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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화 시장의 뉴리더 ‘호카(HOKA)’

미니멀리즘 열풍 속 ‘못생긴 신발’
러닝에 진심인 고객만 보고 달린다

장재웅 | 397호 (2024년 7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능성 신발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는 호카는 창업 초기부터 트레일러너와 울트라 마라토너 등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를 위한 기능성 러닝화 시장이라는 니치마켓에 집중했다. 그 결과, 두꺼운 쿠션과 오버사이즈드 미드솔을 특징으로 하는 맥시멀리즘 러닝화의 상징이 됐다. 특히 호카는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매스마케팅보다는 진심으로 달리기를 즐기는 덕후들에게 집중해 러닝 커뮤니티 위주로 제품과 브랜드를 알리는 전략을 펼치며 탄탄한 팬층을 확보했다. 여기에 2017년 이후 나타난 어글리 슈즈 열풍과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형성된 러닝 열풍의 수혜를 입으면서 호카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톱티어 운동화 브랜드들을 위협하는 인기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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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블룸버그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모건스탠리의 의류 담당 애널리스트인 에드워드 오빈(Edouard Aubin)이 하루 동안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조깅을 하는 250명 이상의 사람을 관찰해 이들이 어떤 러닝화를 신고 있는지 조사를 한 기사였다. 흥미로운 점은 조사 결과 센트럴파크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 중 19%가 ‘호카(Hoka)’를 신고 있었다는 점이다. 수년간 운동화 업계 절대 지존 위치를 차지하던 나이키는 17%로 2위를 차지했다. 2009년 프랑스에서 러닝화 전문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호카가 창업 15년 만에 미국의 주류 러닝화 업체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실제 호카는 최근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 및 아시아 등지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호카의 매출은 2015년 이전까지 7000만 달러(약 971억 원) 수준에 그쳤지만 2017년 1억5350만 달러(약 2100억 원)로 뛰어오르며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어섰고 2023년에는 14억1300만 달러(약 1조 9600억 원)를 기록했다. 약 10년 사이 매출액이 무려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업계에서는 호카의 매출이 2024년, 18억 달러(약 2조497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호카의 인기는 탁월한 착화감과 러닝에 특화된 기능성 덕분이라는 평가다. 실제 호카는 창업 초기부터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한 패션형 스니커즈가 아닌 전문 트레일러너(산악 마라톤)들을 타깃으로 한 기능성 러닝화 개발에 집중했고 그 결과 두꺼운 쿠션과 오버사이즈드 미드솔을 특징으로 하는 맥시멀리즘 러닝화의 상징이 됐다. 특히 호카는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무난한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스스로의 고객을 ‘무버(mover)’로 칭하고 달리기에 진심인 덕후들에 집중해 러닝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품과 브랜드를 알리는 전략을 펼치면서 탄탄한 팬층을 확보했다. 또한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스포츠계의 슈퍼스타를 영웅화하는 광고 전략을 선보일 때 흑인, 여성, 장애가 있는 운동선수 등 스토리가 있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엘리트 운동선수를 후원하고 이들을 홍보대사로 삼으면서 브랜드에 진정성을 더했다.

또한 2017년을 전후해 나타난 어글리 슈즈 열풍과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형성된 ‘펀 러닝’ 열풍 역시 호카의 인기에 불을 지피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철옹성처럼 지켜온 운동화 시장에 큰 균열을 만들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호카의 성공 요인을 DBR이 분석했다.


호카 오네오네의 탄생

호카는 2009년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살로몬’ 출신의 니콜라 메흐무(Nicolas Mermoud)와 장 뤼크 디아르(Jean-Luc Diard)가 살로몬을 퇴사한 후 설립한 회사다. 창업 초기 회사 이름은 ‘호카 오네오네(Hoka oneone)’,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언어로 ‘땅 위를 날다’라는 의미다.1

창업자들은 둘 다 트레일러닝2 을 즐겼고 실제 전 세계 트레일러너들의 꿈의 무대인 UTMB(Ultra Tracking Montblanc)에 직접 출전하기도 할 정도로 러닝 마니아였다. UTMB는 몽블랑(해발 4807m) 중턱에 있는 180㎞의 둘레길을 달려서 완주하는 대회로 매년 8000명 이상이 이 대회에 참가한다. 하지만 평지도 아닌 산길을, 그것도 180㎞나 달려야 하다 보니 완주율은 20% 남짓에 불과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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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참가자들에게 극한의 체력을 요구하다 보니 이 코스를 완주한 사람들은 다리, 발목, 발 등 관절에 무리가 생겨 후유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이 대회에 참가하며 이런 문제를 경험한 두 창업자는 기존 러닝화는 UTMB 같은 극한의 경험을 하는 대회를 치르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고 새로운 콘셉트의 러닝화를 만들기 위해 창업을 결심한다.

두 창업자는 제품 기획 단계부터 산악 지형에서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올 때 무릎 등 관절을 보호할 수 있는 신발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인의 아름다움보다는 기능성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방법을 고민하던 둘은 우연히 산악자전거에 적용된 오버사이즈드 타이어 기술에서 영감을 얻게 된다. 창업자 중 한 명인 메흐무는 “제품 기획 단계에서 우연히 ‘더 많은 쿠셔닝을 제공하면서도 가벼움과 반응성을 유지하는 두꺼운 밑창으로 운동화를 디자인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이 질문이 호카의 두꺼운 쿠션 디자인의 출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러닝화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처음 ‘내리막길용 슬립온’을 기획했다. 내리막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도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슬립온4 이 있으면 산에 오를 때는 가방에 넣어뒀다가 내려올 때 신발 위에 덧신처럼 착용할 수 있어 관절을 보호하면서도 빠르게 뛰어 산을 내려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러닝화가 아닌 슬립온을 떠올린 데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러닝화 시장을 지배하던 미니멀리즘 영향도 있었다. 당시 운동화 시장은 미니멀리즘이 강세여서 얇은 밑창에 맨발에 가깝도록 가볍게 디자인된 제품만이 사랑받았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발을 보호하기 위한 두꺼운 쿠션과 투박한 디자인의 러닝화를 만들었다가는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시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을 바꾼다. 창업자 메흐무는 “경량화된 시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제품이 단순히 러닝화에 부착하는 액세서리가 아닌 진짜 러닝화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콘셉트의 러닝화 개발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크기를 키워 푹신함을 극대화하면서도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이었다. 부상 방지에 효과가 있어도 신발이 무거워지는 순간 기록 경쟁을 하는 러너들에게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두 창업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소문 끝에 한 중국 신발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화학자를 만나 자신들의 구상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 중국인 화학자는 여러 번의 실패 끝에 화학물질을 독점 개발해 ‘에틸렌 비닐 아세테이트(EVA) 미드솔’을 탄생시켰다. 이 미드솔은 기존 운동화들의 평균 미드솔 높이인 10㎜보다 19㎜ 더 높아 탁월한 쿠션감을 제공하면서도 무게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또한 개발 과정에서 두 창업자는 밑창에 로커(Rocker)5 를 추가해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향상시키는 기술도 개발했다. 호카를 상징하는 두꺼운 쿠션과 메타 로커 기술의 초기 모형이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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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시제품을 완성한 메흐무는 이 제품을 들고 미국에서 열린 무역박람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제품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한다. 당시 호카는 신생 기업이었던 탓에 부스도 열지 못했다. 하지만 호카의 시제품에 몇몇 업체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전 마라톤 세계 챔피언이자 러닝화 체인 매장 BRC(Boulder Running Company)의 공동 창업자인 마크 플라체스(Mark Plaatjes)가 호카의 시제품을 테스트해 본 후 만족감을 나타내며 구입 가능한 초도 물량 770켤레를 모두 사들였다. 그 덕분에 호카는 창업과 함께 미국 BRC를 통해 최대 러닝화 시장인 미국에 자사의 제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됐고 이후 조금씩 미국의 러닝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나갈 수 있게 됐다.

DBR Minibox Ⅰ

‘어글리 슈즈 전문 기업’ 데커스 아웃도어

데커스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바라 캠퍼스 동문인 더그 오토와 칼 로프커가 1973년 창립했다. 이들은 창업 초기 캘리포니아 바닷가에서 서퍼들에게 플립플롭(일명 ‘조리’)을 팔았다. 그러다 우연히 히피들이 와인 코르크 재질로 만들어진 듯한 샌들에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신발이 바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애용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버켄스탁’이었다. 데커스는 버킨스탁의 성공을 보며 못생긴 신발에 본격적으로 눈독을 들이게 된다.

1980년대 초, 데커스는 그랜드캐니언 일대에서 활동하는 지질학자 겸 가이드 마크 대처에게서 샌들 브랜드 ‘테바(Teva)’의 판매권을 사들였다. 테바는 밑창에 시계 줄을 이어 붙인 형태의 샌들이다. 대처는 물 안팎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빠르게 말릴 수 있는 무좀 방지 샌들을 만들고자 했다. 이 ‘수륙양용’ 신발은 데커스의 판매망을 거치며 급속도로 팔려 나갔고, 데커스가 사업을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회사가 규모 있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는 다름 아닌 양털 부츠 브랜드 ‘어그(UGG)’ 덕분이었다. 데커스 창업자들은 1995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미 올림픽 대표팀이 어그 부츠를 신고 출전한 것을 발견했다. 데커스는 곧바로 1500만 달러(약 190억 원)를 투자해 어그를 인수했다. 이후 어그는 겨울용 부츠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00년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가장 좋아하는 신발로 어그를 꼽았고, 할리우드 스타들도 즐겨 신었다. 어그는 최근까지도 데커스의 주력 브랜드 역할을 하고 있다. 데커스는 2002년 테바와 판권 계약이 만료되자 대처를 설득해 6200만 달러(약 790억 원)에 브랜드를 아예 사 버리기도 했다. 이후에도 신발 브랜드들을 인수했는데 가장 성공적인 인수합병(M&A)으로 꼽히는 사례가 바로 ‘호카’다.

데커스 아웃도어에 인수되며 날개를 달다

창업과 함께 미국 러닝화 체인 매장과 공급 계약을 맺은 것은 분명 호카 창업자들 입장에서는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러닝화를 포함한 운동화 시장은 이미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운동화 브랜드가 철옹성 같은 성벽을 쌓고 있었다. 더구나 호카가 타깃으로 한 트레일러닝은 시장의 크기도 작고 일반인들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였기 때문에 소수의 엘리트 스포츠 선수를 타깃으로 한 신생 브랜드의 확장 전략은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2012년 성장에 애를 먹던 호카에 날개를 달아줄 구세주가 나타난다. 바로 미국의 아웃도어 기업 ‘데커스 아웃도어’다. 데커스 아웃도어는 당시 작은 트레일러닝화 전문 브랜드에 불과했던 호카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호카의 두 창업자에게 인수를 제안하는데 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이 앞서 말한 BRC다. 자신의 매장에서 호카의 초기 제품들을 팔며 성능에 크게 만족했던 BRC의 조니 할버스타트(Johnny Halberstadt) 공동 창업자는 당시 데커스의 CEO였던 앙헬 마르티네즈(Angel Martinez)와 안후(Anhu)라는 브랜드를 총괄하고 있던 짐 반 다인(Jim Van Dine)에게 호카를 소개하며 이 회사를 인수할 것을 제안한다. 이들은 모두 대학 때까지 장거리달리기 선수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특히 조니 할버스타트와 짐 반 다인은 과거 한 스포츠 브랜드에서 함께 일하기도 해 친밀한 사이였다. 프로페셔널 러너이자 기능성 운동화 유통업을 하는 전문가의 추천에 호카를 직접 신어본 앙헬 마르티네즈와 짐 반 다인은 바로 호카의 우수성을 알아봤고 2012년 가을 호카의 두 창업자에게 인수를 제안한다. 마침 회사의 성장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던 두 창업자는 데커스의 제안을 수락한다. 데커스가 호카를 인수하는 데 투자한 돈은 약 110만 달러. 현재 호카의 매출액이 14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아주 저렴하게 인수한 셈이다. 당시 호카 인수를 담당한 짐 반 다인은 호카 인수가 확정된 후 한 인터뷰에서 “5년 안에 이 사업을 1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확률이 95% 이상”이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데커스는 왜 호카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생각했을까. 일단 데커스는 ‘못생긴 신발’을 사모아 회사를 성장시킨 이른바 ‘못생긴 신발 전문 회사’다. 데커스가 보유한 대표적인 브랜드로 어그(UGG), 테바(Teva) 등이 있다. 이들 브랜드는 기존에 소비자들의 인식 속 예쁜 신발에 대한 이미지와는 다른 특이한 외형이지만 편안하고 기능성이 좋은 신발이라는 특징이 있다. (DBR Minibox Ⅰ ‘‘어글리 슈즈 전문 기업’ 데커스 아웃도어’ 참고.)

데커스 아웃도어의 앙헬 마르티네스와 짐 반 다인은 호카라는 언더독 브랜드가 테바나 어그처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가장 큰 이유는 기술력에 있었다. 호카를 신은 트레일러닝 선수들은 공통적으로 “구름을 나는 기분”이라고 착화감을 표현했다. 호카의 창업자들이 직접 개발해 제품에 장착한 두껍고 가벼운 쿠션이 관절을 보호하고 장거리달리기를 할 때 피로도를 줄이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실제 짐 반 다인은 호카를 처음 신어 봤을 때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는 장거리달리기 선수 출신이었지만 만성 무릎 부상으로 거의 7년을 달리는 것을 포기하고 살았다. 그런데 조니의 추천으로 호카를 신고 나서는 다시 일주일에 6일을 달릴 수 있게 됐다. 이것이 내가 사업가로서나 소비자로서 호카의 팬이 됐고, 호카를 인수하자고 앙헬을 설득한 이유다.”

두 번째는 파격적인 디자인에 있었다. 실제 호카는 당시 주류였던 미니멀리즘 디자인에 정면으로 반하는 맥시멀리즘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두꺼운 오버사이즈드 아웃솔, 다른 브랜드들은 잘 쓰지 않는 휘황찬란한 색깔, 로고 대신 크게 회사의 이름(HOKA)을 넣는 대담함까지, 호카의 신발들은 확실히 당시 트렌드와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시각적으로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 호카의 성공 이전 데커스는 이미 테바, 어그를 통해 처음엔 고객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던 제품이 시간이 지나면서 유니크한 패션 아이템으로 사랑받게 되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회사였다. 짐 반 다인은 “테바, 어그뿐만 아니라 크록스, 버켄스탁, 킨 등 폭발적 성장을 보인 브랜드는 거의 예외 없이 시선을 사로잡을 디자인을 보유하고 있다”며 “그런 관점에서 호카 역시 소비자들이 처음에는 못생겼다고 느낄 수 있지만 어느 순간 디자인만 보고도 호카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한 디자인이었다”고 말했다.


데커스가 호카 브랜드를 스케일업하는 방법

데커스 아웃도어의 두 장거리달리기 선수 출신 경영진의 확신대로 호카는 데커스에 인수된 후 큰 폭으로 성장한다. 그 결과 데커스 아웃도어 역시 호카의 인기 덕을 톡톡히 본다. 호카를 인수한 2012년과 비교해 약 10년간 호카의 매출은 471배로 뛰었고 데커스 매출에서 호카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7년 5.8%에서 최근에는 40%에 근접했다. 특히 2024년 1분기, 호카의 매출은 데커스의 주력 브랜드인 어그의 매출을 추월하기도 했다. 데커스 주가도 호카의 실적이 급상승하면서 최근 1년 사이 100% 이상 급등했다. 데커스의 선견지명이 미국의 러닝화 시장의 판도를 바꾼 셈이다. 그렇다면 데커스는 어떻게 호카라는 브랜드를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호카 플라이휠’에 있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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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oduct: 경쟁사를 압도하는 기술력

호카는 데커스에 인수된 후 데커스가 보유한 글로벌 유통망과 마케팅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데커스가 보유한 자금력과 테바, 어그 등을 미국 시장에서 성공시킨 노하우 등은 호카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호카가 빠르게 러닝화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호카만의 차별화된 기술력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호카는 출시 초기부터 트레일러닝을 위한 러닝화로 출발했기 때문에 일반 러닝화보다 더 안전하게 발을 잡아주고 울퉁불퉁한 표면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으면서 쿠션감이 좋아 관절을 보호해 줘야 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러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가볍고 가속력을 줄 수 있어야 했다. 이 조건들은 사실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 쿠션감이 좋으려면 밑창이 두꺼워야 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신발의 높이가 높아져 신발을 신었을 때 불안함을 느낄 수 있고 무게도 무거워진다. 또한 접지력이 좋으려면 밑창이 딱딱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관절 보호에 취약하다. 하지만 호카는 창업 초기부터 꾸준히 소재 및 기술개발을 통해 관련 특허들을 발명해가며 경쟁사 대비 차별화되는 기술들을 러닝화에 적용한다. 이 과정에서 호카 창업자들은 데커스에 인수된 이후에도 회사의 기술개발을 이끌며 쿠션드 미드솔(중창), 메타 로커 기술, 액티브 풋 프레임 기술, 아르마티스(RMAT) 기술 등의 기술 특허 획득에 힘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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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의 시그니처 기술 중 대표 격인 쿠션드 미드솔 기술과 메타 로커 기술은 호카 초기 제품부터 적용돼 발전을 거듭해온 호카의 아이덴티티 같은 기술이다. 특히 메타 로커 기술은 흔들의자의 원리를 활용해 신발 밑창을 부드러운 곡선 모양으로 만들어 발 굴림을 좋게 한 기술로 달리기를 할 때 발의 추진력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또한 액티브 풋 프레임은 호카를 신었을 때 발을 안정적으로 잡아줘 두꺼운 밑창 때문에 높아진 신발 높이로 인한 불안함을 억제한다. 한편 호카의 러닝화는 두꺼운 쿠션으로 인해 크기가 일반 러닝화 대비 크지만 무게는 오히려 비슷하거나 가볍다. 이는 호카가 특허를 받은 아르마티스 기술 덕분이다. 아르마티스 기술은 호카의 소재 기술로 기존 EVA보다 뛰어난 반발력과 내구성을 가지면서도 무게를 최소화하고 강력한 지지력을 제공하는 소재를 활용해 러너들의 발과 관절을 보호하면서도 운동성을 높여준다. 호카는 또 2018년에는 탄소 섬유(Carbon fiber) 플레이트 기술이 적용된 러닝화를 경쟁사보다 빠르게 시장에 선보이며 러닝화 시장의 기술 트렌드를 선도해 왔다.

이 같은 차별화된 기술력은 호카의 소비자들에게 ‘구름 위를 달리는 경험’을 선사한다는 평을 받았다.

2) CX: 고객을 ‘무버’로 정하고 무버에게 행복을 주는 데 집중

그렇다고 호카가 엘리트 스포츠 선수에게만 특화된 브랜드는 아니다. 호카는 데커스 아웃도어의 일원이 된 이후 외연 확장을 고민하면서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나선다. 2014년을 기점으로 호카는 포트폴리오에 기존 트레일러닝 외에 로드 러닝과 하이킹, 트랙 러닝, 라이프스타일 제품 등을 추가하며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한 제품을 다수 출시한다. 대표적으로 호카가 2014년 출시한 클리프턴 시리즈의 경우 기존 트레일러닝용으로 개발된 제품들보다 쿠션의 높이나 신발의 크기가 살짝 작은 로드 러닝화다. 짐 반 다인 전 호카 CEO는 이 같은 포트폴리오 다양화에 대해 “클리프턴과 같은 호카의 로드 러닝화 역시 기존 운동화 사이즈보다 크기가 크지만 기존 운동화 사이즈에 조금 더 가까워졌기 때문에 맥시멀리스트 러닝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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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톤 출시 이후 호카는 다양한 종류의 러너와 환경에 맞춰 여러 라인업을 선보였다. 트레일러닝을 위한 ‘스피드고트(Speedgoat)’, 일상적인 운동용 ‘본디(Bondi)’, 트랙 달리기용 ‘스피드 EVO R 레이싱 스파이크’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트레일러닝 시 내리막길에서 달릴 때 효율성과 안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뒤꿈치 뒤쪽에서 몇 인치나 연장된, 만화처럼 큰 미드솔이 있는 거대한 텐나인 모델은 호카의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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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호카는 러닝화 브랜드로는 최초로 미국족부의학회(APMA)와 협력해 틈새시장을 공략하기도 했다. 장거리달리기 선수 10명 중 1명 정도가 족부근막염을 앓는데 호카는 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APMA로부터 다수 인증을 받은 제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실제 호카 판매 사이트에는 다양한 호카의 제품들이 올라와 있는데 카테고리 중 ‘Orthopedic(정형외과)’이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분류돼 있다.

이처럼 호카는 초기 울트라 마라토너나 트레일러너 등 특정 타깃을 대상으로 브랜드를 성장시켰지만 데커스에 인수된 이후 타깃 고객을 더 넓은 범위까지 확대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호카는 자신들의 고객을 ‘러너’가 아닌 ‘무버’로 정의하고 이들에게 ‘joyful experience’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 같은 호카의 전략은 제품 카테고리를 추가하고 브랜드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기 잠식(cannibalization)이나 브랜드 정체성 훼손과 같은 다양한 문제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호카는 여기에 더해 고객의 몰입형 소매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옴니채널 유통 채널 구축에 공을 들였다. 특히 오프라인 직영 매장을 판매를 위한 공간이 아닌 브랜드와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는 데 집중한다. 이를 위해 호카가 직접 운영하는 매장에 3D 스캐너를 설치해 고객에게 정확한 발 사이즈와 발 모양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하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러닝화를 추천해 준다. 또한 호카는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호카 런 클럽’이라는 러닝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러너들을 대상으로 교육 등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호카는 회사의 제품을 러너가 아닌 다른 커뮤니티로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협업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웃도어 보이스(OV), 엔지니어드 가먼츠, 코토팍시 등과의 협업이 있다. 데이브 파워 데커스 CEO는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호카가 하드코어 러너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확장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3) Brand: 커뮤니티를 통한 브랜드 정체성 강화

데커스 아웃도어는 호카를 인수한 이후 호카의 외형 확장을 위해 유통망 정비,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리하게 호카의 인지도를 높이거나 판매를 늘리기 위해 스포츠 스타나 셀러브리티를 활용한 마케팅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데커스는 초기 호카의 창업자들이 했던 방식대로 진짜 달리기를 좋아하는 ‘러닝 덕후’들 사이에서 브랜드가 소구되도록 하기 위해 힘썼다. 또한 슈퍼스타 대신 인간적인 스토리가 있는 러닝계 인플루언서를 활용해 브랜드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실제 호카가 최초로 후원한 러닝 인플루언서는 미국의 울트라 마라톤6 선수 칼 멜처다. 호카가 데커스에 인수되기 전 호카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니콜라 메흐무는 미국의 울트라 마라톤 선수 칼 멜처를 만나 호카의 첫 번째 제품을 보여주며 착용해 볼 것을 권했다. 당시 칼 멜처는 이미 스포츠용품을 후원하는 스폰서가 있었지만 기존 제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에 흥미를 느껴 훈련 때 호카의 러닝화를 착용해 보게 됐고 3개월 정도 호카를 신고 훈련을 한 후 기존 스폰서와의 계약을 중단하고 호카와 스폰서십 계약을 맺게 된다. 이후 칼 멜처는 호카 러닝화를 신고 다양한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낸다. 대표적으로 그는 2011년 4월 유타에서 열린 26.2마일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우승하고 3주 후 버지니아에서 열린 100마일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만 해도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라 맨발에 가까운 가볍고 밑창이 얇은 운동화를 신은 선수들이 절대다수였는데 이들 속에서 칼 멜처가 홀로 호카의 맥시멀리스트 러닝화를 신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트레일러닝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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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는 데커스에 인수된 이후에는 더 과감하게 엘리트 스포츠 선수와 이벤트를 후원하며 러너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남자 육상 1500m 은메달을 차지한 레오 만자노를 후원했고 트레일러닝 대회의 대표 격인 UTMB의 공식 후원사가 됐다. 또한 2018년에는 캐나다 마라토너 캠 레빈스 선수가 마라톤 데뷔 무대에서 호카 제품을 신고 캐나다 국내 기록을 깼고 스콧 파블 선수는 2019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 9분 9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 다른 마라토너 짐 위슬리 선수는 2019년 호카 제품을 신고 50마일(80㎞) 세계 신기록 4시간 50분 8초의 기록을 세웠다. 2020년에는 올림픽 선발 마라톤 대회에서 미국의 알리핀 툴리아무크 선수가 호카 제품을 신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렇게 호카가 후원하는 선수들이 마라톤, 울트라 마라톤, 트레일러닝 대회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자연스럽게 ‘호카=우승하는 선수들이 신는 신발’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그런가 하면 호카는 자체적으로 ‘팀 호카(Team HOKA)’라는 트레일러닝팀을 운영하고 ‘호카 러닝 클럽’이라는 러닝 커뮤니티를 통해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러너 커뮤니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또한 이들 커뮤니티를 통해 신제품이나 신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러너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제품을 개발했다. 대표적으로 최근 출시된 신제품 ‘씨엘로 X1’의 경우 호카 소속 선수단의 인사이트와 피드백이 제품 개발에 적용됐다.

4) Price: 유니크함으로 브랜드를 구축하고 희소성으로 브랜드를 강화한다

호카의 주요 고객은 미국의 18~34세 소비자다. 이들은 흔히 ‘잘파세대(Z 및 알파 세대)’로 불린다. 호카가 잘파세대로부터 지지를 받는 이유는 호카가 디자인적으로 특이(unique)하기 때문이다. 2009년 출시 이후 줄곧 못생겼다고 조롱받았던 디자인도 잘파세대 눈에는 나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예쁜 디자인으로 다가왔다. 잘파세대에게 많은 사람이 신는 나이키나 아디다스는 오히려 지루하고 못생겨 보일 수도 있단 뜻이다. 이에 반해 나만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호카 러닝화는 이들 눈엔 ‘예쁜 운동화’가 됐다.

호카가 잘파세대에게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로 남다른 판매 전략도 한몫했다. 특히 호카는 충분히 인지도를 쌓기 전까지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신발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신발의 공급을 충분히 늘리면 당장 매출을 늘릴 수 있지만 브랜드 이미지 등 장기적인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데커스의 현 CEO인 데이브 파워는 한 인터뷰에서 “많은 브랜드가 스케일 업 과정에서 숫자에 집착을 하다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라며 “우리는 분명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브랜드의 장기적인 건전성에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결국 숫자보다는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희소성 전략은 오히려 호카를 ‘갖고 싶은 브랜드’로 만들었다. 일례로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호카 운동화를 신고 찍은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자랑하기도 했고, 카일리 제너, 리스 위더스푼 등 셀러브리티들이 호카를 신고 운동하는 모습을 자신의 SNS에 게재하기도 했다.

또한 호카는 초기부터 고가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타 브랜드 대비 기술개발 등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 탓도 있지만 신생 브랜드가 초기부터 고가 전략을 활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호카는 제품 가격의 마지노선을 125달러로 정하고 저가 정책이나 할인 정책을 쓰지 않았다. 특히 미국 진출 초반에는 미국의 스포츠 의류 및 신발 유통업체 풋로커(Foot locker) 등이 입점을 제안했으나 이를 거절하기도 했다. 풋로커 같은 대형 매장을 통해 운동화가 대량 공급되기 시작하면 가격을 무리하게 낮춰야 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호카의 전략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호카 경영진은 마치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길게 보고 사업을 했다”며 “모든 소비자를 사로잡으려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호카는 아웃도어 브랜드 답게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회사의 경영 전략 곳곳에 반영하고 있다. 일례로 호카의 아이덴티티와 같은 두꺼운 미드솔 제작에는 천연 사탕수수가 30% 함유된 소재를 사용된다. 이는 일반 고무 대비 탄소배출량이 적은 소재다. 또한 아웃솔은 접지력과 그립감과 쿠셔닝을 향상시킨 비브람(Vibram)의 N-Oil 소재로 제작했다. N-Oil은 90%의 무휘발유 성분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고무창으로 컬러 가공의 경우 100% 천연 식물에서 색소를 추출해서 생산한 친환경 아웃솔이다. 또 제품의 주요 원부자재인 메시 원단, 끈 등의 소재는 재활용, 재생 또는 천연 소재 등의 요소를 선택해 제조하고 있다. 모든 제품에 사용되는 면섬유는 100% 재활용 면섬유 또는 지속가능한 작물 재배를 실천하는 농장에서 공급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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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호카는 흑인, 여성, 장애인 등을 회사의 마케팅 캠페인의 전면에 등장시키고 이들을 적극 후원하는 방식으로 다양성을 실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호카는 케냐 태생의 미국 국적 여성 마라토너인 알리핀 체프커커 툴리아묵, 61세 트라이애슬론 선수 줄리 모스, 울트라 마라톤 선수 라토야 숀테이 스넬 등의 여성 러너들을 홍보대사로 활용했다. 이 중 알리핀 체프커커 툴리아묵은 케냐 출신 미국 국적 마라토너로 호카의 후원을 받아 2020년 미국 올림픽 트라이얼 마라톤 챔피언, 10회 미국 내셔널 챔피언을 지낸 바 있다. 또한 줄리 모스는 6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트라이애슬론 선수로 활동 중인 여성이며, 울트라 마라톤 선수이자 호카 글로벌 홍보대사인 라토야 숀테이 스넬은 다른 러너들보다 뚱뚱해 ‘러닝 팻 셰프’로 불린다.


어글리 슈즈 열풍과 고프코어룩의 인기, 그리고 러닝의 대중화

호카가 초창기 풀뿌리 성장 전략을 통해 러닝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인플루언서 마케팅과 UTMB 등 트레일러닝 이벤트 후원 등에 의해 성장했다면 2020년을 전후해 이뤄진 폭발적 성장에는 전 세계적으로 분 ‘어글리 슈즈 열풍’과 ‘러닝’의 인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 2017년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와 아디다스의 ‘이지(Yeezy) 시리즈’ 등이 인기를 끌면서 많은 신발 브랜드가 두꺼운 밑창과 투박한 디자인의 신발을 출시했다. 그리고 이 유행은 고스란히 러닝화 및 등산화 시장으로 넘어왔다.

어글리 슈즈 열풍은 태생부터 ‘못생긴 신발’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호카의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실제 호카의 매출액 추이를 보면 2018년 이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다. 그래서 호카가 본격적으로 러닝화 업계 주류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해를 2018년으로 보기도 한다. 블룸버그가 “호카의 흥행은 2018년 파리, 도쿄 패션 리더들의 사랑을 받은 발렌시아가의 트리플 S 스니커즈 열풍과 맞물려 있다”고 평한 것이 그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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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18년은 한국의 호카 팬들에게도 상징적인 해다. 국내 아웃도어 전문 수입업체 조이웍스가 호카와 계약을 맺고 한국에 호카를 선보인 해이기 때문이다. 초기 조이웍스는 호카의 하이킹화 라인에 주목해 호카를 한국에 들여왔다. 그러나 2018년을 전후해 한국에서도 어글리 슈즈가 인기를 얻었고 코로나19로 인해 등산과 러닝 등 야외에서 혼자 하는 운동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호카도 성장세를 이어간다. (DBR minibox Ⅱ “러닝 커뮤니티 운영하며 고객과의 접점 넓혀” 참고.)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이후 나타난 ‘고프코어룩7 ’의 인기와 ‘러닝 열풍’으로 인해 국내 시장에서 호카의 인지도는 급성장한다. 고프코어룩의 인기는 2022년을 전후해 나타났는데 특히 잘파세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연과 도시를 넘나들며 크로스오버 형태로 입을 수 있는 아웃도어 스타일링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 덕분에 두껍고 큰 맥시멀리스트 러닝화를 만드는 호카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러닝 열풍도 호카의 인기를 견인 중이다. 국내의 경우 러닝 크루에 가입해 뛰는 사람이 늘고 SNS에 인증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인스타그램에 ‘런스타그램’이라는 태그를 검색하면 게시글만 120만 개가 넘는다. 또한 매년 3월에 열리는 국내 대표 마라톤 대회인 ‘서울 마라톤’의 경우 지난 6월 2025년 대회 사전 참가 접수를 시작했는데 시작과 함께 4만 명이 신청을 하면서 접수 시작 5분여 만에 마감되기도 했다.

유독 한국만 러닝에 푹 빠진 걸까. 해외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2025년 영국 런던 마라톤 대회 참가 신청자 수는 90만 명을 기록했다. 올해 4월 열린 대회 참가 신청자 수(58만 명) 대비 약 2배 늘어난 숫자다.


본질에 집중한 Domain Specific
브랜드의 성공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능성 신발 브랜드.’

월스트리트는 최근 호카를 이같이 평가하고 있다. 성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특정 목적에 특화된 ‘도메인 특화 브랜드’의 성공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호카는 창업 초기부터 시장에서 틈새를 파악해 이 틈새 문제를 해결하고, 킬러 제품을 출시하고, 브랜드를 확장하는 데도 불구하고 두드러진 정체성을 유지하는 능력을 선보였다. 특히 당시 운동화 시장 주류 브랜드들이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운동화에 집중할 때 호카는 기능성이라는 본질에 집중했다. 이는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주류 운동화 브랜드와는 차별화되는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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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2010년대 후반까지 세계 운동화 업계의 양대 산맥인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운동화에 초점을 맞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아디다스는 카니예 웨스트와 협업한 이지(Yeezy) 시리즈 외에도 슈퍼스타, 가젤 등을 시장에 성공적으로 선보이며 나이키를 추격했고 나이키는 조던, 덩크, 에어포스 등으로 반격하며 시장 1위 자리를 유지해 나갔다. 2010년대 두 업체는 신발의 기능을 중시하는 퍼포먼스 상품보다는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나 라이프스타일 등 패션 상품에 집중하는 선택을 한다. 일례로 나이키의 실적을 견인한 에어 조던 시리즈는 전설적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이름을 따긴 했지만 농구화라기보다는 농구 코트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 스타일화에 가까웠다. 물론 당시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이나 여러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를 통해 다채로운 컬러감의 제품들을 선보이며 새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오픈런, 품절, 리셀 사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다. 나이키가 조던 등 라이프스타일 패션화로 인기를 얻으며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했던 기능성 위주의 운동용 신발, 즉 퍼포먼스 카테고리 제품에서 새로운 경쟁자들이 등장한 것. 그리고 호카는 이 같은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브랜드다.

그렇다면 왜 운동화 업계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일까. 이를 ‘평균 실종’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 용어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 등이 집필한 『트렌드코리아 2022』에 등장하는 용어로 저자들은 이 용어를 “소비 시장이 프리미엄과 가성비로 나뉘면서 중간 가격대나 평균 가격 제품은 발을 붙이지 못하는 현상” 정도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뜻을 조금 더 살펴보면 이는 그저 그런 누구나 좋아할 만한 보편적인 제품의 몰락을 의미한다. 김난도 교수는 “이런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니즈를 더욱 정밀하게 파고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가장 평균적인 대중이 좋아할 만한 상품이 아닌 핵심 타깃을 미세하게 구분하고 접근해야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트렌드는 패션 업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명확한 콘셉트, 희소성으로 소유 욕구를 자극하거나 영민하게 확실한 수요를 겨냥한 프리미엄 전략으로 고객들을 사로잡는 브랜드들이 좋은 예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임에도 MZ세대 주류 브랜드로 떠오른 마르디 메르크디, 마뗑킴 등이 대표적 사례다.

호카 역시 경쟁사들이 일반적인 고객이 좋아할 패셔너블한 미니멀리즘 스니커즈에 집중할 때 다른 선택을 했다. 소수지만 러닝을 좋아한다는 강력한 공통점이 있는 트레일러닝 선수와 울트라 마라토너 등 러닝 덕후들을 타깃으로 이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개발하고 팬덤과 바이럴을 활용해 확장을 하는 전략으로 주류 브랜드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본사는 호카가 패션성에 치우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베스트셀링 하이킹화인 ‘토르’ 제품을 글로벌 전략 차원에서 단종시키기도 했다. 토르가 호카의 의도와 다르게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게 되면서 호카가 추구하는 정체성과 다른 방향으로 고객들에게 소구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호카가 회사의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DBR mini box II : Interview: 호카 공식 수입사 조이웍스 김만희 본부장

“러닝 커뮤니티 운영하며 고객과의 접점 넓혀”


국내 시장에서 호카는 조이웍스라는 공식 수입업체에 의해 판매되고 있다. 조이웍스는 아웃도어 브랜드 전문 수입업체로 호카 외에도 100만 원을 호가하는 프랑스 침낭 브랜드 ‘발랑드레’, 내한 온도 영하 20도까지 견딜 수 있는 노르웨이 전문 등산복 ‘아클리마’ 등 캠핑 마니아들에게 탁월한 기능성으로 인정받는 제품들을 전문적으로 수입한다. 조이웍스는 2018년 호카 본사로부터 한국 시장 판매권을 따냈는데 이 과정에서 호카 본사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조이웍스가 아웃도어 브랜드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이웍스는 호카를 국내에 들여올 당시, 초반에는 하이킹화 위주로 도매 중심의 판매를 진행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에서 러닝 열풍이 불자 2022년부터 러닝화, 트레킹화, 워킹화 등 전 라인을 갖추고 단독 매장을 개설해 직접 소매 유통에 나서고 있다. 조이웍스는 2021년 12월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8개의 리테일 매장을 열었다. 조이웍스는 이 매장을 통해 러너들에게 체험 및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매장에서 고객들은 제품 시착 후 무동력 트레드밀 위에서 러닝 테스트를 해볼 수 있고 3D 스캐너로 발 모양을 분석해 볼 수 있다. 또한 러닝 아카데미와 피트니스 수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해 러너들의 커뮤니티 허브로 활용한다. 김만희 조이웍스 호카 마케팅본부 본부장(이사)을 통해 호카의 한국 시장 사업 확장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김만희_프로필(2023)

김만희 본부장은 고려대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졸업했으며 삼성물산 패션부문, 닥터마틴, 컬럼비아스포츠웨어 등을 거쳐 현재 프리미엄 스포츠 브랜드 ‘호카’의 마케팅 본부장(이사)으로 재직 중이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외래교수로도 활동했다.

한국 시장에서 호카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는 수치가 있나?

조이웍스가 수입업체이기 때문에 한국 시장의 매출 등을 공개하는 것은 어렵지만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서 호카의 검색어 트래픽 추이만 봐도 한국에서 호카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올해 1월 1일을 기준으로만 놓고 봐도 호카의 검색량이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업체들에 비해 높다. 특히 연초에는 비슷한 수준이었다가 3월 이후에는 격차를 벌리며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호카의 인지도 역시 자체 조사 결과 25% 수준까지 올라왔다. 국내에서 호카의 인지도가 꾸준히 높아지면서 판매량 역시 자연스럽게 늘고 있다.


인지도가 25%면 그렇게 높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와 비교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러닝화 카테고리에서 보면 신생 업체로서는 낮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회사 차원에서 국내 시장에서 호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과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호카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자본을 투입해 스타 운동선수나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쓰거나 TV에 상업 광고를 하는 쉬운 길을 가지 않는다. 오히려 브랜드의 본질에 더욱 집중해서 러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엘리트 러너들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궁금하다.

호카는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수입사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호카는 ‘호카 런 클럽(HRC)’이라는 러닝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팀 호카’라는 트레일러닝팀을 후원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트레일러닝 대회인 UTMB를 후원한다. 또한 소비자와의 접점을 높이기 위해 체험형 매장을 운영해 러너들로 하여금 호카의 제품을 체험해 보고 이를 소셜미디어에 올릴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한국에서 ‘씨엘로 X1’ 론칭 행사를 열었다. 이때 국내 러닝 커뮤니티 10여 곳을 초청해서 씨엘로를 직접 체험해 보고 행사장에 트레드밀을 설치해 기록 경쟁을 하게 해 상품을 주는 등의 행사를 개최했다. 또한 5월에는 성수에서 ‘호카 플라이랩(Fly lab)’ 팝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특히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라는 이벤트를 5년째 진행 중이다. 올해는 강원도 정선에 있는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렸는데 2200여 명의 트레일러너가 행사에 참여했다.


호카의 인기 요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마케팅 총괄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호카가 상당히 다각도로 소비자를 포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호카 인기의 가장 큰 이유는 기술과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호카는 초기부터 ‘러너(Runner)’에 집중했다. 다른 브랜드들이 운동화를 필요로 하는 다양한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면 호카는 처음부터 오직 러너를 위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기술개발에 투자했다. 호카의 신발에는 공통적으로 큰 쿠션이 들어가 있다. 쿠션을 크게 만들려면 상당한 기술력이 요구된다. 쿠션의 높이가 높아지면 사람들이 신발을 신었을 때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카는 처음부터 트레일러너들을 위한 신발을 만들었기에 쿠션이 중요했다. 그 때문에 처음부터 쿠션에 집중했고 높아진 쿠션이 야기한 불안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액티브 풋 프레임’이라는 디자인을 개발해 모든 신발에 적용했다. 실제 호카의 신발을 신으면 높이가 있지만 신발이 발을 잘 잡아주는 느낌이 나서 오히려 더 안정감을 느낀다. 또 호카는 러닝화 개발을 위해 호카의 핵심 고객인 엘리트 러너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품 개발에 반영한다. 또 한 가지는 진정성인데 호카는 단순히 제품을 많이 팔아 해당 카테고리 1위를 하는 것보다는 진심으로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Joyful experience’를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 경험을 관리한다. 한 가지 예로 호카는 스포츠계 슈퍼스타를 후원하지 않는다. 나이키를 예로 들면 나이키는 신화를 팔고, 영웅을 만들고, 팀의 승리를 강조한다. 호카는 반대로 즐거움을 판다. 호카가 후원하는 엘리트 선수들은 슈퍼스타나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평범하지만 달리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팀 호카 코리아에 5명의 트레일러닝 선수가 소속돼 있다. 이 중 박소영 선수는 삼성전자 연구원이다. 그런데 UTMB 대회에 나가면 항상 상위권에 입상한다. 그런가 하면 고민철 선수는 제주도에서 감귤 농장을 운영하면서 트레일러너로 활동 중이다. 호카가 어떤 선수들을 후원하는지를 보면 호카가 추구하는 진정성의 의미가 보인다고 생각한다. 호카는 그들의 타깃 고객인 ‘무버’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지원한다. 특히 자신의 한계를 뚫고 회사의 모토인 ‘Joyful experiecne’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선수를 후원한다.

이웍스는 언제, 어떻게 호카라는 브랜드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수입을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계기가 궁금하다.

조이웍스의 조성환 대표는 말 그대로 하이킹 덕후다. 그런 조 대표의 눈에 호카는 상당히 흥미로운 브랜드였다. 보통 하이킹에 특화된 신발은 접지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쿠션을 딱딱하게 만든다. 그래서 등산화를 신으면 발이 아프다. 하지만 호카는 쿠션이 푹신하고 발이 편한데도 접지력이 좋아서 하이킹 신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던 브랜드였고 호카의 하이킹화를 신어본 조 대표가 호카를 한국에 들여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안다. 호카 외에도 조이웍스는 다양한 아웃도어 브랜드를 취급하는데 공통적으로 아웃도어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브랜드를 취급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향후 계획은?

호카가 지난 10여 년간 눈부신 성장세를 보인 것은 맞지만 브랜드의 성장 과정을 보면 캐즘에 직면해 있는 상태라는 것이 호카 본사의 생각이다. 호카가 2022년부터 이름을 ‘호카 오네오네’에서 ‘호카’로 바꾸고 캐치프레이즈도 ‘time to fly’에서 ‘Fly human fly’로 바꾸며 글로벌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도 캐즘을 뛰어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기존 브랜드들이 하는 방식으로 슈퍼스타나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동원해 상업 광고를 하는 방식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호카의 방향성은 러너들을 핵심으로 하는 호카의 DNA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쪽에 가깝다. 호카의 본질이나 DNA가 더 널리 알려지고 탄탄해지면 자연스럽게 고객이 확장될 것이라는 게 본사의 생각이다. 최근 디지털 마케팅이 중심이 되면서 소비자들이 직접 소셜미디어 등에 올리는 콘텐츠에 주목하는 브랜드들이 대부분 성공한다. 호카는 직접 러닝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러너들에게 즐거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이들이 체험을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캐즘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에서 7월 1일부터 서울 및 수도권에 ‘호카 로드’를 선보인다. 한강 주변, 광화문 일대 등 서울 및 수도권의 상징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러닝 코스를 만들고 이 러닝 코스를 달리고 러닝 앱을 통해 자신의 SNS에 인증을 하는 ‘호카 플라이 런 인 서울’ 러닝 챌린지를 통해 호카의 정체성을 더 많은 고객에게 알리는 것이 이번 행사의 목표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유행보다 기능… 마라톤 뛰듯 ‘전략적 느린 성장’ 택해


이정민 트렌드랩506 대표 mindy@trendlab506.com


러닝화 시장은 오랫동안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주도해왔다. 2022년 기준, 두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22.1%와 10.9%로 최근 소폭으로나마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철옹성 같았던 두 브랜드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건 브랜드는 오랜 기술력을 바탕으로 마라토너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식스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의 사랑으로 날개를 달았던 뉴발란스도 아니다. 비교적 신생 러닝 브랜드인 호카(Hoka)다. 미국의 스포츠 리테일러 딕스스포팅굿즈(Dick’s Sporting Goods)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분기 대비 나이키의 판매 점유율은 39%에서 32%로 하락한 반면 호카는 8%에서 13%로 성장했다.

연 매출액 513억 달러의 거대 글로벌 기업인 나이키에 비해 이제 론칭한 지 고작 15년이 된 호카의 도전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될 수 있다. 호카의 브랜드 타임라인을 따라가며 성공을 위해 이 브랜드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살펴봤다.


1. 시장의 혁신 가치를 보유한 전문가가 창업

호카의 성공은 이미 출발부터 달랐다. 호카를 공동 창업한 장 뤽 디아르(Jean-Luc Diard)는 글로벌 스포츠 기업 살로몬에서 인턴으로 출발해 CEO까지 지낸 글로벌 스포츠 산업의 구루다. 그는 호카를 창업하기 전 살로몬에서부터 이미 수많은 특허를 보유한 전문가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살로몬의 많은 스키 용품은 그의 손을 거쳐 개발됐다. 공동 창업자인 니콜라 메흐므(Nicolas Mermoud)는 트레일러닝을 직접 뛰는 선수일 뿐만 아니라 로시뇰에서 마케팅 부사장으로 일한 전문가다. 이들은 창업을 준비하면서 트레일러너들을 대상으로 한 니치마켓을 타깃했다. 최근 제조 기술이 오픈되면서 마케팅 역량만 갖고 론칭하는 브랜드와는 매우 다른 출발이다. 호카가 다른 어떤 브랜드보다 원천 기술의 확보에 집중하고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창업자들이 가진, 혁신 기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초기의 이런 R&D에 대한 투자는 결국 ‘어글리 슈즈’의 범람 속에서 호카가 오히려 독보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경쟁력이 됐다고 할 수 있다.

호카는 창업자들의 이러한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해 M&A 이후 그들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었다. 데커스×랩(Deckers×Lab)은 호카의 신제품 아이디어의 원천이자 데커스가 새로운 사업 기회를 탐색하는 연구실의 역할을 하고 있다. 디아르는 현재 데커스의 R&D 조직인 데커스×랩을 운영하면서 지속적으로 혁신 제품을 개발하고 테스트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2. 대세 유행을 역행하는 선택

디아르는 살로몬에서 근무하던 마지막 해에 참가했던 아웃도어 리테일러(Outdoor Retailer)에서 그 당시 러닝 시장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었던 미니멀한 러닝 슈즈와는 완전 상반된 디자인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론칭 당시 스포츠 슈즈 시장의 대세는 거의 신발을 신지 않은 것과 같은 날렵한 디자인의 제품이었다. 그러나 호카는 시장과 정반대로 가기로 결심한다. 오히려 산악자전거처럼 쿠션이 좋고 뭉툭한 디자인의 러닝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이 뭉툭하고 못생긴 디자인과 더불어 브랜드 이름 호카를 과감하게 박아 넣은 디자인은 사실 세련된 디자인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호카가 론칭한 2009년, 스니커즈의 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경쟁적으로 협업 라인을 출시했다. 제레미 스콧, 카니예 웨스트, 슈프림과 같은 유명 컬래버레이션 제품뿐만 아니라 구찌, 루이비통과 같은 럭셔리 브랜드들도 스니커즈 시장에 진입한 해이기도 하다. 좀 더 트렌디한 디자인을 생산하기 위해 경쟁을 하던 당시의 시장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호카는 오히려 더 전문성을 갖춘 브랜드로 포지셔닝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전문성이 차별화의 출발점이 됐다.


3. 시장과 역량에 대한 냉정한 판단

호카는 2009년 시제품을 완성하고 첫 번째 참여한 전시회에서 샘플로 만들어 놓은 제품 전량을 수주받았다. 제품 출시 첫해, 그리고 첫 번째 참여한 전시회에서 수주를 받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메흐므와 디아르가 보유하고 있던 네트워크만 가지고도 충분히 브랜드의 성장을 가져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2009년 론칭 후 2012년 매각되기까지 제품 개발과 생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호카는 2012년 미국의 신발 전문 기업인 데커스에 단돈 11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3억 원)이라는 헐값에 매각됐다. 이 M&A 후 호카의 매출액은 3년 만에 1억 달러를 넘어섰고, 2023년에는 매출이 14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누가 봐도 낮은 금액이다. 그런데 스포츠 신발 산업의 전문가인 두 창업자의 생각은 달랐다. 신발 산업이 탄탄한 자본력과 유통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카는 매각 후 데커스가 이미 어그(UGG)와 테바(TEVA)를 통해 갖춰 놓은 네트워크를 타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데커스의 지원하에 디아르는 마음껏 신제품을 테스트 생산하면서 시장의 혁신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M&A 계약에 숨겨진 조건들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창업자들이 당시의 이익을 포기하고 빠르게 데커스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성장을 맛봤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2013년 호카가 데커스에 인수되지 않았다면 호카가 지금과 같은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4. 전략적 느린 성장과 강력한 브랜딩

호카는 론칭 초기부터 러닝 덕후들이나 알 법한 엘리트 선수들과 러닝 이벤트만을 집중 후원했다. 물론 나이키나 아디다스와 같이 전 지구인이 모두 아는 스타 선수를 후원할 만한 자원도 없었지만 마라톤을 뛰고 매일 아침에 러닝을 하는 덕후들이나 알 법한 레오 만자노(2012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55세의 나이로 보스턴 마라톤을 뛴 리치 멜델로위츠와 같은 시장의 이슈가 있는 선수들을 후원하면서 러너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다. 또한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뉴욕 등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는 러닝 클럽의 후원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기능성을 원하는 러너’들의 신발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만들어 간다. 호카는 대중 시장을 목표로 하기보다 니치 시장에서 탄탄하게 브랜드를 다져가면서 아직까지 다른 브랜드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새로운 러닝 고객과의 접점을 구축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반면 나이키는 팬데믹 기간 중 그간 강조했던 러닝 시장에 대한 투자 대신 한정판 스니커즈를 판매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 결과 나이키는 러닝 시장의 성장 기회를 놓쳐 최근 실적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호카는 데커스에 인수된 후 더 빠른 성장을 가져갈 수 있는 유통망 확대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선택적으로 유통망을 확장하는 정책을 펼쳤다. 풋로커(Footlocker)와 같은 신발 유통업체에서의 입점 제안을 뿌리치고 노드스트롬과 같이 가격을 지킬 수 있는 유통망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서 입점했다. 온라인 세일즈에 집중하면서 소비자들의 반응을 직접 체크하기 위해 팝업스토어를 뉴욕, LA, 런던과 같은 거점 지역에서 오픈하며 고객 접점에서의 데이터를 수집한 후에 유통망을 확대하기도 했다. 호카가 초기 느린 성장을 추구한 이유는 제품의 판매 가격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고 브랜드의 희소성을 가져가 시장 내에서 신선함을 꾸준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을 창출한 호카

호카는 레드오션에 뛰어들었고 오히려 니치시장을 공략한 결과, 큰 브랜드는 할 수 없는 작은 브랜드만의 전략을 수행해 블루오션을 창출했다. 이를 ERRC 프레임워크를 통해 설명해보자.

① (Reduce) 우선 자잘한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닌 시장의 큰 트렌드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고 집중했다. 패션성을 바탕으로 선택하는 스니커즈가 아닌 기능성에 중점을 둔 러닝화 시장을 공략했다. 그때그때의 유행에 따라 디자인을 변경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출시하는 기존의 슈즈 시장 문법이 아니라 오히려 유행 요소는 전폭적으로 줄였다.

② (Create) 대신 과감하게 러닝 시장에서의 세분화를 추구했다. 러닝용 신발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하나로 존재했던 시장을 로드와 트레일로 나누고 각각 원하는 기능(쿠션, 가벼움, 반응성 등)을 신는 사람의 러닝 수준, 달리는 장소, 원하는 훈련 강도 등에 맞춰 신을 수 있도록 세분화했다.

③ (Eliminate) 호카는 ‘러닝’이라는 상황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고객의 러닝 상황에 직접적으로 관계 맺기가 어려운 유명 슈퍼스타 마케팅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보통 유명인을 통해서 브랜드 인지도를 빠르게 높일 수 있어 무리해서라도 유명 인사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활동을 한다. 물론 호카도 2018년 이후에는 귀네스 팰트로, 리스 위더스푼, 캐머런 디아즈 등 많은 유명 인사가 신었고, 일반 대중들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지만 유명 인사들이 호카를 선택한 것은 정말 뛰는 데 진심인 사람들이 당시 호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④ (Raise) 호카는 다양한 사람이 러닝에 주목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러닝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관리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유명 셀러브리티와 컬래버레이션에 집중하는 사이 지역 커뮤니티에 침투해 1대1로 브랜드를 소개하는 활동을 이어가면서 조금씩 브랜드를 키워갔다. 특히 호카 신발의 차별점이 확실한 기능성에 있었던 만큼 그 기능을 알아보고 인정해 줄 지지자 그룹을 우선적으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호카의 선택이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호카는 전 세계에 걸쳐 구축된 제품 생산 개발 인프라와 압도적 마케팅력을 갖춘 거인과 싸워 의미 있는 결과를 내고 있다. 거대 브랜드가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시장에서 시장에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뾰족한 타기팅을 기반으로 그들의 숨겨진 욕망을 잡아냈기 때문이다. 절대 강자가 독주하는 시장에 작은 브랜드가 균열을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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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99년 국내 최초 온라인 트렌드 정보 사이트 firstviewkorea.com을 운영하면서 패션, 뷰티 등 소비재 분야의 트렌드 예측 서비스를 제공했다. 소비자 라이프스타일과 사회 문화 현상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기업들의 미래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한섬, 아모레퍼시픽, 롯데백화점, SPC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컨설팅을 진행하는 트렌드랩506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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