급한 한국 기업들 참고할 만

권기범,정리=최호진 | 418호 (2025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브로드컴의 VM웨어 인수 과정은 인적 자본(Human Capital) 관점에서 인재 경영의 극단을 보여준다. 인적 자본 관점에 따르면 조직 구성원은 효율성과 생산성 측면에서 평가되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 교체되거나 최적화될 수 있다. 성과 중심의 HR 제도는 이러한 인적 자본 관리의 운영 메커니즘이다. 실리콘밸리의 주류 방식과 달리 수직적 위계와 엄격한 통제를 고수하며 성공한 브로드컴의 사례는 성과 기반 HR 시스템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주목할 만하다. 브로드컴은 조직문화 혁신의 최종 목표를 사업 성과에 대한 기여로 규정하고 필요시에는 직원들에게 인기 없는 정책도 추진하는 단호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인적 자본 관점의 인재 경영 전략은 내부 역량 개발과 장기적 조직문화 혁신을 마냥 기다릴 여유가 없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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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제2의 엔비디아’ 등장이 예고됐다. 맞춤형 AI(인공지능)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그 주인공이다. 브로드컴은 2024년 12월 12일 4분기 실적 발표 당일 주가가 24% 폭등하며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으며 2025년 1분기에도 AI 반도체 매출이 전년 대비 77% 증가한 41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으로 촉발된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도 브로드컴은 테슬라와 TSMC를 제치고 현재 글로벌 시가총액 8위 기업에 올라 있다. 브로드컴의 혹 탄(Hock Tan) 최고경영자(CEO)는 싱가포르의 무명 반도체 회사였던 아바고를 글로벌 테크 거인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그의 전략은 단순명쾌하다. 비핵심 사업은 과감히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유망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리고 성과주의 인재 경영을 통해 단기간에 생산성을 극대화했다.

지난 10여 년간 브로드컴은 대담한 인수합병(M&A) 행보를 보였다. 2013년 광학·반도체 기업 사이옵틱스를 필두로 2014년 반도체 기업 LSI 로직스, 2015년 네트워크 장비 업체 에뮬렉스를 연이어 인수했다. 2016년에는 당시 미국 통신장비 업체였던 브로드컴을 인수하면서 사명도 아바고에서 브로드컴으로 변경했다. 2017년에는 통신 장비 관련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인 퀄컴 인수까지 시도했으나 미국 행정부의 제동으로 무산됐다. 2023년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 VM웨어 인수를 통해 브로드컴은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기업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브로드컴이 단행한 M&A의 본질은 단순한 규모 확장이 아닌 전략적 포트폴리오 구축이었다. 각 인수 기업의 핵심 기술과 인재를 효과적으로 통합하며 시너지를 창출했고 이는 AI 시대를 선도하는 브로드컴의 현재 위상으로 이어졌다. 이런 브로드컴의 성공은 한국 첨단 산업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2016년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 2020년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와 같은 예외 사례를 제외하면 한국 기업들은 대체로 자체 연구개발과 내부 인력 육성을 통한 경쟁력 강화 전략를 선호해왔다.

하지만 AI 관련 반도체 산업의 수혜가 메모리 반도체보다는 팹리스와 파운드리에 집중되는 상황이 고착화되고 있다. 또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CES 2025 기조연설에서 강조했듯 AI의 영향력은 과학 연구, 헬스케어, 자율주행, 로봇 산업으로 확장되며 산업 간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런 사업상의 난관으로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에서 조직의 핵심 역량을 오랜 시간에 걸친 내부 개발에만 의존해서는 경쟁자들의 빠른 혁신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한국 기업들도 기존의 내재적 성장 전략에서 벗어나 M&A를 통해 필요한 역량을 신속하게 확보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브로드컴의 과감한 M&A 전략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재 경영은 첨단 산업의 새로운 성장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만들 것인가,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일련의 M&A를 단행한 브로드컴의 성장 과정은 첨단 산업에서의 기술 혁신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비롯된다. 필요한 역량을 내부에서 직접 만들 것인가(Make), 아니면 외부에서 사올 것인가(Buy)? 전략 경영 이론에 따르면 기업의 지속적인 성과 차이는 동적 역량(Dynamic Capabilities)에서 비롯된다. 동적 역량이란 급변하는 환경에서 기업의 핵심 역량을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으로 시장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조직에 특화된 기술과 실행 체계를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것이다. 동적 역량의 강화는 최고경영자의 전략적 판단 능력에 크게 좌우된다. 비즈니스 밸류 체인 전반에서 부족한 역량을 식별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며, 필요한 역량을 효과적으로 보완하도록 자원을 배분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동적 역량 확보를 위해 필요한 역량을 내부에서 직접 기를지, 외부에서 사올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최고경영자의 선택은 엇갈릴 수 있다. M&A에는 상당한 리스크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인수 전의 장밋빛 기대와 달리 많은 메가 딜이 사업 간 시너지를 실현하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에 직면하며 문제를 겪곤 한다. 특히 기업 간 조직문화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 우수 인재들이 떠나면 동적 역량 확보는 둘째 치고 기존 핵심 역량의 유지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M&A를 통한 혁신은 체계적인 인수 후 통합(Post-merger integration, PMI)을 통한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과 인재를 더하는 물리적 결합이 아닌 서로 다른 조직의 핵심 역량이 융합돼 한 차원 높은 경쟁 우위를 창출하는 화학적 결합이어야 한다.


브로드컴의 기묘한 VM웨어 인수

미국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M&A로 기록된 브로드컴의 VM웨어 인수(약 690억 달러)는 조직문화의 충돌을 보여준 교과서적 사례였다. 일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직장’으로 평가받는 기업이 ‘최고의 직장’ 중 하나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직장 리뷰 플랫폼 글래스도어의 평가는 두 기업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브로드컴의 직원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2점, 탄 CEO의 지지율은 46%에 그쳤다. 이는 빅테크 기업 중 파괴적인 조직문화로 악명 높은 아마존의 직원 만족도(3.6점)와 CEO 지지율(63%)보다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반면 VM웨어는 직원 만족도 4.4점을 기록하며 2024년 글래스도어 평가 결과, ‘최고의 직장’ 7위에 선정됐다. 특히 조직문화와 가치, 다양성과 포용, 일과 삶의 균형 등 조직문화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인수 과정에서 브로드컴은 동요하는 VM웨어 구성원들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다수의 M&A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적 통합을 자신하며 탄 CEO가 직접 인수 후 통합 과정을 주도할 것임을 밝혔다. 현재 브로드컴 사업부 임원과 총괄 매니저의 68%가 M&A를 통해 합류한 인재라는 통계를 제시하며 피인수 기업 출신 우수 인재들의 활약상을 강조했다. 2023년 11월 인수 완료 이후 브로드컴은 인수 후 통합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했다. 100일 만에 소프트웨어 포트폴리오 전면 개편, 영업 방식 변경, 조직 구조 재편을 완료했으며 비즈니스 모델도 영구 라이선스에서 구독 모델로 전환했다. 탄 CEO는 브로드컴 블로그를 통해 VM웨어 인수 과정에 대한 소회를 주기적으로 공유하며 인수 전후의 전략적 선택에 대한 정당성을 소통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는 빠르게 결실을 맺었다. VM웨어 인수 1년 만에 운영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영업이익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이뤄냈다. 지난 실적 발표 이후의 급격한 주가 상승은 이 같은 성과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인재 유지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지표를 보였다. 브로드컴의 2024년 자발적 이직률은 2.9%, VM웨어 인수로 합류한 인원을 포함해도 6.2%로 테크 업계 평균 수준을 밑돌았다. 이는 많은 우려와 달리 인재 유출이 제한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두 조직 간의 문화적 융합 측면에서는 잡음도 있었다. 인수 직후 구조조정과 해고 조치는 VM웨어 구성원들의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특히 탄 CEO는 구성원들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VM웨어의 핵심 문화 요소들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VM웨어의 다양성과 포용을 상징하던 구성원 리소스 그룹(Employee Resource Group, ERG)을 ‘외계인 같은 개념’이라며 거리를 뒀고 조직문화 관련 활동들도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근무 형태를 둘러싼 이견도 컸다. VM웨어의 원격근무 친화적 문화와 달리 탄 CEO는 “사무실에서 80㎞ 이내에 살고 있다면 엉덩이를 끌고 사무실로 복귀하라”며 대면 근무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공적인 인수 후 통합이라는 브로드컴의 자체 평가에도 불구하고 두 조직 간의 문화적 융합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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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자본 관점에서 본 브로드컴의 인재 경영

브로드컴의 VM웨어 인수 과정은 인적 자본(Human Capital) 관점에서 인재 경영의 극단을 보여준다. 인적 자본 관점은 구성원들이 보유한 지식, 기술, 경험의 총합인 인적 자본을 공장의 기계나 생산 설비 같은 물적 자본들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생산 요소로 바라본다. 구성원은 효율성과 생산성 측면에서 평가되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 교체되거나 최적화될 수 있다. 성과 중심의 HR 제도는 이런 인적 자본 관리의 운영 메커니즘이다. 객관적 성과 지표를 중심으로 한 엄격한 평가 체계는 즉각적인 인사 조치와 차별적 보상으로 연결된다. 이런 인적 자본 관점은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과는 결이 다른 브로드컴만의 조직문화에 반영돼 있다. 대부분의 빅테크 기업이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를 지향하는 반면 브로드컴은 수직적 위계와 엄격한 통제를 고수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복잡한 의견 조율과 장시간이 소요되는 상향식 합의 대신 효율성과 신속함을 중시하는 하향식 의사결정 방식을 선호한다.

최고경영자의 리더십 스타일도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탄 CEO의 리더십은 현재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비전 리더로 평가받는 젠슨 황 CEO와 대척점에 있다. 황 CEO는 AI 시대의 ‘비전의 선지자’로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거대한 변화에 동참시키고자 한다면 탄 CEO는 급진적 변화를 통해 인수 기업들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철의 연금술사’이자 인적 자본 관점의 인재 경영 철학을 실천하는 리더다. 그의 경영 방식은 투자 대비 효율성과 운영 탁월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둔다. M&A를 통해 조직을 빠르게 재구조화하고 최적화하는 그의 능력은 혁신적이면서도 냉철하다.

한편 인적 자본 관점 인재 경영의 성과는 명확하다. 이런 조직일수록 파격적 보상을 기대하는 도전적이고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들어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낸다. 이런 성과주의 조직 운영의 특징은 빠른 의사결정과 효율적인 자원 배분, 그리고 단기 재무 성과 창출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구성원을 언제나 대체 가능한 자원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건전한 조직문화 구축을 저해하고 사내 정치를 조장할 수 있다. 인간의 내재적 동기부여와 조직에 대한 헌신이 만들어내는 지속가능한 조직의 비전과 가치를 도구적 논리만으로는 완벽히 설명할 수 없는 탓이다. 결국 브로드컴의 인재 경영 모델의 성패는 지속적인 사업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M&A를 통한 시너지 창출이 계속된다면 새로운 인재 경영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이 모든 성과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며 단기 성과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제언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법으로 실리콘밸리식 수평적 조직문화의 도입 필요성이 거론된다. 방향성은 맞지만 전사적 조직문화 혁신은 장시간이 소요되는 과제다. 조직문화 전문가들은 조직문화 혁신 활동의 성공률이 30% 미만에 불과하며 최소 5~10년의 지속적인 변화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이는 현재 직면한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의미다.

한시가 급한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인재 경영 과제는 기존 성과에 기반한 HR 시스템의 실효성 강화다. 과거 한국 첨단 기업들의 강력한 신상필벌 원칙과 파격적 보상 체계는 기업의 빠른 성장과 혁신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었다. 명확한 성과 평가와 그에 따른 차별화된 보상은 구성원들의 성취동기를 자극하고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그러나 권오현 삼성전자 전(前) 사장이 저서 『초격차』에서 “신상필벌의 원칙이 인화의 법칙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던 과거의 기조와 달리 최근 한국 첨단 기업들의 성과에 기반한 HR 시스템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런 맥락에서 실리콘밸리의 주류 방식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성공한 브로드컴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브로드컴은 과감한 M&A로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고 철저한 성과 관리를 통해 빠르게 사업을 확장해왔다. 특히 조직문화 혁신의 최종 목표를 사업 성과에 대한 기여로 규정하고 필요시에는 직원들에게 인기 없는 정책도 추진하는 단호한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런 인재 경영 전략은 내부 역량 개발과 장기적 조직문화 혁신을 마냥 기다릴 여유가 없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실행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AI 시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는 전통적인 사업 방식의 관성을 깬 민첩하고 효율적인 인재 경영 접근법이 필요하다. 당장의 성과 창출과 장기적 조직문화 혁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현재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풀어야 할 과제다.
  • 권기범Kibum.Kwon@tamuc.edu

    East Texas A&M대 인적자원개발학부 교수

    필자는 미국 East Texas A&M대 인적자원개발 전공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적자원개발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Human Resource Development Quarterly 저널의 부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LG전자 인사팀에서 근무한 후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인적자원개발 및 조직개발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인적자본 투자, 조직 혁신, 직무 몰입, 종단 데이터 분석이며 저서로는 『인게이지먼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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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최호진hojin@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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