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권위는 줄고 책임과 성과 압박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리더가 되길 기피하는 ‘리더 포비아’가 나날이 심해지고 리더의 번아웃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중간관리자 이상 국내 리더 4명 중 1명은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다고 응답할 정도다. 번아웃의 근본 원인은 업무량 자체보다는 업무의 모호함과 이로 인한 감정 소진에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일의 의미와 조직의 목표를 연계하고 자신의 일이 어떻게 조직 성과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즉 조직의 ‘우리다움’과 리더 개인의 ‘나다움’이 연결될 때 지속가능한 리더십이 가능하다. 아울러 리더 개인 차원에서 번아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타인의 과오에 지나치게 너그러워지기보다는 자신의 중심을 지키면서 신념을 추구해야 한다.
편집자주 | 이 아티클에 활용된 ‘2025 리더 번아웃 리포트’ 전문은 업피플 블로그(https://up-people.com/blog/leader-burnout-report)를 통해 받을 수 있습니다.
리더포비아에서 번아웃까지:현대 리더십의 그림자“우리 회사 사람들은 리더가 되기를 꺼려요.”
최근 이런 이야기를 듣는 일이 부쩍 늘었다. 영국과 캐나다 Z세대의 52% 이상이 중간관리자가 되기를 원치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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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MZ세대의 50% 이상이 임원급으로 승진에 대한 야망이 없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DDI 글로벌 리더십 전망 2025(Global Leadership Forecast 2025) 보고서는 주요 트렌드로 ‘언보싱(Unbossing, 탈보스화)’을 언급하며 미래 리더십 파이프라인의 약화를 조직의 핵심 우려 사항으로 꼽기도 했다. 언보싱이란 전통적인 지시나 위계 중심의 리더십이 약해지고 리더의 역할이 자율과 지원 중심으로 바뀌는 흐름을 가리키는데 이렇게 권위는 점점 줄어들지만 책임이나 성과 압박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리더가 되려는 의욕이 꺾이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리더 포비아(Leader Phobia)’ 현상이다. 리더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에 대한 걱정, 책임에 대한 불안, 인간적 부담으로 리더십 역할을 꺼리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불확실한 경제 상황과 높은 성과 압박 속에서 ‘괜히 올라갔다가 실패할 바에는 차라리 시도하지 않겠다’는 방어적 심리도 한몫하고 있다. 리더 역할이 재정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권위만 해체되고 그에 따른 리더십 개발, 후속자 양성, 시스템 재설계 등의 의식적 과정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이런 리더십 공백과 기피 현상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리더십을 회피하는 사람들의 두려움,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일까? 무엇이 리더라는 자리에 오르는 것을 그토록 불안하게 하는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리더가 번아웃을 겪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포티파이가 국내 5061명의 리더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했다. 그 결과 24.7%가 번아웃 상태였고 특히 리더의 직급을 중간관리자/고위관리자/경영진으로 분류했을 때 실무의 중심인 중간관리자의 번아웃 비율이 28.1%로 경영진(11.9%)의 두 배 이상이었다. 더욱이 번아웃 상태의 리더 4명 중 3명은 이미 이직을 알아보고 있었고 절반은 업무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실제로 번아웃군 리더의 75.5%는 ‘지난 6개월간 실제 다른 직장을 알아봤다’고 응답했고 이는 건강군 리더(54.7%)의 약 1.4배 가까운 수치였다.
이는 리더의 번아웃이 개인의 불행을 넘어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인재를 유출하게 하는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수치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현대 조직이 직면한 심각한 위기를 보여준다. 리더를 맡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막연한 불안과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리더의 자리는 실제로 높은 스트레스와 번아웃의 위험을 동반하며 이는 개인의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조직의 지속가능성까지 위협한다.
번아웃의 근본 원인그렇다면 리더 번아웃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일까.
1) 업무량이 아닌 업무의 질데이터는 이를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를 제공했다. 첫째, 번아웃의 원인은 업무량이 아니었다. ‘업무의 모호함(질적 직무 부하)’이 업무량(양적 직무 부하)보다 번아웃에 2.3배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단순히 업무 과중에 시달리기 때문이 아니라 “왜 이 일을 해야 하지?” “왜 내가 맡아야 하지?” “일의 의미가 무엇이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이 없을 때 리더는 감정의 소진을 느꼈다. 즉 관리자의 직책을 맡고 있는 자가 자신의 일이 왜 중요한지,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 모르면 방향 감각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다.
흥미로웠던 점은 분석 결과 ‘업무 고충을 상의할 상사’의 존재가 리더의 번아웃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는 리더 또한 목표와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고 표류하는 자신을 잡아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조직은 단순히 업무량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 리더들이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직속 상사나 멘토 등에게 조언을 구하고 방향을 정립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각 업무가 조직의 목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 명확히 커뮤니케이션하고 리더들이 이러한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불필요한 잡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핵심 업무의 목적과 중요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리더의 번아웃 예방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2) 진짜 자율성과 실질적인 기여감둘째, ‘진짜 자율성’이 중요하다. 진짜 자율성이란 무엇인가? 많은 회사가 재택근무나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주면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휴가, 근무 형태의 자율은 번아웃과 큰 상관성이 없었다. 분석 결과 중요한 것은 내가 스스로 업무의 방향과 페이스를 주도할 수 있는 자율성이 부여됐느냐였다. 이는 현대 조직 관리의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한다는 시사점을 준다. 표면적인 복리후생이나 유연근무제도, 하이브리드 업무 환경보다도 리더가 자신이 관할하는 업무 영역에서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을 갖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조직 목표에 기여하고 있다”는 실질적 인정과 피드백이 더 중요하다. 리더의 번아웃을 줄이는 인정/소속감 부여 방안으로 가장 효과적인 것은 단순한 긍정적 피드백, 공정한 보상이 아니라 ‘조직의 방향에 맞는 기여’였다. 리더들은 자신의 노력이 조직의 큰 그림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고 싶어 한다. 따라서 “잘했다, 수고했다”를 넘어 “당신의 이 성과가 우리 조직의 발전과 목표 달성에 기여했다”는 구체적 피드백이 리더의 불안을 낮추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사례 1 일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필자가 코칭했던 IT 회사 연구 임원의 케이스를 살펴보자. 그는 해당 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로 ‘학교에서는 만들 수 없는 실질적 임팩트’를 꿈꾸며 회사에 합류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가 맡은 연구 프로젝트와 회사의 전체적인 사업 방향성의 접점이 모호했다. 그럴듯한 논문이 나오고 여기저기 발표자로 불려 다녔지만 정작 ‘이게 우리 회사에, 우리 고객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의문이 따라다녔다. 밤새우기를 반복하던 연구실 시절보다 워라밸이나 처우는 훨씬 좋아졌지만 그는 점점 지쳐갔다.
코칭을 통해 그는 이 같은 일의 의미의 모호함이 스스로를 지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대표 및 상위 리더들과 소통하며 회사의 방향성을 파악하고 그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 방향성을 다시 설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리더급들의 고민을 이해한 조직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소통을 강화했다. 회사의 대표는 정기적인 1대1 미팅을 통해 연구 프로젝트가 회사 전체 로드맵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 또한 임원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연구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수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과감히 부여했다. 이렇게 중심을 되찾은 임원은 비즈니스와 관련성이 적고 동떨어진 프로젝트는 정리하고 회사의 성장에 직결되는 연구에 집중했다. 그러자 점점 조직 내부에서 연구직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원래는 돈 먹는 하마, 비싼 ‘비용 센터’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점차 회사의 성공을 이끌 ‘핵심 동력’으로 인식이 바뀌면서 성과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개인 차원의 해법그렇다면 리더 개인 차원에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1) 나만의 중심 지키기리더 스스로 자신만의 중심을 지키는 것이 핵심 열쇠다.
다양한 직무 역량과 번아웃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번아웃을 낮추는 리더의 역량은 흔히 말하는 ‘일잘러의 능력’인 논리적 사고나 창의력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신념과 지향점을 지키며 일하는 힘, ‘신념 추구력’이 번아웃 감소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어두운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거센 파도가 아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밤바다에서 등대의 불빛이 방향을 알려줄 때 비로소 두려움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다. 리더에게 있어 일관된 행동을 이어가고 일의 의미를 명확히 답할 수 있는 신념 추구력은 바로 그 등대와 같다.
2) 착한 리더 신드롬 극복하기반대로 타인의 과오를 지나치게 수용할수록 리더의 번아웃 위험이 높았다. 특히 신임 리더들에서 많이 관찰되는 ‘착한 리더 신드롬’은 미움받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사실은 괜찮지 않은 구성원의 업무 태도나 결과물에 대해 괜찮다고 넘어가는 일이 몇 번만 반복돼도 조직의 기준은 하향 평준화되고 비슷한 과오가 반복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대와 현실의 격차를 메우는 것은 결국 리더의 몫이기에 수용력이 높은 리더는 빨리 지칠 수밖에 없다. 프로페셔널하고 건강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지켜 나갈 때 리더는 동력을 잃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과 자기 보호의 균형을 맞춰야 지속가능한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다.
사례 2 가치 수호자로서의 정체성 확립AI 의료회사의 규제 담당 임원 S는 5년간 밤낮없이 일하며 회사에 헌신해 온 초기 멤버였다. 주요 제품들이 연구개발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시장 진출을 시작하면서 각국의 규제 장벽에 부딪히자 그의 업무는 급증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업무량이 아니었다.
제품팀과 사업팀에 규제 관련 제언을 할 때마다 마치 회사 내에서 ‘잔소리꾼’이 된 듯한 괴로움이 그를 옭아맸다. 정말 나는 그저 잔소리꾼일까? 코칭을 통해 그는 자신의 신념을 재발견했다. 새로운 의료기술이니 만큼 시장에 안전하게 정착하려면 규제 점검은 필수였다. 그의 집요함은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경쟁 우위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되찾았다.
명확하게 일의 의미를 정립한 그는 자신의 역할을 ‘가치 수호자’로 재정의했다. 그리고 그 신념에 따라 규제가 단순히 구색만 맞추고 대충 눈 가리고 아웅으로 넘어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안전하게 지키고 보전하기 위한 핵심축이라는 점에 집중해 일하기 시작했다. 조직 내에도 규제의 중요성을 적극 전파하고 그에 맞는 업무 기준을 세워 나갔다. 그러자 리더 스스로의 효능감과 에너지만 높아진 게 아니라 규제팀의 사기도 올라갔고 조직 전체의 인식도 달라졌다.
번아웃 극복의 핵심:나다움과 우리다움의 연결두 사례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리더들은 업무량 때문이 아니라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때 번아웃을 겪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직에 기여할 수 있을 때 다시 활력을 찾았다. 첫 번째 임원은 연구를 회사의 비즈니스 목표와 연결시키며 일의 의미를 발견했고, 두 번째 임원은 자신을 ‘가치 수호자’로 재정의하며 자부심을 회복했다. 두 경우 모두 조직은 충분한 자율성을 부여했고 리더들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조직에 기여할 방법을 모색했다.
결국 리더 번아웃의 근본적 해결책은 조직의 ‘우리다움’과 리더 개인의 ‘나다움’을 연결하는 데 있다. 조직의 ‘우리다움’이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임팩트,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첫 번째 사례처럼 이것이 명확할 때 리더는 자신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리더의 ‘나다움’이란 개인이 가진 고유한 강점, 가치관, 일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두 번째 사례처럼 리더가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과 접근 방식을 발견하고 독자적 역량을 발휘할 때 진정한 동력을 얻을 수 있다.오늘날 리더 포비아 현상은 단순히 젊은 세대의 나약함을 반영한 세태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획일적이고 소모적인 통제 중심 리더십 모델에 대한 건전한 문제 제기일 수 있다. 새로운 리더 세대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고유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기업 자산의 감가상각을 아무리 꼼꼼히 챙겨도 정작 핵심 자원인 리더의 소진을 방치하면 조직의 내일은 위태롭다. 조직은 나침반을 제시하고 리더가 그 안에서 주도적으로 조직 목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동시에 리더는 변화의 파고 속에서도 나의 중심을 지키고 착한 리더에 머물기보다는 신념을 지키며 조직과 개인의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조직의 ‘우리다움’과 리더의 ‘나다움’이 만나는 지점, 그곳에서 리더는 번아웃이 아닌 성장을, 조직은 지속가능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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