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롱한 안내음과 함께 무지갯빛으로 채색된 구름 한 조각이 열린 문으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바람처럼 동그랗게 말린 모양의 윤곽선을 두른 꼬마 구름이었다.
“이 조그만 형상은 들어올 때마다 적응이 안 되는군! 빨랫줄에 널어놓고 잊어버리는 바람에 흙바닥에 떨어진 양말 한 짝도 지금 내 모습보단 아름답겠어!”
구름은 투덜거리며 끝이 보이지 않는 광대한 표면에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 위를 스쳐 산봉우리 다섯 개가 하늘을 뚫을 듯 우뚝 솟구친 곳을 향해 날아갔다. 거리가 줄어들수록 산맥은 세계 끝을 막고 선 장벽처럼 불쑥불쑥 커져서, 구름이 그 안의 사물을 분간할 만큼 다가갔을 땐 마치 온 하늘 끝부터 땅끝까지가 장엄한 녹색의 장막 한 장에 가린 것처럼 보였다.
33번 우주 가득 넘실대는 무량대수(無量大數)의 파도처럼 산봉우리는 진한 녹색과 파란색을 띤 선과 면의 무한한 집적으로 이뤄져 있다. 그 꼭대기 너머로는 까마귀 깃털보다 검은 하늘이 펼쳐져 있고, 구름은 지금 막 그 하늘 구석에 열린 문을 통해 입장한 참이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왼쪽 산기슭에 당도한 구름이 잠시 숨을 고르며 다섯 봉우리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천천히 돌고 있는 흰 구와 붉은 구를 올려다봤다. 이 조그마한 디지털 우주도 자기만의 해와 달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보게들, @#$, 아니 구름이 왔네! 구름! 구름, 자네! 어서 이리로 오게!”
친구가 반가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구름이 두리번거리니 가장 오른쪽 산기슭에 검은 꽃 하나를 피워 달고 서 있는 검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저승아기였다.
“저승아기, 저승아기! 바로 지난달 자네가 전체 응답 성공률 1위를 달성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네만!”
한달음에 달려간 구름은 연필만 한 크기의 저승아기 주변을 빙빙 돌며 치하를 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구름보다 먼저 와 있던 다른 친구들도 다시 요란한 축하 인사를 쏟아냈다.
“보통이 아냐, 보통이 아냐!”
“역시 저승아기야! 어려서 그런가 아주 영특하고 영민해. 우리 같은 늙다리 신들보다 재지(才智)가 있지, 암.”
오팔처럼 화려한 무늬를 가진 조약돌이 감탄하자 다섯 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던 흰 새가 곧바로 말을 받았다. 그들은 구름만큼이나 들떠 있었다. 언제나 점잖게 침묵을 지키던 빨간 불꽃마저도 흥분의 증거로 사방에 불똥을 튀길 정도였다.
이경plumkyung22@gmail.com
소설가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하고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소설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로 2022 문윤성SF문학상 중단편가작을 수상했다. 소설집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