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Sloan Management Review

시장 파괴 이끄는 11가지 요인 주목하라

307호 (2020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불확실한 환경에서 기업들은 자신들에게 알려진 위협이나 내부 변수들만 통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편협한 접근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외부의 파괴적 힘들로 인해 조직을 취약하게 만든다. 외부 요인들의 미약한 신호들을 포착해 사전에 대비하지 못하면 존경받고 성공한 기업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거시적 변화를 이끄는 11개 요인(부의 분배, 교육, 인프라, 정부, 지정학, 경제, 공중보건, 인구통계, 환경, 미디어&통신, 기술)에 의해 붕괴될 수 있다. 미약한 신호에 주의를 기울였던 애플 아이폰의 부상, 기존의 관행과 신념을 답습했던 리서치인모션(RIM) 블랙베리의 몰락은 이 같은 미래 계획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편집자주
이 글은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20년 봄 호에 실린 ‘The 11 Sources of Disruption Every Company Must Monitor’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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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대형 통신사에 무선통신 사업의 장기 전략에 대한 자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들도 당연히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새로운 TV 스트리밍 서비스가 조만간 대여섯 개나 도입될 예정이었고 대역폭 소모가 큰 온라인 게임 플랫폼들이 많은 신규 게이머를 빠르게 유인하고 있었다. 게다가 규제의 움직임까지 호시탐탐 그들을 노리는 것 같았다.

이런 변화들은 인터넷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실질적인 발전이 없던 통신사의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회사는 조직이 존폐 위기에 처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경영진은 어떤 파괴적 힘이 회사에 영향을 미치고, 또 얼마나 미칠지를 분석해서 앞으로 3년간의 사업 전망을 할 수 있도록 크로스펑셔널팀(cross funtional team, CFT)을 급히 결성하고자 했다. 이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먼저, 임원들은 내부 지원을 위해 활력을 불어넣어야 했다. 회사의 표준 사업 방식을 어떤 식으로든 바꾸려면 수많은 회의와 프레젠테이션 자료, 구체적인 결과물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일단 임원들의 제안이 승인되고 CFT가 꾸려지자 담당자들은 수개월에 걸쳐 회사의 경쟁 상황을 조사하고, 재무 모델들을 만들고, 소비자 전자기기 트렌드를 깊이 있게 연구했다.

CFT는 마침내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 그들이 작성한 세부적이고 포괄적인 3개년 계획은 새로운 스트리밍 플랫폼과 온라인 게임이 대역폭 소비를 급격히 증가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아가 이로 인해 엄청난 숫자의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가정용 운동기구, 보안 카메라 같은 새로운 커넥티드 기기가 시장에 침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는 업계에 일어날 수 있는 다른 파괴적 요소들은 고려하지 않고, 회사를 스트리밍과 소비자 전자기기 중심의 단일 경로에만 초점을 맞추게 하는 편협한 시각이었다.

새롭게 밝혀진 것은 거의 없었다. 스트리밍 플랫폼, 게임, 전자기기의 등장은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른 인접 분야에서 벌어지는 혁신은 어떨까? 기업들은 보통 익숙한 위협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알려진 위협의 경우 감시하고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조직에 이미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장기적 계획 수립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조직이 압박감에 성급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점이다. 기업이 익숙하지 않은 파괴적 힘들을 미리 조사하고, 조사 결과를 전략에 접목하는 경우는 드물다.

필자는 회사가 애초에 이 프로젝트를 어떤 방향으로 설계했는지 궁금했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향후 통신 시장에 영향을 줄 만한 모든 파괴적 힘들을 조사하는 데 있었지만 회사는 사실상 일상적으로 알려진 위협에만 집중했다.

업계 밖을 내다보면 주목할 만한 개발 상품들이 많다. 예를 들어, 일부 영민한 기업가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커넥티드 기기 안에서 잠자고 있는 컴퓨터 처리 능력을 공유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이미 선보인 바 있다. 소비자들은 간단한 앱에서 교환 가치가 있는 크레디트나 돈을 받고 타인에게 자신의 휴대폰에 원격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판매한다. (이렇게 하면 말 그대로 자는 동안에도 돈을 벌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은 분산되고 탈집중화돼 있어서 개인 정보가 안전하게 보호된다. 누구나 이런 신규 플랫폼에서 여분의 컴퓨팅 자원을 대여할 수 있다.

분산 컴퓨팅 플랫폼에서 더 흥미로운 점은 커넥티드 전자레인지와 세탁기, 스마트 화재경보기, 음성 제어 스피커 등 다른 기기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분산 컴퓨팅 플랫폼이 주변부에서 주류로 이동하면 통신사의 재무 전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CFT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메가비트당 비용과 네트워크 유지비를 산정하는 데는 익숙했지만 머지않아 거대한 분산 컴퓨팅 플랫폼의 일부가 될 수십억 개의 커넥티드 기기가 미칠 재무적 영향력을 계산하는 공식은 갖고 있지 않았다.

통신사의 미래를 분산 컴퓨팅이라는 렌즈로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이어졌다. 이 모든 기기에 대응하려면 기존 대역폭 모델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고 사업 전망은 어떻게 수정돼야 할까? 기존 대역폭에 이 새로운 사용 사례들을 전부 포함해도 회사가 통신 상품들로 기존의 수익을 유지할 수 있을까? 회사는 그런 커넥티드 기기에서 생성되는 모든 데이터를 채굴해서 사업 통찰력을 도출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데이터 거버넌스가 필요할까?

필자는 또 CFT 담당자들에게 통신사의 미래를 전망할 때 또 하나의 인접 분야를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바로 기후변화였다. 기존의 데이터센터들은 보통의 모든 건물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이상 기후에 따라 보완이 필요한 지침, 건축 설계, 건축 코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는 어떤 오류도 없이 온도가 정확히 제어될 수 있는 환경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폭염, 홍수, 우박, 강풍, 산불 등은 더 잦아지고 예측하기도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은 기업의 중대한 인프라에 위협을 가한다.

CFT가 대역폭 사용량 급증을 전망하는 예측 모델은 개발할 수 있겠지만 이상 기후를 예측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들이 날씨와 기후를 추적이나 하고 있었을까? 그들이 분석한 재무 전망에는 극심한 기상 사태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반영됐을까? 또 갑자기 전력이 끊겼을 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위기 계획은 있었을까? 비정상적으로 무더운 날씨가 계속돼서 에어컨에 무리가 간다면 어떨까? 이런 상황에서도 회사가 데이터센터를 계속 구축하고 유지하는 게 타당할까? 기업의 데이터분석팀에 기후학자들로 구성된 소규모 팀을 추가한 사례가 있을까?

담당자들의 반응을 보니 내가 던진 일련의 극단적인 질문들이 그들이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조사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이런 쟁점들과 더불어 잠재적 파괴 요인이 될 만한 다른 영역들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회사에 고착화된 습관과 그들이 간직해 온 신념과 관련돼 있었다. CFT는 무언가를 계획할 때 언제나 철저하지만 편협한 접근법을 사용해 왔다. 그들은 재무 전망 자료를 만들고, 회사의 직접적인 경쟁사들의 동향을 추적하고, 통신 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R&D 활동들만 파악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런 업무 관행이 독특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엄청난 불확실성에 부딪치면 조직 내 팀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내부의 변수들을 통제하는 습관을 발전시키고, 잠재적 파괴자가 될 만한 외부 요인들은 추적하지 않는다. 알려진 변수들의 영향력은 정량적 측정이 가능하므로 기존 조직문화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런 업무 관행은 의사결정자들에게 잘못된 안도감을 주고, 이런 잘못된 안도감은 안타깝지만 미래를 편협한 틀 안에서 바라보게 하면서 가장 성공한 조직조차 갑자기 튀어나오는 파괴적 힘들에 취약하게 만든다. 알려진 변수 밖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세계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시장에서 붕괴될 수 있다.

미래학자들은 이런 외부 요인들을 미약한 신호라고 부른다. 이런 신호들은 변화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일부 경영진은 미약한 신호를 찾아서 불확실성에 대처한다. 그들은 입증된 구조를 사용하고, 미래에 대한 다른 비전에도 개방적이며, 외부인의 시각으로 내부 조직과 산업을 봄으로써 자신들의 판단력을 시험한다. 미약한 신호를 지속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공식 프로세스가 없는 기업들은 대개 파괴적 힘들에 당황하고 덜컹거리게 된다.

계량적 미래학자로서 내 임무는 미래를 탐색하는 것이고, 그 과정은 조직 안팎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에 의도적으로 맞서는 데 맞춰져 있다. 필자는 이 작업을 스스로 미래 영향력 이론(future forces theory)이라 부르는 접근법을 통해 수행한다. 이는 파괴가 거시적 변화를 이끄는 중대한 요인들로부터 어떻게 촉발되는지를 설명한다. 이런 요인들은 기업, 정부, 사회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불확실성을 나타내며,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이거나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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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전략적 사고 능력을 육성하는 조직들에 이 미래 영향력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 단순한 툴 하나를 사용한다. 이 툴은 일반적으로 리더의 통제력 밖에 있는 거시적 변화를 이끄는 11개 요인으로 구성돼 있다. (그림 1) 필자는 15년 동안 계량적 예측 연구를 하면서 모든 변화는 이 11가지 요인 중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에서 벌어지는 파괴의 결과로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직은 이 11가지 요인을 모두 주시해야 하고 이들이 하나로 수렴되거나, 굴절되거나, 서로 모순되는 영역들을 찾아야 한다. 새롭게 등장하는 패턴은 어떤 식이든 변혁의 신호가 되므로 특히 중요하다. 리더들은 이런 흩어진 점들을 다시 해당 산업과 회사에 연결하고, 팀을 구성해서 점진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변화의 근원인 이 11가지 요인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넓은 관점을 취할 때 얻는 이점들을 고려해야 한다. 인프라의 변화를 추적하는 대형 농업 전문 기업은 신흥 시장에 최초로 진출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고, 5G와 인공지능 기술을 모니터링하는 대형 전자제품 유통사는 거대 기술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회사를 더 효과적으로 포지셔닝할 수 있다.

아래 11가지가 바로 그런 거시적 변화를 이끄는 요인이다.

1. 부의 분배: 인구의 전체 가구에 걸친 소득 분배. 다양한 공동체 내 자산의 집중. 개인이 기존 재정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 국가 내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격차

2. 교육: 초등, 중등, 고등 교육의 접근성과 질. 인력 양성. 인턴 제도. 자격증 프로그램. 교육 방법과 활용 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학습 주제

3. 인프라: 사회가 운영되는 데 필요한 물리적, 조직적, 디지털적 구조(교량, 전력망, 도로, 무선 송신탑, 폐쇄회로 카메라 등). 한 국가나 주, 혹은 도시의 인프라가 다른 곳의 인프라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4. 정부: 지역, 주, 국가, 그리고 국제사회를 통치하는 기구. 그 기구의 입안 주기와 선거. 그들이 결정하는 규제 조치

5. 지정학: 여러 나라의 지도자, 군대, 정부의 관계. 규제, 경제, 군사 조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투자자와 기업. 그리고 선출된 지도자들이 직면하는 위협

6. 경제: 표준 거시경제 및 미시경제 요인들의 변화

7. 공중 보건: 생활양식, 대중문화, 질병, 정부 규제, 전쟁이나 갈등, 종교적 신념과 관련해 공동체 일원들의 건강과 행동에 일어나는 변화

8. 인구 통계: 출생과 사망률, 소득, 인구밀도, 이주민, 질병 등의 역학관계에 따른 공동체의 변화 양상

9. 환경: 극심한 기상 사태, 기후 변동, 해수면 상승, 가뭄, 이상 고온 및 저온 등이 자연계나 특정 지역에 미치는 영향. 농업 생산도 이 범주에 속함

10. 미디어 & 통신: 개인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고 배우는 모든 방법. 소셜네트워크, 언론사, 디지털 플랫폼,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게임 및 e스포츠 시스템, 5G 등 개인 간 교류에 활용되는 수많은 방법

11. 기술: 거시적 변화를 이끄는 개별 요인이 아닌 기업, 정부, 사회를 연결하는 결합 조직으로서의 기술. 우리는 항상 다른 변화 요인들 안에서 벌어지는 기술적 신호들과 새롭게 개발된 기술을 탐색한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추적해야 할 신호치고는 지나치게 광범위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변화의 잠재적 요인들을 간과하는 조직은 파괴에 취약해진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2004년은 기업이 이런 신호들을 무시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주는 가장 좋은 해였다. 당시 우리 주변에는 사람들의 소통 방법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것을 알려주는 미약하지만 많은 신호가 있었다. 두 기업의 경영진도 같은 정보를 접했다. 한쪽은 외부 요인들을 적극적으로 탐색했고, 다른 한쪽은 동종 업계 내의 트렌드만 고려해서 기존 상품들에 점진적인 개선 조치만 취했다. 이런 결정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던 기업 한 곳의 종말을 가져온 동시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경쟁자의 부상을 이끌었다. 그런 신호에는 아래와 같은 발전 상황들이 포함돼 있었다.

● 새로운 소프트웨어 덕분에 누구나 CD와 DVD 콘텐츠를 개별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

● 비트토렌트(BitTorrent), 아이소헌트(isoHunt), 파이레트베이(The Pirate Bay), 라임와이어(LimeWire) 등 원래는 해커들이 사용했던 P2P 파일 공유 사이트가 음악과 영화를 공유하는 일반인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게 됐다.

● 디지털 콘텐츠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물리적 매체의 판매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 게임 개발자들은 압력과 촉감에 반응하는 햅틱(haptic) 기술을 실험하고 있었다. 예컨대, 전투 게임에서 게이머가 적이 쏜 총에 맞으면 컨트롤 기기에서 진동을 느끼게 된 것이다. 또 개발자들은 초기 터치스크린에 햅틱 기술을 적용해서 아이콘 터치만으로 전진, 후퇴, 회전, 정지를 하게 됐다.

●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중 기능을 가진 소비자 전자제품들이 개발됐다. 가령, MP3플레이어 겸용 디지털카메라나 TV 방송 신호를 수신할 수 있는 금속 안테나가 장착된 휴대폰이 좋은 예다.

앞서 언급한 두 경영진 중 한 곳은 자신들이 준비하고 있던 일에 이런 신호들을 접목했다. 그들은 기존의 모든 기기가 강력한 휴대폰 하나로 통합돼서 그 안에서 동영상 녹화, 게임, e메일 확인, 일정 관리, 길 찾기 기능이 있는 인터랙티브 지도 등 수많은 기능을 처리할 수 있는 세상을 예측했다. 그 회사는 휴대폰의 폼 팩터1 에 대해 기존에 간직하고 있던 신념이 없었으므로 컴퓨터형 휴대폰의 형태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기꺼이 수용했다. 그들이 바로 애플의 경영진이었고 2007년 그 모든 미약한 신호를 회사의 전략으로 녹여 낸 제품을 출시했다. 바로 첫 번째 아이폰이었다. 그리고 2010년에 다다르자 한때는 매끈한 디자인의 데스크톱 컴퓨터로 유명했던 이 회사가 제시한 미래에 모바일 기기 시장 전체가 굴복했다.

반면에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휴대폰, 블랙베리를 만든 리서치인모션(RIM, Research in Motion)은 똑같은 미약한 신호들에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사실 미국인들은 그들의 폰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블랙베리를 ‘마약베리(crackberry)라 부르면서 자신들의 디지털 중독을 자랑스러워했다. 블랙베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를 사무실과 계속 연결되게 해준 첫 번째 기기였다. 블랙베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기기에 완전한 키보드가 물리적으로 장착돼 있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다른 폰들은 모두 숫자 버튼에 문자가 세 개씩 새겨져 있어서 철자 하나를 쓰려면 버튼을 두세 번은 눌러야 했다. 그래서 블랙베리가 나오기 전에는 세 줄짜리 문자를 타이핑하는 데 몇 분씩 걸리기도 했다.

블랙베리의 엄청난 인기 덕분에 RIM은 시가 260억 달러의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중 한 곳이 됐다. 모바일 시장점유율은 약 70%였고 블랙베리 사용자가 700만 명에 달했다. 그런 거대한 성공 때문에 RIM의 조직문화는 다른 버전의 미래를 수긍하지 않았고 내부적으로 회사가 간직하던 신념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미약한 신호를 블랙베리에 적용한 관리자들도 있었지만 부서 밖에서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 결과 애플이 열심히 추적했던 외부의 온갖 파괴적 힘들이 RIM의 경영진에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RIM도 작은 진주 모양의 마우스가 키보드 상단에 장착된 블랙베리 펄(BlackBerry Pearl) 같은 소형 폰이나 다양한 색상의 모델을 출시하는 등 좁은 영역에서 지속적인 혁신을 모색했다. 돌이켜 보면 이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파괴적 혁신 이론에서 설명한 나름의 방어 전략이었다. 기존 고객층과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윤을 지키기 위해 제품에 새로운 부가기능을 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파괴자에게 위협받는 기존 기업이 소위 존속적 혁신이라는 전략으로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식의 혁신은 파괴적 힘이 기존 제품 시장을 침입하는 상황을 사실상 묵인한 것과 다름이 없다.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로도 애플은 계속해서 새로운 신호들에 귀를 기울였지만 RIM은 회사 전략을 결코 수정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사랑받는 블랙베리를 신세대 모바일 사용자들의 니즈에 재빨리 맞추기보다는 기존 기기와 운영 체계를 조금씩 수정하는 점진적 개선을 이어갔다. 첫 번째 아이폰은 여러모로 레드헤링2 역할을 했다. 성공한 파괴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기존 시장을 돌파하는 최초의 제품은 주로 품질이 낮고, 고객에게 “충분히 좋다”고 평가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야 기존 기업들이 새로운 적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빠르게 품질 향상이 이뤄진다. 애플도 아이폰과 운영 체계를 신속하게 개선해 나갔다. 아이폰이 블랙베리와 직접 경쟁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도 바로 분명해졌다. 애플은 스마트폰의 미래에 대해 완전히 다른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폰에서 단지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측면을 바꾸는 트렌드가 될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 결과 RIM을 뛰어넘으며 도약했다.

결국 기업의 미래를 계획하는 방식의 차이가 RIM과 애플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RIM에 벌어진 일은 다른 모든 조직에도 경종을 울린다. 기업의 경영진은 불확실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파괴적 영향력들을 조기에 체계적으로 추적할 수도 있고, 그냥 편협한 혁신을 모색하면서 기존 관행과 신념을 더욱 강화할 수도 있다.

전 세계 많은 기업이 강도 높은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편협한 혁신의 가혹한 결과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래 영향력 이론을 활용한다. 이 이론을 전략적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활용하는 기업들도 있지만 작업의 흐름, 프로세스, 계획 수립 등 업무 전반에 대한 지침으로 삼는 기업들도 있다. 여기서 핵심은 각 변화 요인을 회사 상황에 연결하면서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 변화 요인과 관련된 새로운 개발과 실험에 필요한 자금은 누가 지원할 것인가? 이 영역에서 발생하는 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인구 집단은 누구인가? 이 요인에서 일어나는 변화 중 향후 새로운 규제로 이어질 만한 것이 있을까? 이 영역의 변화가 어떤 식으로 다른 영역에서의 변화를 야기할까? 이 변화 요인에서 발전이 이뤄지면 혜택을 받는 자와 피해를 입는 자는 각각 누구일까?

이 거시적 변화 툴을 통해 가장 성공하는 팀은 어떤 결과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신호 스캐닝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이들이었다. 한 다국적 기업은 이 아이디어를 아주 훌륭하고도 극단적인 방식으로 수용했다. 그들은 전 세계 법인과 부서들을 아우르며 고위 임원들과 관리자를 차출한 후 여러 개의 CFT를 조직했다. 각 CFT는 10명으로 구성됐고, 모든 멤버에게는 각각 거시적 변화 요인 하나와 특정 기술적 주제 및 그들의 개인 직무와 관련된 주제가 부여됐다. 각 CFT는 한 달에 두세 번 60분짜리 전략 회의를 하면서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고 자신의 주제 영역 안에서 발견한 미약한 신호들이 제시하는 것들에 대해 논의했다. 이 방법은 신호 추적을 위한 조직의 내부 근육을 키우는 데도 아주 효과적이었을 뿐 아니라 조직 전체의 소통을 촉진하는 역할도 했다.

물론 이런 방식이 기존 문화와 맞지 않는 조직도 있겠지만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조직의 통제력 밖에 있는 외부의 힘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거시적 변화라는 렌즈를 통해 의도적으로 미약한 신호들을 탐색하는 것은 당신의 조직이 다음 번에 불어 닥칠 파괴의 물결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당신의 조직이 그런 물결에서 우위를 점하고, 다가오는 미래를 향해 산업 전체를 선도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번역 |김성아 dazzlingkim@gmail.com

에이미 웹(Amy Webb)은 퓨처 투데이 인스티튜트(Future Today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의 전략적 예측(strategic foresight) 분야 교수다. 이 글에 의견이 있는 분은 http://sloanreview.mit.edu/x/61309에 접속해 남겨 주시기 바란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8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2020년 11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