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C코오롱의 디자이너 브랜드 인수
Article at a Glance-전략,마케팅
FnC코오롱이 디자이너 브랜드 인수를 통해 여성복 및 잡화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요인은? 1) 인수 전부터 통합 추진 통상 M&A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인수 후 통합과정(Post-Merger Integration)을 최소화하기 위해 6개월 이상 긴 시간을 투자해 인수 전 통합(Pre-Merger Integration) 진행. 2) 피인수기업과의 파트너십 구축 인수기업-피인수기업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피인수기업을 파트너로 인식하고 충분한 자율성을 부여. 3) 궁극적 시너지를 위한 투-트랙 운영방식 피인수기업이 가진 경쟁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후선에서 지원하는 방식 활용. 4) M&A를 통한 역량계단(competence stairway) 확보 피인수기업이 축적한 노하우와 경영 관행을 흡수해 역량 강화 및 기업문화 혁신 추구. |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선정효(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한 구두 매장. 구두를 고른 여성이 카드를 내민다. 직원이 받아 결제 기계에 넣고 긁은 후 여성에게 기계 화면을 내민다. 이어 서명을 마친 여성에게 영수증을 건넨다. 영수증을 받아들고 결제내역을 확인하던 여성의 눈이 커진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이 브랜드, 코오롱에서 운영하는 거예요?”
청담동이나 신사동처럼 다양한 브랜드들이 각축을 벌이는 패션거리는 물론 백화점 내 패션 매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디자인만 놓고 봐서는 ‘코오롱 답지 않은’ 브랜드들이 코오롱 지붕 아래 모여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현장이다.
남성복과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를 주요 아이템으로 삼던 FnC코오롱(코오롱인더스트리의 패션사업 부문)이 독창적이며 개성 가득한 디자이너 브랜드(디자이너가 개인 이름을 내걸고 상품 기획부터 제작, 유통, 마케팅 등을 총괄하는 브랜드)들을 인수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이다. ‘청담동 그 핸드백’으로 이름을 날리던 ‘쿠론’을 인수한 것이 출발점이다. 인수 전 10억 원 미만의 매출을 기록하던 쿠론은 2013년 600억 원대 매출을 거두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후 코오롱은 2012년 독특한 올빼미 디자인을 앞세워 패션 피플의 잇 아이템(it item)으로 자리 잡은 ‘쟈뎅드슈에뜨’와 서브 브랜드 ‘럭키슈에뜨’, 매장이 하도 붐벼 ‘청담동 만원버스’로 불리던 구두 브랜드 ‘슈콤마보니’를 차례로 인수하며 여성복과 구두 쪽으로 반경을 넓혔다. 코오롱에 인수된 쟈뎅드슈에뜨와 슈콤마보니도 쿠론처럼 국내 매장 수가 인수 전보다 크게 늘어났고 매년 매출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데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을 넘어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까지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이들 브랜드는 ‘코오롱’이라는 대기업과 손을 잡으며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지는 것은 물론 해외 시장으로도 활발하게 진출했고 남성복과 스포츠 아웃도어 시장에만 머물던 FnC코오롱은 디자이너 브랜드 인수를 통해 여성복과 구두, 핸드백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이들의 M&A가 ‘윈윈’ 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종합 패션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FnC코오롱의 M&A 행보를 DBR이 분석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고민하다:
자체 출시냐, 외부 인수냐
여성복은 업계에서 대기업의 무덤으로 불린다.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소비자들의 변심이 잦기 때문에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 대기업의 의사결정 시스템으로는 시장 변화를 읽어 내거나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대기업은 디자인이나 생산물량을 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탓에 유행을 주도하기보다는 따라가는 경우가 흔한데 이는 디자인의 독창성을 갉아먹고 결국 브랜드 자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온라인 쇼핑몰을 직접 운영하며 발 빠르게 유행을 따라잡는 개인사업자나 기획에서 제조 및 유통을 총괄하며 저렴한 가격과 높은 제품 순환율을 무기로 삼는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들 역시 대기업의 여성복 시장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여성복 시장의 주도권은 패션에 특화된 중소 규모의 전문기업들이나 대기업에서 많은 로열티를 지급하고 판매 라이선스를 가져온 해외 브랜드들이 잡고 있다. 국내 패션업계의 빅3로 꼽히는 제일모직과 LG패션, FnC코오롱은 여성복 브랜드를 출시했다가 철수한 경험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FnC코오롱은 전통적으로 남성복과 스포츠 아웃도어 부문에서 강하다. 캠브리지멤버스, 커스텀멜로우, 시리즈, 헨리코튼 등 남성복 및 남녀 캐주얼 브랜드와 코오롱스포츠를 중심으로 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엘로드와 잭니클라우스 등 골프 브랜드까지 패션 부문에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특히 코오롱스포츠는 1973년 출범한 우리나라 1세대 아웃도어 브랜드로 기술력과 디자인, 실용성 등을 인정받아 업계 상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스포츠 아웃도어 시장이 급성장한데다 최근에는 캠핑 열풍까지 불고 있어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는 중이다. ‘코오롱’ 하면 아웃도어 브랜드를 제일 먼저 떠올리는 소비자가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과거 FnC코오롱의 대표 여성복 브랜드는 ‘벨라(Bella)’였다. 1977년 시작해 1999년 문을 닫을 때까지 20년 넘게 운영해 온 여성 정장 브랜드였다.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이미지로 많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외환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이후 코오롱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소비자를 겨냥한 영캐주얼 브랜드 ‘쿠아(QUA)’를 2001년 출시하며 여성복 시장에 다시 도전했다. 이후 10년 이상 꾸준히 성장하던 쿠아는 경기 불황과 글로벌 SPA 브랜드들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사업을 중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nC코오롱은 언젠가는 여성복과 여성용 잡화 브랜드를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대기업이 여성복 시장에 직접 진출해서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코오롱 역시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지만 패션사업 포트폴리오상 여성복 브랜드를 빼놓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여성복 부문은 패션산업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전체 의류시장 중 약 70%가 여성 시장으로 분류된다. 시장 자체가 클 뿐 아니라 매출 규모도 다른 분야를 압도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패션에 관심이 많고, 소비가 잦으며, 더 많은 돈을 쓰기 때문이다. 패션사업을 하는 기업으로써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성복 부문이나 가방, 구두 등 여성용 잡화 부문으로 사업 분야를 넓혀가야 한다는 데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별로 없었지만 어떤 방식이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이견이 많았다. 언젠가는 진출하더라도 당장은 현재 잘하고 있는 남성복이나 캐주얼 브랜드, 아웃도어 브랜드에 역량을 집중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새로운 브랜드 출시에 반대하는 쪽의 가장 큰 이유는 ‘여성복은 코오롱이 잘할 수 없는 분야’라는 것이었다. 여성복 시장에 두어 차례 진입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따라서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아도 몇 년 유지하다가 문을 닫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코오롱은 여성 브랜드 확보를 위한 방법을 놓고 수년간 꾸준히 분석과 조사를 진행했다. 이런 사전작업은 2000년 이후 크게 확대된 스포츠 아웃도어 시장에서 코오롱스포츠가 좋은 성과를 내던 시기에도 계속됐다. 현재 실적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의 성장 동력을 끊임없이 발굴해야 한다는 내부적 고민이 지속되면서 여성복 브랜드에 대한 의지를 놓지 못하게 했다.
여성복 브랜드를 보유할 수 있는 방법은 자체적 육성, 외부 브랜드 인수, 해외 브랜드의 판매권 매입 등 크게 세 가지였다. 각각의 방법마다 장단점이 있다. 자체적으로 육성할 경우 기획부터 인력 및 매장 확보, 마케팅 등에 초기 투자비용이 크다. 시장 조사를 거쳐 적정 콘셉트를 확보하고 고객들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각종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코오롱이 보유한 내부 인력을 활용해 패션 부문의 노하우와 마케팅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외부에서 브랜드를 인수하면 적당한 기업을 골라 협상하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인수 비용으로 한꺼번에 큰 자금이 소요될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의 콘셉트나 디자인에 이미 틀이 잡혀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수고를 덜 수 있다. 이미 인지도가 높고 국내에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확보한 해외 브랜드의 판매권을 사오면 기획이나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는 노력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만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것이므로 해외 시장 진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라이선스 매입에 거액이 들어갈 수 있으며, 이 비용은 계약 갱신 때마다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엄격하게 말하면 자체적인 브랜드를 갖는 방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한계도 지닌다.
코오롱은 세 가지 방법을 놓고 서로 비교하며 꼼꼼히 검토했다. 다른 기업들의 사례와 시장 현황, 성공 가능성을 두고 여러 해에 걸쳐 철저한 분석을 반복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디자이너 브랜드 인수’라는 절충안이다. 외부에서 브랜드를 인수하는 방법을 선택하되 인수로 인한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규모가 작고 역사가 길지 않은 브랜드를 인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코오롱이 가진 인력과 자원을 동원해 이 브랜드의 영업과 마케팅을 지원해서 마치 자체적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는 것처럼 육성한다. 즉 ‘인수’라는 방법을 택하면서 이 방법이 가진 단점을 최소화하고 ‘자체 출시’라는 방법이 가진 장점을 접목하는 식이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가진 개성과 독창성을 흡수하되 이들이 가진 장점이 활짝 필 수 있도록 코오롱이 가진 자원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아가 이 브랜드를 국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후에는 해외 시장 진출까지 노려보는 것으로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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