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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하나로 나폴레옹 사로잡은 조미니

임용한 | 33호 (2009년 5월 Issue 2)
앙리 조미니(1779∼1869)는 <전쟁론>을 저술한 독일의 클라우제비츠와 함께 근대 군사 이론의 창시자로 꼽힌다. 그는 이론가로나 장군으로나 클라우제비츠보다 훨씬 성공했지만 오히려 덜 유명하다. 조미니는 스위스 사람이다. 19세에 스위스군에 입대해 여단장까지 올랐다. 그는 1801년부터 4년간 프리드리히 2세의 전술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글이 나폴레옹의 눈에 띄었다. 조미니의 재능을 간파한 나폴레옹은 그를 대령으로 발탁했다. 

 

 

나폴레옹의 눈에 띄기 전에 조미니는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을 연구해 그의 전술 원리를 분석하기도 했다. 조미니는 현장을 보지 않은 채 오직 신문 기사와 논문들만 분석해 나폴레옹의 전술을 규명했다. 나폴레옹은 이 논문을 읽고 “내가 매일 부하 장군들과 함께 싸우며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는 원리를 이 친구가 알아냈다”고 말했다.
 
조미니는 나폴레옹 휘하에서 유명한 아우스터리츠 전투에 참전했다. 예나와 아일라우 전투 및 스페인 원정에도 참전하는 등 실전과 군대 운영 실무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 물론 그의 역할은 대부분 전투 지휘관이 아닌 참모장이었다. 그는 남작 작위를 받았고, 나폴레옹의 부하 중 서열 1위였던 네이 원수의 참모장으로 승진했다.
 
나폴레옹의 교만
그런데 조미니의 출세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아우스터리츠의 승전 이후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변해갔다. 후기의 나폴레옹은 조미니처럼 자기 전술의 본질을 꿰뚫고 행동을 예측하는 장군보다 약간 멍청한 장군을 좋아했다는 설도 있다. 나폴레옹 자신의 말처럼 그의 부하들은 점차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규모의 부대를 지휘해야 했다. 부하들이 전장에서 갈팡질팡하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나폴레옹이 나타나 신속하게 상황을 역전시키고, 멋진 명언을 한마디 남긴다. 그 말은 그림자처럼 그를 수행하는 비서와 종군기자에 의해 빠짐없이 기록됐다. 그리고 다음 날 즉시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렇게 해서 나폴레옹 신화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나폴레옹은 이 멋진 메커니즘을 마음껏 즐겼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나폴레옹의 참모부는 점차 아둔한 장군과 예스맨으로 채워졌다. 세력을 얻은 그들은 조미니와 같은 천재들을 조직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조미니는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교만하고 허영심이 강한 전형적 천재였다. 게다가 그는 스위스 사람이라 프랑스와 러시아 군대 양쪽에 복무할 수 있었다.
 
1813년 조미니는 평소부터 그를 시기하던 베르티에 참모장의 모함에 빠져 체포됐다. 보고서를 늦게 제출했다는 다소 어이없는 죄목이었다. 나폴레옹 휘하에서 희망을 잃은 이 스위스인은 프랑스를 완전히 떠나 러시아로 갔다. 러시아 황제의 총애를 받아 4성 장군이 됐고, 사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러시아군의 근대화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몰락할 당시에는 프랑스와의 의리를 생각해 프랑스군과의 전투에는 참전을 거부했다고 한다. 조미니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 최고의 명저가 1838년에 출간된 <전쟁술>이다.
 
나폴레옹은 몰락했지만, 나폴레옹의 전술에 열광했던 세계의 군사학도들은 조미니의 저술을 반겼다. 조미니가 나폴레옹의 전술을 완벽하게 분석, 정리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오늘날까지도 조미니는 나폴레옹 전술의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얼마 후 이 기대는 상당한 실망으로 바뀌고 만다. 조미니가 <전쟁술>에서 추구했던 과제는 나폴레옹 전술의 해설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새롭고 충격적인 나폴레옹의 전술 속에서 전쟁의 기본 원리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가 추구하고 설명하려고 했던 내용이 구체적인 지침이 아니라 ‘원리’였다는 점이다. 물론 도강 작전 실행법, 숙영지 건설 방법과 같은 실전형 지침들도 있다. 하지만 조미니가 근본적으로 추구했던 과제는 주어진 현장에서 지휘관이 적절하고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원리였다.
 
수학과 인문학의 통찰 결합
간단한 예를 보자. 조미니는 ‘적진과 150m 거리까지는 시속 4km 속도로 전진하고, 150m 선을 넘어서는 시속 15km의 속보로 돌격한다’고 서술했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단 메시지와 결론이 분명하니 무언가를 배운 듯한 느낌이 들고, 마음도 편하다. 하지만 실전 상황에서 이런 교과서적 지식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범대로 행동하면 상대가 아군의 행동을 쉽게 예측하기 때문이다. 현장과도 맞지 않는다. 지형과 상황에 따라 이 수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지휘관은 어떻게 적절한 거리와 속도를 산정할 수 있을까? 고정된 결론 대신 수학 공식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공식을 제공한다면 어떨까? 모든 지휘관은 그 공식에 현장의 수치를 대입해 적절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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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용한

    임용한yhkmyy@hanmail.net

    - (현)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의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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