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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前 고요(皐陶), 리더를 논하다

김영수 | 28호 (2009년 3월 Issue 1)
세계 최초의 리더십 이론가
4000년 전 순(舜) 임금이 치수사업을 성공시킨 우(禹)를 후계자로 지명하는 자리에서 리더십과 팔로어십(followership)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서슴지 않았던 고요(皐陶)는 세계 최초의 리더십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순 임금이 신하의 팔로어십을 전제로 한 리더십을 거론하자 고요는 ‘진실한 리더십 없이는 팔로어십도 없다’는 말로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그는 법도(法度)를 준수하고 현명한 판단력으로 비전과 이상을 제시하는 바람직한 리더상을 주문했다. 이는 오늘날 리더십 이론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참신하다. (DBR 27호 참조)
 
고요는 요·순 시대 인물로 구요(咎繇)라고도 전해진다. 순 임금 때 형정(刑政)을 주관하는 사(士, 사법부의 수장과 같은 자리)에 임명됐으며, 순을 계승한 우를 보좌하면서 큰 치적을 남겼다. 우는 고요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으나 고요가 먼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했다. 오늘날 중국의 고(皐) 씨들은 모두 자신의 조상을 고요로 여기고 있다.
 
고요에 관한 기록은 중국 역사서의 시초로 불리는 ‘서(書)’(상서 또는 서경)의 첫 편 ‘우서(虞書)’ 제4 ‘고요모(皐陶謨)’가 원전이다. 사기(史記)의 ‘하본기’는 고요모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고요의 구덕(九德)론
고요는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로 ‘구덕(九德)’론을 제시한다. 구덕은 리더의 자질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모든 유형의 리더십을 정의할 정도로 논리가 정교하다.
 
먼저 구덕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숫자 ‘9’는 동양 사회에서 더 이상 갈 데 없는 ‘극수(極數)’로, 완벽한 수를 의미한다. 정치적으로는 최고 통치자인 천자를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고대의 천자들이 아홉 개의 큰 세발솥, 즉 ‘구정(九鼎)’을 주조해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기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주서(逸周書)’라고 하는 고서의 상훈(常訓) 편에서는 ‘구덕’의 항목으로 충(忠·충성), 신(信·믿음), 경(敬·공경), 강(剛·굳셈), 유(柔·부드러움), 화(和·화목), 고(固·한결같음) 정(貞·곧음), 순(順·따름)을 꼽고 있다. 고요의 ‘구덕론’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는 항목들이다.
 
고요가 제시하는 ‘구덕론’을 원문과 함께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관이율(寬而栗): 너그러우면서 엄격함.
2. 유이립(柔而立): 부드러우면서 주관이 뚜렷함.
3. 원이공(愿而共): 사람과 잘 지내면서 장중함.
4. 치이경(治而敬): 나라를 다스릴 재능이 있으면서 신중함.
5. 요이의(擾而毅): 순종하면서 내면은 견고함.(확고함)
6. 직이온(直而溫): 정직하면서 온화함.
7. 간이염(簡而廉): 간결하면서 구차하지 않음.(자질구레한 일에 매이지 않음.)
8. 강이실(剛而實): 굳세면서 착실함.
9. 강이의(强而義): 강하면서 도의를 지킴.
 
고요는 이 구덕을 꾸준히, 제대로 실천하면 모든 일이 잘 처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경대부(卿大夫) 급, 기업으로 말하면 중소기업 리더급이 9가지 가운데 3가지를 신중하게 노력하고 실천하면 자신의 영지(기업)를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제후(대기업)가 6가지를 실천하면 그 나라를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고, 천자(나라)가 9가지 모두를 종합하여 두루두루 시행하면 나라의 틀이 바로 잡힌다고 말했다.
 
고요의 지적을 달리 풀이하면 9가지 항목 가운데 3가지만 제대로 실천해도 작은 기업 정도는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고, 6가지를 실천하면 대기업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으며, 9가지를 모두 실천하면 한 나라를 바르게 통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리더십의 덕목과 리더의 크기가 갖는 상관관계를 언급한 대목이다.
 
구덕론의 현대적 의의
고요는 리더십 대논쟁에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자 통치의 요체로 ‘지인(知人)’과 ‘안민(安民)’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우는 “요 임금도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라며 고요의 의견에 토를 달았다. 그러자 고요는 그 경지를 실천할 수 있는 실천 논리로 9가지 리더십 항목을 제시하는 구덕론을 설파했다.
 
이 논리는 살펴본 바와 같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입체적이다. 특히 접속사인 ‘이(而)’를 사이에 두고 두 글자가 역접 관계로 서로 대응하거나 순접 관계로 상호 보완하는 절묘한 안배가 돋보인다. ‘이(而)’는 영어 ‘and’나 ‘or’의 의미인 동시에 ‘but’의 의미도 내포하는 접속사로, 각각의 항목이 갖고 있는 미묘한 어감을 복합적으로 전달한다. 이는 ‘구덕론’의 가변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아홉 항목이 모두 크로스 체크의 관계를 갖는다는 의미다.
 
요컨대 아홉 항목이 서로 어울릴 때 훨씬 다양하고 입체적인 리더나 리더십 유형이 추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첫 항목의 ‘너그러우면서 엄격함’은 ‘너그러우면서도 엄격함’으로도 이해될 수 있고, ‘너그럽지만 엄격함’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항목이 두 번째 항목인 ‘부드러우면서 주관이 뚜렷함’과 어울리면 훨씬 구체적인 리더의 유형이 나타난다. 이렇게 조합하면 우리가 제시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리더와 리더십이 추출된다.
 
고요도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3가지를 실천하는 단계의 리더와 6가지를 실천할 수 있는 단계의 리더, 9가지를 모두 종합하고 보편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차원의 리더를 나누어 보여 주었다.
 
우도 이처럼 정교하고 구체적인 고요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는 “당신의 이론을 실천으로 옮겨 공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요는 “어떻게 하면 ‘도덕 정치’를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구덕론을 제시했다”고 응답했다. 고요는 리더의 최고 덕목이자 궁극적 지향점으로 ‘도덕’을 염두에 두고 그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구덕론이라는 리더십 항목을 펼쳐 보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오늘날의 리더들에게 더욱 절박하게 요구되는 항목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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