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朝鮮: 신문고

신문고가 ‘동네북’ 된 까닭은?

252호 (2018년 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CEO가 고객 게시판에 직접 댓글을 달고 일일이 응대하는 행동, 과연 긍정적이기만 할까. CEO가 고객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는 단연 바람직하다. CEO가 고객 의견을 직접 챙기는데 밑에 직원들도 따라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CEO의 지나친 개입은 현업 부서 담당자의 동기부여를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조선시대 억울한 백성들의 ‘입’이 됐던 신문고가 ‘동네북’으로 변질돼 결국 폐기되기에 이른 원인 중 하나도 왕의 과도한 개입에서 찾을 수 있다. CEO 개입의 적정선은 어디까지일까? 신문고 케이스를 통해 그 지혜를 얻어가길 바란다.



최근 논란에 휩싸인 재벌그룹 회장은 평소 회사 인트라넷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 자주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고객이 불만을 표시한 직원에 대해 직접 징계를 지시하기도 했다. 고객의 서비스 만족을 위해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섰다니 얼핏 훌륭한 조치같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과연 긍정적인 효과만 발휘할까?

이와 관련해 조선시대 신문고(申聞鼓) 사례를 살펴보자.1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문고는 백성이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겪었을 때 북을 쳐서 사정을 이야기하도록 한 제도다. 요즘으로 말하면 국민제안과 민원, 청원을 합쳐놓은 셈이다. 태종은 신문고를 설치하며 “정치의 잘잘못과 민생의 휴척(休戚) 2 에 대해 아뢰고자 하는 자로, 의정부에 글을 올렸으나 위로 전달되지 않았다면 즉시 와서 북을 쳐라. 말이 쓸 만하면 바로 채택해 받아들이고 설령 말이 맞지 않더라도 용서할 것이다. 억울함을 해소하지 못해 이를 호소하고자 하는 자로 서울에서는 주무 관청에, 지방에서는 수령이나 감사에게 글을 올렸으나 처리되지 않았다면 사헌부로 오라. 사헌부에서도 다스려주지 않았을 경우 즉시 와서 북을 쳐라. 원통함과 억울함을 명확하게 밝혀줄 것이다”3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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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의 장단점
취지만 놓고 본다면 신문고는 훌륭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고통받는 백성, 행정과 사법의 정당한 보호를 받지 못한 백성을 위해 통치자인 왕이 직접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문고를 치면 왕이 그 사연을 청취해준다는 것은 실제로 왕이 청을 들어줬는지, 백성의 바람대로 문제가 해결됐는지 여부를 떠나서 그 자체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우선 중간담당자(민원인이 속한 고을수령, 해당 사안의 소관 관청 등)가 긴장한다. 잘못했다가는 왕으로부터 문책을 받을 수 있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잘 처리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태종대의 영의정 하륜은 “관리가 백성의 송사를 결단함에 있어 상총(上聰) 4 에 아뢸까 두려워해 마음을 다해 세밀히 살피기 때문에 백성이 그 복을 받으니, 신문고는 실로 자손 만세의 좋은 법입니다”라고 했다. 5 다음으로 왕이 검토를 지시하면 아래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마련이다. 사안을 꼼꼼하게 살피고 민원인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놓기 위해 애쓴다. 고을수령이 처리해줬을 때와 왕이 처리해줬을 때는 결과뿐 아니라 처리 속도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신문고의 장점을 함부로 이용하려 드는 사람도 많았다. 사헌부 관리와 폭력 충돌을 벌인 갑사(甲士) 6 가 상대방을 비난하고자 신문고를 쳤고, 7 승진시켜달라며 신문고를 친 사람도 있었다. 8 나라에서 시행하는 정책이 자신의 이익을 침해한다며 신문고를 두드리는 경우도 잦았다. 9 다른 사람을 무고하거나 허위사실을 주장하는 사람도 빈번하게 출현했다.

이에 세종 4년, 조정은 신문고에 대한 규정을 정비한다. 10 신문고는 원래 1)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은 민원인 2) 중간 단계에서 민원을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는 담당자 3) 무고, 허위사실을 고한 사람을 엄중히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이 중 1), 3)번은 시행되고 있으나 2)번에 대한 문책은 이뤄지지 않았다. 형조는 “백성의 요청을 살펴 다스리지 않는 관리에게 그 죄를 묻지 않으니 이로 인해 마땅히 접수해 처리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이 소장(訴狀)을 살피지 않고 물리친 탓에 백성들이 난잡하게 북을 두드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라며 담당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고 주청했고 세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신문고의 오남용 원인이 중간담당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성이 신문고를 함부로 치더라도 죄를 묻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는 조건(자신이나 직계가족의 일, 종묘사직이나 사람의 목숨과 관련한 일 등)과 절차(반드시 중간단계를 거쳐야 함)를 지키지 않을 경우 해당 민원인을 처벌해왔다. 이렇게 되면 “호소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도 법이 두려워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또 어리석은 사람은 처벌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법을 위반하게 될 것이다” 11 고 세종은 판단했다.

하지만 세종의 조치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신문고를 남용하는 사례가 갈수록 더 늘어난 것이다. 사헌부에서는 다음과 같이 상소했다. “거짓 무고하는 자와 망령되이 고하는 자, 단계를 거치지 않고 소청하는 자를 모두 그대로 두고 죄를 묻지 않으니 마음에 조금만 불만이 있어도 신문고를 치겠다고 나섭니다. 올바르게 판결한 것도 자신의 뜻에 배치된다고 해 신문고를 치고, 미결된 것도 기결됐다며 신문고를 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작고 더러운 사소한 일들까지 신문고로 가져옵니다. 이로 인해 전하를 번잡하게 하고 소송이 복잡하게 불어났으며 풍속이 가벼워지고 있으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2 결국 세조대에 이르러 신문고에 대한 규제는 다시 강화됐고, 13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고는 아예 폐지됐다. 성종과 영정조 대에 일시 복구돼 운용됐지만 유명무실했다.

지나친 개입이 가져오는 문제점
신문고 자체의 훌륭한 목적, 왕들의 선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신문고가 이처럼 혼탁해진 것은 무엇보다 왕이 직접 일선 업무에 개입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물론 왕의 개입 자체가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백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이 한 사람이라도 없게 하는 것은 왕의 당연한 의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백성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올바르게 일을 처리해주고, 또 그런 일을 당한 백성을 살펴 구제해주는 것은 일선 관리의 업무다. 각 고을, 감영(監營), 소관 관청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백성이 애초에 신문고를 찾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왕은 관리와 관청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왕이 일일이 민원에 관여하는 것도 문제다. 최고권력자가 직접 민원을 해결해주면 너도나도 그 앞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하소연할 데가 왕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제일 높은 사람이 지시하면 일이 더 잘 해결될 것 같아서 왕에게 온다. 관청이 민원을 받아들여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왕이 다뤄주면 더 신속할 것 같아서 왕을 찾는다. 일선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일까지 말이다. 이렇게 되면 중간에 있는 관리들은 손을 놓고 왕의 눈치 만보게 된다. 어차피 임금이 결정해 줄 테니 그저 기다렸다가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다. 능동적으로 일을 처리해줬다가 불만을 품은 민원인이 신문고를 치면 괜히 잘못했다고 처벌받게 될 수 있으니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어진다.

물론 신문고를 매개로 왕이 백성을 만나 그의 사연을 청취하는 것은 공직사회에 긍정적인 긴장을 불러온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거나 부패한 관리로부터 피해를 입은 백성에게 신문고는 마지막 희망이었을 것이다. 다만 역할이 과도해지면서 득 못지않게 실 또한 커졌다는 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조선에서 신문고를 둘러싼 논의는 백성이 자유롭게 신문고를 칠 수 있도록 허용하느냐, 아니면 칠 수 있는 요건을 엄히 규제하느냐에 맞춰져 있었다. 이는 초점을 잘못 잡은 것이다.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함부로 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라고 하더라도 위민(爲民)이 국가의 근본방침인 이상 ‘자율’을 폐기할 수가 없다. 결론을 내기 힘든 문제다. 따라서 대신 민원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일선 관리들을 격려하고, 이들이 백성의 일을 올바르면서도 능동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도록 유인하는 기제를 만드는 데 힘써야 했다. 이를 통해서 신문고에 대한 백성의 수요를 줄여가야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당시에는 이런 노력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백성의 소청을 받아주지 않고 백성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관리를 엄히 문책하자는 논의가 있기는 했지만 처벌 위주의 네거티브한 방식으로는 문화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

최고 권력자의 지나친 개입을 지양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문고의 교훈은 오늘날 기업에도 시사점을 준다. 서두에서 소개한 사례로 돌아가 보자. 최고경영자가 고객의 불만사항을 확인하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다만 직접 시시콜콜하게 댓글을 달고 담당자의 징계를 지시하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객의 불만이 접수되면 매뉴얼대로 처리하고 절차와 규정에 따라 잘잘못을 판단하면 될 일이다. 그러지 않고 최고경영자가 빈번히 개입하게 되면 담당자, 담당부처는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윗사람의 처분만 기다리게 된다. 시스템이 무시되고 최고경영자 개인의 주관에 따라 업무가 처리된다. 게다가 현장 상황을 모르고 서류로만 판단한 최고경영자의 결정이 옳다는 보장도 없다. 물론 ‘최고경영자가 고객 불만사항을 항상 확인하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인지시키는 것은 도움이 된다. 긴장한 임직원들이 신속하고 최선을 다해 해당 업무를 처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의 개입은 그러한 긴장을 줄 수 있을 정도, 딱 그만큼이면 충분하다.

필자소개
김준태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akademie@skku.edu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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