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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 상품 ‘뮷즈’의 흥행 비결

취객선비 술잔 세트,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
천년 유물 놀라게 한 ‘박물관 굿즈’ 열풍

강지남 | 398호 (2024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취객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 케이스티파이 국립중앙박물관 컬렉션…. 언제부턴가 국립박물관 굿즈가 품절 대란과 오픈런을 일으킬 정도로 ‘세상 힙한’ 상품이 됐다. 국립박물관 상품 ‘뮷즈’가 힙트래디션의 대표 주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MZ세대의 취향 소비를 제대로 저격했기 때문이다. 뮷즈는 천년 유물을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했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실용성과 높은 품질까지 갖췄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유산의 가치 또한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실력 있는 작가, 공방, 브랜드와의 협업에 적극적인 점도 뮷즈의 주요한 성공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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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만에 솔드 아웃된 ‘김홍도 술잔’
뮷즈_로고_기본형(가로)

조선 선비가 그려진 술잔에 차가운 물을 따르자 선비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불그레한 얼굴을 하고 꾸벅꾸벅 졸거나 행랑아범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거리는 모습이 요즘 술자리 풍경과 다르지 않아 웃음이 난다. 국립박물관 상품 ‘뮷즈(MU:DS)’ 중 최근 가장 인기를 누리고 있는 ‘취객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다. 이 상품은 평양 대동강 변에서 열린 잔치를 그린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 속 취객 선비를 모티브로 디자인됐다. 선비의 얼굴에 온도에 반응하는 시온 안료를 발라 18도 이하의 찬 음료를 따르면 변색된다.

이 재미난 술잔에 2030세대가 열광하고 있다. 2023년 12월 출시해 한 달 만에 1100세트 넘게 팔렸다. 이후에도 상품이 입고되자마자 품절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매달 첫 번째 월요일에 온라인 예약 판매를 하는데 지난 6월부터 판매 수량을 2000개에서 5000개로 늘렸음에도 2분 만에 완판됐다. 이 술잔을 구하러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오프라인 원정’을 나서는 사람들도 생기자 뮷즈의 인스타그램 계정1 은 ‘대란템 구하기 눈치작전’을 포스팅했다. 박물관에 소량씩 입고되는 요일과 메인 상품관 말고 상설전시관 내 상품관에서는 소진 속도가 다소 늦다는 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단, 높은 수요를 감안해 구매 수량은 1인당 2세트로 제한했다.

MZ세대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는 ‘힙트래디션(hip+tradition)’이다. 이는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즐기는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전통시장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약과나 개성주악 같은 전통 과자를 디저트로 즐기는 것이 그 예다.

힙트래디션의 대표 주자를 꼽자면 단연 뮷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사장 정용석, 이하 재단)2 이 기획·생산 및 판매하는 뮷즈는 취객선비 변색 잔 외에도 고려청자 휴대전화 케이스, 자개소반 무선충전기,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금동대향로 미니어처, 롱롱타임플라워 등 우리 문화유산을 모티브로 한 상품을 연속 히트시키며 MZ세대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뮷즈의 2023년 매출을 분석한 결과 뮷즈 구매자는 20대 13%, 30대 49%, 40대 16%, 50대 12%로, 2030세대 비중이 62%에 달한다. SNS에는 반가사유상 토우를 책장에 올려 둔 사진이나 취객선비 잔에 술을 따르는 영상 등 뮷즈 상품 구매를 인증하는 콘텐츠가 왕성하게 올라온다. 국내의 그 어떤 박물관, 미술관 상품도 일으킨 적 없는 현상이다.


연속 히트로 매출 상승세

뮷즈의 인기는 매출로 증명된다. 뮷즈의 2023년 매출액은 149억 원으로 전년(117억 원) 대비 27%,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86억 원) 대비 70% 성장했다. (그림 1) 그 덕분에 재단의 재정자립도는 73% 수준으로 공공기관 중 상위권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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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뮷즈의 성공을 매출 신장으로만 가늠해선 안 된다. 박물관 상품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과 그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이 수익성보다 우위에 있는 뮷즈의 존재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도 뮷즈의 성과는 도드라진다. 뮷즈 상품을 계기로 우리 문화유산을 더 깊게 이해하고, 뮷즈 상품을 사러 박물관을 찾았다가 문화유산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 중 80% 이상이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한 ‘사유의 방’3 을 관람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처럼 사유의 방이 박물관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는 데는 누적 판매량이 3만4000개에 달하는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0년 11월 처음 출시됐을 때부터 높은 판매고를 보였던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2021년 6월 방탄소년단 멤버 RM이 이 상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단숨에 판매량 1만 개를 돌파했다. 엄청난 화제와 연속 품절 사태로 시중에 유사품이 유통되기도 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이후에도 꾸준하게 판매돼 현재 뮷즈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한국의 전통 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인센스 홀더, 무선충전기, 네임택 등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품목에 발 빠르게 적용하고 있는 점에서도 뮷즈가 해외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문화상품보다 앞서 나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뮷즈는 어떻게 천년 유물을 모티브로 한 상품을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힙한 아이템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3~4년에 걸쳐 히트 상품을 연속적으로 선보이는 데 성공하고 나아가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DBR이 뮷즈 기획, 디자인 및 마케팅을 담당하는 재단 상품기획팀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뮷즈의 흥행 비결을 분석했다.


기념품 말고 ‘소장품’

김미경 상품기획팀장은 올해로 8년째 뮷즈 상품기획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웅진식품에서 ‘하늘보리’ ‘초록매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식품·외식업계에서 15년 이상 종사한 상품기획 및 마케팅 전문가다. 그가 재단에 합류한 2016년 무렵 국립박물관 상품에 대한 평가는 썩 좋지 않았다. 재단이 자체 기획한 상품은 나쁘지 않았지만 외부에서 발굴한 상품 중 품질이 낮은 아이템이 많아 전반적인 평가를 하향시켰기 때문이다. 국립박물관에서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려야 할 국립박물관 상품이 오히려 문화유산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김 팀장은 국립박물관 상품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왕과왕비 수저세트’ ‘별헤는밤 유리컵’ 등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꾸준하게 잘 팔리는 상품이 몇몇 있었기 때문이었다. 2030 여성 고객 위주로 재구매율도 높았다. 당시 재단이 직접 운영하던 중앙박물관 내 카페가 테이크아웃 컵의 슬리브를 조선 화가 남계우의 화접도(花蝶圖)를 활용해 디자인한 것도 꽤 감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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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팀장은 2017년부터 상품기획팀을 이끌었다. 상품기획팀은 “국립박물관 상품의 수준을 끌어올리자”는 미션을 안고 꾸준하게 팔리는 상품들을 관통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분석했다. 별헤는밤 유리컵은 2015년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특별 제작한 상품으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시구를 컵 디자인에 반영했다. 왕과왕비 수저세트는 백제 무령왕과 무령왕비의 금제 왕관 꾸미개에서 따온 문양을 수저와 젓가락에 새긴 상품이었다. 이처럼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으면서, 의미가 뚜렷하고, 실생활에서 사용하거나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이 사랑받고 있었다. 이에 상품기획팀은 ‘독창성, 실용성, 고품질을 갖춘 상품은 잘 팔린다’는 가설을 도출했다. 아울러 이러한 3박자를 잘 담아낼 수 있는 품목은 문구류보다는 생활 소품이라고 판단했다.

상품기획팀은 2017년 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4 기념품 기획에 이 가설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당시 국립박물관 상품으로는 보기 드문 쟁반, 머그컵, 에코백, 파우치 등을 근현대 프랑스 기품(氣品)을 녹여낸 디자인으로 출시했다. 이 특별전의 주요 관람객이 패션 분야에 종사하거나 패션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였고, 이들의 호응에 힘입어 기념품은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 경험은 상품기획팀이 “특별하면서도 실용성 있는 생활 소품이라면 널리 사랑받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

이후 상품기획팀은 생활 소품 기획에 주력했고 이러한 생활 소품에서 히트 상품이 하나씩 나왔다. 2020년 출시한 고려청자 무선이어폰 케이스는 국립박물관 상품 최초로 ‘서버 다운’ 사태를 일으켰다. 국보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의 색과 무늬를 본뜬 에어팟과 갤러시버즈 케이스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재단의 자사 몰5 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2021년에는 작은 상 형태에 나전칠기 자개 무늬를 새긴 ‘자개소반 무선충전기’가 흥행에 성공했다. 특별전 ‘칠, 아시아를 칠하다’6 와 연계한 이 상품은 9만9000원에 달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1시간 동안 300개 넘게 팔리며 품절 사태를 일으켰다. 박물관 측은 이 사례를 통해 히트 상품이 가져다주는 시너지효과를 체감할 수 있었다. 화제의 상품을 구매하러 온 고객들이 다른 상품까지 함께 구매하고, 미디어와 SNS 등에서 국립박물관에서 이번에는 어떤 신상품이 나올지 흥미롭게 지켜보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로 ‘박물관 굿즈’ 열풍을 이끌어내면서 국립박물관 상품은 젊은 세대에게 힙한 아이템으로 입지를 굳혔다.

2022년 1월 뮷즈 브랜드를 론칭한 것도 국립박물관 상품의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립박물관 소장 유물을 모티브로 개발하는 상품’이라는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뮤지엄 굿즈’를 줄인 뮷즈가 브랜드명으로 확정됐다.7 국립박물관 상품 혹은 박물관 기념품이라 불리던 것을 뮷즈로 간단하게 호칭할 수 있게 되면서 마케팅 효율성이 향상되고 대중이 국립박물관 상품을 인지하는 경로도 짧아졌다.


뮷즈 기획의 4대 원칙

뮷즈가 힙트래디션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며 갈수록 인기를 더하고 있는 것은 상품기획에 몇 가지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오고 있기 때문이다. 뮷즈는 천년 유물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실용성과 고품질을 동시에 추구하며, 트렌드 분석과 반영, 외부와의 협업에 적극적이다. 또한 특정 상품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 재해석

재단의 오랜 숙원 사업은 국립박물관을 대표하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국립박물관 상품관8 과 온라인숍에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대표 상품을 한두 가지 꼽으라고 할 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상품기획팀은 중앙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했다. 중앙박물관 학예사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소장품은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이었다.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유물이 해외 전시에 나갈 때 가장 많은 초대를 받는 유물이기도 했다. 박물관의 대표 유물인 만큼 관련 기념품이 없진 않았지만 어두운 금동 색상의 반가사유상을 그대로 인쇄한 공책과 스카프 정도여서 매력도가 떨어졌다.

상품기획팀은 반가사유상의 매력이 형태감에 있다고 봤다. 사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듯한 신비로운 존재, 뺨에 손가락을 살짝 대고 명상에 잠긴 듯 평온한 미소를 형태감을 살려 제대로 드러낸다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동시에 상품기획팀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의 피규어를 수집하는 MZ세대 문화에 주목했다. 이렇게 해서 “반가사유상을 피규어로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도출됐다. 단, 원작의 무거운 색감을 버리고 빨강, 주황, 노랑, 파랑 등 비비드한 색상을 입히는 파격을 더하기로 했다.9 첫 론칭 때 10가지 색상으로 출하된 2000여 개 물량은 “세상 힙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온라인숍에서 금세 모두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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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파격은 원작의 색상을 버린 점에만 있지 않았다. 미니어처의 머리 사이즈는 원작보다 작다. 즉, 원작의 신체 비율을 인위적으로 변형함으로써 탁상에 놓고 봤을 때 심미적으로 더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했다. 뮷즈 디자인을 담당하는 서지희 상품기획팀 과장은 “유물의 중요한 느낌은 살리고 나머지를 과감하게 생략하면서 유물의 매력을 최대치로 표현하고 있다”며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의 경우 비율을 세밀하게 조정한 것 외에도 머리에 쓰는 관은 자세히 표현하는 대신 옷깃이나 옷 주름은 단순화했다”고 설명했다.

천년 유물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은 뮷즈 상품의 특색이자 인기 비결로 통한다. 취객선비 변색 잔 외에도 글로벌 테크 액세서리 케이스티파이와 뮷즈가 협업한 스마트폰 케이스, 페이퍼 아트워크 작가 나난이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를 재해석해 만든 롱롱타임플라워 등이 최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현대적 감각의 뮷즈 상품으로 꼽힌다.

서 과장은 “유물을 그대로 활용하기보다는 나름의 특징을 살려 재해석했을 때 고객의 선호도가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원작이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벗어나는 것은 금기 사항”이라며 “세련되고 예쁘기만 하면 뮷즈가 일반 상품과 구별되지 않고, 이 점 때문에 실제 매출이 저조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뮷즈 고객은 유물의 가치와 의미를 살린 상품에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궤 머그컵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나라의 주요 행사를 그림으로 기록한 조선시대 의궤에는 혼례 가마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 머그컵의 뚜껑 라인을 의궤 속 가마의 둥근 형태에서 따와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상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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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용성과 고품질 추구


앞서 언급한 뮷즈의 베스트셀러 상품은 모두 실생활에서 활용하기 좋은 상품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술잔, 무선충전기, 스마트폰 케이스, 수저 세트 등은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고 선물하기에도 손색없는 아이템이다. 이 때문에 실용성과 높은 품질은 뮷즈 상품 기획의 주요 잣대다.

이 같은 히트 상품이 나오기까지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일례로 2017년 특별전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를 기념해 만든 생활 소품들은 잘 팔렸지만 유독 포스트잇은 팔리지 않았다. 같은 해 역시 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아라비아의 길-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 기념품으로 석상의 얼굴을 크게 확대한 플라스틱 부채를 몇천 개 만들었지만 고스란히 재고로 쌓였다. ‘디자인이 괜찮고 가격까지 저렴하면 박물관 관람객들이 기념 삼아 가볍게 구매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만든 상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할인 행사를 해도 팔리지 않는 것을 지켜보며 상품기획팀은 누구나 서랍에 쌓아 둔 포스트잇이 여러 개이고, 플라스틱 부채는 공짜 사은품으로 흔하게 얻는 물건이라는 점을 간과했음을 깨달았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도 쓸모가 적거나 품질이 좋지 않으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된 사건이었다. 뮷즈 고객들은 단순히 패키지만 리뉴얼한다거나 기존 상품과 비슷한 콘셉트로 출시하는 등 ‘얄팍하게’ 기획한 상품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외면했던 것이다. 이후 상품기획자들은 고객들이 간단한 생활 소품이라 하더라도 예술성 있고 디테일까지 뛰어난 상품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됐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물건이라고 다 잘 팔리는 것은 아니었다. 뮷즈는 코로나 기간 골프 인구가 크게 증가한 점에 착안해 골프공 등 몇 가지 골프용품을 출시했지만 판매량이 초도 물량에 그쳤다. 반응이 썩 좋지 않았던 이유는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은 주로 브랜드와 가격으로 골프용품을 선택하기 때문이었다. 또 골프 전문 브랜드가 골프용품을 대량 생산하기 때문에 뮷즈가 가격경쟁력을 갖기 어려웠다. 김 팀장은 “골프용품과 박물관 굿즈가 특성상 서로 잘 매칭되지 않는 셈”이라며 “실용성 외에도 일반 시장에서의 경쟁 상품 현황, 그리고 소비자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흥행의 조건’을 거듭 깨달은 덕분에 사장될 뻔한 아이템을 되살려 대박을 낸 사례도 있다. 올 2월 출시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다. ‘글룩’이라는 3D프린팅 전문 업체가 기획, 생산하는 이 상품은 2023년 뮷즈 정기 공모전에 출품됐다가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 평가 결과 낙선했다. 하지만 상품기획팀은 금동대향로를 세세하게 표현한 3D 기술이 매우 정교하다는 점, 금동대향로가 향을 피우는 향로라는 점을 살려 인센스나 모기향을 피울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상품 매력도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문화유산의 의미를 되살렸을 뿐만 아니라 예술성과 실용성, 고품질까지 갖췄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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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상품기획팀은 글룩과 다시 접촉해 이 상품을 총 7개 컬러로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금동대향로 미니어처는 9만9000원이라는 비교적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4개월 만에 2000개가 넘게 팔리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외부 상품 발굴을 담당하는 김은숙 상품기획팀 차장은 “특히 골드 색상은 자주 품절될 정도로 인기”라며 “10대 청소년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유물을 소장하고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밌어하면서 구매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뮷즈 상품은 아이디어 회의-품목 선정-활용 유물 선정-내부 승인-디자인-샘플 제작-리뷰 및 수정-상품 출시 순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 프로젝트가 완료되기까지 보통 6~7개월이 소요된다. 그간의 경험치에 기대 상품 출시에 드는 시간이 단축될 법한데 오히려 길어지는 추세다. 신선하면서도 깊이감 있는 기획과 실용성과 고품질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다. 상품 생산 전에 샘플을 제작하는 것은 반드시 거치는 단계이고 상품기획팀이 만족하는 수준으로 샘플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 샘플을 제작한다. 최근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버전3 78호를 3가지 새로운 색상으로 새로 출시하면서도 미세한 색감 조정과 비율 조정 때문에 샘플을 너덧 번 제작했다고 한다. 김 팀장은 “뮷즈 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 누가 봐도 잘 만든, 디테일까지 완성도가 높은 상품은 잘 팔린다는 것을 갈수록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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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열린 자세로 배우고 협업

뮷즈 상품은 소싱에 따라 3가지로 나뉜다. 재단이 자체 기획·수급하는 자체기획상품과 정기 공모 혹은 개별 작가/업체를 발굴해 출시하는 발굴 상품, 기존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선보이는 협업 상품이다.

국립박물관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는 데 적합한 상품을 발굴하는 것은 재단 혼자서 모든 상품을 기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매년 뮷즈 정기 공모 제도를 운영하고 전국 주요 전시회와 박람회 등을 돌며 실력 있는 작가, 업체를 발굴하고 있다. 뮷즈의 인기에 힘입어 해마다 더 많은 상품이 공모를 통해 출품되고 창의성이나 품질이 더욱 향상되고 있다고 한다.10 한편 뮷즈 정기 공모는 참여 자격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11 상품기획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좋은 등용문 역할도 하고 있다. 취객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를 기획한 김지예 EYZ 대표는 직장을 다니며 뮷즈 공모에 도전했다가 선정은 물론 판매 대박이 나면서 현재는 전문 사업가로 나섰다고 한다. 재단이 선정작을 마케팅, 홍보하고 선정작은 뮷즈 브랜드 로고를 사용할 자격도 갖기 때문에 작가, 업체가 자체적으로 판로를 개척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발굴 상품은 ‘뮷즈 라인업’을 보충하는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 전통문화의 정수(精髓)를 제대로 녹여낸 상품을 찾아내고 협업하면서 상품기획팀은 최신 트렌드와 제작 노하우를 배운다. 김 차장은 “생산 환경을 잘 이해해야 상품기획력을 강화할 수 있는데 실력 있는 작가나 업체와의 교류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발굴 상품으로 인연을 맺었다가 실력을 검증받아 자체기획상품 제작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반가사유상 토우 시리즈의 제작을 담당하는 올봄세라믹스튜디오는 2023년 중앙박물관 특별전 때 뮷즈와 인연을 맺은 곳이다. 수작업으로 만든 ‘영차토우’를 발굴해 특별전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반가사유상 토우를 기획하면서 한 번 더 협업하게 된 것이다. 뛰어난 제작 실력을 갖춘 곳을 우군으로 확보해 두는 것 또한 뮷즈의 경쟁력 향상에 핵심적 요소로 꼽힌다.

최근 뮷즈는 케이스티파이와 스마트폰 케이스를, 심보근 작가의 도자기 브랜드 무자기(MUJAGI)와 고려청자 잔 세트를 협업해 출시했다. 올 하반기에는 유명 보드게임 시리즈인 아스모디코리아 도블시리즈와 함께 한국 전통 유물이 등장하는 국립박물관 버전 카드게임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러한 협업 상품은 뮷즈가 저작권(IP)을 확보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국립박물관 소장품은 공공 소장물로 누구나 이를 활용해 2차 저작물을 제작, 자신의 IP로 등록할 수 있다. 뮷즈는 일부 협업 프로젝트에서 IP를 공동으로 갖기로 협약하고 공동으로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확보한 디자인물은 다른 상품을 개발할 때 활용될 수 있다.

4) 언제나 새로운 상품을 만날 수 있도록

조선 화가 안중식의 그림 ‘배를 타고 복사꽃 마을을 찾아서(桃源行舟圖)’를 주제로 한 문구류, 조선 나전칠기 유물을 모티브로 한 키링, 남계우 화접도와 조선 의궤로 디자인한 전통 부채…. 최근 6, 7월에 출시된 뮷즈의 신상품이다. 재단은 고객이 뮷즈를 찾을 때마다 새로운 상품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물관 상품의 특성상 제품 주기가 짧지 않지만 항상 새로운 상품이 있어야 고객의 관심을 붙들어 화제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발전을 보여주는 것도 신상품 못지않게 중요하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국립박물관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지만 뮷즈는 이 상품에 만족하지 않고 반가사유상과 사유의 방을 소재로 한 다양한 상품을 지속해서 개발하고 있다. 2022년 11월에는 사유의 방 개관 1주년 기념으로 ‘반가사유상 캐릭터’를 선보이며 인형, 스마트톡, 무드등 등의 상품을 출시했다. 동그란 얼굴에 눈을 지그시 감은 캐릭터에 ‘사람이 없는 새벽에는 박물관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물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는 스토리텔링도 담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 만들어가겠다”

뮷즈는 앞으로 새롭고 창의적인 상품을 기획하고 발굴해 한국의 문화유산을 널리 알려 나갈 계획이다. 우선 올해는 1만 원 이하의 저렴한 기념품 라인을 강화한다. 지난 몇 년간 생활 소품에 집중하다 보니 기념품 상품군이 상대적으로 약해졌기 때문이다. 반면 관람객이 크게 증가하면서 기념품 수요가 커졌다. 2023년 중앙박물관 관람객은 1945년 개관 이래 처음으로 400만 명을 넘어섰고 외국인 관광객도 17만 명으로 전년(7만 명)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우산과 부채 등 오랜 기간 꾸준하게 판매돼온 품목도 디자인 리뉴얼을 진행할 예정이다.

MZ세대 중심의 충성 고객을 잘파세대로 확장하고 중앙박물관 외 지방 국립박물관 소장 유물을 널리 알리는 것도 뮷즈의 향후 과제다. 그간 뮷즈의 성공은 MZ세대의 가치 소비에 기댄 바가 컸다. 이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을 소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10대와 20대 초반의 잘파세대 소비관은 이들과 다르다는 게 상품기획팀의 판단이다. 아스모디코리아와 협업해 도블 시리즈의 국립박물관 버전을 만드는 것도 2023년 전북 부안에서 열린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여하러 세계 각국에서 온 청소년들이 중앙박물관 상품관에서 보드게임을 찾았던 것에 착안해 시도하는 프로젝트다. 재단은 중앙박물관 외에도 중앙박물관 소속 13개 지방 국립박물관 및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의 소장품을 상품 기획의 대상으로 삼지만 중앙박물관 소장품을 활용한 상품 비중이 가장 높다. 관람객이 늘어나야 뮷즈 상품이 잘 팔린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상품 판매뿐만 아니라 지방 국립박물관 관람객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모색하고도 있다.

힙트래디션의 선두 주자 뮷즈는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옛것과 현재의 만남이 가져다주는 유니크한 즐거움이 더 이상 대중의 관심사가 아닌 시점에도 뮷즈는 화제의 중심에 있을 수 있을까? 김 팀장은 “대중의 필요와 니즈를 연구하면서 히트 상품을 거듭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공항과 대중교통 등 주요 장소에 일관되게 적용하는 한국적 이미지를 뮷즈가 만든다면 한국의 전통문화와 유산을 널리 알리는 뮷즈의 궁극적 목표에 부합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뮷즈만의 IP를 차곡차곡 쌓고 널리 알려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DBR mini box I : Interview: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장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풀어서 알리는 게 핵심”


강지남 객원기자 jeenam.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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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기획팀 인원과 역할 분담은 어떻게 되나.

나를 포함해 총 8명이다. 전략, 디자인, 외부 상품 발굴 등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지만 인력이 부족해 홍보, 외부 브랜드와의 협업 등의 업무를 나눠 진행하고 있다. 상품기획에는 모두가 참여한다.

재단 구성원 모두가 뮷즈에 도움을 주고 있다. 최종 샘플이 확정되면 재단 직원들을 대상으로 품평회를 열고 피드백을 반영해 샘플 수정을 한두 번 더 한다. 고객과 뮷즈의 만남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상품관 매니저들의 평가가 가장 신랄하다. 손상을 막기 위해 볼펜도 하나씩 개별 포장을 해달라, 금속 마그넷 뒷지가 너무 작아 진열했을 때 가치가 떨어져 보인다 등등. 이런 피드백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MZ세대를 공략하려면 최신 트렌드 파악이 중요할 텐데.

상품기획팀뿐만 아니라 상품판매팀 등 뮷즈 관련 부서의 전원이 모여서 매달 한두 번 트렌드 회의를 연다. 최근의 트렌드, 시장 환경과 변화 등 각자가 시장조사를 하며 파악한 사안을 공유하는 자리다. 항상 외부의 흐름과 변화에 민감해야 하기 때문에 각종 전시회와 공예 및 리빙 박람회에 수시로 다닌다. 한편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모든 것이 상품기획의 참고 자료가 된다. 얼마 전 상품기획팀 직원이 미국 플로리다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플로리다에 간 김에 일부러 올랜도 디즈니월드에 들러 뮷즈에는 없는 다양한 상품을 참고 자료로 사 왔더라.


다양한 생활 소품을 출시했는데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품목이 있나.

국립박물관과 잘 어울리는 향을 제대로 개발해 일상에서 두고 사용하기 좋을 만한 다양한 아이템을 선보이고 싶다. 박물관의 어떤 이미지를 향으로 구현하면 좋을지 연구 중에 있다. 또 뮷즈만의 독창적이고 품격 있는 디자인 패키지를 만들고 싶다. 박물관 유물들을 보다 보면 욕심 나는 콘텐츠가 참 많다.


매출 신장을 이어가는 게 중요한가.

뮷즈의 궁극적 목표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유산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상품에 이것을 얼마나 잘 담아냈고 대중에게 어느 만큼 소구됐는지가 매출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매출은 중요한 목표다.

그러나 일반 상품과 달리 매출이 가장 우선시되지는 않는다. 뮷즈의 유통 채널을 오프라인에서는 국립박물관 상품관과 인천국제공항 한국전통문화센터, 온라인에서는 자사 몰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한정하고 있다. 더 많은 유통 채널을 만들지 않는 것은 상품 판매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유산을 알리는 미션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자사 몰의 개별 상품 페이지에서 해당 상품이 어떠한 유물에 기반해 기획된 것인지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일반 이커머스는 아무래도 가격이 가장 중요한 정보이다 보니 이 같은 상품 페이지를 만들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는 검색 노출을 목적으로 운영하며 베스트셀러 및 전략 상품 위주로 판매한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는 선물 아이템을 찾는 수요를 고려해 입점했다.


뮷즈의 가격 정책은.

국립박물관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비싸면 안 된다. 이 때문에 선물하기에 손색없는 품질의 상품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판매하고자 한다. 국립박물관에는 다른 박물관, 미술관보다 합리적 가격의 상품이 훨씬 다양하다고 자부한다. 물론 최근 물가가 많이 올라서 뮷즈도 비용 압박을 느끼고 있다. 발굴 상품 등을 뮷즈에 공급하는 업체들도 인건비, 재료비 인상을 이유로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데 분기별로 검토해 타당할 경우 가격을 조정한다.

한편 더 고급스러운 선물용 상품을 원하는 뮷즈 고객들도 있다. 일례로 금박 등을 더하는 등 독특한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소소요의 달항아리는 2023년 롯데백화점 뮷즈 팝업스토어 때 반응이 매우 좋아 중앙박물관 상품관에서도 계속 판매하고 있다. 대중적인 상품을 꾸준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고급 라인도 강화하고자 한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첫 출시됐을 때 매우 파격적이었다.
성공을 자신했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대표 소장품인 ‘사모트라케의 니케’나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을 컬러풀한 미니어처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정식 출시 전에 10가지 색상의 샘플을 제작해 2020년 중앙박물관 특별전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에 전시했다. 관람객들이 매우 좋아하면서 구매할 수 있냐고 많이들 문의했다. 덕분에 자신감을 갖고 출시할 수 있었다.


반가사유상 다음으로 상품기획을 고려 중인 대표 유산이 있나.

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에서 위용을 떨치고 있는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꼭 뮷즈 상품으로 성공시키고 싶다.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외국인 관람객이 가장 인상 깊다고 꼽는 1위 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디테일이 매우 많고 아직 3D 데이터를 만들어놓지 않아서 공부하고 준비할 게 매우 많다.


뮷즈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꼽는다면.

뮷즈의 벤치마킹 대상은 박물관과 미술관에 국한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북유럽을 좋아하는데 핀란드 여행 중에 마리메코와 이탈라의 디자인을 자연스럽게 경험했던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싱가포르의 가든스바이더베이도 참 좋았다. 콘텐츠의 개성이 명확하고 이를 상품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점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사 바트요나 카사 밀라는 전시와 투어 프로그램이 굉장히 좋고 전시 콘셉트가 뮤지업숍으로까지 이어진다. 뮤지엄숍 공간을 전시, 소장품, 상품이 한데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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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mini box 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레거시적 가치를 ‘낯선 상품’으로 차별화하다


신형덕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 shinhd@hongik.ac.kr


1. 낯설게 하기

러시아의 형식주의 문학자인 시클롭스키는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여기서 ‘형식’은 내용과 비교되는 개념이다. 형식주의 문학자들은 ‘특정한 내용은 특정한 형식에 의해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즉, 내용과 형식이 분리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일상적 보행에 익숙한 사람들이 패션모델의 훈련된 걸음걸이에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듯 낯익은 대상을 낯설게 하는 행위는 관람자의 주의를 끌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자는 국내 박물관 상품관에서 물건을 구매한 적이 없다. 돌이켜보면 가장 큰 이유가 아마도 상품들이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경주에 가면 첨성대 미니어처가 있고, 제주에 가면 돌하르방 미니어처가 있었다.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유명한 유물이나 고서화 이미지를 담은 상품이 많았지만 교과서 등을 통해 워낙 자주 접했던 것들이라 굳이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나온 뮷즈 상품들은 이러한 기시감과 거리가 멀다. 동그란 얼굴에 눈을 지그시 감고 살포시 웃는 반가사유상 캐릭터를 보자. 우리에게 익숙한 반가사유상 유물 그대로의 이미지에 소위 MZ 감성이 결합돼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익숙하지만 낯선 것이다.

이러한 ‘낯설게 하기’ 기법이 경영 분야에서 과연 낯선 것일까? 마케팅과 브랜딩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래된 기업이라도 시대에 따라 로고와 브랜드명을 바꾼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1952년 설립된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은 1991년 KFC로 개명했다. 2021년 미국 자동차기업 제너럴모터스(GM)는 57년 동안 사용했던 로고를 바꿨다. 이 둘은 현대적 이미지를 취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한 사례다. 반대로 버거킹은 2021년 20년 만에 로고를 변경했는데 1969년부터 사용했던 로고와 비슷한 형태로 회귀했다. ‘우리는 정통적인 햄버거를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었다. 젊은 세대에게 이러한 회귀가 오히려 힙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사실 맥도날드 등 다른 햄버거 브랜드들도 향수를 자극하는 메뉴를 출시해 힙트래디션을 추구했다.


2. 전문가 특공대 투입하기

뮷즈의 두 번째 성공 요인은 전문성과 관련이 있다. 물론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과거에도 문화상품 기획 과정에서 품질이나 유통에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지만 2017년부터 상품기획을 주도한 김미경 상품기획팀장은 민간 영역에서 상품기획과 마케팅 전문성을 쌓아온 인물이었다. 그는 공공 영역인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서도 성과를 냈다. 자체기획상품뿐만 아니라 공모를 통한 상품 발굴과 외부 기업과의 협업을 통한 상품 개발 등 전문성을 이끌어 낼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조직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실무에서 전략까지, 모든 수준의 변화는 장애물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금융 기업으로서 이러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변화를 추구한 대표적 사례로 IBK기업은행을 들 수 있다. 이 기업은 2021년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문화콘텐츠 금융 전담팀을 두고 꾸준히 영화, 드라마, 공연 등에 대한 투자 활동을 지속했다. 이는 예대금리차를 주된 수익원으로 하는 금융기관으로는 매우 특이한 사례인데 이를 가능하게 한 주된 요인은 높은 전문성을 가진 팀의 조직 및 운영이었다. 팀의 출범 당시부터 연예기획사, 영화배급사, 영화제 사무국 출신 등 12명의 부서원이 결성돼 특공대처럼 활동했다. 이들은 대출 결정을 위한 기존의 사업 평가에 더해 문화상품의 상품성에 대한 기준을 적용해 심사부를 설득했다. 이러한 전문성이 누적된 덕분에 IBK기업은행은 올해 10억 원을 투자한 영화 ‘파묘’에서 100%가 넘는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3. 트렌드에 대응하기

뮷즈의 마지막 성공 요인은 다소 식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마케팅의 기본 중의 기본인 ‘소통’에 대한 것이다. 즉, 트렌드에 민감했다는 점이다. 가격을 낮추려면 품질은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 기념품은 오프라인의 ‘현장성’만 중요하다는 선입관, 원작의 형태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트렌드 추종을 막게 된다. 그러나 뮷즈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현명하게 피하며 성공을 도모했다.

박물관 관람객들이 단지 기념이 된다고 품질 낮은 상품을 구매하지는 않는다는 것, 박물관 굿즈도 온라인에서 활발히 판매할 수 있다는 것, 기념품도 실용성을 갖춘 아이템이 선호된다는 것, 역사적 유물도 슈퍼 디포메이션i 이 가능하다는 것 등은 젊은 세대에게는 당연시되는 트렌드다. 뮷즈는 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적극 활용했다. 이처럼 잠재적 구매자와의 끊임없는 소통은 트렌드의 파악과 적용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레거시적 가치를 찾아라

지금까지 뮷즈의 성공 요인으로 익숙한 콘텐츠를 낯설게 한 것, 콘텐츠에 대한 전문적 역량과 재량권을 갖춘 특공대를 조직한 것,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트렌드를 반영한 것에 대해 살펴봤다. 이러한 요인은 일반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자원기반이론에 의하면 기업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작업은 ‘모방 불가능한 강점’을 찾는 것이다. 문화예술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기업이 자신의 레거시를 찾아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이 반가사유상의 레거시적 가치를 발견해 이를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낯선 상품으로 탄생시켰듯 기업은 나름의 레거시를 찾아 다른 기업과 차별화되는 문화예술적 품격을 갖춰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기업에 우리나라의 오천 년 문화유산은 그 레거시의 일부가 돼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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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전략경영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버지니아주 조지메이슨대를 거쳐 2006년 홍익대 경영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된 분야는 전략경영, 국제경영, 창업, 문화예술경영이다.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장,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기업 윤리와 사회적 책임』 『잘되는 기업은 무엇이 다를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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