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전략,HR,혁신
우리나라가 조선산업의 불모지에서 30년 만에 최고 조선강국이 되기까지는 현대중공업의 역할이 컸다. 현대중공업은 뛰어난 전략과 끊임없는 연구개발(R&D)로 2003년 세계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 같은 성과 뒤에는 전문경영인으로 11년 동안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지냈고 ‘조선산업의 아버지’라 불리는 민계식 전 회장이 있었다. 민 회장은 현대중공업의 성장비결로 사업군의 다변화, 전략의 구체화, 주력제품 일류화를 꼽았다. 덕분에 현대중공업은 2003∼2010년 동안 매년 평균 성장률 27.4%로 성장을 거듭했다. |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선정효(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42년 전 울산 미포만에 조선소를 건립하기로 했을 때 모든 사람이 ‘무모한 도전’이라고 비웃었다. 당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던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에 비해 자금과 기술력 등 모든 면에서 크게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은 현대중공업이 조선사업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란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2003년, 조선산업에 뛰어든 지 30여 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세계 1위 자리에 올라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런 성과를 낸 주역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조선업의 아버지’로 불렸던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72·현재 현대중공업 상담역 겸 현대학원 이사장)이다. 그는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아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으로는 드물게 회장을 지냈다. 2001년부터 11년 동안 대표이사로 현대중공업 황금기를 열었다. 현대중공업은 2007년 매출 15조5330억 원, 영업이익 1조7507억 원을 기록하며 ‘1조 클럽’에 가입했다. 2011년에는 미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가운데 219위를 차지했다. 같은 해 <포브스>에서 선정한 글로벌 2000대 기업 순위에서는 중장비 분야 세계 3위에 올랐다. 이는 기계 및 중장비 분야에서 국내 제조기업 가운데 단연 최고 기록이었다. 2000년 12월 1만8000원대(종가 기준)던 주가는 2011년 6월 51만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는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후 여러 기업의 스카우트 제안을 물리치고 지난해 대학에 둥지를 틀었다. KAIST에서 해양시스템공학을 가르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민 전 회장을 만나 경영 노하우를 들어봤다.
CEO로 있으면서 회사를 크게 성장시킨 비결은 무엇인가.
기업은 성장하거나, 도태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걷게 된다. CEO는 성장하는 방향으로 배를 끌고 갈 수밖에 없다. 나도 처음 2001년 CEO가 됐을 때 위기의식이 컸다. 1990년대 후반부터 회사의 매출액이 늘지 않는 정체 상태였다. 우선 매출 구조를 다변화해야 했다. 조선산업본부가 회사 전체 매출액의 80%를 차지하는 구조를 바꿔야 했다. 갑자기 조선산업에 불황이 닥치면 회사의 위기는 불 보듯 뻔하다. 조선산업부를 제외하고 해양, 엔진기계, 플랜트, 전기전자시스템, 그린에너지, 건설장비사업 등 나머지 6개 산업본부 가운데 조선산업본부에 필적할 만한 사업을 키우자고 했다. 나는 사업본부장들을 불러서 “매출 3조 원 이상을 하는 곳에만 사업본부장을 두겠다. 매출이 안 되면 부서로 강등시킬 것이다. 사업본부장 타이틀을 유지하고 싶으면 3년 내에 각 부서는 3조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모든 부서의 매출이 서서히 오르더니 놀랍게도 누가 빨리 목표 매출을 달성하느냐로 경쟁을 하게 됐다.
또 ‘세계 일류제품’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2001년에는 현대중공업에서 당시 산업자원부가 지정한 세계 일류제품이 딱 한 개밖에 없었다. 1등 제품이 없으면 결코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없지 않느냐. 그래서 세계 일류제품 개발을 독려하고 투자했다. 2011년에는 세계일류화 제품이 34개가 됐다.
CEO가 된 이듬해에는 ‘글로벌 리더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2003년부터 추진했다. 이 계획은 크게 3단계로 나뉘는데 1단계는 2004년까지 현대중공업 그룹을 포천 500대 기업에 진입시키는 것이었다. 목표는 매출액 85억 달러, 영업이익률 4%였다. 2단계는 2006년까지 세계 중공업 분야 톱10에 진입하는 것. 목표는 매출액 110억 달러, 영업이익률 6%였다. 3단계는 2010년까지 세계 중공업 분야 톱5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매출액 175억 달러, 영업이익률 10%를 목표로 삼았다. 처음 이 계획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임원들도 시간이 갈수록 눈빛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불가능하다” “무리다”라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던 이들도 “할 수 있다” “더 해보자”는 식으로 자신감과 의욕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4년 실제 실적은 매출 80억 달러, 영업이익률 5%. 매출액은 당초 목표보다 다소 적었지만 영업이익률은 더 높았다. 포천 선정 기업 501위에 올랐다. 그전에는 1000위 안팍에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였다. 2단계가 되니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2006년 매출액은 133억 달러, 영업이익률은 7.6%로 목표보다 훨씬 결과가 좋았다. 중공업 분야 글로벌 톱10을 훌쩍 넘어 톱6 기업이 됐다. 3단계가 되니 당초 목표와 실제 결과물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목표보다 매출액이 90억 달러 이상 높았고 영업이익률도 14.9%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