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n Case Study: 도시바 회계부정 사건

도시바 회계부정... 아베의 묵인... 일본, 지배구조에 근본적 회의를 던지다

194호 (2016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일본의 기업지배구조우등생으로 꼽혔던 도시바에서 7년간 2248억 엔의 회계부정이 일어난 사건이 발각됐다. 투자자와 해외 기업들은일본에 과연 시장경제가 존재하는가란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형 사건이지만 도시바의 경영진은 물론 이를 지도하고 감독해야 할 국가 기관마저 지지부진하게 대응하다 최근에서야 제재를 가하고 나섰다. 도시바 사태는 개인이나 일부 이익집단의 문제가 아닌 조직 전체가 장기간 암묵적으로협력해 저지른 일이라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의 첫 번째 주범은 경영자들의 이익지상주의다. 사장 퇴임 이후에도 회장, 고문 등으로 남아 실세를 유지하다보니자기 사람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임기 기간의 부정을 서로 밀어주고 분칠해주기 바빴다. 또 정경유착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본은 과연 시장경제인가?

 

도시바가 7년간 2248억 엔의 회계부정을 저지른 사건이 발각됐다. 기업지배구조 우등생인 도시바가 일본의기업지배구조 원년에 먹칠한 셈이 됐다. 아베 정권은 성장전략의 일환으로기업가치의 지속적 향상을 위한 자율적 대응을 위해코퍼레이트 거버넌스 코드를 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015 6월부터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기업에 대해 이를 실천하도록 의무화했다. 140년의 찬란한 역사와 더불어 재계 리더의 산실인 일본의 대표 기업 도시바의 회계부정 사건은 일본 기업사회는 물론 해외 투자가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회계부정 사건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부정을 일벌백계로 다스려 시장경제를 지켜내 온 역사가 있다. 그러나 도시바 회계부정 사건을 둘러싼 일본의 처리과정을 보면 과연 일본이 시장경제 국가인지 의심이 든다. 점입가경인 것은 2015 2월 처음 발각된 이 사건과 관련해 거의 1년이 다 된 지금까지 속속들이 새로운 세부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기업인들이나 미디어는 한국 대기업의 기업지배구조, 재벌체제를 곧잘 비판해왔다. 오너 경영자의 전횡이 문제라는 시각이다. 도시바는 일본이 자랑하는 경영자 기업의 대표 주자나 다름없었다. 그런 회사에서 경영자의 전횡에 의해 대대적인 회계부정 사건이 저질러진 것이다. 그것도 역대 사장들이 지속적으로 부정에 가담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장 3대에 걸쳐 7년간이나 회계부정이 저질러진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 院政 폐해

 

도시바 경영자들을 이익지상주의에 매달리게 하는 유혹은 또 있다. 일본의 재계 대표라 할 수 있는 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 회장단 취임의 유혹이다. 재계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경영자 시절의 업적이 좋아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일본의 대기업 구조와 문화는 구미와는 물론 한국과도 상당히 다르다. 이번 도시바 회계부정 사건은 일본적 기업구조나 기업문화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사건의 본질은 개인이나 일부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저지른 부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영진과 종업원이 일체가 돼 7년 동안이나 지속적인 부정을 저질렀고, 또 이를 견제할 사내·사외 감시기능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아직도 도시바의 임직원들은 그다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사건 처리 과정을 보면 또다시 부정이 저지러질 개연성도 있다고 비판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일본적 경영의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가 된 것이다. 회계부정 사건이 발생한 배경과 그 과정,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사후처리 과정을 보면 일본적 경영의 민낯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평론가들은 이번 사건의 배경으로 경영자들의이익지상주의를 지목한다. 이윤 추구는 기업의 본래의 목적이기 때문에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도시바의 경영자들에게는 이익지상주의에 집착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때문에 회계부정을 저질러서라도 이익을 부풀리고 싶은 동기가 작동한 것이다. 바로 도시바의 경영자 시스템이 회계부정의 동기를 배태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도시바의 사장 임기는 대개 4년이다. 그런데 사장 퇴임 이후에도 회장·상담역·고문 등으로 회사에 남아 실력을 행사하는원정(院政)’ 시스템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1996∼2000년 사장을 지낸 니시무로 타이조(西室泰三). 사장 퇴임 후 5년간 회장을 맡았고 상담역으로 물러났지만 지금까지도 도시바 본사 최상층에 화려한 사무실을 두고 도시바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그는 도시바의천황이라고도 불린다. 또 회계부정이 시작된 시기에 사장을 지냈고 이번 사건의 핵심적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니시다 아쓰토시(西田厚聰) 10년간이나 권력을 휘둘렀다. 도시바의 상담역과 고문은 17명이나 된다.

 

이처럼 장기간 원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차기 사장에 자기 사람을 심어야 한다. 대개 자신이 관여했던 사업부 후계자를 지명한다. 때문에 새 사장은 이전 사장의 실패를 덮어두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사장 시절 업적이 나쁘거나 전략사업이 바뀌게 되면 다른 사업부 출신자가 사장으로 지명되기도 한다. 그러면 경영진 사이에 권력 투쟁이 벌어진다. 때문에 약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업적 부풀리기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2009년에 원자력 발전 사업 출신으로 사장이 된 사사키 노리오 사장과 당시 회장이었던 니시다와의 갈등은 외부에도 공공연히 알려질 정도였다. 일본에는 이러한 경영자 시스템을 가진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도시바 고유의 문제점만은 아니다.

 

 

도시바 경영자들을 이익지상주의에 매달리게 하는 유혹은 또 있다. 일본의 재계 대표라 할 수 있는 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 회장단 취임의 유혹이다. 경단련 회장단은 주로 도요타자동차, 신일본제철, 도시바, 도쿄전력 등의 명문 기업 출신자들이 많다. 도시바는 전후 두 명의 경단련 회장과 6명의 부회장을 배출한 재계 대표 명문 기업이다. 때문에 도시바의 경영자가 되면 경단련 회장이나 부회장 또는 경제동우회, 일본상공회의소 대표를 노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기업문화가 있다. 재계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경영자 시절의 업적이 좋아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업적을 부풀려서라도 성공한 경영자라는 평가가 절실한 것이다. 말하자면 도시바의 원로들은 기업경영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본 미디어들은 실제로 니시다가 2014년에 3번째 도시바 출신 경단련 회장을 노리고 각종 권력암투를 벌인 것을 보도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 사회에서 재계 대표의 비중은 상당히 크다. 일본 정부가 각종 정책을 결정할 때나 개혁을 추진할 때 재계의 의견을 상당히 중시하기 때문이다. 재벌의 이익 대변을 위한 대표쯤으로 여기는 한국의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대표와는 그 위상이 전혀 다르다. 일본 대기업에는 오너 기업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명실공히 경제계 대표라는 의미가 부여된다. 때문에재계총리라는 별명이 붙는다. 그리고 대표 자리를 두고 물밑경쟁도 치열하다.

 

국책 사업과 밀접한 도시바

 

또 다른 유혹도 있다. 도시바는 정부와의 연결고리가 다른 기업보다 끈끈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니시무로는 도시바 상담역 자리를 유지하면서 도쿄증권거래소 회장, 우정성 민영화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또 회계부정사건 기업 출신임에도 일본우정(日本郵政)의 사장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도시바가 일본 정부와의 끈끈한 연계를 가질 수 있는 배경은 일본 정부의 정책에 부합하는 사업에 열중한다는 점이다.

 

이번 회계부정의 발단이 되기도 한 원자력 사업이 좋은 예다. <닛케이 비즈니스(2015 831일자)>는 이번 회계부정이 도시바가 2006년 미국 원자력 발전회사 웨스팅하우스(WH) 6600억 엔(당초 5400억 엔)에 인수한 것이 발단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당시 경제산업성은원자력 르네상스라는 기치를 내걸고 원자력 발전 산업을 주력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려 했다. 그리고 도시바는 정부 정책에 적극 호응해 원자력 사업에 선택과 집중을 한다며 무리하게 WH를 매수한 것이다. 당시 니시다 사장은 “2015년까지 원자력 발전 매출을 최대 3.5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문제는 당시 원자력 사업이 도시바가 선택과 집중을 할 만큼 장래성이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GE, 지멘스 등 세계적인 원자력 발전 기업들이 향후 원자력 사업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고, 경쟁사인 히타치나 미쓰비시 중공업도 비싼 매물이라고 인수를 중도에 포기한 사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바는 정부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무모한 인수를 강행했다는 평가다. 오히려 니시다는 WH 인수를 업적으로 내세웠다. 일본에서는 도시바·도쿄전력·경산성을철의 삼각형이라고 본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6기 중 4기의 주 계약자가 도시바인 것을 봐도 일본 정부와 도시바의 관계를 가늠할 수 있다.

 

카리스마 경영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기업 시스템

 

일본 기업은 경영자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카리스마 경영자들이 많다. 권한이 사장에게 집중돼 있고 또 의사결정 방식도톱다운인 기업이 의외로 많다. 경영자의 업적이 화려하고 외부에서 명성이 자자할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즉 권한이 분산된보텀업의사결정 구조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시바에서 회계부정이 시작된 2008년에 사장을 지낸 니시다도 그러한 경영자 중 한 사람이다. 세계 최초로 노트북을 제품화해 세계시장 점유율 1위로 올린 업적을 이룬 경영자다. 게다가 회계부정의 단초를 제시한 WH 인수를 주도했다. 당시 세간에서는 샐러리맨 경영자로서는 흔치 않게 과감하게 리스크를 감수하며 빠른 경영판단을 내리는 경영자라는 정평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영자라도 환경 변화의 흐름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도시바를 수렁으로 빠트린 환경변화는 리먼 쇼크와 동일본대지진이다. 도시바는 리먼 쇼크가 발생한 2008년도 손실이 2597억 엔에 달했다. 카리스마형 경영자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성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2010년도에는 1947억 엔의 세전이익을 냈다. 이에 업계에서는 도시바가 드물게 ‘V회복을 이룩해냈다고 극찬했다. 전자 산업 환경이 그다지 좋아지지 않은 가운데 이런 실적을 낸 데에는 회계부정이 한몫한 것이다.

 

원자력 사업도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에 부합해 원자력 사업을 주력사업으로 삼고 2015년까지 39기를 수주하겠다던 목표를 내세웠지만 2015 8월 현재, 수주 실적은 8기에 불과하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원자력 발전 사업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런 실적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회계부정의 유혹이 작동했을 것이다.

 

업적 부진을 감추기 위해 경영자들의 수완이 발동됐다. 도시바는 각 사업 부문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1999년부터사내 컴퍼니제를 도입했다. 제도상으로는 각 컴퍼니의 수장이 최종 경영책임을 지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도시바의 경영자는 업적이 좋지 않은 사업부문장들을 불러 모아 ‘Challenge(도전)’를 종용했다. 챌린지는 도시바가 1965년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당시 도코(土光敏夫) 사장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는 의미로 사용한 이래 도시바의 기업문화로 정착한 사내 용어다. 그런데 이 용어가 회계부정을 하더라도 이익을 내도록 도전하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월례회의에서 사장은 사업부 수장들에게이 수치는 부끄러워서 외부에 발표할 수가 없다며 이른바도전을 종용했다고 한다.

 

 

사업부 사장 입장에서는 회계를 분식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사업부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렸다. 조사에 의하면 심지어 3일 동안, 120억 엔의 이익을 조작한 사례도 있었다. 조사에서 역대 사장들은 부정을 직접 명령한 적이 없다고 했다. 아직까지도 죄의식을 못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5%의 영업이익률이 사업존속의 기준이라고 한다. 이 수치보다 낮으면 어김없이 사업구조조정의 대상 사업이 되므로 경영진은 회계조작을 종용했고 사업부 사장들은 이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도전에 열중했다.

 

제도 결함과 윤리 결여의 사내 감사

 

그렇다면 도시바 조직 내 감사기능은 왜 전혀 작동하지 않았을까? 또 직원들은 왜 상사의 지시에 순종해 부정회계에 가담하고 말았을까? 3자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상사의 의향에 거역할 수 없는 기업풍토가 있었다라고 지적한다. 상사에게 거역할 수 없는 기업문화란 바로 조직·인사 제도상의 문제일 것이다. 도시바는 이전에는 여느 일본 기업들처럼보텀업형 의사결정 시스템이었으나 1999년 식스시그마 기법을 활용해톱다운형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바꿨다. 식스시그마란 경영진이 달성목표(타깃)를 수치로 설정하면 현상과 타깃과의 괴리를 요인 분석해 경영목표를 효과적인 방법으로 실천하는 경영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경영진의 파워가 막강했다. 경영진에게 거역할 수 없도록 뒷받침하는 제도가 바로 인사와 업적평가 제도다.

 

 

도시바에는 사내 감사를 위한 조직으로사내 감사부가 있다. 그런데 감사부에 배속되는 간부는 장래 사업부장이 되기 위해 거쳐 가는 요직이었다. 회계감사 전문가가 아니라 출세 코스로 거쳐 가는 곳이기 때문에 회계에 대한 지식이 없었을 뿐 아니라 설령 부정을 알았더라도 이를 지적할 수 없었다. 향후 자신의 출세에 지장을 줄지 모르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또한업적평가제도도입으로 사업부의 업적이 보수에 상당히 많이 반영되는 시스템이 정착됐다. 상여금의 경우 사업부의 기말업적에 따라 35%나 증감되도록 책정됐다. 이 때문에 사업부의 업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기업 제도로 인해 도시바의 임직원들은 경영자들의 이익지상주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또 부정회계에 가담하거나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번 도시바 부정회계 사건이 발각된 것은 내부 고발에 의해서다. 그러나 7년 동안이나 묵인됐다는 점에서 일본 회사원들의 윤리의식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도 내부 고발은 쉽지 않다. 따라서 불이익을 받지 않고 사외의 제3자 기관에 통보할 수 있는 제도가 없었던 것이다.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따라서 제보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사내 부정을 견제하는 수단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러한 법률이 없다. 제도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사원의 윤리의식도 문제다. 비즈니스맨들은 판단이 쉽지 않은 다양한트레이드오프상황에 직면하기 쉽다.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기본적인 판단기준과 윤리의식을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 즉 올바른 신념에 의해 행동할 수 있는 윤리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기업은 조직원들이 그러한 판단을 하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도시바에서는 그러한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최근 일본에서는 기업의 컴프라이언스(법령준수) 문제가 유행하고 있으나 이 또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번 사건으로 판명된 것이다.

 

폴크스바겐과 비교

 

9월 중순 독일의 폴크스바겐(VW)도 배기가스 시험 부정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은 사건 발생 직후인 922일 관계당국에 철저조사를 명령하고 검찰당국은 928일 경영진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메르켈 수상은 폴크스바겐과의 밀월로 유명하다. 독일의 대표적인 기업이기 때문이다. 중국 방문 시에는 폴크스바겐 사장을 대동해 적극적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사건이 발생하자 메르켈 수상은 단호하게 대처했다. 자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이익보다도 ‘Made in Germany’의 신용을 더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은 부정에 가담한 임직원들에 대한 출근을 당장 금지했으나 도시바는 한동안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회사를 출입했다. 이는 증거 인멸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 ‘일본은 기업의 부정에 관대한 나라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일본의 국익에 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권거래소, 금융청, 심지어 검찰마저도 이 사건에 가능하면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베 수상은 사건 발각 1년이 다 돼 가는데도 도시바의 부정회계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오히려 묵인하는 분위기다. 그 증거로 니시무로 도시바 상담역과의 친분관계를 지속하고 있음을 들 수 있다. 그는 도쿄증권거래소 회장, 민영화한 일본 우정의 사장을 지냈으며 또 수상의전후 70년 담화 유식자회의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물이다.

 

 

사실 도시바 회계부정 사건은 일본의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역으로 이 기회를 놓치면일본에서는 회계부정을 해도 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줄 것이다.

 

이제서야 사업구조조정 나서다

 

도시바의 2015년 상반기(1∼6) 실적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한 29727억 엔이고, 영업손익은 2284억 엔 감소한 905억 엔으로 마무리됐다. 사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도시바는 그동안 저수익 사업을 회계조작으로 숨겨왔고 회계부정사건 발각 이후 6개월 이상이 지나도록 수동적으로 대처했다. 그러나 도시바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점점 거세지자 신경영 체제가 발족된 9월 이후부터 사업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우선은 자산을 매각해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가장 골칫거리인 PC사업을 후지쓰·VAIO와 통합하기로 했으며 TV사업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또 가전 사업의 경우도 해외 공장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또 반도체 사업에서는 화상 센서 생산 공장을 소니에 매각하기로 하였으며, 전력사업에서도 부실회계로 말썽이 지속되고 있는 WH 주식의 일부를 매각하기로 했다. 이로 인한 인력 구조조정에도 착수한다. 현재 약 7000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명예퇴직·배치전환 등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바는 회계 조작을 하면서까지 주력사업인 PC·TV 사업을 유지하려했으나 거대한 환경변화 앞에 두 손을 들고 만 셈이다. 향후 도시바는 NAND 플레시 메모리 반도체 사업과 원자력 발전 사업을 주력사업으로 삼고 투자를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동일본대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 수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높아진 상황에서 과연 이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아베 정권이 지원하는 사업이긴 하지만 과연 일본의 국내 수요조차 이 주력 사업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도시바는 우리 기업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도시바는 도요타자동차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우량 기업이었다. 그랬던 도시바가 왜 회계부정에 물들고 말았을까? 근본적인 배경은 전기·전자 산업에서 일본 기업의 경쟁력 약화라고 본다. 소니, 샤프가 곤경에 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자 소재나 부품과 같은 상류 분야가 아닌 하류의 조립 분야에서 일본의 경쟁력 약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에 연연한 도시바 경영진은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회계부정으로 이를 감추려고 했던 것이 이번 사건의 근본 배경일 것이다.

 

그런데 모든 기업들이 도시바처럼 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히타치의 회생 전략이 빛난다. 히타치는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인 7000억 엔 이상의 손실을 기록한 후에 도시바와는 전혀 다르게 대처했다. 자회사 사장으로 물러났던 가와무라를 사장으로 선임해 경영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또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해 철도사업과 같은 주력사업에 집중하며 회생에 성공했다. 히타치는 당시 이익이 나고 있는 HDD 사업조차도 사업전략과 배치된다며 매각했고 원자력 사업을 미쓰비시중공업에 넘기는 대담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러한 대조적 행보가 위기에 직면한 기업의 명암을 갈랐을 것이다. 도시바와 히타치의 차이점은 경쟁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산업에 직면한 우리 기업에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좋은 사례인 듯하다. 기존 사업에 연연하며 생존에만 급급할 것인지, 대대적인 구조 개혁으로 신천지를 개척해 나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경영자들의 과제다.

 

또 하나는 지배구조의 문제다.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대대적으로 개선됐다. 일본과는 달리 미국식 기업지배구조가 상당히 도입돼 사외이사와 위원회 설치는 당연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도시바의 사례가 우리 기업에 다시 한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우광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연구위원 wklee@kjc.or.kr

 

필자는 중앙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경제학연구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삼성경제연구소에 입사해 주로 일본 경제와 산업·기업 등을 연구했고 일본연구팀장, 해외연구실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일본재발견> <일본시장 진출의 성공비결, 비즈니스 신뢰> <도요타 : 존경받는 국민기업이 되는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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