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태국에서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미국의 공화당 대선 주자 경쟁에선 여성 의원 미셸 바크먼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바야흐로 ‘마담 프레지던트’ 시대가 열리고 있다.
흔히 여성 지도자들의 리더십은 남성보다 더 남성 같은 스타일과 특유의 여성성을 강조한 유형으로 대별된다. ‘철(鐵)의 여인’으로 불리는 대처 전 영국 총리나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전자에 속한다. 이들의 특징은 권위적 리더십, 과감한 결단력이다. 올초 브라질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한 호세프도 비슷하다. 군사 정부에 대항한 게릴라 여전사 출신인 그는 에너지장관 재직시절 ‘불도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반면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의 리더십은 친근한 ‘이웃집 아줌마’ 스타일.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친화력이 무기다.
비즈니스 세계에선 HP의 수장이었던 칼리 피오리나와 e베이의 CEO였던 멕 휘트먼이 양 극단에 서있다. 피오리나는 남성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휘트먼은 개방적이고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둘 중 어떤 스타일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매사 전투적으로 일처리를 했던 피오리나가 컴팩 합병 후 실적 부진 등의 이유로 2005년 HP를 떠난 후에도 휘트먼은 e베이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하자 세간에선 “엄마(mommy)가 아마조네스(Amazones)를 이겼다”고까지 평했다. 그러나 휘트먼식 리더십은 인터넷 기업에서나 통하는 스타일이지 모든 산업, 모든 기업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창의성과 암묵지(tacit knowledge)가 중시되는 21세기 지식 경제에선 권위주의적 리더십보다 민주적 리더십이 더 각광받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다 관계 지향적이며 소통과 친화에 능한 여성적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여성 리더십의 권위자인 샐리 헬게센은 그의 저서 <여성의 장점(The Female Advantage)>에서 ‘포용의 거미줄(the web of inclusion)’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헬게센은 성공한 여성 리더들이 이끄는 조직에선 상명하달(top-down)식 위계적(hierarchical) 체계를 찾아보기 힘들고, 리더는 마치 거미처럼 중심에서 주변으로 끊임없이 순환(circular in structure and led from the center)하며 거미줄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설파했다. 이때 리더는 강제적 방법이 아닌 조직 구성원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활용한다. 따라서 조직의 중심과 주변은 균형과 조화가 중시되는 관계지향적 특징을 갖게 된다.
세계적으로 4500만 부 이상 팔린 아동문학의 고전 <샬롯의 거미줄(Charlotte’s Web)>에서도 흥미로운 통찰이 나온다. E. B. 화이트가 1952년 펴낸 이 작품은 병약한 새끼 돼지 윌버와 거미 샬롯 사이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다. 도축될 위기에 처한 윌버를 구하기 위해 샬롯이 자기 몸에서 거미줄을 자아내 ‘some pig(멋진 돼지)’ 등의 글자를 써내고 그 덕에 윌버는 목숨을 건지며 일약 ‘스타 돼지’로까지 떠오른다는 게 주 내용이다.
화이트는 자신의 능력을 자양분으로 삼아 다른 이들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샬롯을 통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소통, 협력, 헌신, 희생의 가치를 감동적으로 전했다. 하찮은 미물이자 암컷 거미인 샬롯은 조직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폄하돼 유리 천장에 가로막혀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벌레를 잡기 위한 살상용 거미줄을 구원의 그물망으로 사용한 샬롯의 창의성, 도축장에서 생을 마감할 뻔했던 윌버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돼지로 만들어낸 샬롯의 멘토링 능력이야말로 남녀를 막론하고 오늘날 모든 리더들이 갖춰야 할 자질이 아닐까
필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올리버 와이만에서 글로벌화 및 경쟁전략 수립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방실smile@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