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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 리더가 : 이찬희 야놀자 최고제품책임자(CPO)

“단순한 기획·개발만으론 차별화 어려워
디테일 더할 제품 관리가 경쟁우위 원천”

백상경 | 378호 (2023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기술이나 시장조사가 다 비슷해진 오늘날,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건 결국 디테일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새삼 ‘제품 관리’에 주목한다. 제품을 둘러싼 모든 영역을 유기적으로 작동하게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 임무를 총괄하는 최고제품책임자(CPO)가 각광받는 이유다.

이찬희 야놀자 CPO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인 아마존에서 야놀자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을 제품 관리 업무에 매진한 전문가다. 그는 제품에 기업의 비전을 투영하고 경쟁자들을 제칠 차이점을 부여하려면 제품 총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파트를 넘나들며 무엇을 왜, 어떻게 만들지 함께 고민하고 조율해나가는 프로덕트 오피서의 존재가 차별 우위를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아마존에서 체화한 혁신 기업의 정수로는 전 구성원이 마음 깊은 곳에서 따르는 ‘원칙’의 존재를 꼽는다. ‘예스맨’이 아니라 원칙을 지킨 사람에게 인센티브가 돌아가는 시스템이 핵심이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수많은 C레벨(분야별 최고 책임자) 임원 가운데 아직도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다가오는 직함이 있다. 기업의 제품 관리를 총괄하는 최고제품책임자(CPO)다.

과거 기업들은 제품을 선보이는 데 필요한 핵심 역량별로 책임자를 두고 CEO가 이를 총괄하는 형태의 경영을 해왔다. 그러나 요즘은 CPO를 따로 두고 제품 총괄을 전담시키는 추세다. 경우에 따라선 CEO가 CPO를 겸임하거나 CPO가 CEO 바로 아래 위치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곳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넷플릭스, 에어비앤비, 슬랙 등 글로벌 IT 기업 상당수가 이미 CPO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네이버·우아한형제들 같은 굵직한 IT·플랫폼 기업부터 크고 작은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CPO를 선임하는 곳이 꾸준히 늘고 있다.

기업들이 너무도 당연히 느껴지던 ‘제품 관리’ 그 자체를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기업의 성공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업이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유사한 제품을 만들고, 치열한 판매 경쟁을 벌이는 시대다. 단순한 수요 예측, 기획과 개발만으론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기 어려워졌다. 필요한 건 결국 ‘한 끗’에 해당하는 세세한 차별화 포인트다. 이걸 찾기 위해선 제품과 관련한 영역 전반에 걸쳐 전문적이고 유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DBR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 아마존을 떠나 한국에 돌아온 이찬희 야놀자 CPO를 만나 오늘날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CPO의 역할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근무 환경이 혹독하기로 유명한 아마존에서 약 10년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오며 경험한 혁신 기업의 정수는 무엇이었는지도 물었다. 그는 “과거엔 비즈니스 전략과 목표 수립이 중요했지만 이젠 디테일이 중요하다”며 “기술을 통해 세세한 부분까지 차이점을 만들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큰 틀의 비전과 로드맵 정의가 필요하다. 이를 제품에서 실제로 구현하려면 조직 내 여러 파트를 넘나들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정의하고 조율하는 프로덕트 오피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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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대기업 커리어를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커리어 전환이 목표였다. 사회생활은 SK텔레콤의 인터넷 사업 전략 부서에서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IT는 나랑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입사할 때 지원한 분야도 브랜드 마케팅이었는데 정작 IT 업무가 주어져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맡은 업무가 위치 기반 서비스(LBS, Location Based Service) 분야다. 세부 분야는 여행과 레저였는데 결국 야놀자에 자리를 잡게 될 운명이었나 싶기도 하다.

당시는 아이폰 같은 제품이나 트위터 같은 서비스가 나오며 기술 혁신이 활발해지던 때였다. 그런데 나는 정작 여기에 큰 관심이 없었다. 신형 스마트폰 한번 써보려 미국까지 날아가는 사람, 트위터 팔로우가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는데 나에겐 별로 와닿지가 않았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겠다는 동화적인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남보다 일을 잘하려면 최소한 관심은 있는 분야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커리어 전환을 선택했다. 목표는 가장 관심이 많았던 경영 전략 컨설팅이었다. 컨설팅 회사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고, 그래서 빠르고 확실한 방법인 MBA를 택했다.

정작 MBA 이후 행선지는 컨설팅사가 아니라 아마존이었다.

사실 미국에 가기 전에는 아마존이 시애틀이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그냥 이커머스를 하는 회사 정도로 알고 있었다. SKT를 떠나기 전 벤치마크 사례를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가 전부였다. 꼭 입사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컨설팅 회사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플랜 B로 생각하고 접근했다.

실제로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서머 인턴을 하고 오퍼도 받았지만, 그때 생각했다. 나에게 희소가치가 있는 선택이 무엇이냐 하는 거였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따져보는 기준이 첫째가 새로운 것, 둘째가 내가 지금 얻을 수 있는 가장 희소한 것이 무엇이냐다. 여기에 비춰볼 때 컨설팅사 입사를 위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기껏해야 MBA 기간만 잠깐 해외로 다녀온 전형적인 한국인 커리어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향후 해외에서 직업을 갖기는 굉장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아마존에서 배운 식으로 표현하면 문자 그대로 ‘원 웨이 도어 디시전(One-way-door decision)’이었다.

하지만 아마존을 선택하면 얘기가 달랐다. 당시 테크 분야는 가장 핫한 영역이었다. 미국 현지에서 테크 회사에 취업하고 저변을 넓이면 운신의 폭을 훨씬 넓힐 수 있었다. 이게 가장 희소한, ROI(투자수익률)가 높은 선택이라고 확신했다.

업무가 SKT에서 했던 일의 연장선에 있기도 했다. 스마트폰과 앱 스토어 시대가 열리기 전인 위피(WIPI) 폰의 시대에는 기술 선도 주자가 우리나라와 일본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사용하고 있지만 골프장에서 거리 재는 걸 핸드폰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나, 등산 경로를 추적하고 러닝 칼로리를 계산해주는 식의 서비스를 SKT에서 이미 기획해봤다. 그런 점에서 아마존은 상당한 연속성이 있는 커리어 패스이자 플랜 B였다.

아마존에선 어떤 업무들을 맡았나?

2013년 입사할 때부터 프로덕트 매니저 직군으로 들어갔다. 아마존의 미션은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살 수 있게 만든다는 거였다. 그 미션을 오프라인까지 확산하고자 만든 게 아마존 로컬이란 신규 조직이다. 온라인에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조직인데 거기 속하게 됐다. 이미 거대한 회사였지만 여전히 문화는 스타트업과 같은 곳이었다. 우리가 진출하지 못한 오프라인 분야에서 어떤 것을 만들어내고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행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그루폰(소셜커머스), 그러니까 티몬이나 초창기 쿠팡과 같은 서비스를 주요 전략 과제로 잡고 실행하던 곳이다. 거기서 엔드 투 엔드(end-to-end) 전체 고객 경험을 담당하는 프로덕트 매니저 역할을 했다.

플랫폼에서 프로덕트 매니저의 역할이라고 하는 건 결국 서로의 필요를 잘 매칭하고 연결해주는 것이다. 당시 데일리 딜 서비스에서 수요가 있는데 공급이 연결되지 못했던 가장 큰 영역이 공연 전시 분야였다. 특히 내가 담당하던 지역인 영국에서 그랬다. 그래서 양측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서비스를 했다. 우리로 치면 인터파크티켓 같은 서비스다. 기존에는 고객이 바우처를 구매하고 실제로 현장에 가서 제품을 사야 했다면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좌석 지정까지 하면서 살 수 있게 했다. 사업이 성공하면서 2년 후에는 아예 별도 사업본부로 스핀오프가 됐다. 결과적으로 영국에 있는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 서비스의 핵심 혜택 영역이 됐다. 아마존 로컬 서비스의 고객 경험 개선도 담당했다. 당시 아마존 로컬에 없었던 검색이나 고객 리뷰 기능을 구현하면서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 과정을 직접 다뤘다.

CPO는 어떤 자리인가.

CPO는 기술과 사업과 고객 혹은 고객 경험, 이 세 가지 요소를 연결하는 중간 매개체다. 고객들에게 어떤 불편함과 필요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게 사업적으로 어떤 의미와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는지 분석하고, 보유한 기술을 활용해서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를 찾아 나간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 해도 미션은 같다. 어떻게 하면 한정된 리소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가장 큰 성과를 얻어낼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예컨대 아마존에선 고객에게 가장 큰 편익을 전달해줄 수 있느냐가 목표다. 이를 위한 올바른 판단의 근거를 여러 가지로 둔다. 이를테면 고객의 피드백, 서베이 리뷰, 유관 부서의 요청이나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 등이 인풋이 되고, 그런 데이터를 활용해서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가 내린 결정으로 실제 기대한 효과를 얻어낼 수 있도록 전체적인 익스큐션을 관리하고 리드하는 역할이다.

한국에서도 CPO 직급을 두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기업의 성공과 확장을 위해 무엇이 중요하느냐에 대한 답이 바뀐 것이라고 본다. 고객과 온오프라인으로 만나는 접점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그걸 앱이라고 할 수도 있고, 웹사이트라고 할 수도 있다. 예전엔 이런 서비스의 중요성이 매우 작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앱과 웹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를 넘어 어떻게 이 채널을 통해 고객을 이해할 것인지가 중요한 이슈가 됐다. 어떤 데이터를 활용할지 선택하고, 실시간으로 다이내믹하고 빠르게 고객이 찾는 것을 예측해서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기술을 활용해서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차이점을 만들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자연스레 이런 것들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개발자들이 중요해졌다. 나아가 개발자들이 어떤 것을 어떤 형태로, 왜 만들어야 하는가를 정의하는 역할까지도 함께 중요해졌다. 예전에도 필요는 했지만 지금만큼 중요하거나 성공의 핵심 요소는 아니었다. 실제로 과거에는 많은 SI 회사를 통해서 개발 작업이 수행됐다. 전체적인 전략과 비즈니스 목표 수립이 중요하고, 이것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던 시대다. 그러니까 실제로 구현하는 작업은 단순히 외주를 줘서 해결해도 됐다.

이젠 우리의 기대에 걸맞은 상품을 만들고 중장기적으로 남들보다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더 엄격한 관리를 거쳐야 한다. 똑같은 UI, UX라 하더라도 메뉴를 어떻게 구현하고, 구현하는 과정에서 어떤 비전과 로드맵을 가져갔는지가 중대한 차이를 만든다. 이들 요소를 앞단에서 정의하고 적합한 전략을 수립·실행해야 한다. 개발을 비롯한 각 파트를 넘나들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하고 정의하는 프로덕트 오피서의 역할이 그래서 커졌다고 본다.

회사 안팎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는 능력이 필요하겠다.

그래서 흔히 제품 총괄의 메인 잡은 미팅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핵심 역량은 소통 기술이다. 기저에 깔린 진짜 필요가 무엇인지 잘 파악하는 게 1차적인 부분이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PM이 유관 부서의 직접적인 상관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PM을 두고 흔히 ‘권한 없이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는 사람(Influence without authority)’라는 표현을 쓴다. 평가하거나 지시하는 권한 없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영향력을 끼치는 게 핵심이다.

나도 처음엔 매우 어려웠다. 특히 아마존의 문화가 더욱 그렇다. 아마존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서로 챌린지하는 문화다. 내가 정말 확신하고 납득이 될 때까지 매우 끈질기게 서로 논쟁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더 나은 프로덕트, 더 나은 서비스, 더 나은 리소스 활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모든 구성원이 가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많은 이해관계자를 내가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에 동의하도록 납득시키고, 문제 풀이를 위해 제시한 방법이 왜 맞는지를 계속 설득해야 한다.

주된 설득 근거는 무엇이었나?

결국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데이터다. 특정 국가나 지역의 고객 성향은 그곳에서 직접 고객을 마주했던 사람들이 잘 안다. 직관을 통해선 그보다 잘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데이터는 다르다. 고객들의 성향과 행동이 생기는 원인이 무엇인지는 직관만으론 알 수 없다. 지금의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 데이터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예측하고 해석할 수 있을 때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수월했다. 그렇게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방향성을 만들어 나가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미국, 그리고 아마존에서 경험한 혁신 기업 문화의 정수는 무엇이었나?

모든 구성원이 따르는 원칙,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모든 구성원이 우리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움직이게 하는 원칙의 존재다. 아마존의 경우 리더십 원칙(Leadership Principles) 14가지가 회사의 모든 결정과 행동의 기반이다. A4 용지 한 페이지에 담긴 14가지 원칙이 입사 인터뷰에서 성과 평가나 사업 추진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사실 모든 회사에 비슷한 게 있다. 회사의 철학 같은 것을 놓고 신입 사원들을 가르쳐서 시험을 보기도 하고, 잘 보이도록 책자로 만들어 비치해 두기도 한다. 문제는 실제로 이게 의사결정의 준거 기준이 되느냐 여부다. 여기서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아마존에선 이런 식이다. 새로운 프로모션 정책을 놓고 팀 회의를 하면 당장 “리더십 원칙에 비춰볼 때 우리는 고객 제일주의(Customer Obsession)에 입각해야 하는데 지금 하려는 사업이 거기에 부합해?” “너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만 실행의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Bias for Action)는 리더십 원칙을 놓고 보면 그렇게 가는 게 맞을까?” 하는 식의 질문이 쏟아진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열리는 미팅에서 수도 없이 나오는 표현들이다. 매일 논의하고 결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원칙이 뿌리 깊게 녹아 있다는 걸 절실히 체감할 수 있다.

경영진부터 하부 조직까지 완전히 똑같은 원칙을 지킨다. 새로운 나라에 서비스 론칭을 하면서 거의 모든 대륙의 오피스를 한 번씩은 가서 협업하고 근무했는데 어딜 가든 똑같다. 지역별로 문화나 역사적인 배경이 다르긴 하지만 리더십 원칙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영향력을 가졌다.

그런 강력한 원칙을 공유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이 원칙에 따를 때 조직 내에서 나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논쟁이 일상인 아마존에서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할 때 가장 힘이 센 것이 리더십 원칙이다. 당장 확정적인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사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소한 부작용이 있다 하더라도 조금 감수하고 수익성을 추구하는 회사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에선 좀 다른 흐름으로 흘러간다.

이런 식이다. “너의 말이 비즈니스적으로는 도움이 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고객 제일주의 측면에서 맞지 않다.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말 한마디가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는 힘이 있다. 수익성을 가볍게 본다는 게 아니라 수익을 추구하더라도 리더십 원칙에 맞춰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인센티브와 원칙을 제대로 정렬하는 것(인센티브 얼라인먼트)이다. 많은 회사가 회사의 철학이나 인재상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실제로 연말 평가에선 그런 원칙과 관계없이 더 좋은 숫자를 만들고 상사가 하라는 일을 그대로 한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 예스맨들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구조라면 회사가 그토록 자랑하던 원칙은 그냥 문서나 글자들에 불과한 것이다. 흔히 낙전수입(落錢收入)1 은 고객 중심주의에 가장 반하는 비즈니스 모델(BM)로 여겨지는데 낙전이 많이 생기는 BM으로 회사의 이익을 높인 사람이 승진을 하면 어떻겠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익을 높이는 게 이 회사에서 더 선호하는 인재상이고 역량이 되는 것이다.

아마존은 리더십 원칙이 인센티브에 완벽하게 정렬돼 있다. 좋은 평가를 받고 큰 역할을 가져가는 사람은 리더십 원칙에 부합하는 사람이다. 정말 눈에 뻔하게 보이는 이익, 살짝만 눈 감으면 되는 이익이 있어서 한 번쯤은 어길 수도 있다. 100번의 의사결정을 할 때 원칙을 어긴 게 하나도 없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단기적인 실적을 내더라도 당장 다른 구성원들에게 도전을 받는다. 원칙에 반해서 이익을 보면 지적을 받는다. ‘원칙을 어기고 고객을 기만한 사람을 우리가 승진시키는 게 맞냐’고 하면 반문할 수가 없다.

애초에 논쟁하는 것(Have Backbone ; Disagree and Commit)부터가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동양인들이 처음에 가장 많이 받는 피드백이 ‘너는 왜 반문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거나, 동의를 할 만한 데이터 포인트와 백그라운드 컨텍스트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는 지적을 받는다. 갈등을 피하려는 성향은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데 집중하지 않는 것, 그리고 논쟁에서 오는 부담을 피하려는 모습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논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나중에 평가를 할 때 100% 돌아온다. 리더들이 “나는 그 친구가 자신의 관점으로 우리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결정한 사항을 잘 실행하는 것도 좋지만 계속 논쟁해서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것과는 분명한 가치 차이를 둔다.

물론 이게 일부 스타트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직원들이 권한을 갖고 있다거나 결정에 개입한다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특히 아마존은 톱다운 성향이 좀 더 강한 테크 회사이기 때문에 수평적인 구조 같은 것을 생각하면 안 된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리더가 내리는 결정을 자신이 믿고 생각하는 것과 좀 더 가까울 수 있도록 영향을 준다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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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업 문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

얼마나 목적 지향적으로 일할 수 있게 만들어주느냐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목표, 그리고 목적, 두 가지 개념이 좀 애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출 몇조를 채워야 한다는 숫자는 목표다. 이와 달리 ‘우리는 어떤 미션을 달성할 것이고, 어떤 불편함을 개선한다. 변화와 혁신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래서 이게 가장 잘 실현되기 위해 어떤 실행에 집중하고, 나머지를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하는 것은 목적이다. 이런 목적을 규정해야 한다.

인사관리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의 경력이 몇 년 차이고, 학교와 전 직장은 어디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우리의 미션에 얼마나 가치 있는 의견을 주고 실행에 도움을 주느냐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리더를 결정하는 것도, 커뮤니케이션도 같은 기준으로 보면 다른 고민들은 굉장히 작아진다. 이 과정에서 조직은 ‘프로’다워진다. 오롯이 미션에 집중하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목적 외 고려 사항이 너무 많다. 문제를 어떻게 풀까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업무 영역 가르기와 득실에 대한 고민을 하거나 선후배와 같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에 대한 고려를 너무 많이 한다. 이런 식의 사고가 끼어들면 적임자가 있어도 엉뚱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상황이 계속 생긴다. 과거보다 많이 바뀌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이런 문화들이 남아 있다.

미국에서 일하며 느낀 건 그야말로 ‘퍼포즈 드리븐(Purpose driven)’ 그 자체였다.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모든 걸 효율화하고 최적화한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시간과 자원이 희소한 스타트업은 이게 더 중요하다. 몇 번째로 합류했느냐, 창업 멤버냐 아니냐 이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다. 여전히 한국적인 문화에선 쉽지 않지만 바뀌고 있고, 더 바뀌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11번가×아마존 론칭의 주역이다.
직접 진출이 아니라 현지 이커머스 업체와 제휴하는 형태의 진출이 이뤄졌는데 판단의 배경은?


아마존의 미션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모든 필요한 상품을 얻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미션에 맞춰 특정 나라에 들어가서 물류센터와 시스템을 갖추고, 사람을 고용하고, 상품을 소싱한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비즈니스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몇 곳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확장 전략으로 제시한 아이디어가 특정 나라의 현지 리딩 커머스 플레이어와 연결해서 우리의 글로벌 물류와 상품 셀렉션을 서비스하는 것이었다.

이 제안의 첫 번째 옵션이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은 아마존 내에서도 수없이 검토됐던 곳이다. 시장 크기로 보나, 고객의 디지털·시스템 이해도로 보나 매력적인 곳이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변화를 세계에서 손꼽히게 빠른 속도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이미 치열해 두각을 나타내기 어렵다. 우리가 다른 나라들을 제쳐두고 굳이 여기부터 진출해야 하는지 주저함이 있던 나라다. 그런 측면에서 현지 플레이어와 연계하는 건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이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추진한 배경엔 중국 시장의 경험이 있었다. 중국 아마존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직접 이커머스 사업을 하다가 문을 닫았다. 아마존이 국가 레벨의 서비스를 접은 첫 케이스였다. 이 철수 절차를 직접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곳에선 승승장구하는 아마존의 시스템이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를 깊이 고민하게 됐다. 나라마다 고객의 니즈와 풀어줘야 할 문제는 다르다. 그런데 아마존이 스케일업을 하면서 확장성을 가져가기 위해 집중했던 표준화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려놓고 가는 게 맞다는 생각에서 제안서를 썼다. 경영진 승인까지 나오면서 최종 진행이 결정됐다. 특수성이 강한 나라를 더 효과적으로 접근하고, 고객에게 혜택을 주려면 현지 파트너와 각각 잘하는 것을 연결해서 가자는 솔루션의 시작이었다.

야놀자의 CPO 자리를 맡은 이유와 목표는?

우리나라에서 프로덕트 관점의 시니어 리드 역할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수없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경험이 한국에서 더 의미 있는 기여와 성장을 만들 수 있으리란 생각이 있었다. 내가 똑같은 시간을 열심히 일했을 때 스스로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에 가장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곳이 어딘지 늘 고민하는데 11번가×아마존 프로젝트를 마친 시점에선 이제 아마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놀자는 2~3년 전 김종윤 대표와 대화를 나눈 인연이 있어, 다시금 연락해 만난 곳이다. 인터파크를 이미 인수한 시점이었고, 커머스와 여가 플랫폼 등 여러 사업 분야를 갖춰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SKT에서 처음 담당했던 서비스도 여행이었다. 신입 사원 시절 출시했던 서비스가 여행 관련 기능이었다. 그래서 2007~ 2008년에 이미 야놀자를 잘 알고 있었고 실제 미팅도 한 적이 있다. 당시엔 단순한 온라인 커뮤니티 수준이었는데 기업 가치가 수조 원대에 이르는 회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해외에서 뉴스로 접하면서 굉장히 놀랐다. 처음부터 플랫폼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도 아닌데 완벽한 전환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이 정도의 성장 스토리는 미국에서도 흔치 않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성장 비전을 가지고 키워냈을까, 이걸 만들어 낸 사람들과 함께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

최근 가장 주안점을 두고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지난 1년은 기본적인 접근법, 그리고 우리가 결정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을 새롭게 정립해가는 일에 집중했다. 무엇을 결정하고 실행할 때 단순한 실행만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왜 해야 하고, 고객 관점에서 의미와 사용성을 담보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것 말이다.

여기에 기반해 지금 가장 주안점을 두는 건 생성형 AI다. 거의 모든 테크 회사의 고민이기도 하다. 정확한 모습이 구체화하진 않았지만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고객 인터랙션의 거대한 변화가 눈앞에 왔다. 이 안에서 플랫폼 프로바이더로서의 경쟁력을 가져가려면 어떤 데이터 포인트와 고객 접점, 록인 요소들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하는지가 최대 고민이다.

실제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무언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우리 플랫폼에 와서 물어보게끔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10~20년 전 검색의 시대엔 왜 어떤 결괏값이 위에 올라가는지 분석하고, 먼저 노출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생성형 AI 시대엔 결국 고객이 기대하는 것을 대충 던져도, 찰떡같이 알아서 맞춤형 정보와 서비스를 주는 것이 중요해진다. 1~2시간씩 검색하지 않아도 괜찮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게 고객 기대일 것이다.

고객이 우리가 보유한 콘텐츠와 데이터, 혹은 보유 기록 그 자체를 적절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포인트가 최대한 많아야 한다. 이 요소들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호텔, 동일한 여행지라 할지라도 고객에 따라 멤버십 등급 차이, 로열티 프로그램의 유무, 과거 방문 기록과 긍정적인 리뷰의 존재 등에 따라 제시해야 할 정보가 완전히 달라진다. 혹은 이 고객이 선호하는 취향과 타입에 따라 가장 적합한 정보를 줘야 한다. 그 정보를 정량적으로 가장 잘 구조화한 곳이 우리 플랫폼이 돼야 한다. 이 관점에서 서비스 상품의 틀을 만들어가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고객이 여행과 여가를 즐기는 과정에서 여전히 마주하는 ‘파편화와 단절’을 해소하는 것이다. 고객 조사 등을 살펴보면 한 번의 여행을 계획하고, 예약하고, 실제로 가서 즐기기까지 고객들이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앱의 숫자가 적게는 5개, 많게는 10개가 넘는다. 항공, 숙박, 렌터카, 관광지 예매 등을 다양한 서비스 채널을 통해 진행하고, 필요한 정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커뮤니티·리뷰를 일일이 찾아 얻는다. 여행을 간 이후엔 지도나 모빌리티 서비스, SNS를 또 이용한다.

온라인 구매·예약이 활성화했지만 오프라인 경험의 변화도 여전히 크지 않다. 3달 전쯤에 제주도 출장을 가서 반나절가량 유명 관광지 매표소들을 돌아봤다. 온라인으로 티켓을 구매한 고객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매표소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직원에게 티켓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확인하거나 다시 종이 티켓을 발급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다시 입구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직원에게 티켓을 확인받은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호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온라인 예약을 하면서 결제와 필요한 정보를 모두 제출했는데도 다시 프런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확인을 한 이후 입장을 해야 한다. 온·오프라인은 이렇게 여전히 단절돼 있다.

이런 파편화와 단절의 구간을 연결해야 한다. 필요한 콘텐츠와 정보를 더욱 유연한 방식으로 모으고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제주도를 방문하는 야놀자 고객은 단 한 번도 매표소나 직원과의 만남 없이 호텔-이동-관광지를 이용하고 돌아올 수 있게 만들자’라는 식의 이야기를 팀원들에게 자주 한다. 이러한 고객 경험이 제대로 구축되면 내국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에게도 동일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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