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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Insight from Biology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못하면 화려한 봄꽃을 피울 수 없다

이일하 | 198호 (2016년 4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꽃피는 시기를 결정하는 환경요인은 온도와 광주기(光週期). 대개 봄에 꽃피는 식물은 고온장일(高溫長日) 조건하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적어도 늦봄에 꽃피는 식물은 그렇다. 그러나 이른 봄에 피는 꽃, 즉 풍년화, 매화, 개나리, 진달래 등은 저온단일(低溫短日) 조건하에서 꽃을 피운다. , 늦가을에 꽃봉오리를 만들고, 새싹을 품은 겨울눈과 함께 혹독한 겨울 추위를 고스란히 견뎌낸 후 비로소 다음 해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후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는 이른 봄꽃들은 요즘처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 모두가 귀감으로 삼을 만한 표본인 듯하다.

 

식물은 어떻게 계절을 칼같이 알아내어 꽃을 피우는 걸까? 식물이 계절을 인식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식물은 우리 인간들처럼 달력을 들여다볼 재주는 없다. 하지만 아주 예민한 환경 감지기를 가지고 있어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세밀한 환경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이 있다. 꽃피는 시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환경요인은 온도와 빛인데 이들을 인지하는 감지기를 식물이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 감지기는 상당히 복잡한 유전자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이 때문에 이들 감지기를 과학자들이 찾아내는 데 무려 10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조금 딱딱해질 수 있지만 꽃피는 기작의 발견 과정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느꼈을유레카의 희열들을 같이 음미해보자.

 

 

온도 감지기의 인식

 

꽃피는 시기를 결정하는 환경 요인으로 아주 일치감치 알려진 요인 중 하나가 겨울 저온이다. 많은 식물들이 겨울 저온을 거쳐야 다음 해 봄에 꽃을 피울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겨울종의 밀과 보리다. 겨울종 밀은 따뜻한 온실에서 계속 키우면 아예 꽃이 피지 못한다. 꽃이 피지 못하면 당연히 밀알을 얻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특히 추운 겨울을 나는 러시아에서 겨울종 밀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1920년대 러시아 과학자들은 겨울저온에 의한 개화유도 현상을춘화처리(vernalization, 작물의 개화를 유도하기 위해 생육 기간 중 일정 시기에 저온처리를 하는 것)’라고 명명하고 춘화처리가 필요 없는 여름종 밀과 비교해 한두 개의 유전자 작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당시의 과학 기술로는 온도 감지기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낼 도리는 없었고, 겨울 저온이라는 온도를 감지하는 능력이 식물에 있음을 알아낸 정도의 성과를 얻은 것이다.

 

당시로선 이러한 성과도 큰 발견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발견은 곧 구소련의 식물생리학자 라이센코 박사를 일약 세계적 스타 과학자로 발돋움하게 했고, 심지어 그를 공산주의 사회혁명의 구국투사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겨울 저온이라는 환경요인이 겨울종 밀의 생리적 상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꽃이 필 수 없던 식물을 꽃이 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인간 또한 사상적 개조를 통해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공산주의 철학에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라이센코 박사는 춘화처리 효과에서 얻은 자신의 경험을 무한 확장시켜 모든 생명현상이 적절한 환경조건에 의해 개량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게 된다. 적어도 구소련 체제하에서는 이 패러다임이 모든 생물학자들에게 우격다짐으로 강요돼1 소련 생물학의 엄청난 퇴보를 가져오게 만든다. 환경에 의해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은 매우 특별한 생명 현상으로 이를 후생유전학2 이라 하는데, 최근에야 그 분자적 기작이 밝혀지고 있다. DNA가 유전자의 화학적 본질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당시의 과학 기술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작이다.

 

저온 감지기의 발견

 

겨울 저온을 인식해 봄에 개화를 할 수 있게 만드는 후생유전학적 연구기작은 필자의 박사 과정 지도교수였던 리처드 아마시노 교수와 지도학생이었던 성시범 박사가 2004 <네이처>에 발표했다. 추운 겨울을 지내야만 꽃을 피우는 식물의 경우 대개 FLC(Flowering Locus C)라는 유전자가 일정량 발현을 지속하면서 해당 식물이 저온 처리를 받기 전까지 개화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아미시노 교수와 성시범 박사는 이와 관련해 ‘VIN3(Vernalization Insensitive 3)’라는 유전자가 겨울 저온 동안에 유전자 발현양이 천천히 늘어나면서 FLC의 스위치를 완전히 꺼버리는 기작을 밝혀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VIN3 유전자는 춘화처리를 인지하는 유전자가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분자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단순히 며칠간의 저온에 의해서는 유전자 발현이 되지 않고 장기간의 겨울 저온을 거쳐야만 서서히 발현된다. 실제 저온 처리만으로는 개화가 촉진되지 않고 장기간의 겨울 저온이 와야 개화가 촉진되는 식물의 생리적 반응과 잘 부합하는 특성이다. 또한 VIN3 유전자가 망가진 돌연변이체는 FLC의 발현을 억제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춘화처리 반응이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춘화처리 기작에 작용하는 유전자는 식물마다 많이 다르다. 최근에 밝혀진 밀과 보리의 춘화처리를 담당하는 유전자는 위에서 언급한 VIN3, FLC와는 다르다. 지구상의 서로 다른 위치에서 독립적으로 춘화처리 기작이 진화돼왔기 때문에 식물마다 사용하는 유전자가 다른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춘화처리가 진행되는 원리는 유사하다. , FLC처럼 개화를 억제하는 유전자가 꽃이 피지 못하게 막고 있고, 춘화처리가 진행되면서 VIN3와 같은 기능을 하는 유전자들이 작동하면서 개화억제 유전자가 후생유전학적인 방법으로 발현이 꺼진 상태가 된다. 그렇게 되면 다음 해 봄에 적절한 환경조건하에서 꽃이 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빛 감지기의 인식

 

식물이 계절을 인식하는 또 다른 중요한 환경요인으로 빛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하루 중 낮의 길이, 즉 광주기(光週期)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따지고보면 사계절 중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건 온도보다는 광주기에서 더 두드러진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면서 낮의 길이는 점점 더 길어지고 반대로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면서 낮의 길이는 점점 짧아진다. 식물은 이러한 규칙적 환경변화를 꽃피는 시기를 결정하는 환경 신호로 이용한다.

 

광주기가 식물의 개화시기 결정에 중요하다는 사실은 우연히 발견됐다. 1920년대 미국의 농무성 산하 메릴랜드연구소에 근무하던 가너 박사와 앨러드 박사는 당시 인기 연구재료였던 담배를 가지고 다양한 생리적 특성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손에 얻은메릴랜드 매머드 담배라는 자연발생적 돌연변이 담배에서 매우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이 담배는 꽃이 피지 않아서 엄청난 크기로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왜 매머드 담배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사진을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나무처럼 자라는 담배다.

 

 

가너와 앨러드는 이 메릴랜드 매머드 담배를 온실에서 재배했다. 그런데 이 담배가 천장을 뚫을 정도로 크게 자랐는데도 도무지 꽃을 피울 생각을 하지 않아 할 수 없이 바깥 들판에 내다버렸다. 그런데 며칠 지나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가너 박사는 매머드 담배가 꽃을 피우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때는 초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였다. 가너와 앨러드 박사는 왜 온실에서는 꽃이 피지 못하고 야외 들판에서 꽃이 피었을까를 고민하던 중 광주기가 짧은 초겨울 환경이 꽃을 피우게 하는 원인이었음을 밝혀내게 된다. 온실 속에서는 밤늦게까지 인공조명을 비추면서 식물을 키우기 때문에 광주기가 긴 환경이라 꽃이 피지 못했던 것이다.

 

가너와 앨러드 박사의 이 연구 결과는 1920년에 발표됐다. 이후 전 세계 과학자들이 너도나도 앞다퉈 자신이 키우는 식물은 어떤 광주기 조건하에 꽃을 피우는지 확인하게 됐다. 그 결과 어떤 식물은 매머드 담배처럼짧은 광주기(전문용어로 단일조건)’하에서 꽃이 피고, 어떤 식물은긴 광주기(장일조건)’에서 꽃을 피우는가 하면, 또 어떤 식물은 광주기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식물은 장일식물, 단일식물, 중일식물이라고 분류되고 있다.3  이러한 실험 결과는 식물생리학자들로 하여금 직관적으로 식물이 광주기를 인식하는 감지기가 있음을 알게 했다.

 

광주기 감지기의 발견

 

광주기를 인지하는 기작은 다소 복잡하다. 광주기는 단일한 물리적 인자가 아니라 두 가지, 주기라는 두 가지 물리적 인자가 결합된 복합적 환경 요인이기 때문이다.

 

우선을 인지하는 광수용체는 1970년대 일치감치 밝혀졌다. 특히 식물의 개화시기를 결정하는 광주기라는 환경을 인식하는 광수용체는 피토크롬이라 불리는 식물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광수용체다. 우리 인간이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이유는 로돕신이라는 광수용체가 눈동자 속에 있기 때문이듯이, 식물이 광주기의 빛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피토크롬이라는 광수용체가 필요하다. 이 피토크롬에 대한 연구가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활발하게 이뤄져 그 물리 화학적 특성이 비교적 소상하게 밝혀졌다.

 

광주기의 또 다른 물리적 인자인주기는 일반인들도 많이 들어봤을 생물학적 시계와 관련이 있다.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동물이건 식물이건, 심지어 세균들조차도 생물학적 시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지구의 반대편 유럽이나 미국으로 여행을 가면 처음 며칠 동안 시차 때문에 상당한 고생을 하게 된다. 이는 우리 몸에 내재된 생물학적 시계 때문이다. 여행을 가게 되면 그곳의 물리적 시간과 우리 몸의 생물학적 시간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낮에 졸리고 밤에 멀뚱멀뚱해지는 시차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식물은 내재된 생물학적 시계를 이용해 하루 중 낮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측정하게 된다.

 

광을 인지하는 피토크롬의 작용과 생물학적 시계의 조합이 결국 모든 식물로 하여금 광주기를 감지하게 만든다. 이후 적절한 광주기에 따라 개화 시기가 결정되는 유전자 조합이 2007년 밝혀지면서 개화시기를 결정하는 광주기의 감지기가 온전히 발견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발견은 1930년대부터 식물에 존재한다고 제안됐던 개화유도 호르몬플로리겐의 정체다. 그 호르몬의 이름은 참 멋없게도 FT라고 붙여졌다. 꽤 오래전 1991년에 네덜란드 와게닝겐대의 코니프 박사가 개화가 지연되는 애기장대 돌연변이체를 대량으로 선별해 논문으로 보고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선별된 돌연변이체가 너무 많아 개화(flowering)를 뜻하는 F A, B, C, D 하고 일련번호를 붙인 게 이들 유전자의 이름이 됐다. FT는 그 유전자들 중 하나로 오랫동안 분자유전학자들이 생리학적, 분자적 특성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인데 2007년에 이것이 개화호르몬으로 작동한다는 실험적 증거들이 밝혀졌다. 다만, 이 유전자에 플로리겐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전 세계 많은 과학자들이 FT가 플로리겐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FT가 적어도 플로리겐의 한 부품일 것이라 믿는다.

 

가을에 만들어지는 봄꽃

 

꽃피는 시기를 결정하는 환경요인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온도와 광주기다. 대개 봄에 꽃피는 식물은 장일조건하에서 온도가 따뜻해져 대사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꽃을 피우게 된다. 적어도 늦봄에 꽃피는 식물은 그렇다. 그러나 이른 봄에 피는 꽃, 앞에서 언급한 풍년화는 말할 것도 없고 매화, 개나리, 진달래조차도 장일조건과 따뜻한 온도와는 거리가 먼 환경조건에서 꽃이 핀다. 아직 채 낮이 길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따뜻하지도 않은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른 봄에 꽃이 피는 식물들은 실은 꽃봉오리를 지난 해 늦가을에 만들어둔 것이다. 이들의 개화 시기는 엄밀하게 생리학적으로 말하면 이른 봄이 아니고 늦가을이며, 이들의 개화유도는 단일조건과 낮은 온도하에서 진행된다.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의 시작을 알려주는 이른 봄꽃들이 늦가을에 꽃봉오리를 만들고, 새싹을 품은 겨울눈과 함께 혹독한 겨울 추위를 고스란히 견뎌낸 후, 비로소 다음 해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4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후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는 이른 봄꽃들은, 요즘처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 모두가 귀감으로 삼을 만한 표본인 듯하다.

 

 

이일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ilhalee@snu.ac.kr

 

필자는 서울대 식물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0여 년간 꽃을 공부해 온 과학자로 1993년 개화유전자 루미니디펜던스를 찾아내는 등 개화 유도 분야의 선구자로서 명성을 굳혀오고 있다. 저서로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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