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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미래형 리테일 매장의 성공 사례 ‘더현대 서울’

“경영진이 모르는 브랜드여야 OK”
명분 있는 가성비로 MZ세대 사로잡아

조윤경,신호영 | 335호 (2021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팬데믹의 여파에도 소비자들과 전문가들로부터 리테일 매장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 ‘더현대 서울’의 성공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새로운 소비 주역으로 자리 잡은 MZ세대를 겨냥해 신규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켰다. 20•30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해 ‘명분 있는 가성비’에 적합한 브랜드와 두터운 팬덤층을 형성한 브랜드를 엄선해 배치했다. 동시에 멀티숍과 팝업스토어를 적극 활용해 최신 트렌드를 놓치지 않았다.

둘째, 기존 리테일 매장에 없던 새로운 공간을 조성했다. 매장 면적을 줄여 고객 동선을 확보하고 고객이 오래 머물며 쉴 수 있는 ‘녹지 공간’을 더했다. 더현대 서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문화 공간’은 온라인 소비에 익숙한 소비자들을 오프라인 공간으로 이끌었다.



2000년 이후 백화점 업계는 성장 가도를 달려왔다. 주로 1970년대생을 일컫는 X세대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되던 해였다. 유통 업계에선 취업을 통해 구매력을 갖게 된 X세대를 겨냥한 젊은 감성의 ‘영 패션(Young Fashion)’ 장르가 새롭게 떠올랐다. ‘영(Young) 상권’이 백화점에 미치는 파급력은 대단했다. 월 매출 1억 원가량을 기록하는 잘나가는 브랜드조차 영 패션 상권에 밀려 백화점에서 철수하는 기현상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유통 업계는 X세대를 타깃으로 한 ‘노다지’ 시장을 선점하고자 너도나도 영 패션 브랜드에 러브콜을 보냈다. 이 시기 서울 명동 롯데 본점에 ‘롯데 영플라자’가 세워지고 현대백화점 ‘유플렉스’는 신촌1호점을 시작으로 목동점, 중동점 등 7곳으로 확장됐다.

이후 20여년 동안 백화점은 X세대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춰 변화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간 통용되던 공식에 문제가 생겼다. 세월이 흘러 X세대도 40, 50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을 지배하던 영 패션 장르는 더이상 ‘영(Young)’하지 못한 장르가 됐다. 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의 대다수는 신선한 브랜드가 아니었다. ‘영 패션’은 백화점이 처한 하나의 위기의 상징일 뿐이다. 전체적으로 백화점은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 니즈를 반영하지 못하고 젊음을 잃어가는, ‘핫’하지 않은 쇼핑의 전유물이 됐다.

백화점이 그간의 성장에 취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백화점 업계의 성장세가 꺾인 2019년부터다. 그해 7월 일본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퍼지며 현대백화점에 입점한 유니클로 브랜드의 매출 60∼80%가 줄었다. 유니클로 브랜드가 영 패션 장르의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고 있던 비중은 10% 가까이 달했던 터라 단순 계산만 하더라도 전체 매출의 7∼8%가 곤두박질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백화점의 영 패션 장르가 더 이상 ‘영’하지 않다는 것을 감지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통감하던 시기, 현대백화점은 여의도라는 서울 노른자 땅에 위치한 ‘더현대 서울’의 오픈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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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2월 문을 연 더현대 서울은 일각의 우려와 달리 개점 이후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21년 10월 말 기준 SNS에 업로드된 더현대 서울 관련 게시물은 약 22만 개에 달한다. 개점 후 100일 만에 매출 2500억 원을 기록했으며 개장 1년도 되지 않은 현재 전국 백화점 매출 순위 10위권을 바라보고 있다. 백화점 불황의 시기, 나홀로 성장 중인 더현대 서울의 성공 전략을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짚어봤다.


“경영진이 모르는 브랜드로만 준비하라”,
진짜 ‘영(Young)’한 2030세대의 핫플레이스

현대백화점을 비롯한 유통 플레이어들이 안고 있는 오랜 숙제는 향후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게 될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거 20년 동안 백화점의 메인 고객이던 X세대는 어느덧 중장년층이 됐고 그간 ‘캐시카우’로 존재감을 보여온 6070대 고객들은 더욱 고령화되며 구매력 지형에 지각변동이 생겼다. 매출 규모만 놓고 본다면 현재 2030 소비자층은 백화점에 큰 매출을 안겨주지 못한다. 그러나 새로운 고객층을 흡수하는 것은 백화점의 지속가능성과 결부돼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역시 MZ세대가 호감을 느낄 수 있도록 브랜드 이미지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간 4050대 이상의 고객층을 중점적으로 상대해오던 전략을 뒤바꿔 MZ세대를 중심에 놓는 광고와 포지셔닝 전략을 세운다는 것은 큰 위험 부담이 따랐다.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진도 2030 소비자들을 유입시켜야 한다는 사실에 반대하진 않았지만 ‘전적으로 2030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하는 프로젝트’에 도전해보자는 의견을 두고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설득과 공감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실무진이 수십 번의 보고와 협의 과정을 거친 결과, 마침내 경영진으로부터 엄중한 명령이 떨어졌다. 한마디로 ‘할 바엔 제대로 하자’는 것. MZ세대를 겨냥한 지하 2층을 “경영진이 모르는 브랜드로만 준비하라”는 미션이었다.

실무진은 단순히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은 브랜드 하나가 입점한다고 해서 그 공간의 전체가 바뀔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공간 전체가 전부 새로운 브랜드들로 구성돼야 젊은 층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 유효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더현대 서울 지하 2층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는 2030 소비자들에게 그들이 바로 이곳의 주인공임을 전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계획했다.

1. 사야 할 ‘명분’이 있어야 팔린다

경영진을 설득하는 일에 성공하자 더현대 서울 영패션팀은 최신 브랜드 공부와 소비 트렌드 연구에 몰두했다. 가로수길부터 한남동, 성수동 등 MZ세대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주목받는 곳은 전부 방문했다. 신생 브랜드가 진행하는 플래그십 이벤트에 찾아가 직접 체험해보기도 하고 무신사, 29cm, 더블유컨셉(W Concept) 등 온라인 판매 플랫폼의 인기 브랜드 랭킹을 살피며 주목받는 브랜드들을 연구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브랜드가 있으면 자사 몰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계정에 접속해 팔로워 수와 댓글 반응을 살폈다. 이렇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패션팀은 진캐주얼, 영캐주얼, 스트리트 패션 등 장르를 넘나들며 전문성을 키웠다. 그동안 백화점에 입주해 있는 기존 브랜드 관리에 에너지를 전부 쏟았다면 신규 브랜드 발굴에 대부분의 역량을 할애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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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노력 끝에 영패션팀이 찾아낸 MZ세대를 관통하는 소비 트렌드는 ‘명분 있는 가성비’였다. 흔히 성능 대비 가격이 저렴한 제품에 ‘가성비’가 좋다는 평을 하는데 이와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가령 나이키와 토이스토리가 컬래버레이션을 해 상품을 출시하면 사람들은 해당 제품의 희소성과 상품성 대비 가격을 놓고 가성비를 따져본다. 중요한 것은 이 제품이 품고 있는 ‘스토리’가 구매로 이어지는 주요한 명분이 된다는 점이다. 더현대 서울 지하2층에 위치한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는 이같이 ‘명분 있는 가성비’를 겸비한 브랜드로 채워졌다. 이러한 MZ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꿰뚫은 대표적 브랜드로 쿠어(COOR)가 있다. 쿠어는 지난 2월 더현대 서울 오픈 이후 2030 남성 소비자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영 패션 브랜드다. 경제 활동을 막 시작한 MZ세대 남자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하는데 질이 좋고 감성적이면서도 가격은 중저가라 일할 때 입는 옷, 즉 ‘워크웨어(WorkWear)’ 장르를 찾던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소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패션팀이 찾아낸 또 다른 키워드 중 하나는 ‘빈티지’였다. 이것 역시 최신 트렌드 스터디를 통해 뽑은 키워드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본인의 출생연도와 같은 빈티지 롤렉스가 화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포착했다. 그렇게 입점한 브랜드가 명품 시계 리셀 숍 ‘용정 콜렉션’이다. 또 MZ세대가 아날로그 문화를 추억하며 흑백 카메라와 레코드 LP판 같은 빈티지 아이템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카메라워크’ 브랜드도 입점시켰다.

물론 MZ세대가 중요하다고 해서 MZ세대가 아닌 기존 고객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성세대가 선호하는 헤리티지 브랜드들도 입점부터 관리까지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다만 지하 2층이 2030 소비자를 오롯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있는 만큼 다른 층에서도 더현대 서울의 전체적인 젊은 감성이 반영되도록 주의했다. 더현대 서울 지상 2층과 3층에는 일반 여성층, 남성층을 위한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데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컨템포러리(Contemporary) 패션풍의 브랜드로 구성했다. 매장의 전체적인 ‘톤 앤드 매너’를 맞춘 것이다.

2. 브랜드보다 ‘팬덤’을 보라

더현대 서울은 ‘요즘 뜨는’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파급 효과를 사전에 테스트할 수단으로 ‘팝업스토어’를 활용했다. 앞서 소개한 브랜드 쿠어 역시 팝업스토어에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증명해낸 케이스다. 2020년 서울 강남의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진행된 팝업 행사에서 쿠어는 일일 최고 매출액 5000만 원 이상을 기록했다. 현장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고객은 백화점으로 왔다가 우연히 줄을 선 게 아니었다. 팝업 행사 소식을 듣고 백화점 현장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마니아들이었다. 쿠어를 비롯한 ‘원파운드’ 등 인기 브랜드가 SNS 등을 통해 팝업 이벤트를 공지하면 지방의 마니아 소비자들이 나서 “지금 비행기표 끊습니다”라는 답글을 남길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으로 화답한다. MZ세대 고객의 브랜드 로열티가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게 해준 경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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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현대 서울 역시 MZ세대의 ‘취향 저격’ 브랜드를 섭외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젊은 층을 현장으로 불러들이는 결정적인 요소는 결국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 파워이기 때문이다. MZ세대 소비자층은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는 자신의 ‘최애’ 브랜드를 경험하고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에 동참하기 위해 제 발로 리테일 매장을 찾아온다. 특히 백화점이 선택한 브랜드에 대해 소비자들이 트렌디하고 패셔너블한 것으로 신뢰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위해 더현대 서울은 국내에 팬층을 보유한 스웨덴 패션 브랜드 ‘아르켓(ARKET)’을 비롯해 친환경ㆍ유기농 브랜드 ‘뱀포드’ 등을 입점하게 했다. 뱀포드는 뷰티, 스파 상품을 모두 천연 유기농 성분으로 제작할 뿐 아니라 매장에서 명상, 사운드 힐링 등 MZ세대가 추구하는 가치 소비를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을 제공한다.

2030 소비자들이 더현대 서울을 앞다퉈 찾아오게 했던 오프라인 공간이 하나 더 있다.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 최초의 오프라인 공간 ‘브그즈트 랩(BGZT Lab)’이다. 브그즈트 랩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한정판 스니커즈 운동화 300여 족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다. 지드래곤과 나이키의 협업 브랜드 ‘피스 마이너스 원’의 제품이나 ‘나이키 덩크 SB 로우 스테이플 NYC 피죤’ 등 리셀가 70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리셀 운동화들이 전시돼 있다. 브그즈트 랩은 희소가치가 높은 상품들은 전 세계 스니커즈 마니아, 수집가들을 수소문해 구입해 오고 있다. 고가의 한정판 스니커즈 같은 취미 용품은 전 세계적으로 수량이 한정돼 있어 중고 거래가 활발하다. 브그즈트 랩은 스니커즈 마니아들이 온라인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고가의 신발을 현장에서 마음껏 구경하고 즉시 구입해 갈 수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공간이다.

DBR mini box
브그즈트 랩 섭외 비하인드 스토리

백화점에 대한 이미지가 점점 ‘올드’해져 감에 따라 ‘영’한 브랜드들은 더현대 서울의 입점 제안을 오히려 고사하는 사례가 꽤 있었다. ‘백화점에 입점돼 있다’는 이미지는 브랜드 마케팅 차원에서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번개장터의 ‘브그즈트 랩’도 마찬가지였다. 팝업스토어면 몰라도 정규 리테일 매장 오픈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수백만 명의 마니아층을 소유하고 있는 번개장터는 반드시 매장에 입점시켜야 하는 온라인 브랜드 중 하나였다. 더현대 서울 측은 번개장터와 1년이 넘도록 소통하며 리테일 매장 오픈을 설득했다. 설득 과정에서 기존 백화점과는 완전히 다른 더현대 서울만의 브랜드 전략을 내세웠다.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콘셉트와 입점이 예정돼 있는 젊은 브랜드들을 소개하며 기존 백화점과의 차별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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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패션팀은 내부적으로 경영진을 설득하는 데도 노력을 쏟아야 했다. 번개장터라는 온라인 브랜드가 과연 백화점에서 운영할 수 있는 브랜드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패션팀은 영(Young) 문화의 공통적인 키워드로 ‘스니커즈’라는 점을 상기했다. 신발 브랜드 나이키가 브랜드 가치 순위 1위라는 점과 번개장터의 리세일 상품들, 특히 응모에 당첨된 고객들에게만 구매 기회를 주는 복권식 래플(Raffle) 이벤트에 소비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린다는 점도 확신의 근거로 쓰였다.

이 같은 오랜 설득 과정 끝에 더현대 서울 지하 2층에 브그즈트 랩이 들어섰다. 현재까지 브그즈트 랩을 찾아온 방문자는 13만 명이 넘는다.

3. 유행에 민감한 MZ세대의 변덕 따라잡기

온라인 유통 업계에서 더현대 서울을 부르는 별명이 있다. 바로 ‘팝업 맛집’이다. 더현대 서울 곳곳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의 팝업스토어가 여러 형태로 개최되고 있으며 한 브랜드당 팝업 행사 기간은 최대 2주를 넘기지 않는다. 신진 브랜드들은 단기간이지만 ‘더현대 서울’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개성과 위트를 전략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온라인 브랜드의 스타성을 입증하는 실험대이기도 하다. 동시에 더현대 서울은 억지로 공간을 바꾸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고객에게 새로움을 전달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덤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는 플랫폼의 역할까지 챙겨간다. 백화점과 브랜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며 윈윈(win-win)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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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로 개장 초기 온라인 쇼핑몰만 운영하는 동대문 신진 패션 브랜드 제품을 직접 입어보고 구매할 수 있는 쇼룸 형태의 팝업스토어가 지하 1층 대행사장에서 열렸다. 약 330㎡의 공간에 니어앤디어, 버브, 코엣 등 12개 브랜드가 팝업 행사에 참여해 각 브랜드의 개성과 스토리를 알렸다. 행사 기간에 맞춰 더현대 서울을 방문한 사람들은 평소 온라인으로만 접하던 디자이너 브랜드를 오프라인 공간 가까이서 접하며 신제품을 직접 착용해 볼 수 있었다.

더현대 서울의 집요한 MZ세대 중심의 매장 전략 효과는 신용카드 데이터를 통해 알 수 있다. 더현대 서울에 따르면 매장 내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20, 30대 소비자 비율은 전체 고객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일반적인 백화점에서 2030 소비자 비율이 20%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MZ세대의 관심을 3배 가까이 높였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는 다른 카드사 데이터를 제외한 현대카드 사용 데이터만으로 도출한 결과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현대카드는 20대 소비자에게는 발급 절차가 까다로워 그들이 타사 카드나 가족 카드를 사용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2030 소비자층은 80%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쇼핑의 불모지 여의도,
글로벌 포지셔닝을 위한 발판으로

더현대 서울은 쇼핑 상권의 불모지로 평가받는 여의도에 개장했다. 여의도는 대표적인 오피스 상권으로 주중에는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지만 주말에는 회사들이 문을 닫아 말 그대로 ‘유령 도시’가 된다. 실제로 여의도에서 운영하는 식당 대부분은 주말 영업은 하지 않는다. 여의도가 쇼핑 상권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에 힘을 실어준 대표적 사례도 있다. 1983년 개장한 ‘여의도백화점’은 여의도의 첫 백화점이자 7500평(2만4793㎡) 규모로 당시에는 최신의 쇼핑 시설을 갖춘 백화점이었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여의도백화점은 영업 적자와 건설 당시의 부채로 인해 부도가 났다. 위기 상황을 모면하고자 재개장까지 시도했으나 결국 8개월도 못 가 문을 닫았다. 이 같은 배경으로 인해 현대백화점그룹 내부에서도 여의도 입지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성공 전례가 없는 곳에 대한 염려와 우려들이었다.

그러나 현대백화점그룹은 기존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전통적인 백화점의 1차 상권 개념에서 상권을 조금 더 넓혀 광역 상권으로서 여의도를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유효 상권을 반경 5㎞에서 10㎞로 넓히면 여의도는 무려 200만 명이 거주하는 유력한 쇼핑 상권이었다. 또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려면 분명한 포지션이 있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깔렸다. 서울 내엔 거대한 백화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만큼 더현대 서울의 생존 포인트는 ‘글로벌 포지셔닝’에 있었다. 여의도는 서울의 심장부로서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입지라고 판단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특정 지역 상권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전통적 백화점 전략과 거리를 뒀다. 가장 먼저 백화점 이름에 ‘백화점’이란 단어와 지역명 ‘여의도’를 과감히 삭제했다. 백화점 이름에 백화점과 지역명을 빼버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신 ‘서울’이라는 이름을 넣었다. 새로운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고자 서울이라는 이미지를 활용한 명소화 전략이었다. 브랜드 광고도 예외가 아니었다. 더현대 서울 브랜드전략팀은 광고 음악을 작업한 가수 자이언티에게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묻어나고 ‘서울’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도록 해줄 것을 요청했다. 매장 내 층별 테마 이름도 해외 고객들도 부르기 쉽도록 영어로 지었다. 보통 백화점의 각 층을 대표하는 이름을 한글로 짓는 것과 대비되는 형식이다. 더현대 서울은 글로벌 포지션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2025년 운용 예정인 인천공항과 여의도를 잇는 ‘드론 택시’까지 염두에 뒀다. 그간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의미에 그쳤지만 최근 한류가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만큼 서울은 앞으로 10년 이상 ‘글로벌 콘텐츠’로서 소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현대 서울이 글로벌 포지션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소셜 공간에서 2차 콘텐츠가 생산•소비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지표였다. 현재 소셜미디어에서 더현대 서울이 차지하는 언급량은 상당하다. 2021년 10월 빅데이터 전문 조사 기관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21년 3분기(7∼9월) 뉴스•커뮤니티•블로그•유튜브•트위터•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12개 채널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현대백화점이 총 23만6473건을 기록해 지난해 동기(12만2744건) 대비 92.66%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주요 백화점 3사(롯데, 신세계, 현대) 중 정보량과 정보량 증가율 면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이 같은 결과엔 더현대 서울이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물리적 공간의 절반을 휴게 공간으로…
백화점 공식 파괴한 공간 기획

쿠팡이나 네이버쇼핑과 같은 이커머스 업체가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현대 서울은 자사만의 차별점을 강화하기 위해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써야 했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커머스는 리테일 매장보다 더 많은 상품을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소비 트렌드를 주도했다. 현대백화점은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사람들이 더 이상 상품만 촘촘하게 쌓여 있는 답답한 백화점을 찾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리테일 매장을 떠나간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으기 위해 온라인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색적인 매력을 갖춘 공간을 설계해야 했다. 지금까지 리테일 매장이 백화점 상품과 서비스의 ‘병풍’ 노릇을 해왔다면 더현대 서울이 선보여야 할 물리적 공간은 상품 및 서비스보다 더 매력적인 ‘주인공’이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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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소비심리 분석가 겸 쇼핑 과학의 창시자 파코 언더힐(Paco Underhill)이 주장한 ‘엉덩이 부딪힘 효과(Butt Brush Effect)’에 따르면 리테일 매장에 방문한 고객이 한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적게 부딪힐수록 매장에 더 오래 머문다. 붐비지 않는 매장이 소비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더현대 서울은 이 점을 노렸다. 더현대 서울의 전체 영업 면적은 8만9100㎡(2만6953평)로 서울 내 백화점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지만 이 가운데 매장 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51%에 그친다. 매장의 절반 정도를 방문객의 휴게 공간으로 설계한 것이다. 실제로 더현대 서울을 방문한 소비자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점은 방문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실내가 붐비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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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 서울은 매장과 매장 사이 간격이 좁은 일반적인 백화점과는 달리 고객의 동선 너비를 8m까지 넓혀 혼잡하지 않고 여유롭다. 이는 유모차 8∼11대가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간격으로 다른 백화점 매장에 비해 2∼3배가량 넓다. 매장 혼잡도를 줄이면 고객이 머무는 시간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덜 복잡한 공간은 소비자가 매장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매장이 덜 혼잡해 보일수록 고객에게 쾌적한 인상을 심어주고 소비자들은 그 공간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백화점에 시계와 창문을 두지 말라’는 널리 알려진 백화점 마케팅 전략이다. 그간 백화점은 소비자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했다. 그러나 더현대 서울은 오히려 전 층에 자연 채광이 스며들 수 있도록 1층부터 건물 전체를 오픈하는 ‘보이드(Void) 건축 기법’을 도입했다. 백화점 외관에 보이는 크레인 구조물 덕에 기둥 없이 유리 천장을 지지할 수 있어 탁 트인 시야를 통해 개방감을 극대화했다. 전처럼 백화점이 상품을 파는 공간으로만 남아서는 더욱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상품을 판매하는 이커머스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따랐다. 아울러 코로나19 사태로 2년 이상 야외 활동에 대한 제약이 따르는 상황에서 백화점에서 자연 채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방문객들에게 쾌적한 경험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더현대 서울 1층 중앙부에 있는 12m 높이의 인공폭포 ‘워터폴 가든’도 마찬가지다. 방문객들은 3층에서 1층까지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을 여러 층에서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다. ‘혼잡한 도심 속 휴식 공간’을 콘셉트로 한 더현대 서울의 ‘리테일 테라피’ 공간 전략의 일환이다. 리테일 테라피는 유통(Retail)과 치유(Therapy)를 결합한 단어로 ‘쇼핑을 통한 힐링’을 의미한다.

생활편의적 요소들을 모두 갖춘 도심 속 현대인들일지라도 늘 갈구하고 부족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녹지다. 더현대 서울은 공원에 버금가는 거대한 공간의 ‘플랜테리어(Planterior)’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플랜테리어란 식물(Plant)과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로 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 방식을 의미한다. 더현대 서울은 1000여 평 규모 5층 전체에 나무와 꽃을 심어 녹색공원 ‘사운즈 포레스트’를 조성했다. 사운드 포레스트는 조화가 아닌 실제 나무와 생화로 조성돼 있다. 1년 내내 실내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계절과 무관하게 푸른 식물들이 자랄 수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더현대 서울의 경우 현대백화점의 다른 일반 점포들에 비해 식물 관리 비용이 2∼3배가 든다”고 말했다.

최근 수년간 환경 변화로 인해 대기오염이 심화되고 공기질이 저하되면서 일상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실내 공간의 쾌적성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해 왔다. 또 코로나19로 인한 ‘집콕생활’이 장기화되면서 식물은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트렌드에서 빠질 수 없는 상품이 됐다. 그 덕분에 사운드 포레스트 곳곳에 설치된 테이블과 벤치에는 백화점 최초로 입점된 ‘블루보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방문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더현대 서울은 사무와 가사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방문하는 힐링 공간으로 인식됐다”며 “이커머스가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시대에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공간의 리포지셔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 백화점 생존 전략, ‘고객 경험의 프리미엄화’

더현대 서울은 미래 백화점의 생존 전략을 고객 경험의 ‘프리미엄화’라고 정의했다. 경험의 양(Mass)보다는 경험의 질(Quality)로 승부를 봐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프리미엄화라고 해서 값비싼 명품만 판매해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혹은 다른 백화점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프리미엄이라고 여긴다.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이 다양해지면서 이들이 찾는 백화점은 교육적 차원, 즉 고객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는 창의적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더현대 서울 곳곳에는 예술 지향적 문화 공간을 도입하기로 했다. 공간마다 디테일한 큐레이션이 어우러져 있어 단순한 문화 센터라기보다는 미술관이나 전시장 같은 분위기를 풍기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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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더현대 서울은 2021년 5월까지 약 595㎡(180평) 규모의 아트워크 ‘스프링 포레스트(Spring Forest)’ 전시를 개최했다. 스프링 포레스트는 영국 스튜디오 스와인(STUDIO SWINE)의 이벤트 공간이다. 나무를 형상화한 조형물에서 안개를 머금은 비눗방울이 나오도록 해 관객이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도록 했다. 비눗방울이 터지면 비눗방울 속 연기가 대기 중에 퍼지게 돼 관람객들에게 독특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7월부터는 더현대 서울 내 복합문화공간 알트원(ALT.1)에서 아시아 최초로 360도 감성 체험 전시 비욘더로드(BEYOND THE ROAD)가 진행됐다. 영국 유명 뮤지션의 음악을 33개 공간에 걸쳐 구성하고 전시장 내부 곳곳에 100개의 스피커와 다양한 조명을 설치해 시각, 청각, 촉각, 후각, 공간지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해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빗장 풀린 해외여행…
‘에•루•샤’ 없는 더현대 서울의 선택은?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2021년 2분기(4∼6월)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81억 원)보다 609.6% 증가한 577억 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분기(507억 원)보다 높은 수치였다. 2021년 같은 기간 매출액은 8638억 원으로 전년 대비 67.2% 늘었다. 전문가들은 2년째 이어진 코로나19 사태에 지친 소비자들이 올해 초부터 명품과 패션 ‘보복 소비(Revenge spending)’와 맞물린 영향이라고 보고 있다.

올해 초 국내외선 ‘보복 소비’가 화두였다. ‘펜트업 효과(Pent-up effect)’로도 불리는 보복 소비는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억눌린 소비 욕구가 폭발하는 현상을 말한다. 외국 여행에 대한 제약이 지속되며 유명 브랜드 수요도 커졌다는 분석이다. 김세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여행을 비롯한 여행 상품은 사치재에 속하고 ‘명품재’라고도 볼 수 있다”며 “한 해 동안 대한민국 소비자들이 해외여행에 쓰는 돈이 19조 원인데 지난해 해외여행이 95% 가까이 줄면서 여기에 쓸 개인 예산이 백화점 명품 소비 등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도권 최대 백화점인 더현대 서울에는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등 이른바 ‘에루샤’로 불리는 명품 브랜드 매장이 없다.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해당 럭셔리 브랜드들이 희소성 원칙을 고수하고 향후 호황기가 끝나는 시점을 고려해 판매 거점을 줄이는 리스크 관리 전략을 펼치고 있어 신규 출점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더현대 서울이 백화점의 성공 요건인 ‘3대 명품 매장’을 입점시키지 못해 장기적으로는 매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명품 매장이 입점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콘셉트, 하위 브랜드 섭외와 고객을 위한 휴게 공간 구성 등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는 게 더현대 서울 측의 설명이다. 대표적인 명품 매장이 없다는 약점이 더현대 서울이 강점으로 내세운 요소에 더 몰두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명품 매장 대신 오히려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하위 브랜드 섭외와 고객을 위한 휴게공간 구성 등에 더욱 집중하게 된 게 지금의 더현대 서울을 만들 수 있는 배경이 됐다. 하지만 더현대 서울 역시 ‘에루샤’ 유치의 장점을 잘 알고 있기에 지속적으로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일부 브랜드와 계속해서 입점 유치를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더현대 서울의 MZ 타깃 전략이 지속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염려도 존재한다. 더현대 서울이 MZ세대의 이목을 이끄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성과를 거뒀지만 백화점 매출에 효자 역할을 하는 메인 고객층은 아직까지 구매력이 큰 4050 소비자다.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 탓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대기 시간이 발생하는 등의 부작용은 4050 고객들의 매장 방문 의지를 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현대 서울 측은 소비자들은 전 세대를 막론하고 결국 ‘생동감’을 찾아온다는 데 확신을 갖고 있다. 일부 소비자에게 더현대 서울의 전략은 한동안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젊은이들이 모이고 젊은 감성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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