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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 리더가: 고동진 전 삼성전자 대표이사

“리더는 성과로 과정을 증명해야”

최호진 | 382호 (2023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1984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IM부문장 등을 역임하며 갤럭시 생태계의 성장을 이끈 고동진 전 삼성전자 대표는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닌 포기”라며 “정말 절박할 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못할 때 결코 주저앉으면 안 된다”고 후배 리더들에게 조언한다. 또한 그는 리더라면 ‘성과는 못 냈지만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라는 식의 마인드를 버리고 부하 직원들과 함께 만든 결과물이 성과로 이어지도록 이끌어줘야 하며, 특정 부서나 직원을 챙기는 등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임직원이 주인 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중용’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이 마흔이 되면 불고기 백반을 언제든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중학생 소년은 40여 년 후 임직원 10만여 명을 책임지는 수장이 된다. 1984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IM부문장,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삼성페이, 빅스비 등 갤럭시 생태계의 성장을 이끈 고동진 전 삼성전자 대표 이야기다. 그는 2022년 3월 주주총회를 끝으로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급여, 상여, 퇴직금을 포함해 총 118억3800만 원을 지급했다. 지난 38년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삼성에서의 직장 생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2005년 영국에서 주재할 당시 직접 뽑은 190여 명의 개발 인력을 정리 해고한 후 ‘실패자’라는 낙인을 견뎌야 했고,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일에 매진하던 중 과로로 쓰러져 왼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불편과 좌절을 딛고 한 해, 한 해를 버티며 2015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현 MX) 사장에 올랐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가 터져 직접 사태 수습에 나서야 했다. 그는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닌 포기”라며 “정말 절박할 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못할 때 결코 주저앉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가 38년 동안 삼성에서 성공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배우고 느낀 점을 담아 지난 7월 출간한 책 『일이란 무엇인가』는 출간 1주일 만에 1만 부가 팔렸다. 그는 ‘조용한 퇴사’ 열풍이 불고 직장인이 ‘월급 노예’로 폄하되는 세태를 꼬집으며 “인간의 노동은 태어나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숭고한 행위”라고 강조한다. 일이란 무엇이며 오직 일로 성공하려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DBR이 그를 만나 일의 의미와 리더십 철학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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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밤낮없이 일에 몰두”

‘삶의 매 순간이 시속 200~300㎞를 달리는 자동차 같았다’고. 이렇게 비유한 까닭이 궁금하다.

영국에서 주재할 당시 가족과 함께 독일 아우토반으로 여행을 가 시속 200㎞ 이상으로 달려본 적이 있다. 시속 200㎞ 이상이 되면 차가 가라앉는 기분이 들면서 오직 앞만 보게 된다. 옆 차선을 쳐다볼 여유가 없다. 내가 달리고 있는 차선만 보게 된다. 현역에서 일할 당시를 돌아보면 ‘진짜 앞만 보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창 바쁘게 일할 때는 퇴근 후에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을 때도 아내가 하는 얘기에 집중을 못했다. 항상 머릿속에는 일 생각뿐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다음 단계로는 어떻게 넘어갈지 등 말 그대로 잠자는 시간 외 모든 순간 일 생각만 했다. 그런데 돌이켜봐도 직장 생활은 이렇게 하는 게 맞았다고 본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일하면서 사냐”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세대가 한창 일할 때는 주말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피처폰에 이어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15년간 모바일 시장이 급성장했기 때문에 내가 맡은 책임에 따라 전력을 다해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주말 없이 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나.

유년 시절의 영향이 한몫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중학교 2학년 때 교정에 앉아 ‘마흔이 되면 불고기 백반을 먹고 싶을 때마다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학업에 매진했지만 전기 대학 입시에서 떨어지고 후기 대학인 성균관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전기 대학에 낙방하고 어머니께서 부엌에서 소리 없이 우시는 모습을 봤다. 마음이 참 아팠다. 대학 졸업 후 삼성에 입사하면서 제대로 자리를 잡아 기필코 성공하리라 결심했다. 목표는 ‘삼성전자 사장’이었다. 입사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가 국내 1등 기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사장을 목표로 삼았던 건 학연, 지연이 통하지 않는, 오로지 실력으로 승진하는 공정한 평가 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가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면 차근차근 승진해 올라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사회 초년생 때부터 자기 계발에 매진하셨다고.

입사하고 나니 내 부족함이 너무 크게 보였다. 회사에 명문대 출신과 해외 유학파가 많았다. 그래도 그 사람들과 똑같이 삼성에 입사했으니 마인드를 ‘리셋’했다. 학벌, 전공, 집안 등 기존에 갖고 있던 배경이나 조건을 잊고 새로운 마라톤의 출발점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 초년생 때는 어학 공부 등 자기 계발에 매진했다. 어학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있다. 재직하던 삼성전자 통신연구소가 건물을 옮기면서 직원들도 발 벗고 나서 이사를 도왔다. 둘둘 말린 카펫을 낑낑대며 3층까지 옮기고 내려오는데 서울대 나온 입사 동기가 다른 건물에서 나오는 걸 봤다. “이사하는데 너는 어디 있었냐?”고 물으니 동기가 뽀얀 얼굴로 “소장님이 일본어 번역시킨 게 있어서 도서관에 있었지”라고 하더라. 그날 연구소장이 이사하느라 고생했다며 저녁에 고기를 사주셨는데 이삿짐 하나 안 나른 그 동기에게 “잘한다”면서 웃으며 소주 한 잔을 따라주시더라. 그런데 먼지까지 마셔가며 애써 이삿짐을 나른 나한테는 “우리 고동진 씨는 기대를 많이 했는데 뭐가 잘 안 돼?”라며 굳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때 망치로 뒤통수를 꽝 하고 맞는 기분이었다. 이튿날부터 바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일본어만큼은 확실히 하겠다는 집념으로 퇴근하고 밤 11시쯤 집에 돌아오면 손만 씻고서는 양말도 안 벗고 일본어 공부를 했다. 매일 1시간 이상 공부하고 주말이면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일본어로 대화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화신백화점에서 일하신 경험이 있어 고급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어머니와 담소를 나누며 회화를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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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반대말은 실패 아닌 포기”

후배 리더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정말 절박할 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못할 때 주저앉으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무조건 달려들어야 한다. 내 경험을 빌려 얘기하자면 2000년 유럽 인사팀장으로 영국에서 주재할 당시 내가 발령을 낸 유럽연구소장이 회사를 갑자기 그만뒀다.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 인사팀장과 연구소장을 1년 3개월간 겸직했다. 연구소장으로서 상황을 들여다보니 전임자가 그만두면서 조직이 흔들리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 간부들을 중심으로 창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조직 전체가 무너질 만한 큰일이었는데 상황을 해결할 이렇다 할 방법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정공법밖에 없겠다 싶어 시니어 매니저들의 집을 직접 찾아가 일대일로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영국인 인사 담당자에게 주소를 달라고 하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영국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라며 펄쩍 뛰더라. 그래서 “나한테 주소를 안 주면 앞으로 더 이상 같이 일 못한다. 그 대신 내가 직접 찾아가 발생하는 모든 일은 내 책임이다”라며 초강수를 뒀다.

주소를 받아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런던 북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인도계 영국인 소프트웨어 리더의 집이었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전화해 “집 앞이니 문을 열어달라” 하니 농담이라고 생각하더라. 커튼을 열어 내가 진짜 와 있는 걸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 문을 열어주고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의 아내가 내온 맥주를 내게 무릎을 꿇고 따라주며 “한국 출장을 갔을 때 윗사람에게 이렇게 따라주는 걸 봤다”고 했다. 직원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내가 임시로 연구소장직을 맡고 있지만 조직이 안정화되고 나면 기술 전문가를 꼭 데려오겠다고 설득했다. 그의 부인에게도 남편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지 진심을 다해 얘기했다.

이렇게 시니어 매니저급 직원 예닐곱 명을 집으로 찾아가 만났다. 창업을 주도하는 책임자가 아닌 주변 간부들부터 만났다. 작은 성들부터 깨면 성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2시간 넘는 거리인 켄트에 사는 직원 집에는 괜찮은 와인 한 병과 풍성한 글라디올러스 꽃을 가져가 설득했다. 집에서 작고 낡은 냉장고를 쓰는 걸 보고는 임직원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신식 대형 냉장고를 살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다. 이렇게 한 집, 한 집씩 찾아가 설득하던 중 어느 날 파키스탄 출신 영국인 직원이 말하더라. “DJ, 이제 이렇게 안 다녀도 돼요. 창업 얘기 끝났어요. 우리 집에 오면 꼭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절박한 노력과 진심이 통한 것이다. 창업 움직임이 있다는 걸 알고 지레 포기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 모른다. 리더라면 무조건 달려들어야 한다. 만약 첫 집에 방문했을 때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문제를 제기한다면 전략을 바꾸면 된다. 부딪혀보고 예상대로 안 됐을 땐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절대 지레 포기해선 안 된다.

그렇게 어렵게 설득한 직원들을 결국 나중에 정리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2004년 개발 완료한 3G 프로토콜을 본사가 상품화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2005년 190여 명의 개발 인력을 정리 해고해야 했다. 내가 직접 뽑은 직원들이었고 5년 동안 함께 일했으니 호흡도 잘 맞았지만 본사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개발자들과 일일이 면담하면서 사과했지만 결국 해고를 해야 하는 과정에서 좌절감을 느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어려움을 버텨낸 후 나중에 꼭 잘 돼서 명예 회복을 하리라고 말이다. 2006년 한국으로 돌아와 북미 상품 기획 그룹장을 맡아 한 달에 반은 해외 출장을 다니며 업무에 매진했다. 유럽연구소장 역할을 제대로 못해 정리 해고를 한 ‘실패자’로 낙인찍혀 있는 상황이었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정신없이 일하던 중 어느 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다음 날 깨어나니 왼쪽 귀가 아예 안 들렸다. 듣는 것이 불편한 건 물론 평형감각이 떨어져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것도 잘 못했다. 아내는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1년만 더 해보자’며 매년 버티다 보니 어느덧 17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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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몰두한 나머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을 잃는 CEO나 리더들이 있다.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신은 반드시 인간에게 신호를 준다고 믿는다. 몸에 이상 신호가 올 때는 무조건 병원에 가야 한다. 돌이켜보면 청력을 잃기 두 달 전부터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쓰러지기 전날에는 3초간 이명이 들렸다. 또 한번은 2012년 부사장 시절 상사를 모시고 미국 서부 출장을 갔을 때 알람을 듣지 못하고 제때 못 일어난 적이 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호텔 방의 안전 고리를 걸어놔 경비들이 문을 해체하고 들어왔는데 그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자고 있는 모습을 본 상사는 그냥 두라며 혼자 미팅을 가셨다. 이때 창피한 마음보다는 건강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당시에는 잠이 든 채 발견됐지만 이후에는 아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후부터는 몸에 무리가 될 것 같으면 집에서 쉬는 시간을 갖고, 매일 아침 40~50분씩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건강관리를 했다. 리더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책임지고 있는 수백~수천 명의 직원이 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든지, 가슴이 답답하거나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든지 하는 평소 못 느꼈던 신호가 오면 재빨리 알아차리고 바로 병원에 가라고 진심으로 조언해주고 싶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삼성전자 사장이 됐지만 2016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라는 위기를 맞았다. 어떻게 극복했나?

얘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든 기억이다. 2015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이 되고 1년이 채 안 돼 터진 일이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로 6조5000억 원이 날아갔다. 사고 이후 3주쯤 지났을 때 시료 분석 결과를 보고 배터리 자체의 결함이 원인일 것이라 직감했다. 그러나 ‘배터리 결함이 원인’이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혹시 모를 다른 문제들에 대한 조사를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대학교수와 배터리 전문가, 해외 검증기관 등에 분석 보고서를 의뢰하고, 내부적으로도 시료로 직접 실험하며 원인을 규명해 나갔다. 시료 분석 결과도 내가 일일이 보며 문제를 파악했다.

투명성(transparency)과 책임(accountability), 철저히 이 두 원칙을 바탕으로 상황을 해결해 나갔다. 어느 누구도 속이지 않고 투명하게 원인을 규명하고 공개했다. 그리고 벌어진 모든 일에 책임을 느끼고 사태 수습에 총력을 다했다. 사내에서는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사장님, 제발 배터리만 교체해주는 일은 하지 말아주세요”라며 전량 리콜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달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위에서는 “그렇게 하면 비용이 얼마 드는지 아냐”며 압박했다. 배터리만 교체해주는 안을 택할까 망설였지만 결국 전량 리콜을 결정했다. 사태를 수습한 뒤 회사를 떠날 각오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회사를 떠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회사에서 30여 년간 쌓아온 것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윗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동료들에게 신뢰받고, 아랫사람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늘 한결같은,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기에 위기의 순간에도 회사가 나를 믿어주지 않았나 싶다.


“리더라면 ‘중용’ 지켜야”

바람직한 리더의 자세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리더, 즉 조직의 정점에 있는 사람의 행동이 조직 문화를 결정한다. 그렇기에 리더는 조직 내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고 원활히 흐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중간관리자 중 자기 부서의 정보가 다른 부서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거나, 자신을 건너뛰고 자기 윗사람에게 직접 보고하는 걸 싫어하는 리더가 있다. 가장 바보 같은 짓이다. 개방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려면 조직 내에서 정보가 원활히 공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직의 장은 중간관리자가 부서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지 유심히 관찰하면서 자기 부서만 우선시해 정보 공유를 막는 자기중심적 리더를 교체해 개방적인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또한 리더라면 늘 ‘중용’을 지켜야 한다. 리더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순간 부하 직원들은 그 방향으로 쏠릴 수 있다. 리더가 제조 분야 출신이라고 해서 영업을 업신여기거나, 영업 분야 출신 리더가 ‘생산, 개발은 일정만 맞추면 되는 거 아냐’라는 식으로 경시해선 안 된다.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건 늘 중용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모든 임직원이 스스로를 CEO라고 생각하며 주인 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다. 나 역시 사장으로 취임한 후 ‘애플을 꺾고 글로벌 시장에서 우뚝 선다. 전 세계 모든 갤럭시 고객에게 꿈과 감동을 준다. 무선사업부 임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대한민국 국가 경제에 크게 이바지한다’라는 가치만을 추구하며 중용을 지키려 노력했다. 인사 부서에 오래 있었지만 사장이 되고 난 후 인사팀 후배들을 따로 불러 식사 한번 한 적이 없다. 특정 부서나 사람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부서나 직원을 통해 연락, 요청을 하거나 소위 말하는 ‘줄’을 설 수도 있다. 소외되는 부서나 직원 없이 모든 임직원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하고 중용을 지키며 오해 살 짓을 해선 안 된다. 리더가 되는 순간부터 출신 배경과 자기 색깔을 버려야 한다.

본인의 리더십을 평가한다면.

주특기가 없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엔지니어도, 그렇다고 인사 전문가도 아닌 제너럴리스트였다.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적어도 아는 척은 안 했다. 부하 직원들과 회의할 때도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승진할수록 알게 되는 정보의 양이 많아질 뿐 똑똑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배우려 노력했다. 스페셜리스트가 자기 분야의 90%를 안다면 제너럴리스트는 각 분야의 20~30% 정도를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분야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리더십을 발휘해 적재적소에 각 분야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처럼 각 부서가 내어준 진주를 엮어 진주 목걸이를 만드는 게 제너럴리스트형 리더라고 생각한다. 물론 제너럴리스트형 리더로서 성공적으로 조직을 이끌려면 신뢰를 바탕으로 각 분야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저 리더와 같이 일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도록 평소에 평판을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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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를 강조하는 것 같다.

결실 없는 성실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구매 부서가 스마트폰 부품 관련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해보자. 어느 회사가 어떤 부품을 쓰는지는 스마트폰의 퍼포먼스를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이 부품을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분석해 “A회사가 이번에 카메라를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개발 부서에 제공할 수 있다.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소화해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것이다. 만약 부품 관련 데이터들만 단편적으로 제공하면 유용한 정보가 아니기에 그냥 옆에 쌓아두고 아무도 보지 않는 쓸모없는 보고서가 된다. 이런 건 성과가 아니다.

성과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이다. 성과를 내려면 일을 그만큼 주도면밀하게 해야 한다. 리더들, 특히 중간관리자 중에 “우리 결과물이 채택은 안 됐지만 만든 과정을 돌아보면 가치가 있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리더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다. 혼자 일해서 성과를 못 냈을 땐 울분을 삼키면 그만이지만 리더는 부하 직원들을 데리고 일하는 자리다. 함께 만든 결과물이 성과로 이어지도록 이끌어줘야 부하 직원들이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다. ‘성과는 못 냈지만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라는 식의 자위가 반복되면 그 팀은 결국 해체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조직 내 만연한 기업은 결국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조직에서 성과를 내 승진하다 보면 주위의 시기, 질투를 받을 수 있다.
이럴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어떤 사람도 적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항상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 그런데 상사가 공정하게 성과를 평가한다면 조직원들이 시기, 질투할 일이 없다. 일반적으로 회사 내에서 80%의 공감을 받으면 큰 불만이 안 나온다. 만약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면 공정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 거다. 성과 평가와 보상은 정말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어떨 때는 개인에게 말로 격려해주고 식사 한번 사주는 칭찬으로 끝내거나 혹은 단체 보상을 해주는 게 효과적일 때가 있다. 물론 계속 단체 보상을 해주면 어느 순간 동기부여가 덜 되니 이럴 때는 보상 방식을 바꾸는 등 리더가 세심하게 관찰하며 조직원들이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보상 전략을 수정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상무나 임원 등 조직 내 상위 관리자가 되면 후배들에게 공을 돌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다. 역량 있는 후배들이 밑에서 치고 올라오면 오히려 더 좋은 일이다. 내가 후배를 잘 키웠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최근 직장에서 맡은 업무만 최소한으로 하는 ‘조용한 퇴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회사가 열정 없이 무위도식하는 직원들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 구조는 문제가 있지 않나? 근로자가 어느 정도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해고가 어려운 유연하지 않은 노동 환경이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 삼성 등 한국의 대기업은 국제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글로벌 기업은 대규모 정리 해고를 단행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조용한 퇴사’ ‘투잡’ 등이 성행해도 모든 직원을 안고 가야 한다. 이는 국내 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결국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고용 환경이 미국 등 선진국 대비 유연하지 못해 역효과를 내고 있지만 그것이 현재의 법이기에 결국 개인이 선택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내렸으면 한다. 적당히, 최소한의 에너지를 투여해 일하면서 사는 건 올바른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본다. 일은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이자, 인간의 노동은 태어나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숭고한 행위임을 강조하고 싶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블라인드 같은 커뮤니티에 불만을 토로하는 직장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불만을 쏟아내지 않고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면서 자기 경쟁력을 높여가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한테 당신이 옳다고, 절대 굴하지 말고 지금 당장은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그렇게 10년, 15년, 20년을 살다 보면 결과에 웃을 날이 올 거라고, 세상은 반드시 당신에게 화답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특히 젊은 직장인들에게는 에너지 충만한 시절이니 절대 지치지 말고, 40대에 어학 등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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