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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윤병철 전 한화생명 부사장 인터뷰

소통은 말할 준비가 아닌 ‘들을 준비’
모르면 모른다고 약점을 드러내 보라

장윤정 | 265호 (2019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주부 설계사들을 이해하기 위해 설계자들이 보는 인기 드라마를 시청했다. 설계사들의 자부심을 살려주고자 자신의 ‘보험영업 수난기’를 솔직하게 공개하는가 하면 간부가 된 뒤에도 영업 현장의 어려움에 공감하기 위해 고객과의 만남을 자청했다. 윤 전 부사장이 보험 영업의 현장에서 31년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치열한 소통의 노력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보험 영업은 쉽지 않다. 먼 미래의 혹시 모를 불행을 대비해 돈을 맡기는 일에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지인 영업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보험에 가입한 사례가 많아 상품에 대한 이미지도 그다지 좋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찬바람’이 부는 곳이 보험업계다.

윤병철 전 부사장은 그런 극한 환경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다. 입사 후 31년을 줄곧 한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현장 영업 관리자 출신으로는 한화생명 최초로 부사장에 올랐다. 31년 동안 회사의 주인이 3번이나 바뀌었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외환위기는 보험업계에 전례 없는 한파를 불러왔다. 11개의 보험사가 문을 닫거나 다른 보험사로 흡수됐다. 1997년 12월 당시 5만2000명에 이르던 생명보험사 임직원들 가운데 4분의 1이 1998년 연말까지 1년 새 짐을 싸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가계 경제가 어려워지자 너도나도 보험을 해약하고 신규 가입은 극도로 저조했다.

이런 험난한 시절을 뚫고 최연소 지점장, 단장, 본부장, 영업부문장 등을 차례로 맡고 영업 전문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영업을 총괄하는 부사장에까지 발탁됐던 윤 전 부사장. “도대체 비결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윤 전 부사장은 그저 좋은 설계사와 선후배를 만났다고 말했지만 인터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끊임없는 소통’이었다. 주부 설계사들을 이해하기 위해 밤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당시 설계사들이 좋아하는 TV 드라마를 시청하며 ‘아줌마 수다’에 동참했고, 간부가 된 뒤에도 직접 VIP 면담을 자청해가며 고객과 소통하고, 조직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에 공감하려 했다. 윤 전 부사장이 풀어놓은 소통의 노하우를 DBR이 소개한다.



보수적인 보험업계에서도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소통이 보험업계, 더 나아가 모든 기업의 화두인데… 이 같은 노력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소통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소통이 쉽지 않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싶다. 도대체 대한민국 기업들이 소통에 이토록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뭘까. 나는 우리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훈련받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단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서열이나 나이를 뛰어넘어 자기주장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여기에 군사정권의 잔재 때문에 상명하복의 문화가 남아 있다. 또 고도 성장기 회사들에서는 다양성과 창조성이 아니라 표준화되고 일사불란한 방법이 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고도 성장기를 경험한 리더들로서는 갑자기 소통을 하라는 것도, 다양한 의견을 내세우는 ‘튀는 직원’들과 소통하는 것도 익숙한 일이 아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최근 들어 소통의 도구로 등장한 각종 SNS도 오히려 각자 본인 말만 일방적으로 전달하게끔 하는 역기능이 있는 것 같다. 과거에는 만나거나 전화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나. 적어도 상대방의 반응, 의견을 들을 순 있었다. 그런데 요새 SNS를 통한 소통을 보라. 그저 일방적으로, 생각날 때 본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쏟아내는 ‘일방통행의 창구’다.

이렇듯 복잡한 원인이 뒤얽혀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다들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 기업들이 수평적인 문화를 만든다고 호칭도 바꾸고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소통을 위한 훈련이 이뤄져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소통의 룰을 만들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훈련 말이다. 무엇보다 리더와 기업의 연장자들부터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

말로는 ‘소통’을 외치면서도 정작 부하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쏟아내면 불편해하는 리더들이 많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무엇부터 갖춰야 하는가. 소통의 ‘기본’을 꼽는다면.
일단 머릿속에 박혀 있는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 나이에 대한 편견, 성별에 대한 편견, 스펙에 대한 편견, 직급에 대한 편견 등 말이다. 주변을 보면 지위가 높은 연장자가, 남성이, 스펙이 좋은 사람이 옳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소통을 막곤 한다. 편견을 버리고, ‘계급장’ 떼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젊은 세대의 아이디어, 여성의 섬세함과 꼼꼼함, 고객과 가까이 있는 현장 직원의 아이디어가 훨씬 뛰어날 수 있다.

물론 편견을 버리는 일이 쉽지는 않다. 나도 28살의 젊은 나이에 지점장을 덜컥 맡았는데 처음에는 설계사들과의 소통이 여간 어려웠던 게 아니다. 미혼 남성인 나로서는 주부 설계사들이 아침에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를 등교시키고, 그 후 부랴부랴 준비해 사무실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정신없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남편과의 갈등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이야 대학을 졸업한 설계사들이 보편적이지만 그 당시에는 나이도 학력도 다양했다. 그런데 대학원 출신의 인텔리 지점장보다 고졸 설계사 출신의 여성 지점장이 더 활약하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에 암 보험이 출시됐는데 암 보험의 월 보험료가 2만 원 정도였다. 막 출시된 신상품을 고객들에게 매력적으로 세일즈해야 하는데 대학원을 졸업한 남자 지점장은 암 보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장하는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를 여러 가지 전문적인 보험 용어를 사용하며 설명을 하더라. 듣기에는 정말 좋았는데 고객에게 상품을 팔진 못했다. 반면 여자 지점장은 “짜장면 하나랑 탕수육 하나 값, 딱 2만 원으로 암 걱정을 없앨 수 있다. 암 걸리면 5000만 원이 보장되는데 한 달에 짜장면이랑 탕수육 한 번 안 먹으면 어때?”라며 고객들을 설득하더라. 옆에서 듣다가 무릎을 쳤다. 딱, 고객 눈높이에 맞춘 설명으로 남성 지점장에 비해 같은 상품을 10배 이상 팔았다. 설계사들은 현장에서 쌓아온 그들 나름의 전문성과 노하우가 있었다. 그런 설계사들과 ‘소통’을 해야지 이분들을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설계사들과 공통분모를 만들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사원들이 보는 드라마를 집에 가서 보고 심지어 사원들이 스트레스 푼다며 가는 무도회장도 따라가 봤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고스톱도 같이 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일단은 내가 먼저 그들에게 맞추고, 천천히 내가 가고자 하는 길로 인도하려고 했다. 소도 앞에서 끌면 코가 아파도 안 따라 오고 버티지만 뒤에서 몰면 힘을 내 나아간다. 상대를 내게 맞추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에게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입사 후 자신이 바라는 리더상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상사로부터 ‘배워야 할 점’과 ‘배우지 말아야 할 점’을 항상 메모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을 기록했는가. 실제로 그렇게 적은 내용들이 후에 리더가 된 뒤 소통에 도움이 됐나.
내가 입사한 30년 전에는 매뉴얼도, 시스템도 부족했다. 1년에 몇백 명씩 입사하고 퇴사하던 시기이다 보니 신입들이 알아서 배워야 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나중에 내가 리더가 돼서 참고할 만한 보험회사에서의 매뉴얼, 『성문종합영어』 같은 책을 써보겠다는 순진한 마음으로 메모를 했다.

특히 당시 상사들의 모습이 나로 하여금 책을 쓰게 하는 동기가 됐다. 예를 들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상사들이 결과가 나쁘면 인격모독과 언어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상사들이 야단치고 질책을 할 때 정작 직원들에게 동기부여가 전혀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반감이 생기더라. 또 성과가 안 좋으면 상사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아래 직원들을 소집했는데 시간 낭비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수도 없이 소집을 당했는데 왔다 갔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깝기만 했다. 게다가 본부장이 단장을 소집하면, 단장은 지점장을 소집하니 모두 다 합치면 얼마나 큰 손해인가. 본사에서 지방에 있는 지점장을 소집한다고 상상해보라. 새벽에 정신무장을 한다고 산에 올라가는 일도 있었다.

나는 이것이 상사들의 착각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열심히 안 해서’ 또는 ‘의지가 부족해서’ 결과물이 안 나온다는 착각 말이다. 예를 들어, 신문사 편집국장이 왜 특종을 취재 못하냐고 기자들을 질타한다고 가정해보자. 사실 특종을 누구보다 하고 싶은 사람은 기자들인데 위에서는 기자들이 일을 열심히 안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질타를 하는 것이다. 보험회사의 경우에도 누구보다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 계약을 늘리고 싶은 이는 설계사다. 열심히 안 하는 게 아니라 방법을 몰라서, 또는 타이밍이 안 맞아서 신규 계약을 못하고 있는 것이니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자꾸 상사들은 정신무장만 시키려고 했다. 이렇듯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고 푸시만 하는 상사에 대해 답답함과 반발심을 느꼈다. 먼저 가르쳐주고 일을 시켜보고, 그 후 피드백을 해줘야지 공감을 할 수 있고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건데 당시 상사들은 ‘코칭’은 없이 그냥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단기간에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조급증 때문에 아마 그렇게 현명하지 못한 행태가 나온 것일 테다.

상사의 인사평가도 직원들의 의욕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일을 할 때는 ‘인정’과 정당한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인데 지연, 학연, 상사의 편애 등으로 평가가 왜곡되면 오히려 직원들의 일하려는 의욕이 떨어지고 부정적으로 변했다.

‘내가 나중에 상사가 된다면,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저러지는 말아야지’ ‘저 상사의 이런 것은 좋으니 꼭 배워야지’ 하면서 하나하나 메모를 하다 보니 나중에 책 한 권 분량이 됐다. 나 같은 경우에는 큰 도움을 받았다. 현장에서 느낀 점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꼼꼼히 메모를 해 놓으니 계속해서 스스로 조심하게 됐다. 나는 직원들에게 화를 내본 적이 거의 없는데 내가 인격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내 경험상 뭘 잘못해서 질책을 받을 만한 순간 상사가 도리어 “다음에 잘해”라고 격려하면 훨씬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직원들에게도 미래에 꼭 맡고 싶은 직책이나 가고 싶은 자리가 있으면, 자신이 실제로 그 일을 맡았을 때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미리 써보라고 한다. 실제로 나는 지점장 시절 나중에 단장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쭉 적었다. 예를 들어, ‘회의는 이렇게, 교육은 이렇게 할 것이다’ 등등 말이다. 이것들을 쭉 정리해 보니 나만의 매뉴얼이 됐다.



하지만 소통을 하다 보면 가끔은 갈등도 생기고 화도 난다. 그럴 때는 어떤 식으로 ‘감정’을 해결했는가.
물론 갈등이 생기고 당연히 감정이 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회사 다니는 내내 운동 마니아였다. 후배들과 소통을 하다가 감정이 상하거나 직장에서 갈등이 생기면 일단 참았다가 달려가서 운동을 하거나 삭였다. 잠깐 참고 말아야지 직원들에게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나중에 후회막급할 일이다.

일부 리더 중에 감정을 있는 대로 다 표출하고 나서 “소주 한 잔 마시고 풀자”고 하는 이들이 있다. 화낸 만큼 돈만 드는 것이다. 게다가 일단 한 번 감정을 쏟아내면 그를 받아낸 후배직원들의 감정이 절대 회식한다고, 술잔을 기울인다고 풀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혼내놓고 술로 풀려고 해?’라며 자괴감을 느낀다. 술 먹고 풀려는 것은 굉장히 리더 중심적이다. 화를 내고 본인이 불편하니깐 본인의 감정만 생각하고 회식을 하는 거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발상이라고 본다. 화를 내지 않는 게 가장 좋고, 차라리 내가 과했다 싶을 때는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후배 직원들에게 사과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는 게 사실 쉽지 않은 일이지 않나. 그를 실천해본 일이 있는가.
거의 화를 낸 일이 없지만 혹시 감정적이거나 지나쳤다 싶을 때는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 실수를 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먼저 털어놨다. 그리고 사과하고 약점을 드러내는 게 꼭 마이너스는 아니다. 나는 항상 주변에 솔직하게 자신의 부족한 부분부터 인정하라고 말한다. 과감하게 ‘커밍아웃’해 나의 약점을 드러내고, 후배 직원의 강점은 인정하면서 대화하는 게 최선이다. 내 경험을 예로 들어보겠다. 우리나라 보험업계의 경우 대부분의 인력이 소위 설계사와 그들을 관리하는 관리자와 사무직으로 이원화돼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보험을 한 번도 안 팔아본 관리자가 보험을 전문적으로 파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셈이다. 그런데 영업관리자로 15년을 일한 뒤 임원후보자 시절 설계사 업무를 이해하기 위해 보름 동안 교육을 받으며 직접 상품을 판매해 보라는 미션을 받았다. 2주 동안 보험계약을 직접해야 하는데 녹록지 않았다. 결국 여동생 2명 말고, 친구들한테는 다 거절당했다. 너무 자괴감이 들었지만 교육을 마치고 설계사들에게 솔직하게 고백을 했다. “내가 15일 동안 보험을 결국 3건밖에 못 팔았다. 이것도 겨우겨우 억지로 했다”고 말이다. 그러더니 설계사들이 너무 좋아하고, 자신들의 업(業)에 자부심을 느끼고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더라. 이런 솔직함이 직원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 나는 실제 판매를 경험하고 내 부족한 부분을 고백했다. 물론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드러내 보이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을 잘하고, 당신들은 이런 걸 잘한다”고 인정하고, 내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역할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고백하면 직원들이 공감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퇴직연금 부문 본부장을 한 적이 있었다. 사실 처음 갔을 때는 퇴직연금 분야에 대해서 정말이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했다. “나는 퇴직연금에 대해 여기 신입 사원보다도 모를 겁니다. 여러분들이 나보다 훨씬 이 분야에 대해 잘 압니다. 하지만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게 또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나도 고객 만나서 영업하고, 열심히 네트워킹하겠습니다. 각자 자기 일을 합시다.” 잘 모르면서 아는 척을 엄청 하는 리더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 듣는 사람은 다 안다.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낫다. 후배 직원들이 상대가 민망해 할까 봐 속아주는 척하는 거지 속지 않는다.

오히려 솔직함이 큰 자유를 주고 힘이 된다. 2012년 서울 강북 본부장 시절이다. 그동안 설계사는 수도 없이 만났는데 고객은 그때까지 100명도 안 만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영업본부장인데 고객을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그래서 팀장급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24년 동안 영업을 했는데 지금까지 만난 고객이 100명도 안 된다. 우리 설계사들은 한 달에 수십 명씩 만나는데 그럼에도 나는 영업 관리를 하고 있다”고 자기 고백을 했다. 여태 고객들은 만나지 않고 ‘나는 관리자니까 지점장, 단장 관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 뒤 직원들에게 약속했다. “지금부터 서울 강북 50만 명의 고객 중 상위 500명의 고액자산가 VIP를 내가 직접 만나겠습니다.” 처음에는 조직 내 반발도 있었다. 설계사들로서는 고객들이 본부장인 나에게 직접 설계사들에 대한 불만을 얘기할까 봐 걱정도 되고, 밝히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정작 고객들과 만나기 시작하니 설계사들이 더 좋아했다. 본부장인 내가 동행해 고객을 만나주니 자신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고객들도 본부장이 과일바구니 들고 온 게 처음이라고 하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걱정했던 사람들은 설계사들이 아니라 설계사와 나 사이에 낀 중간관리자들이었다. 중간관리자들이 이런 경험이 없으니 여러 걱정이 많았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고액자산가 VIP를 직접 만나고 난 뒤 본부장이 VIP를 직접 만나는 게 회사 내에서 일상화됐다. 솔직한 인정, 자기 고백이 아니었으면 이런 영업 현장의 변화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한발짝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솔직하게 소통하면 오히려 문제 해결이나 변화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솔직함’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나는 그 효과를 몸으로 깨달았다. 일단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회사가 어려워져 공적 자금이 투입되니 고객들의 해약 사태가 이어졌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고객의 돈을 모두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부동산이나 채권 등 여러 자산에 투자를 해놓은 상태인데 갑자기 고객들이 다들 보험을 해지하고 돈을 빼가겠다고 하니 지급 불능 사태가 우려되는 위기였다. 무엇보다 고객의 심리적인 동요가 문제였다. 그때 고객들에게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상황을 밝히기로 하고 지점장들이 일일이 고객들을 찾아가서 회사 상태를 알렸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해서 절대 고객들의 돈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계사를 대동하고 고객들을 만나 눈물겨운 투쟁을 벌였는데 그 결과 다행히 지급 불능 사태로 번지지는 않았다.

2014년 대규모 희망퇴직과 점포 통폐합 당시에도 솔직한 소통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당시 800여 명의 직원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고 100여 개의 점포가 통폐합됐다. 그런데 퇴사한 직원들이 보험대리점을 개설하고 같이 일했던 베테랑 설계사들이 연쇄 이동하면서 설계사 유출 문제가 심각했다. 물론 나간 동료들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위기였다. 그래서 전국을 돌면서 직접 지점장, 단장, 설계사들을 만나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지금이 위기 상황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신입 설계사를 적극적으로 리크루팅해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결과 희망퇴직에도 불구하고 그 후 3년간 오히려 업계에서 최고 리크루팅 실적을 거둬냈다. 솔직함이 돌파구가 된 것이다.

누군가는 ‘꼰대 같은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에 대한 믿음이 있다. 결국 조직은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것이다. ‘멘탈’ ‘마음’ 이런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소통할 때 일도 잘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직장 생활 내내 솔직하게 말해왔다.


‘철새 설계사’란 말이 나올 정도로 보험업계에서는 설계사들의 이직도 잦다. 우수한 설계사를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노력을 했나.
사실 설계사들은 굉장히 자존심이 강하고 경쟁력이 높은 사람들이다. 보통 100명이 입사한다면 1년이 지나면 스스로 생존이 가능할 정도의 경쟁력을 지닌 사람이 20%, 2년이 지나면 10% 안팎이 된다. 이런 업계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며 자존심이 얼마나 강하겠는가. 스스로 영업을 해서 매출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보니 두려울 것이 별로 없다. 게다가 스스로 관리하는 고객들이 있다 보니 사실 원하면 어떤 회사에 들어가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다고 해서 얼토당토않은 과도한 요구를 하지는 않는다. 프로페셔널로서 할 만한 요구를 하는 편이므로 나는 일단 그들의 요구를 최대한 마음을 열고 들으려고 했다.

그리고 설계사들이 회사를 옮기는 이유는 ‘이익’보다 ‘심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솔직히 우수한 설계사들은 회사에서 충분한 대접을 한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체적으로, 회사의 대우와 관련한 부분들 때문에 옮겨가지는 않는다.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관리자와의 갈등 때문에 떠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비민주적인 문화, 합리적이지 않은 제도, 공정하지 못한 보상 체계, 편애를 한다든가 하는 존경받지 못하는 리더가 더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지점이 어떤 문화를 갖고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어차피 제도나 보상적인 부분은 비슷비슷하다. 인간들이 모여서 일을 하다 보니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그들 사이의 문화가 결국 일하고 싶은 조직과 떠나고 싶은 조직을 가른다.

평소 ‘인정의 에너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아는데 직원들을 제대로 칭찬하고 인정하기 위한 ‘팁’을 준다면….
지적을 일삼는 리더들이 단기적인 성과를 낼 순 있지만 롱런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반면에 칭찬을 근사하게 할 줄 아는 사람들의 경우 성과가 좋더라. 물론 무조건적인 칭찬, 성의 없는 칭찬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영혼 있는’ 칭찬을 위해서는 일단 긍휼의 마음이 필요하다. 상대방에 대한 연민의 마음 말이다. 나는 지점장일 때 그렇게 설계사들이 안타깝게 보이더라. 하루 종일 사람들 만나느라 발품 팔고 거절을 당하니 말이다. 단장이 되니까 지점장들이 안돼 보였다. 젊은 나이에 설계사들을 이끄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이렇듯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으면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데,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자면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무런 감동도 없고, 영혼도 없는 칭찬은 입에 발린 소리처럼 들리기 쉽다.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칭찬 포인트를 찾아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워낙 여성들이 많은 조직에 몸을 담고 있었으니 헤어스타일이나 옷의 변화, 작은 표정의 변화 등을 잘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무조건 잘 어울린다가 아니라 ‘이러이러해서 잘 어울린다’ 또는 ‘이런 이유로 예전 스타일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식으로 코멘트를 했다. 그러면 ‘아, 이 사람이 나를 평소에 제대로 봐주고 있었구나’ 생각하더라.

칭찬과 더불어 가르쳐주고 기회를 주는 코칭이 굉장히 중요하다. 골프도 혼자 하면 참 더디지만 코칭을 받으면 빨리 늘듯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혼내고 질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 세대는 코칭은 안 하면서, 서두르고, 질책하는 것이 일상적인 시대에 직장 생활을 했다. 되돌아보니 매뉴얼을 잘 만들어서 가르쳐주면 구성원들의 실수를 줄이면서도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소통이란 그렇게 일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서로에게 ‘윈윈’을 가져오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1995년 지점장에서 영업단장으로 승진이 돼 15개 지점을 관리하게 됐는데 취임해 살펴보니 신입 설계사 교육을 얼마 전에 입사한 경험이 일천한 일반직 신입사원이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신입을 가르치는 격이었다. 막 보험 설계사로 첫걸음을 내딛는, 보험회사를 계속 다닐지 말지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한 신입 설계사들은 회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교육하고 ‘왜 이 일이 중요하며, 왜 해야 하는지’ 비전을 심어주는 일은 가장 책임이 크고 경험이 쌓인 사람이 해야 했다. 그래서 단장인 내가 직접 설계사들을 가르쳤다. 당시에는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왜 단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신입 설계사들을 힘들게 직접 가르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한 시간씩, 설계사 교육 1교시를 책임졌다. 그렇게 11년간 설계사 교육을 했고 임원이 된 뒤로도 교육을 매일은 못하더라도 꾸준히 하려고 했다. 조직원들에게 조직의 비전을 보여주고 의욕을 고취하는 일은 리더가 해줘야 하는 일이다.

그 밖에도 능력이 보이는 직원들에게는 항상 동기부여를 해주고 커리어 패스를 제시해주려 노력했다. 보통은 설계사로 입사하면 계속해서 설계사만 하는데 지점장과 단장을 하던 시절에 설계사 가운데 관리자로서의 자질이 엿보이는 사람을 관리자인 지점장으로 발탁했다. “과연 제가 할 수 있는 일일까요”라며 걱정을 하던 설계사들을 칭찬하고 용기를 불어넣으며 관리직으로 키웠는데, 그렇게 발탁한 직원만 10여 명에 이르고 그들 중 일부는 단장까지 맡아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다. 나는 사람의 잠재력을 믿는 편인데 잠재력 있고 가능성 있는 직원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도 리더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많은 조직이 밀레니얼세대와의 소통에 애를 먹고 있는데 밀레니얼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는가.
나와는 다른 세대를 인정하면 되는 일이므로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다름을 인정하면 쉽다. 우리 때는 부르면 언제든지 튀어 와야 했고, 밤 12시까지 일하는 건 당연하고, 회사에서 1박2일 놀러 간다고 하면 엄청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나도 한때는 신입직원들도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웬걸 회식도 싫어하더라. 다름을 인정하고 끼리끼리 놀아야 한다. 사원은 사원끼리, 부장은 부장끼리, 임원은 임원끼리가 재밌는 법이다. 좋은 상사는 회식할 때 카드만 주고 안 오는 상사라고 하지 않나.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하는 것만 주면 되지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려 하니까 갈등이 생긴다. 다른 환경에서 자랐는데 자꾸만 나를 이해시키려 하면 ‘꼰대’가 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자유로운 소통을 꿈꾸면서도 부하직원의 솔직한 의견을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많은 리더에게 한마디 조언해준다면.
그럴 수 있다. 말로는 되는데 참 쉽지가 않다. 나의 경우, 부하직원들이 도전적으로 의견을 제기했을 때 당황스럽더라도 내가 냉정하게 그 상황을 참아냄으로써 얻는 것들을 생각했다. 리더가 구성원들의 의견을 무시하면 더 이상 아무도 위험을 무릅쓰고 발언하지 않는다. 그럼 누구 손해인가? 결국 리더의 손해다. 가감 없이 진솔한 의견을 제기할 사람을 잃는 것이다. 당황스럽더라도 그 직원이 의견을 제시하기까지 얼마나 용기를 내고 많은 준비를 했을지 먼저 생각하자. 어떠한 의견이든 무조건 진중하게 들어야 한다. 우리들의 경험이 참고가 될 수는 있지만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님을 인정하자.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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