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olumn
“그래도 아직, 우리는 괜찮지 않을까?”
3년 전 여름, 방송사에서 함께 일하던 예능 PD와 나눈 대화였다. 당시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연일 쏟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예능을 비롯한 콘텐츠 연출 분야만큼은 마지막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거라 믿을 수 있었던, 어쩌면 마지막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AI가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제작 전 과정을 대신할 수 있으리란 예측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다. 20시간 분량의 촬영본을 90분짜리 프로그램으로 압축하며 기승전결의 흐름과 감정의 리듬을 살려내는 일은 오직 인간의 눈과 뇌로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창의’야말로 인간이 결코 내줄 수 없는 최후의 보루이자, 그래야 한다는 믿음은 다가올 변화를 직시하지 못하게 만든 일종의 자기 위안이었다.
최근 장강명 작가의 화제작 『먼저 온 미래』를 읽으며 3년 전 여름의 대화를 떠올렸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AI는 가장 먼저 바둑계와 산업 전반을 뿌리째 흔들었다.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의 지혜와 창의로 개발해 낸 정석들이 가장 먼저 버려졌다. 오직 승리 확률에 기반한 AI식 포석과 운용은 기사들 고유의 기풍을 싸그리 지워버렸다. 이제 대부분의 기사가 AI식 포석을 외워서 둔다. 바둑 교육, 인간 사범의 의미와 위상도 초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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