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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the Legendary CEO - 조정남 전 SK 텔레콤 부회장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가치 있다… 직급·역할 불문하고 아이디어 모아라”

정지영 | 182호 (2015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조정남 전 SK텔레콤 부회장은 1996년 세계 최초로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의 상용화에 성공하며 SK텔레콤의 가치를 크게 높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조직의 성장이 조직원들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봤다. 조직이 리더의 능력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리더보다 더 좋은 의견을 낼 수 있는 조직원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내 부서에 있느냐를 가장 먼저 봤다사람이 없으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외부에서 데려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능력,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친화력 등이 42년 동안 조직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손혜령(미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08 325, SK그룹은 한 임원을 위해 두 번의 퇴임식을 열었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324일에는 다른 임원의 퇴임식과 다를 것 없는 공식 퇴임식을, 이튿날인 25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한자리에 모인 퇴임식을 열었다. 이날 최 회장은 직접 나서 감사패와 꽃다발을 증정했다. 회사의 성장을 주도한 그룹 내 원로에 대한 특별 예우였다.

 

그 임원이 바로 조정남 SK텔레콤 전 부회장이다. 1996년 세계 최초로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 상용화를 이끌어내며 국내 통신 산업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당시 국내 이동통신 기술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뒤처져 있었고, 아날로그 기술조차 완벽하게 갖추지 못한 상태였음을 감안하면 CDMA 상용화는 획기적인 발상과 투자였다. 이 덕분에 SK텔레콤은 업계에서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질 수 있었다. DBR42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조 전 부회장을 만났다. 그는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무리 똑똑한 개인이라 하더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조직원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노력했고 이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로 CDMA 이동통신 서비스를 상용화하는 데 기여했다.

CDMA 도입 배경 및 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미국, 프랑스 등 외국 의존에서 벗어나 통신장비와 단말기를 국산화해야 한다는 니즈가 커지던 때였다. SK텔레콤에서도 이에 대한 필요성과 새로운 기술 도입에 대한 욕구가 컸다. 여러 가지로 국산화를 모색하던 중에 당시 미국의 벤처기업이었던 퀄컴이 코드를 분할해서 이동통신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걸 알았다. 당시 어느 나라의, 어떤 통신사도 그 기술을 상용화하지 못한 때였다. 그때 SK텔레콤이 그 기술을 갖고 와서 국내에 기지국을 설치하고 제조사와 같이 단말기도 개발했다. 단말기에 CDMA가 가능한 퀄컴의 칩을 꽂고, SK텔레콤 기지국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했다. ‘CDMA를 상용화했다라는 건 이런 의미다.

 

SK텔레콤이 CDMA를 상용화기 전에는 아날로그 기술밖에 없었다. 그래서 단말기를 제조하는 회사도 적었고 휴대전화 보급률도 높지 않았다. 통화가 잘 안 터지는 곳도 많았다. 그런데 CDMA가 상용화되면서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아졌고 단말기 가격도 낮아지기 시작했다. 불통 지역도 많이 줄었다.

 

이때는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다기보다는 우리 팀원들이 정말로 잘해준 것 같다. 당시는 모두가 열정적이었다. 한 임원은 새벽 3시에 개발실에 전화해서지금 몇 시인데 자냐, 이놈들아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면 직원들이 일어나 다시 연구에 몰두하곤 했다. 그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다. 나는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대한석유공사(유공)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CDMA를 세계 최초 상용화할 때만 하더라도 사실은 화공기술자 쪽에 더 가까웠고 통신기술이나 업계 상황 전반에 대해서 내가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못됐다. SK텔레콤에는 통신 분야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이 잘해줬다. 잘 모르면 용감하다고, 아마 통신기술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 같다.

 

 

 

Choi Hoon-Seok

 

서울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은 1966년 대한석유공사(유공)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SK그룹이 유공을 인수하면서 SK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SK텔레콤 전무를 거쳐 1998 SK텔레콤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고 2008 3월 부회장으로 퇴임했다.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무엇인가.

 

말했듯이 나는 원래부터 통신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말을 경청했다. 당시 핵심기술자 네 명과 그 프로젝트를 같이했는데 네 명 다 굉장히 똑똑했다. 그들은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하고 놀랄 정도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갖고 있었다. 그때 아이디어를 현실화하진 못했지만 한 기술자는 우리가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아이디어는 정말로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는 스마트폰이 지금처럼 대중화된 시대도 아니었고 여러 가지로 이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을 놓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어쨌든 그때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들은 이처럼 재능이 엄청난 선수들이었다. 문제는 똑똑한 만큼 각각의 개성도 그만큼 뚜렷했다는 거다. 나의 핵심 임무는 그 네 사람이 서로 협력해서 성공적으로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조직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게 하고, 여러 가지 기회를 많이 줬다. 그들의 의견이 옳다면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지원해줬다. 내가 나서기보다 전문가인 조직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조직원들의 역량을 끌어내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나.

 

나는 직원들에게출근할 때 몸만 오지 말고 머리 좀 들고 와라라고 얘기하곤 했다. 시키는 일만 하고 머리는 안 쓰는 직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역량을 끌어내기 위해서이거해라, 저거해라이렇게 하면 안 된다. 그들이 자기목표를 갖고, 자발적이고 영리하게 일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시키지 않는 일까지 도맡아서 하려고 할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받고, 좋은 의견이 있으면 그들을 적극 참여시켰다. 그러면 그 일은사장의 일이 아니고내 일’이 되기 때문에 직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지시의 방향을 명확하게 하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 한다.

 

나는 쓸데없이 남아서 늦게까지 일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42년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6시 이후까지 남아 있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럼 어떻게 했냐. 우선 직원들을 모아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냐라고 문제를 던지는 거다. 의욕적이고 성과를 내고자 하는 직원들은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의견을 개진하려고 한다. 그러면 나는오늘 말고 내일 몇 시까지 안을 가지고 와라하고 회의를 끝낸다. 다음 날 다시 어제 불렀던 직원들과 모임을 가진다.

 

회의 때 직원들이 갖고 온 자료를 보면 보통 100점 만점에 60점쯤 된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는 바나 내가 갖고 있는 정보를 들어 곧바로 지적하고 혼내거나 화내지 않는다. 우선아이고, 애썼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라고 칭찬을 한다. 그 다음이 안에서 이런 어려움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부분에 대한 게 좀 부족한 것 같은데…”라고 걱정을 하는 거다. 내 머릿속에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안 가르쳐 준다. 그냥 물음표를 던지고 걱정만 한다. 그러면 그 직원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간다. 가서 그 다음날 다시 온다. 그러면 다시 갖고 온 안은 85점 정도로 업그레이드돼 있다. 어떤 직원들은 95점짜리도 갖고 온다. 매번 100점짜리 보고서를 받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총책임자인 내가 정보도 많고,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도 많으니 정보 획득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사실상 내 기대를 완전히 충족하는 완벽한 보고서를 받기는 굉장히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보고서를 받을 때나도 이 분야 좀 안다’ ‘일 좀 할 줄 알지라고 하면서 지식을 자랑하거나 기분 나쁘게 직원들을 훈계해서는 안 된다. 리더도 사람인지라 그렇게 하고 싶겠지만 참아야 한다. 95점짜리 갖고 오면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그 직원한테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 자기가 고민하고 설계해서, 직접 전략을 구성한 거니까 그 프로젝트에 욕심과 의욕이 생기는 것이다.즉 사람을 믿고, 그에게 자신의 역량을 내보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미다. 일을 시켜놓고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가 계속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직원을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렇게 하면 보고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욕을 고취시키고, 또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좋은 전략과 계획이라도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수행하다 하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해당 문제에 대한 대비책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이때 사장이 총책임자로 모든 일을 다 주도하고 계획을 짰다면 어떻게 될까. 현장에서 일이 잘 안 되면 직원들이 바로 달려올 것이다. “사장님, 이렇게 하니까 안 되는데요?” “예상과 다른 문제가 터졌습니다라면서. 그러면 사장이 일일이 피드백을 해주고 상황을 통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직원이 스스로 전략을 짜고 대응책을 구성한 경우라면 어떨까. 사장인 나한테 올 필요가 없다. 자기들이 현장에서 전략을 수정하면서 더 나은 아이디어들을 내고, 어려움을 해결한다. 나한테까지 골칫거리들이 안 오는 것이다. 처음 계획을 짜는 것부터 자신들이 개입했으니 그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어떻게 해서든지 목표달성을 하려고 나서는 것이다. ‘무조건 일을 해!’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일의 가치를 충분히 설명하고, 또 일에 성공했을 때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직원들이 의욕을 갖도록 했다. 이러면 직원들도 사장이나 임원에게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무조건 이 일을 성공해야겠다라는 의지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사장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주고 그들을 믿었다. 또 그 과정에서 직원들을 격려하고, 필요한 것을 지원해준 것밖에 없다.

 

 사람을 믿고,

그에게 자신의 역량을

내보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미다. 일을 시켜놓고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가 계속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직원을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상사가 믿어줘도 기대한 만큼 못 따라오는 직원들도 있다.

걱정만 하고 리더가 나서지 않았다가 프로젝트가 실패할 수도 있다.

 

직원들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사업을 할 때 혼자서 일을 다 하는 게 가능하지도 않다. 똑똑한 천재라면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 있다고? 그렇지 않다.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세계 비즈니스 곳곳에서 벌어진다. 모든 일을 본인 혼자서 다 하겠다고 하면 회사는 절대로 개인의 역량, 그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선 똑똑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을 조직에 데리고 오는 일이 중요하다. 조직이 커질수록 일을 잘하는 사람을 많이 키워야 한다. 사람들이 내 밑에 와서 일하길 원하도록 해야 한다. 좋은 사람들로 팀을 채워야 한다는 뜻이다. 유능한 인재가나 그분하고는 일 못합니다라고 하면 리더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똑똑한 리더라도 모든 상황에서 항상 준비가 돼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을 도와 같이 일을 성공시킬 사람이 필요하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내 부서에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를 먼저 봤다. 없으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외부에서 데려와야 한다. 이렇게 사람을 데려다 놓으면 많은 일이 해결됐다.항상 모든 일을 할 때 이런 식으로 했다. 내가 큰 그림을 제시했고, 회의를 하고 나면 직원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TTL 마케팅도 실력 있는 직원들을 믿었기에 가능했다. 1999년 갑자기 직원이 광고 시안을 가지고 왔다. 어항이 깨지면서 물고기가 공중에 날아다니고, 신비한 미소녀가 나와서 화면을 그저 응시하는,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콘셉트의 광고 시안이었다. 그때 직원들이 보고를 하면서이거 잘 될 겁니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 안을 수락했다. 그런데 이게 대박이 났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광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광고 후 20대 소비자 점유율도 크게 올랐다. 당시 SK텔레콤의 011은 중장년층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었는데 이 광고 후에 19∼24세 소비자 점유율이 5개월 만에 12%포인트 늘었다. 직원들을 믿으면 이처럼 리더의 생각 밖, 능력 밖의 성과까지도 거둘 수 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야근한 일이 별로 없다. 오후 6시 넘어서 퇴근한 걸 합치면 몇 백일이 안 된다. 1년에 10번 내외다. 그렇다고 일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효율적으로 하려고 했을 뿐이다. 우선 주니어 때는 회사가 시킨 일이 엄청 많지도 않았고, 일이 어렵지 않았다. 임원일 때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직원이 해야 하는 일을 구분하며 효과적으로 일하려고 했다. 임원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자기 혼자서 일하는 걸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임원이라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에서 오케스트라 전체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는 것이다. 이걸 분명히 숙지해야 한다. 이런 개념을 분명히 하면 굳이 필요하지도 않는데 늦게까지 남아 모든 일을 다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모든 일을 다 챙기면 스스로 힘들어지는데다 효율성이나 성과 측면에서도 결코 좋지 않다.

 

일류회사에서 리더 역할을 하다가 다른 회사로 간 경우, 가장 답답한 문제도 사람이다. 인적자원의 역량 부족을 여실히 느낄 때 리더들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인수합병을 했을 때도 제일 큰 문제가 인적쇄신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돈을 더 줘서라도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은 사람이고, 그것은 한 사람만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항상 조직 전체의 인재 수준을 높게 유지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인적자원의 가치를 높여야만 나중에 질이 높은 일들을 잘할 수 있다. 일 잘하는 회사, 돈 잘 버는 회사에는 대체적으로 좋은 직원이 많다.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이 중요한 법이다.

 

 

 

 

대기업에는 많은 지원자가 몰리는데다 훌륭한 인적 자원 계발 시스템도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는 인적 풀 자체도 부족하고 교육 시스템도 좋지 않다.

중소기업에서 인재를 데려오거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로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창업자가 죽으면 회사가 없어지는 일이 많다. 창업자만큼 실력을 갖춘 좋은 후계자나 좋은 인물이 중소기업에 적기 때문이다. 후계자가 똑똑하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 기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대부분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는데 만약 그 자녀가 능력이 없다면 똑똑한 인재가 그 회사에 남아 있을 리도 없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인재를 키우려 하지 않는 중소기업 리더들 역시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설적으로 창업자 대부분이 경험이 많고 아주 똑똑한 분들이기 때문에 이렇다. 중소기업의 여러 여건을 보면 사실상 창업자나 오너보다 훌륭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직원이 많지 않다. 회의 한다고 앉아 있으면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다. 창업자 본인이 회사 모든 이슈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으니까. 이런 상황이 대표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머리는 내가 쓸 테니 시키는 대로만 해라는 식이 된다. 업무지시만 하고 회의가 끝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직원들이 나가서 일을 하다가사장님, 이거 안 되는데요?” 이렇게 되는 거다. 현재 많은 중소기업이 창업자의 역량만큼만 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를 막고 좋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인간 위주의 경영을 해야 한다. 사람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돈을 벌면 같이 나눠야 한다. 그래야만 똑똑한 직원들이 회사에 남는다. 그들이 이곳에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면 언제라도 외부에서 인재를 데려와야 한다. 똑똑한 사람을 데려오고 싶으면 비용이 들지만 이를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좋은 사람에 대한 투자는 언제고 빛을 보게 돼 있다. 그 다음에는 여러 인센티브를 통해 그곳에서 일하는 재미를 줘야 한다.이런 식으로 유능한 인재들을 회사에 붙들어둘 수 있어야 한다.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은 여러 가지 자사 상황에 맞추면 된다. 근데 이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다. 일부 사장들은 일부러 인재를 견제하기도 한다. 이 직원이 내 회사를 탐내거나, 혹은나한테 기술을 배워서 다른 회사를 차릴 것이다라고 의심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인재에 투자를 안 하면 회사의 존속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오랫동안 회사생활을 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때는 언제인가.

 

유공이 SK에 인수되기 전이다. 나는 당시 유공에 있을 때였는데 88올림픽 때 즈음해서 유공이 아코케미컬과 합자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당시 아코케미컬 측에서 자기들이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하겠다고 나섰다. 우리 쪽에서 볼 때는 그게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대규모 공장을 지으려면 필요한 인허가만 100개가 훌쩍 넘었다. 국내 기업 정서에 익숙한 한국인이 한국식으로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미국인이 그걸 우리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유공이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런데 아코케미컬은 유공과 의견이 달랐다.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싶어 했다. 이 문제로 두 회사가 논쟁을 벌이다 나중에는 합자회사가 깨질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결국 아코케미컬이 직접 유공 직원 중에서 프로젝트 담당자를 선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아코케미컬의 본사 임원까지 직접 와서 일할 사람들을 물색하고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유공 측에조정남을 이 프로젝트에 전적으로 투입시켜라고 했다. 내가 프로젝트 디렉터로 모든 일을 담당하게 해주면 자기들도 계속 일을 진행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조건이었다.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고 직원들의 약력을 살피고 나서 나를 고른 것인데, 왜 하필 나였는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프로젝트 전담 매니저가 됐다. 회사에서는 내게 과장 둘을 줬다. 나는 내가 총책임자라고 생각하고 그 프로젝트에 몰두했다. 그리고 당시 사장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내가 200만 달러까지 결제할 수 있게 해줄 것, 내가 부르는 연봉으로 내가 필요한 사람들을 데려오게 해줄 것이었다. 당시 5만 원 이상만 돼도 대기업 사장들이 일일이 결제하던 때였는데 나는 200만 달러 결제를 말했다. 거기다 그전까지만 해도 유공에서는 경력직원을 뽑은 적이 없이 없었는데 내가 전례를 깨겠다고 한 것이다. 두 가지 안 모두 내가 유공에서 처음으로 요구한 것이었다. 그때 사장님이 나를 믿고 승인을 해줬다. 아마 이때 나 스스로가 직접 신뢰의 힘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내가 꾸린 팀은 마치 영화나바론의 요새1 에 나오는 특공대와 같았다. 밤샘을 하고, 주경야독을 하는 일이 많았다. 힘들었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때 내가 주도해서 일을 하고, 또 상사가 나를 신뢰한다는 그 느낌이 아주 기분 좋았다.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해냈고 성공시켰다.

힘들거나 아쉬웠던 경험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SK에서 유공을 인수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 유공에서 나는 기술부장에다 데리고 있는 직원만 40명이었다. 재정권과 인사권 모두 내가 갖고 있었다. 그런데 SK는 우리와 달랐다. 나보다 역할과 책임이 적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부장이었다. 거기다 SK 출신 부장들이 나보다 빨리 승진했다. 자존심이 센 나로서는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습관이 이때 생긴 것 같기도 하다(웃음). 그때는 스스로 의욕관리를 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주변에서 인정받는 재미가 적다고 생각해서 일하는 재미로 회사를 다녔다. 그런데 SK가 좋았던 게 내가 일만 잘하면 선배들과 동료들은 언제나 나를 존중해줬다. 내가 상사에게 알아서 숙이고 정치하고 해야 했는데 나는 그런 걸 잘하지 못했다. 윗분들이 불편할 수 있는데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날 믿어주고 내가 하는 일을 하도록 지원해줬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도 SK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이 자연스레 커졌다.

 

기본적으로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경영을 할 때도 늘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됐다.

 

 

유공에서 시작해 SK텔레콤의 부회장까지 지내면서

42년 동안 회사생활을 했다. 퇴임할 때도 특별 예우를 받았다.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조직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나는 행운아다. 고생은 했지만 신입사원 때부터 훌륭한 상사들을 많이 만났다. 회사 업무 숙련도가 높고 전문지식이 많았던 것은 차치하고 무엇보다 그들은 인품이 훌륭했다. 덕분에 후배로서 좋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업무 방식에서 보자면 어떤 문제에서건 핵심을 파악하려고 했던 게 도움이 됐다.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우선 냉정하게 사안을 분석한 다음 그 일을 단순화시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신입사원이 은행에 가서 5억 원을 빌려야 한다고 하자. 그냥 가서 5억 원 빌려달라고 하면 은행에서 안 준다. 5억 원이 필요해서 고민하다 보면 나를 믿고 지원해 줄 은행 직원은 없는지를 찾게 된다. 내가 돈을 안 떼먹고 갚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자료를 만들거나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우리 삼촌이 어디 지점장 하는 곳은 없는지 등을 고민한다. 매사가 이렇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내 안에서 안 되는 것이 있으면 이것을 도와줄 지렛대를 만들어야 한다. 지렛대를 어디에다가 걸 것인가가 문제고 핵심이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다면 쉽게 핵심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식의 사고를 하도록 연습을 해야 한다. 이게 머리를 쓰라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데 모든 사안에서 본질을 찾고, 개선점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태도도 중요한 것 같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직급별로, 직책별로 하는 일을 구분했다. 예를 들어 기능직을 하는 사람은 머리를 안 쓰고 단순노동만 하게 했다. 월급도 달랐고, 대우도 달랐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안 했다. 아르바이트를 포함한 모두에게 머리를 써달라고 했다. 마케팅 창구 여직원들에게도 아이디어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효과가 엄청났다. 단순히 손님이 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손님한테 인심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손님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등 정말로 실제적이고 도움이 될 만한 현장 보고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만약 SK텔레콤이 기존 통념처럼사무직에게만 아이디어를 얻어야지’ ‘프로젝트는 이 사람들만 할 수 있을거야라고 규정했다면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경영을 할 때도 늘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됐다.

 

친화력도 회사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사람들은 직급이 높다고 나를 무서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았다. 후배들은 본인이 원하는 바나 어떤 의견이 있으면 곧잘 와서 얘기하곤 했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부탁들도 있었다. 후배뿐만 아니라 선배나 상사와도 잘 어울렸다. 예전에 사장이 장난으로 나에 대한 평가를 적은 쪽지를 내 등에다가 붙인 적이 있다. 첫째, 게을러서 현장에 절대 안 간다. 둘째,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한 푼도 없다. 둘 다 인정한다. 셋째, 일은 잘한다. 이것 역시 인정한다.(웃음) 만약 그 사장이 나에 대한 악감정이 있거나 조직의 분위기가 나빴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상대가 누구든 마음을 열고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소통하려고 한 것이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고, 이런 것이 나중에는 리더십이 된 것 같다.

 

이런 말이 실질적인 팁은 아니겠지만 나는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다. 내가 SK텔레콤으로 옮길 때 누군가는 가야 되는데 통신기술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나 대장을 시킬 수 있나. 궁여지책으로 통신전문가는 아니지만 기술자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내가 가게 됐다. 이게 운이지 뭐겠는가. 하지만 내가 경영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운만 믿어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운이 왔을 때 그 운이 나를 외면하지 않도록 평소에 공부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자신이 하고 하는 분야에서 미리 실력을 닦아놓으면 어떤 기회가 왔을 때 낚아챌 수 있다.

 

리더로서 여러 가지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많이 내렸을 것이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사안을 판단하나.

 

의사결정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답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물건을 살 때라면 세 가지를 보면 된다. 품질이 보장되냐, 가격이 경쟁력 있냐, 적기에 납품할 수 있냐가 그것이다. 그리고 하나를 더 본다면 납품업자를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들만 보면 된다. 내가 정유업계에 있다가 통신업계로 갔을 때 8000억 원 규모의 사업을 할 것인지, 3000억 원 규모의 사업을 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진행 중이었다. 전임자가 결정을 못 내려서 내가 판단을 해야 했다. 전임자가 6개월 동안 해도 판단을 못 내린 거였는데 기획부장이 오더니 일주일 내로 결정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직원들에게 물었다. “6개월 동안 나눈 얘기의 핵심이 무엇이냐” “무엇을 기준으로 이 계획을 구성했느냐. 3000억 원짜리 사업은 판매 예측에 따른 시설투자 건이었고 8000억 원짜리는 사업적 이슈에 정치적인 것까지 더해져 여러 가지 문제가 얽힌 것이었다. 고민을 해보니 딱 답이 나왔다. 직원들에게일주일 걸릴 것도 없다. 3000억 원짜리로 해. 우리는 사업가다. 다른 것들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가 책임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기업의 본질인 이윤 창출에만 관심을 뒀다. 일하는 요령을 알면 새로운 문제가 터지더라도 어려움을 겪는 일이 적다. 내가 세운 기본 원칙, 문제의 핵심에서 이슈를 파악하고 거기에서 대응책을 찾으면 된다. 만약 내가 이 분야를 잘 모르면 제일 잘 아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사내 최고 전문가가 제대로 못한다고 하면 그것은 회사의 실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 입장에서는 늘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실력을 닦고, 조직의 수준을 최고로 유지해야 한다.

 

 

혁신적인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기업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세상을 제일 잘 사는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이들이다. 변화라는 것은 사람들이 억지로 쫓아오도록 하는 아니라 좋아서 그들 스스로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다. 소니의 워크맨,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애플의 스마트폰이 변화의 대표적인 예다.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편하게 돈을 벌고, 재미있게 잘 산다. 우리도 변화를 만드는 회사가 많이 나와야 한다. 이 다음 잘 사는 사람이 유행을 만드는 이들이다. 변화와 비슷하지만 유행은 워크맨이나 컴퓨터만큼의 커다란 혁신이나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로 잘 사는 사람은 변화와 유행을 빨리 잡아내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미래 예측능력으로, 시대의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고 대응하는 힘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세상이 변하니까 이런 사업을 해야 한다’ ‘이 분야에서 발명을 해야 한다’ ‘앞으로는 돈을 벌 분야는 이것이다라는 점을 빨리 캐치업해야 한다. 남들보다 조금 빨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직접 변화나 유행을 창조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쉽고 성공 가능성도 높다.

 

이를 위해서 기업은 연구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아무리 경영을 잘하고 똑똑한 경영인이라 하더라도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리더들은 싱크탱크를 갖고 있어야 한다. 회사도 싱크탱크의 전문 인력들이 깊이 있는 연구를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런 기본이 있어야 적절한 때에 기회가 왔을 때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지금 돈 얼마를 아끼려고 핵심 연구개발을 미루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리석은 일이다. 당장의 이익을 좇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비전과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정지영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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