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라파스 ‘어큐트케어’초미세바늘 화장품 혁신 전략

"잘 보면 보인다" 초미세바늘 패치, 화장품 혁신 부르다

199호 (2016년 4월 lssue 2)

잘 보면 보인다초미세바늘 패치, 화장품 혁신 부르다

 

 Article at a Glance

 

통증 없는 초미세바늘을 이용한어큐트케어화장품 패치로 판매 2년 만에천만불 수출의 탑을 달성하고 ‘K-뷰티성공사례가 된 벤처기업 라파스의 특징

 

 

1. 대학 연구소의 유망 기술을 이전받아 상용화. 반도체 제조설비를 화장품 생산에 적용하는 유연한 운영

 

 

2. 논문 쓸 때처럼 임상실험 데이터를 꼼꼼히 수집. 안정성과 지적재산권에 민감한 미국 바이어에게 적시에 제공해 신뢰 확보

 

 

3. 브랜딩과 마케팅보다는 제품 기술과 생산능력에 경쟁우위가 있다고 보고 ODM 사업에 집중. B2C 상품은 제품과 기술력을 시장에 알리는 역할 수행.

 

 

4. 정부과제와 지자체 지원, 벤처캐피털 펀딩을 적절하게 사용해 연구비 및 시설투자비 확보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정우성(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13년 가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무역을 하는 재미교포 에이전트 A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미국의 대형 네트워크 화장품 판매회사인 로던앤필즈(Rodan + Fields) 사의 미팅 요청이었다. 이 회사의 최고기술경영자(CTO) A씨에게 한 편의 논문과 반창고처럼 생긴 얇은 패치 하나를 건네며이 제품을 만든 회사가 한국에 있다는데 소개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논문은 그해 6월 의학 논문에 발표된초미세바늘 제조법이었다.1 그리고 패치는 논문 제1 저자인 김정동 박사가 벤처기업 라파스에서 만든 시제품이었다.

 

에이전트 A씨는 되물었다. “이거 내가 예전에 당신에게 얘기했던 건데 기억나지 않나.” 그는 그해 봄 한국 중소기업청의히트500’ 상품으로 선정된 라파스의 안티에이징 화장품 패치를 로던앤필즈 측에 소개했지만 부정적인 답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 회사의 CTO가 홍콩에서 열린 화장품 관련 산업전시회를 통해 라파스 패치의 샘플을 입수하고 원천기술을 담은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된 것을 확인한 후 태도가 급변한 것이었다.

 

A씨는 바로 두 회사를 연결해줬다. 정도현 대표와 논문을 쓴 김정동 이사(CTO) 등 라파스 임직원들이 미국으로 날아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곧이어 상대 측 품질 및 물류 담당자가 한국으로 넘어와 라파스의 생산시설을 심사했다. 이후 임상실험 데이터와 특허 관련 서류 등 어마어마한 양의 e메일이 오갔고, 마침내 수출 계약이 맺어졌다.

 

이후 2년 동안 라파스는 이어큐트케어(Acute Care)’ 패치를 로던앤필즈에 주문자생산방식으로 약 1200만 개 팔았다. 제품의 주성분은 일반 안티에이징 크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2 그런데 이런 성분이 수백, 수천 개의 미세바늘 혹은 돌기 형태로 붙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얼굴에 꾹 눌러 붙이면 돌기가 피부 표면을 뚫고 들어간다. 머리카락 3분의 1 정도 굵기의 돌기는 한 시간가량 체온에 의해 서서히 녹아 들어가며 사라진다. 기자도 시험해봤다. 처음 붙일 때 살을 파고드는 듯한 야릇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괜찮아졌다. 떼어버리자 흔적이 남지 않았다.

 

약물을 피부 속으로 집어넣으므로 피부 위에 바르는 크림보다 효과가 좋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 미국 ODM 제품 하나만으로 매출은 2년 만에 6, 영업이익은 30배 늘었다.(그림 1) 2015 1월에는 미국의 <포브스>지 온라인판이 ‘2014년 가장 혁신적인 뷰티제품중 하나로 꼽을 정도였다.

 

 

 

 

 

 

 

성공의 포상은 달콤했다. 라파스는 2015 12월 무역의 날을 맞아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또 초기 투자자인 연세대 기술지주회사는 정 대표가 지분의 일부를 매입해주면서 약 31억 원, 투자금 대비 7배의 수익을 올렸다.3  현재 전국 35개 주요 대학에 기술지주회사가 있지만 기술 특허의 판매가 아니라 자회사 지분매각으로 수익을 올린 것은 연세대의 라파스 투자가 처음이다. 또 이와는 별개로 임상실험을 도와줬던 연세대 의대도 라파스로부터 1억 원의 기부금을 받았다.

 

어큐트케어의 성공은 대학의 기술, 기업의 경영능력, 그리고 정부의 지원 등 3박자가 맞아떨어져서 가능했다. 회사는 2009년 연세대 생명공학과의 초미세바늘 제조기술을 이전받았다. 정부와 서울시도 연구과제를 통해 지원해줬다. 회사는 이런 파트너십 위에서 새로운 양산기술을 완성해냈다. 꼼꼼한 영업활동으로 해외 바이어에게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인정받고 수출 대박을 터뜨렸다.

 

혁신적인 기술, 벤처기업다운 투지, 그리고 민--학의 협력이 어우러진 라파스 어큐트케어 패치의 사례를 분석한다.

 

상업화 기술로 가는 세 번의 고비

 

라파스의 정도현 대표는 연세대 생명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쳤다. 87학번인 그는 제약회사와 친환경 농약을 만드는 바이오 관련 벤처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화학 공부가 좋아 박사 과정까지 밟고 연구원이 됐지만 회사를 다니다보니 저절로 사업에 눈을 뜨게 됐다. 작은 회사라 연구뿐 아니라 비즈니스까지 일정 부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3년에 지인과 함께 첫 사업을 시작했다. ‘뉴트렉스테크놀러지라는 회사였다. 천연화합물 소재의 원료를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에 공급했다.

 

그러던 2009, 모교인 연세대 생명공학과에서 초미세바늘의 제조법을 연구하는 팀을 만났다. 화장품이나 의약품에 적용될 수 있는 기술로서 미래 사업가치가 크다고 본 그는 뉴트렉스테크놀러지의 지분을 동업자들에게 팔고 나와서 초미세바늘 사업에 운명을 맡겨보기로 했다.

 

당장 돈이 되는 사업은 아니었다. 상용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동안 직원들에게 월급 줄 돈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정 대표는 예전 회사에서 해왔던 천연물 소재 판매를 계속하면서 운영비를 벌었다. 혼자서 인삼, 홍삼, 헛개, 복분자 등 식물의 추출물을 한국야쿠르트, CJ, 롯데, 풀무원 등 대기업에 납품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는 동안 연구진은 초미세바늘 제조기술을 상용화 수준으로 향상시켜나갔다. 식품 원료 사업에서 번 현금을 초미세바늘에 투자한 셈이다. 이때만 해도 직원 수는 5명 안팎이었다.

 

사실 미세한 바늘을 이용해 고통 없이 약물을 인체에 침투시킨다는 아이디어는 나온 지 오래됐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대학과 3M, 후지필름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이 기술에 투자해왔다. 바늘 크기가 아주 작으면 통증을 느낄 수 없고 바늘자국도 남지 않는다. 의사나 간호사 없이 환자 스스로 약품을 투여할 수 있다. 당뇨 같은 질병 치료제나 전염병 백신에 적합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미 2011년 보고서에서글로벌 10대 유망 기술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이런 초미세바늘에는 대표적으로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솔리드혹은코팅타입은 뾰족한 바늘 끝에 약물을 묻히는 방식이다. 둘째, ‘중공형은 바늘 중앙에 구멍이 있어 그 안으로 약물을 주사하는 방식이다. 셋째, ‘용해성은 몸 안에서 녹는 소재의 실리콘이나 약물 자체를 바늘 모양으로 굳혀서 피부 속에 집어넣는다. (그림 3)

 

이 세 가지 타입 중에서 용해성 초미세바늘은 바늘의 크기를 최소화할 수 있어서 사용자가 느끼는 통증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또 바늘이 피부 밑에서 녹아 없어지기 때문에 의료 폐기물의 발생도 없다. 피부에 붙이기 전에는 안정적인 고체 상태를 유지하므로 운반하기도 쉽다.

 

하지만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제조가 어렵다. 쇠가 아닌 약물을 가지고 미세바늘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모양을 가지런하게 잡기 어렵다. 몇몇 제조사들은 바늘 모양의 형틀에 약물을 붓고 열을 가해 굳히는 방식을 이용한다. 미세한 틈에 잘 들어가게 하기 위해 진공상태를 이용하거나 형틀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원심력을 이용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게다가 건조 과정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성분이 변하기도 하고, 정확한 양을 맞추기도 어렵다. 결국 생산단가가 올라가고 시장경쟁력이 떨어진다.

 

연세대 연구진은 2009년 이런 단점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침 모양의필러(pillar)’를 이용한 제조 방식을 개발해 발표한 바 있다.4 젓가락으로 꿀을 찍으면 쭉 늘어나는 원리를 이용했다. 판판한 기판 위에 점성이 있는 약품을 발라두고 필러로 쿡 찍어서 쭉 늘인다. 이를 굳혀서 절단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따로 형틀을 쓸 필요가 없다.

 

라파스는 이 특허를 이전받아 상용화에 착수했다. 액체의 점성을 이용해 자연적으로 바늘 모양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훌륭했다. 하지만 대학 실험실을 떠나 기업 현장에서 대량생산에 쓰려고 보니 곧 문제에 부딪혔다. “패치 하나 만들고 필러를 닦고, 또 패치 하나 만들고 필러를 닦고이런 방식으로는 양산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필러를 쓰지 않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정 대표의 말이다.

 

 

 

 

 

 

 

 

 

 

 

스폿(spot·) 공정을 써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굳이 필러를 사용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약물을 일정 간격을 두고 점 모양으로 기판 위에 똑똑 떨어뜨려놓는다. 그리고 다른 판 하나를 가져다 접촉시킨 다음에 두 판을 위아래로 조심스럽게 벌린다. 그러면 약물이 줄을 맞춰 엿가락처럼 늘어난다. 그런 다음 바람을 불어넣어 건조시키면 마치 동굴속의 종유석 모양으로 뾰족하게 굳을 것이다. 가운데를 절단하면 한 쌍의 초미세바늘 기판이 된다. 여기까지 몇 초면 충분하다.

 

좋은 발상이었다. 약물의 정량을 유지하면서 점 방식으로 배열하는 기술에 대해 라파스 개발자들은 정밀기계 제조업체의 대표와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설비를 적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즉시 실험에 들어갔다.

 

하지만 두 번째 고비를 만났다. 기판 위에서 약물을 바늘 모양으로 만들고 건조시키는 것까진 성공했지만 그 바늘을 피부에 붙이는 패치로 옮겨 붙이는 과정 또한 까다로웠다. 이 즈음 일본에서 첫 수출 계약이 들어왔지만 수율이 0%에 가까웠다. 100개 만들면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이 고작 1∼2개 나올 정도였다. 버려지는 원료비가 납품단가보다 높을 지경이었다. 이대론 곤란했다.

 

라파스의 연구진과 설비업체 엔지니어들이 두 번째 문제 해결을 위해 다시 머리를 맞댔다. 이번에는 의견이 갈렸다. 함께 일해 온 정밀기계 설비업체의 엔지니어는 기판 위에서 바늘을 제조해 패치로 옮겨 붙이는 현재의 방식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작은 벤처회사에서 다른 방법을 개발하고 시도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반면 정도현 대표를 포함한 라파스 연구진은 기판이 아니라 아예 패치 위에서 바늘을 만드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치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조 방식을트렌치방식으로 할 것이냐, ‘스택방식으로 할 것이냐로 고민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5

 

결론은 패치 방식이었다. 이 어려운 결정은 정 대표가 내렸다. 그는일은 연구원들이 열심히 했고, 나는 발만 동동 굴렀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김정동 이사는 조금 다르게 회상한다.

 

“기판 방식은 생산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패치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누구나 생각은 했다. 다만 실현이 어려웠다. 결국 대표가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당시 회사에 연구 인력이 나 포함 3명이었는데 3명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이 일을 맡으라고 했다. 몇 달 동안 패치 방식의 구현을 위해서 아주 많은 시도를 했다. 조금씩 설비와 공정을 바꿔가면서 실험해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때 연구자들이 해달라는 대로 투자를 다 해줬다. 작은 벤처 기업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라파스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율이 차츰 올라왔다. 초기에는 검수를 통과하는 제품을 찾기 힘들었지만 6개월 정도 지나자 통과 비율이 50% 이상으로 올라왔다. 임직원들은 한숨을 덜 수 있었다. 그래도 연구진은 주말도 반납하고 실험과 시험을 거듭하면서 노하우를 쌓아갔다.

 

마지막 남은 문제는 생산인력의 교육과 관리였다. 처음 천안 공장을 설립하던 시기에는 김 이사가 생산팀장부터 시작해서 공장장의 역할까지 잠시 수행한 적도 있었다. 주말도 없이 매일 12시간씩 공장에서 근무하면서 라인을 돌보고 신입 직원들을 교육했다. 연구진이 언제까지 연구실을 비워둔 채 공장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기에 공장을 계속 돌릴 수 있는 현지 조직을 갖춰야 했다.

 

김 이사는 연구실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공장에서 사람을 관리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젊은 생산직 직원들은 주문량이 많고 초과 근무 수당을 받을 수 있는 달에는 열심히 일했지만, 주문량이 떨어지고 초과 근무가 중단되면 2∼3주 만에 퇴사해버리곤 했다. 한참을 교육했는데 몇 주 만에 쉽게 나가버리니 관리자 입장에서 온 몸에 힘이 쪽 빠졌다. 또 라인에서는 야간근무가 많아 주로 남성 직원들을 뽑았는데, 그러다보니 연구실에서만 살아온 김 이사가 관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다들 생산현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보니 CTO의 지시를 듣지 않고 자기 방식을 고집하느라 수율을 까먹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40대 후반의 공장장과 생산팀장이 영입됐다. 생산관리 경험이 많은 중간관리자가 들어오자 직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문량이 늘어나면서 고용도 안정됐다.

 

여전히 라파스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전수 검사한다. 수율이 좋지 않았던 시절부터 지켜온 품질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모든 제품을 3대의 현미경이 달린 이미지 스캐너로, 그리고 기술자가 육안으로 2중 검수한다. 신기하게도 머리카락보다 얇고 투명한 초미세바늘을 사람의 눈이 컴퓨터만큼이나 또렷하게 검사해낼 수 있다.

 

정 대표도 놀랐다. “잘 보면 보이더라. 인간의 능력이 무한하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엔 하루에 100장 검수하던 사람이 숙달되면 하루에 1500장을 검수하기도 한다. TV 프로그램생활의 달인을 생각하면 된다.”

 

 

 

치밀한 데이터로 · 바이어를 사로잡다

 

연구팀과 생산팀이 초미세바늘 공정의 개발과 생산에서 분투하는 동안 정도현 대표는 본인의 영업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첫 매출로 이어진 인연은 우연히 찾아왔고 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2011년이었다. 정 대표는 회사 운영비를 벌기 위해 계속하고 있었던 식품용 천연물 사업 차 일본을 방문했다. 상대방은 일본 야쿠르트 출신의 80대 사업가로 유산균 사업의 베테랑이었다. 당시 일본에는 한국에는 소개되지 않았던 여러 종류의 유산균 원료들이 있었다. 정 대표는 그런 원료를 들여다가 한국 식품 기업에 판매할 수 있을지 궁리 중이었다.

 

유산균 사업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미팅을 마치려다가 마지막으로우리 회사에서 이런 사업도 한다며 초미세바늘 패치 샘플을 보여줬다. 아직 생산설비 없이 실험라인을 돌리던 시절이다. 기판 위에서 만든 미세바늘을 한 땀 한 땀 정성껏 오려서 패치 위에 오려붙인 파일럿 제품이었다. 그런데 파일럿을 본 유산균 전문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분야는 아니지만 신기술이 들어간 제품을 보고는 과학자답게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었다. 꼼꼼히 살펴보고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자신이 아는 일본 네트워크(다단계) 미용업체를 소개해줬다.

 

 

 

 

 

 

그 당시 일본에 이미 초미세바늘을 이용한 미용제품이 나와 있었다. 코스메드(cosMED)라는 업체에서 판매하는 안티에이징 패치로 역시 용해성 초미세바늘을 사용했다. 소재와 제조방식은 달랐다. 라파스 입장에서는 시장을 선점한 경쟁자가 있는 편이 오히려 반가웠다. 외국 업체로서 현지 소비자들에게 생소한 제품을 설명해가면서 시장을 혼자 개척하는 것보다는 로컬 제품이 자리 잡은 시장 속에서 가격 및 품질경쟁력을 통해 어필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제품 아이템도 고민할 필요 없어 안티에이징 패치로 정해졌다. 경쟁사인 코스메드의 제품은 용해성 바늘이긴 하지만 형틀에서 찍어내고 열처리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조됐다. 형틀이 필요 없는 라파스의 송품인장제조 방식으로 가격과 효능 양 측면에서 좋은 승부를 할 수 있다고 봤다.

 

1년에 걸친 협상의 결과, 일본 클라이언트인 코요사(Koyosha)는 연간 20억 원 규모의 ODM 주문을 냈다. 아직 시제품밖에 없는 회사에게 준 주문치고는 큰 액수였다. 제품명은 비바리(BIBALI)였다. 코요사는 이것을 일본 소비자들에게 프리미엄 상품으로 팔았다. 반창고 크기의 패치 하나에 1만 원 정도 였다. 라파스 임직원이 쏟아부은 피땀 어린 노력이 드디어 황금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피땀이 어렸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초미세바늘 패치는 오랜 임상시험을 통해 개발됐다. 미용제품은 의약품에 비해 규제가 가볍긴 하다. 사전 허가제가 아니라 사후 신고제다. 하지만 그래도 초미세바늘이 피부에 손상을 주지는 않는지, 성분의 효능이 얼마나 발휘되는지 등을 확인하는 과정을 꼼꼼히 거쳤다. 라파스는 임상수탁기관(CRO) 업체와 세브란스 등 대형 병원 등에 의뢰해서 2∼3개월 진행되는 임상시험을 10회 이상 진행했다. 참가한 사람의 수는 200명 이상이다. 그중엔 임직원 가족도 포함돼 있었다.

 

테스트 과정이 번거롭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철저히 임상시험 데이터를 모아둔 것이 해외 바이어들의 신뢰를 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본 클라이언트는 ODM 주문을 넣으면서 30%의 선금까지 지급했다. 업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이 돈으로 라파스는 천안 공장을 임대하고 양산 설비에 투자할 수 있었다. 착착 맞아 들어갔다.

 

본국인 한국이 아닌 일본 시장에서 먼저 판매의 물꼬가 트인 데 대해 김정동 이사는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이 IT 분야의 테스트베드라면 일본은 뷰티 분야의 테스트베드다. 일본 사람들은 새로운 미용기술과 제품을 사용해보는 걸 좋아한다. 신기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고 빨리 적응한다.”

 

 

 

미국 수출 역시 운과 실력이 함께 작용했다. 서두에 말했듯, 홍콩의 화장품 박람회에서 샘플을 돌렸던 것이 미국의 네트워크 판매 업체인 로던앤필즈의 CTO 손에까지 들어갔고 중간에서 두 회사를 연결해준 재미교포 에이전트의 역할도 컸다. 하지만 계약 자체는 라파스가 쌓아온 실력으로 따냈다. 미국은 의약품뿐 아니라 미용제품에도 안전 기준이 높다. 지적재산권도 강력하게 보호한다. 라파스는 4년간 수많은 임상시험과 정부 과제를 거치면서 꼼꼼히 축적해온 효능과 안전성 데이터를 확보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여기에 기술진들의 적극적인 기술영업이 어우러졌다. 정 대표는 이 업체의 계약을 딸 때도 일정 부분 선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라파스를 로던앤필즈에 소개했던 재미교포 에이전트는 나중에 정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한국의 수많은 화장품 기업이 미국의 ODM 계약을 받지만 라파스처럼 미국에서 요구하는 데이터를 신속하고, 완벽하게 제공하는 회사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와 김 이사 모두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생명공학 연구자 출신이다. 이들은 주문자생산방식, B2B 채널에 집중함으로써 본인들의 핵심 역량이 아닌 마케팅이나 홍보에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를 최소화했다. 대신 제품 품질 향상과 데이터 확보에 집중했다.

 

회사는 현재도 B2B 채널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2015년 하반기에는 자사 브랜드인아크로패스를 런칭해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ODM 제품과 경쟁하려는 게 아니라, 자사의 차별화된 초미세바늘 기술력을 시장에 알리고 ODM 클라이언트들에게 제품 레퍼런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정 대표는 회사의 정체성을 화장품 업체가 아닌용해성 마이크로구조체 기술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고어텍스나 인텔처럼 다양한 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다.

 

수출이 성공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주주인 정 대표 외에 10개 정도의 투자사들이 라파스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12년 양산 설비를 갖추면서 국내 벤처캐피털로부터 1차 펀딩을 받았고, 미국 수출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4년 가을에 다른 벤처케피털사들로부터 2차 펀딩을 받았다. 2015년 가을에는 중국의 제약회사와 유통회사, 벤처캐피털이 총 1160만 달러( 135억 원)를 유상증자 형태로 투자했다. 이 중국 파트너들은 향후 중국 시장 진출에 도움을 될 것으로 정 대표는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

 

2015년까지 라파스의 가장 큰 약점은 매출의 상당부분이 미국의 로던앤필즈라는 1개 채널에 집중돼 있었다는 점이었다. 경쟁사들보다 뛰어난 제조 역량을 갖고 있지만 초미세바늘을 이용한 제품시장 자체가 크지 않다는 한계도 있었다. 이상석 홍보담당 매니저는소비자들에게는 아직 초미세바늘 패치라는 제품 자체도 생소하기 때문에 라파스가 갖고 있는 기술적인 우위 부분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힘들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판매채널 다각화와 세계시장 진출에 전사적인 힘을 쏟고 있다. 일본과 중국,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해서 신규 유통채널과 거래처 발굴에 노력하고 있다. 중국의 위생허가와 ISO 국제인증도 취득했다. 남미, 호주, 서유럽에는 이미 유통이 시작됐다. 또 글로벌 소비재 및 의약업체 몇 곳도 라파스에 대해 실사를 진행했다고 회사 측은 말한다.

 

하반기부터는 미용뿐 아니라 아토피 치료 등 의료기기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치매, 당뇨, 골다공증, 백신 등 의약품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마곡지구에 의약품 임상실험이 가능한 R&D 센터를 만들 예정이다. 규제가 까다로운 의약품 사업에는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하다. 2015년 말 기준으로 현금 및 단기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을 200억 원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도 이에 대한 대비다.

 

한편으로는 기술경쟁력에 대한 압박도 느끼고 있다. 현재까지는 세계 최고의 초미세바늘 생산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3M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는 만큼 방심할 수는 없다. 특히 조지아공대가 보유한 다른 방식의 용해성 초미세바늘의 주요 특허가 만료되는 2019년 이후 경쟁은 지금보다 치열해질 것으로 정 대표는 전망한다.

 

 

 DBR mini box

 

 

성공적인 정부과제를 위한 팁

 

정부 및 지자체 출연과제는 대학의 연구자나 벤처기업들에게독이 든 사과로 불리기도 한다. 한 푼이 아쉬운 연구자들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된 파트너를 만나서 고생을 하기도 하고 사업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기도 한다.

 

정부지원사업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라파스는 민--학 협력사업의 모범 사례로 꼽힐 만하다. 대학의 원천기술과 기업의 연구개발,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이 어우러져서천만불 수출의 탑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4개년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초미세바늘에 대한 임상 데이터를 다수 확보했으며 시가 중소기업들을 위해 마련한 상암동 혁신벤처센터에 입주해 있기도 하다. 이 회사는 현재도 3∼4건의 정부과제를 진행 중이다. 정부와 지자체 입장에서도 그간의 지원이 아깝지 않은 효과를 봤다. 라파스는 서울 본사와 천안 공장에서 50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으며 2015년 약 10억 원의 법인세를 냈다.

 

다음은 민--학 파트너십을 이용해 정부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라파스 임직원의 팁, 그리고 한양대 국제학부의 류주한 교수의 조언이다.

 

 

1. 파트너를 잘 골라라

 

정부 출연 과제는 제대로만 하면 기업에 분명 도움이 된다. , 과제를 위한 과제를 하면 안 된다. 자기가 원래 하려던 일이 아닌데도 연구비를 노리고 과제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런 파트너와 엮이면 열심히 해도 좋은 성과가 나기 어렵다. 예전에 5개 대학과 5개 기업이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라파스는 제품개발을 맡았고 성공적으로 수행했는데 마케팅을 맡기로 했던 회사가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가 알아서 물건을 팔아야 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사후 관리도 잘될 것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라파스)

 

기술협력의 경우 파트너와의 궁합은 프로젝트 성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파트너 선정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보통 기술역량이 뛰어나고 기술적 노하우와 경험이 풍부한 상대를 파트너로 삼고 싶어 하나 이런 상대가 반드시 프로젝트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협력과정에서 약한 상대회사의 기술을 흡수해서 유용 및 역유출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들은 협상에서도 늘 우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어 건건히 부당한 요구를 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파트너의 기술수준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보다는 해당기업과의 기술적 범용 및 호환가능성, 파트너의 시장평판 등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류주한)

 

 

2. 예산은 계획한 곳에만 써라

 

연구자들 중에는 별 생각 없이 사업계획서에 쓴 것과 다른 용도로, 혹은 다른 연구사업에 사업비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좋지 않은 말이 나오기 쉽다. 언론에 노출돼 망신을 당할 수도 있고 앞으로 정부과제에 참가를 못하게 될 수 있다.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런 상황에 몰리게 되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까지 나온다. 연구비는 연구자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문제다. (라파스)

 

 

3. 에너지를 아껴라

 

정부과제가 발표됐을 때 사업의 핵심과 관련 없는 엉뚱한 자격요건이 붙어 있는 경우가 있다. 사회적 공헌이라든가 등등이런 경우는 내정자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해보라. 정부과제는 공무원이 심사하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초빙된 전문위원이 심사한다. 이권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전문위원이 미리 후보를 내정해놓고 그 업체에 유리하게 지원자격을 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과제에는 지원해봐야 시간낭비다. (라파스)

 

 

4. 작은 규모라도 사전 테스트를 하라

 

정부과제는 보통새로운 것으로상업화할 것을 요구한다. 모순이지만 어쨌든 이런 조건에 맞추기 위해서는 과제에 지원하기 전에 먼저 테스트를 해보고 시제품을 만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꼭 많은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다. 테스트를 해봐서 상업화 가능성이 보일 때,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과제에 지원하면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다. (라파스)

 

 

5. 책임자는 리더십을, 실무진은 대화를

 

여러 단체가 공동으로 하나의 과제에 참여하면 이해관계도 다르고, 생각도 다를 수 있다. 사공이 많은 프로젝트일수록 배가 산으로 가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서로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 특히 프로젝트의 리더인과제책임자는 반대파도 제압할 수 있는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음과 동시에 물밑의 소통 채널도 마련해줄 수 있어야 한다. 리더급에서는 충돌이 있더라도 실무급에서는 소통이 돼야 하는데 이것은 결국 리더급에서 채널을 마련해줘야 가능한 일이다. (라파스)

 

 

6. 기업주도형으로 정부과제를 추진하라

 

대부분의 정부과제가 대학에 거점을 두고 정부가 지원을 하는 형태로 돼 있어 자칫 매우 수동적인 해바라기형 협력활동으로 변모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참여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동기부여가 사라져 결국에는 지극히 형식적인 협력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참여자들의 역량과 역할, 추구하는 기술의 성장단계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정부과제를 인력과 시스템중심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부분에 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류주한)

 

바로 잡습니다

 

DBR 198호 케이스 스터디 코너에 실린 이종국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의 약력이 제작 과정의 실수로 잘못 게재되었습니다. 이 교수와 독자 여러분께 사과 말씀을 드리며 이 교수의 약력을 아래와 같이 바로 잡습니다. DBR 제작진은 이런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종국 교수는 서울대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공학 석사를 마쳤다.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이화여대 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B2B 마케팅, 국제 마케팅 분야를 주로 강의 및 연구하며등에 논문을 실었다.

 

조진서 기자cjs@donga.com

 

동아비즈니스리뷰 319호 New Wave of Logistics 2021년 04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