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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마리오아울렛

강자와 맞대결 피하고 가치소비자 공략…가리봉동을 쇼핑허브로 만들다

조진서 | 134호 (2013년 8월 Issue 1)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별(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지하철 1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가산디지털단지역은 타 지역 사람들에겐 가리봉역이라는 옛 이름이 더 친숙하다. 가리봉동-가산동 지역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인근의 구로공단(현재는 구로디지털단지)과 함께 서울 서남부의 대표적인 제조업 클러스터였다. 하지만 봉제공장들과 젊은 여공들, 우울한 쪽방촌은 이젠 옛날 얘기다. 역을 나서면 테헤란로와 여의도를 연상시키는 고층 빌딩들의 숲이다. IT업체들이 입주한 아파트형 공장과 오피스텔, 중견기업들의 본사들이 즐비하며 인근에는 LG전자의 휴대폰 연구소도 있다. 상전벽해란 말이 실감난다.

 

이 지역의 분위기를 가장 많이 바꿔놓은 것은 대형 패션 아웃렛들이다. 마리오아울렛(1, 2, 3), W, 패션아일랜드, 하이힐 등 거대 쇼핑몰들은 유명 브랜드의 옷을 정가 대비 50% 이상 할인해 판다. 백화점처럼 화려한 광고판이 전면을 덮고 있고 매장 앞 인도까지 매대가 설치돼 행인들을 유혹한다.

 

가산동 일대가 대형 패션 아웃렛 밀집지역으로 탈바꿈한 데에는 이 지역 큰 형님 격인 마리오아울렛의 공이 크다. 여성의류 브랜드인까르뜨니트를 운영하던 ㈜마리오가 IMF 외환위기 직후인 2001년 아파트형 공장을 짓고 저층부에 마리오아울렛 1관을 연 것이 현재의가산아울렛타운의 시초였다.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입소문이 나면서 고객이 몰렸고 마리오는 2, 3관까지 확장했다. 인근에 다른 대형 아웃렛들도 하나둘씩 자리 잡았다. 지금은 서울 서남부뿐 아니라 지하철로 연결되는 부천, 인천, 천안 지역까지 상권이 넓어져 특히 주말에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마리오아울렛은 백화점에 들어가는 유명 브랜드 상품만 취급한다. 하지만 백화점이나 교외의프리미엄 아웃렛들과는 달리 TV나 신문 광고는 하지 않는다. 비용이 적게 드는 라디오 광고, 그리고 알뜰 소비자들이 퍼뜨리는 입소문에 의존한다. 꼭 살 사람만 오면 된다는 생각이다.

 

회사가 밝힌 2012년 마리오아울렛 매출(상품 취급액)은 약 2500억 원. ㈜마리오는 입점업체들로부터 매출의 15% 안팎을 수수료로 받는다. 2012년 실제 수수료 수입은 326억 원이다.1  마리오 3관이 본격적으로 영업에 들어간 2013년은 매출이 3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2년 영업이익률은 7%로 백화점 업계(신세계 11.2%, 롯데쇼핑 5%)에 비교해도 나쁘지 않다.

 

현재 마리오에는 3개 빌딩, 총면적 132000㎡에 약 500여 개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인근의 W, 패션아일랜드, 하이힐 등 대형 쇼핑몰들과 함께 주말에는 10만 명에서 20만 명의 사람들을 이 지역으로 불러 모은다. 중국 등 해외에서 오는 쇼핑객들도 많아졌다.

 

1관을 지을 때도사람도 안 다니는 곳에서 되겠느냐는 우려가 많았지만 첫해 매출 500억 원을 올렸습니다. 구전(口傳) 마케팅의 힘입니다. 3관을 지을 때도 주변에서는서울 서남권 상권만 보고 3관까지 지어?’라며 걱정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3관 개장 이후 매출이 50% 정도 늘어났습니다. 신규 수요를 성공적으로 창출한 것입니다.” 박용근 홍보부장의 말이다.

 

밤길을 걷기가 무서울 정도로 버려졌던 가리봉동 공장지대를 한국 최대 규모의 화려한 패션타운으로 탈바꿈시킨 마리오아울렛의 성공 사례를 분석한다.

 

 

IMF 위기에서 기회를 보다

 

㈜마리오는 1987년에 설립됐으며 홍성열 회장이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다. 충남 당진 출신인 홍 회장은 가리봉공단 일대에서 만든 의류를 일본과 유럽 등지에 수출하면서 회사를 키웠다. 특히 여성 니트 의류인 까르뜨니트 브랜드는 백화점에도 입점하며 품질을 인정받았다. 그의 단단한 체구와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업무스타일을 보고 일본 바이어들이 붙여준 별명이슈퍼마리오(인기 비디오게임 주인공)’.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구로공단과 가리봉공단의 수많은 사업체들이 사업을 축소하거나 원가경쟁력이 더 싼 지역을 찾아 빠져나가 동네가 황폐해졌다. 남아 있는 업체들의 불량 재고는 늘어났다. 의류업체들은 공장과 창고에 쌓여 있는 재고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소규모 직영 아웃렛 매장들을 열었다. 외환위기 이후 사람들의 씀씀이가 줄어들었고 같은 브랜드 제품을 사더라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멀리 가리봉까지 발품을 파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가리봉 아웃렛 타운도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이렇게 브랜드 상품의 재고처리를 하는 소규모 아웃렛들이 모인 거리는 흔히로데오거리라 불리며 수도권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수출 영업을 위해 해외에 자주 나가던 홍 회장은 아웃렛 사업에서 더 큰 가능성을 봤다. 그는 일본에서 백화점 스타일의 대형 아웃렛들이 대중교통이 좋은 도심 혹은 변두리 지역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미국의 아웃렛들이 멀리 교외로 차를 타고 나가 하루 종일 쇼핑하는개념이라면 일본과 유럽의 아웃렛은 대중교통으로 연결되는 것이 달랐다. 그는 한국에 도시형 대형 아웃렛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홍 회장은 IMF 사태로 공단 일대의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 틈을 타서 부지를 다수 매입했다. 그리고 그중 한 곳에 자신의 별명을 딴 지상 8층짜리 아파트형 공장을 짓고 하부층에는 까르트니트뿐 아니라 여러 브랜드 제품을 파는 종합 아웃렛 매장을, 상부층에는 의류공장을 입주시켰다. 이 건물은 2001 1월에 문을 열었다.

 

백화점에서 파는 브랜드 상품을 50%에서 80%까지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 종합 아웃렛은 알뜰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첫해 500억 원 정도이던 매출이 3년 후인 2004년에는 1200억 원까지 성장했다. 여세를 몰아 홍 회장은 2004년에 1관 바로 옆에 2관을 열었다. 2관 역시 아웃렛과 제조시설이 같이 들어가는 복합건물이었다. 지상 3층까지는 매장과 식당가가, 4층부터 15층까지는 아파트형 의류 공장들과 사무실들을 입주시켰다. 2012 9월에는 13층 건물인 3관을 열었다. 1, 2관과는 달리 3관은 전부가 아웃렛 매장과 식당가다.

 

마리오가 규모를 키워가는 동안 인근에는 비슷한 콘셉트의 대형 패션 아웃렛인 ‘W하이힐’ ‘패션아일랜드등이 들어섰다. 이들은 서로 경쟁을 하면서도 소비자들에게 이 일대를 수도권 최대의 아웃렛 패션타운으로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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