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0년 9월 호에 실린 빌 드레이튼 아쇼카 재단 CEO와 아쇼카 재단 경제 시민 의식 구상(Full Economic Citizenship Initiative)의 수석 기업가 발레리아 부디니히의 글 ‘A New Alliance for Global Change’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고, 작업을 수행하며, 기업을 성장시키는 방식이 대대적으로 변하고 있다. 기업과 사회적 기업가들은 협업을 통해 산업혁명 이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기존 시장을 확장하는 중이다. 새롭게 형성된 시장은 모두에게 혜택을 안겨 주겠지만, 아직까지 세계 공식 경제의 일원이 되지 못한 40억 명의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많은 혜택을 선사할 것이다. 교육, 운송, 금융에 이르는 다양한 산업 부문에서 형성된 영리 기업과 사회적 기업의 파트너십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전망이다.
물론 이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희생 정신으로 무장한 봉사자들이 급박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영 중인 전 세계 수백만 개의 단체를 포괄하는 ‘시민 분야(citizen sector)’는 오래 전부터 인력 부족 및 비효율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세계 3000여 개의 사회적 기업과 함께 일하는 아쇼카 재단은 지난 30년간 시민 분야의 생산성, 규모, 파급력이 영리 기업을 따라잡을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능하고 창의적인 지도자가 시민 분야에 참여하면서 에너지 및 의료를 비롯한 주요 산업에서 게임의 법칙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영리 기관은 시민 분야 기관(CSO·citizen sector organization)과의 협업을 통해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한 거대한 규모의 사회적 난제를 해결할 기회를 얻고 있다. 양자의 파트너십은 서로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생산, 운영, 재무에서 전문성을 갖춘 영리 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활용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가와 CSO는 더 저렴한 비용, 긴밀한 사회 네트워크, 고객 및 지역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한다. 협업의 효과를 높이려면 파트너십을 통해 사회적 가치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까지 창출해야 한다. 이는 각 주체의 보완적 강점을 살려서 효용성을 늘리고 비용을 절감해 주는 ‘혼합 가치사슬(HVC·hybrid value chain)’ 형성을 통해 가능하다.
영리 기업과 사회 단체의 협업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됐다. 아쇼카 재단은 다수의 시범 프로젝트에 참여해 놀라운 변화를 이끌고 높은 성장을 달성해 왔다. HVC는 이제 다수의 산업에서 뿌리를 내렸다.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표준 활동 방식으로 자리잡은 기업과 CSO 간의 협업을 전략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면, 곧 전략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할지 모른다.
시민 분야의 역동성
HVC의 내부 구조를 살피기 전에 그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자. 개인의 영세 사업이 기업의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는 1700년대부터다. 이후 더 빠르고 효과적인 생산 기법이 개발되면서 산업 혁명이 시작됐다. 혁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됐다. 1000년 동안 답보를 계속하던 서구의 1인당 소득은 1700년대 평균 20% 증가했다. 1800년대에는 200%, 20세기에는 무려 740% 증가했다. 그러나 영리 산업이 포괄적 성장을 이어가는 동안 시민 분야는 시들어갔다. 외부 시장의 압력을 거의 받지 못한 시민 분야는 많은 독점 산업이 흔히 그렇듯, 경쟁을 두려워하며 정부의 자금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시민 분야는 생산성, 실적, 요금 비율, 신뢰도, 명성 등에서 자꾸만 뒤처졌다.
1980년대가 되자 기업과 사회 부문의 격차는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정부 간섭으로 기회가 사라진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새로운 기회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시민 분야는 기업가적 면모를 살리고 경쟁력을 되찾기 위한 구조개편에 들어갔다. 다양한 노력을 통해 생산성과 규모를 급격히 확장한 시민 분야는 제품 및 서비스의 가격을 기업보다 낮추면서 혁신에 성공했다. 이후 시민 분야는 OECD 회원국 기업들보다 무려 3배나 빠른 속도로 일자리를 창출했다. 브라질 CSO의 수는 지난 20년간 3만 6000개에서 100만 개로 급증했다. 미국 CSO의 수도 1982년 이후 300% 증가했다. 현재 수백만 개에 달하는 CSO는 개인적 가치를 실현하는 동시에 엄청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세계 인재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데이비드 그린의 사례를 보자. 그린은 백내장 환자를 위한 인공 수정체 렌즈를 생산하는 비영리 기관 오로랩(Aurolab)을 설립했다. 오로랩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제조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인공 수정체의 가격을 300달러에서 10달러 이하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인공 수정체 생산을 위해 오로랩 설립을 지휘했던 아라빈드(Aravind) 안과 병원은 환자 소득에 비례해서 인공 수정체의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현재 오로랩은 세계 인공 수정체 시장의 8%를 점유하고 있다. 또 세계 109개국에 매년 150만 개의 인공 수정체를 수출한다. 아쇼카 재단, 국제실명예방 재단(International Agency for the Prevention of Blindness), 도이치 은행과 함께 눈 치료 기관의 발전을 돕고 실명을 줄이기 위한 1500만 달러의 기금(The Eye Fund)도 조성했다.
로드리고 바지오 또한 사회적 기업에서 역량을 펼치는 인재다. 중남미와 아시아 지역 수백 개 빈민가에 컴퓨터를 보급하는 네트워크를 설립한 그는 다양한 기관 및 조직을 돌아다니며 중고 컴퓨터 기부, 보관, 운송을 부탁했다. 또 수천 명의 빈민가 주민들이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도록 지원했다. 바지오의 도움으로 설립된 학교는 지금껏 70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활발한 활동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 사회적 기업가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과거 기업들은 사회 운동가들의 활동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시민 분야가 관여하는 경제 규모가 작고 생산성 또한 낮아서 시민 분야의 활동을 무시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이제 CSO와 먼저 손잡고 이들로부터 교훈을 얻는 기업이 새로운 사업 모델에서 경쟁 우위를 얻고,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신흥 시장도 선점할 것이다. CSO가 영리 기업과 동일한 혁신 역량을 갖춘 만큼, 파트너십 체결은 다음 수순으로 자리잡았다. 협업을 통해 이들은 산업 혁명과 견줄 정도의 강력하고 파급력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인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제때 응급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심한 인도의 청년 전문가들은 함께 힘을 모아 응급 앰뷸런스 서비스 1298을 개설했다. 기억하기 쉬운 네 자리 전화번호로 앰뷸런스를 부를 수 있도록 해서 응급 의료의 접근성을 확장한 서비스다. 요금은 사용자의 지불 능력에 맞게 차등 적용된다. GPS와 실시간 추적 시스템을 사용해서 앰뷸런스를 신속히 배치하는 1298 서비스는 지금까지 뭄바이에서만 5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 라시카 웰란키와르(Rasika Welanki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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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 가치사슬(HVC)
HVC는 기업과 CSO가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체계적 변화를 가져왔다. HVC는 기존 가치를 혁신적 방식으로 재정의해서 가치사슬에 참여하는 각 주체가 위험과 보상을 명확히 이해하고 기꺼이 이를 수용하도록 도와주는 협업의 한 형태다.
주택 산업을 보자. 현재 세계 인구 6명 중 1명은 빈민가나 불법 점유지에 거주한다. 무려 10억 명의 사람들이 정식 주택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소외돼 있다는 뜻이다. 시멘트 회사나 타일 및 벽돌 제조업체, 은행, 개발업체, 공공서비스 제공업체라면 반드시 고민해야 할 문제다. 1조 달러 규모의 잠재 주택 시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업이 개별 활동을 고집하던 최근까지도 1조 달러의 신규 시장 창출은 거의 불가능한 과업이었다. 기존 비용 구조를 고집하고 현지 시장에 대한 제한적 지식 밖에 없는 기업은 소외된 고객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나 CSO 또한 소외된 고객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