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리더에게 리더가 :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

스타트업 멘토가 알려주는
혹한기에 살아남는 법

김윤진 | 377호 (2023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22년 하반기부터 투자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자금난에 시달리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비전만 가지고도 투자를 유치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당장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손익분기점을 넘어야 시장을 설득할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의 개척자이자 창업가들의 대표적인 멘토로 꼽히는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는 이럴 때일수록 리더의 멘탈 관리, 즉 동요하는 감정을 붙잡고 냉정하게 상황을 진단해 돌파하는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투자 혹한기에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는 너무 지체돼 현상 유지조차 힘들어지기 전에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비상 상황인 만큼 최대한 현금 확보의 길을 다양하게 열어 두라고 강조한다. 꼭 필요한 인재까지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내부 커뮤니케이션에도 힘써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오늘날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계보는 1990~2000년대 인터넷 시대를 열었던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 다음)과 네이버, 카카오 등의 창업 멤버들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벤처 신화의 주인공들 가운데 일부는 연쇄 창업의 길에 뛰어들었고, 일부는 후배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초기 투자의 길에 접어들어 새로운 혁신의 씨앗을 뿌렸다. 벤처 1세대로서 1995년 이재웅 대표와 다음을 공동 창업하고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냈던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는 후자의 대표주자다. 그는 2010년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를 권도균 대표와 공동 설립해 본격적으로 초기 스타트업 투자에 나섰고 2013년에는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인 ‘매쉬업엔젤스’를 설립해 오늘의집(버킷플레이스), 리멤버(드라마앤컴퍼니), 넛지헬스케어(캐시워크), 스캐터랩(이루다), 뤼튼테크놀로지스(뤼튼) 등 굵직굵직한 스타트업들을 발굴해 키워냈다.

국내 스타트업들의 성장에 급제동이 걸린 2023년 현재, 후배 창업가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이 길을 앞장서서 걸었던 선배 멘토의 조언일 것이다. 무더웠던 날씨가 무색하게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여전히 찬 바람이 불고 있다. 2022년 하반기부터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창업 열기는 급격히 식었고 넥스트 유니콘의 꿈을 안고 호기롭게 대기업과 빅테크 문을 박차고 나오는 예비 창업가도 종적을 감췄다. 과열된 분위기가 가라앉고 ‘옥석 가리기’가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경기 순환 과정이라고 낙관하기엔 투자 혹한기가 당분간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이처럼 ‘성장’이 아닌 ‘생존’이 화두가 된 시기,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리더들을 위해 DBR이 수많은 창업가의 멘토이자 존경하는 인물로 꼽히는 이택경 대표를 만났다. 1997년 외환 위기부터 닷컴 버블과 붕괴 등 숱한 시장의 격변을 목격해 온 그로부터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스타트업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과 역량,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20230911_131124


투자 혹한기에 스타트업의 생존을 위해 요구되는 리더의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힘든 시기를 버티려면 일단 냉정한 판단력이 가장 중요하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진단한 뒤 이를 타개할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악수를 두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해결 능력이 가장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과거보다 더 빠르게 매출을 올리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개편할 필요가 있고, 그다음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마케팅 비용 등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면 인력 구조조정이나 주요 사업 분야 외 서브 브랜드 매각, 지식재산(IP)이나 영업권 매각 등도 감행해야 한다. 최근에도 투자 유치에 실패해서, 혹은 당장 실패하진 않았더라도 선제적으로 인력 감축을 하는 스타트업들이 많다. 자금난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타이밍을 놓치기 전에 한발 앞서 체질 개선을 하고 효율을 높이려면 이런 자구책을 써야 한다. 평상시에는 정부 지원 사업 등 단기 용역 매출에 의존하지 말라고 조언하는데 이런 비상시에는 자금 조달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유동성을 확보할 경로를 최대한 열어 두고 정부 지원 사업 등도 마다하지 말고 뛰어들라고 권한다.

다음 창업 당시 힘든 시기는 언제였고,
그때 경영진은 어떻게 대응했나?

1995년 다음 창업 이후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였다. 독일의 미디어 회사 베르텔스만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 전까지 자금난을 겪었다. 한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기업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자금줄이 막히다 보니 이재웅 대표와 어떻게 구조조정을 할지 여러 고민을 했다. 이때 기업 고객들이 힘드니 B2B(기업 간 거래) 사업에서 매출이 나기 쉽지 않겠다는 판단 아래 주력 B2B 사업이었던 인트라넷 패키지 사업을 접기로 했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매출을 많이 낼 수 있는 캐시카우로서 SI(시스템통합)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인력을 재배치했다. 개발자들은 탐탁지 않아 했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사업 중에서도 콘텐츠 서비스였던 ‘버추어갤러리(Virtual Gallery, 인터넷과 예술의 융합을 콘셉트로 한 가상 갤러리)’ ‘사이네마(Cy.nema, 영화 정보 서비스)’와 ‘패션넷(패션 정보 서비스)’ 등을 모두 다 정리했다. 지금은 영화나 패션 정보 사이트들이 활성화됐지만 그 당시에는 불모지였고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 있었다. 이런 서비스를 우리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냉정하게 짚어 봤을 때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따라서 콘텐츠보다는 무료 웹메일 서비스인 ‘한메일’ 등 기술 기반 서비스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고, 소수 인원이었긴 하지만 일부 콘텐츠 기획자는 구조조정을 했다.

GettyImages-1290419884_[변환됨]


위기 상황이 턴어라운드의 기회가 됐다고 생각하나?

결과적으로는 다음이 사업 초창기에 집중했던 콘텐츠 서비스가 아니라 1997년 5월 선보인 무료 웹메일 한메일 덕분에 성공한 것이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의 선택과 집중을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메일이 인터넷의 기본 서비스였던 시절 한메일을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서비스 개시 1년 반 만인 1998년 12월 회원 수 20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1999년 ‘다음 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를 선보이고, 이후 포털 서비스 체계로 개편해 포털 사이트 초기 시장 점유율 1위를 가져갈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강점이 콘텐츠보다는 기술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기본으로 돌아가 비교 우위를 살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IMF는 전 세계적인 위기는 아니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금융 경색이었기 때문에 유럽 등 북미 시장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데 주목했고 이재웅 대표가 유럽 네트워크를 동원해 해외 투자자들로 눈을 돌린 전략도 유효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베르텔스만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다시 성장 동력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위기 상황일수록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열어 두고 시야를 더 넓힐 필요가 있다.

인력 구조조정을 할 때 주의하거나 명심해야 할 사항은?

인사관리(HR)가 가장 힘들고 정답이 없는 종합예술의 영역인 것 같다. 인력 구조조정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는 상대적으로 조직에 중요도가 낮은 사람부터 나가야 하는데 진짜 필요한 사람, 안 나가야 될 사람들이 같이 나간다는 점이다. 불가피하게 일부를 떠나보내더라도 남은 사람을 붙잡아 두려면 경영진이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한다. 왜 이사회가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명확히 알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난관을 뚫고 버티면 회사에 미래가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괜히 말을 돌려서 하는 것보다는 회사의 힘든 상황과 실책을 최대한 솔직하게 공유해야 한다. 투자 혹한기 같은 대외적인 경기 상황의 영향도 분명 있겠지만 회사가 흔들리는 건 1차적으로 경영진 책임이다. 설령 직원들의 책임이 일부 있더라도 경영진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게 먼저다.

또한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타이밍이 관건이다. 단순히 경비만 줄이면 되는 게 아니라 경비를 줄인 상태에서 남은 자원으로 미래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지체하다가 미래를 위한 투자 여력마저 고갈되면 구조조정을 한들 현상 유지에 급급하게 되고 경기가 턴어라운드했을 때 반등 기회를 도모할 수 없다. 자금이 동 나면 현상 유지도 어려워진다. 현재 시리즈 B 정도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월 손익분기점(BEP)을 최대한 맞추려고 하고 있다. 이런 뼈를 깎는 자구책의 목적이 ‘기업의 영속성’인 만큼 때를 놓치면 의미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조직이 비대해지면 커뮤니케이션도 어려워지고 필요한 리더십 역량도 달라질 것 같다.

다음을 경영할 때를 돌이켜 보면 몇 번의 분기점이 있었다. 첫 번째 고비가 20~25명을 넘어갈 때다. 이 규모가 넘어가면 더 이상 한 팀이 아니라 2개 이상의 팀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생기고 관리가 어려워진다. 매쉬업엔젤스의 인력을 25명보다 늘리지 않으려는 이유도 이 규모를 기점으로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고비가 70~100명대에 진입할 때다. 이 정도로 성장하면 멤버 간 핵심성과지표(KPI)나 비전도 소수 정예일 때보다 공유되기 어려워진다. 양적인 걸 떠나서 질적으로도 관리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역할 분담의 비효율이나 불협화음도 생긴다. 신규 멤버를 뽑을 때도 그전까지는 조직 문화에 잘 맞는 사람 위주로 선별하는 게 가능했다면 더 이상 이상적인 멤버로만 조직을 구성하기도 어려워진다.

간혹 조직 문화에 잘 적응할 사람만 까다롭게 뽑는 스타트업들이 있긴 한데 그런 기업은 퇴사율이 낮은 대신 구인율도 너무 낮다.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너무 가려 뽑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다. 사실 스타트업이 아무리 조직 인력을 잘 세팅한다 한들 대기업처럼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정비할 수는 없다. 차라리 한계를 인정하고 중간 키맨을 잘 뽑고 권한을 위임하는 게 더 중요하다. 조직 체계가 부족한 조직일수록 중간관리자의 역할이나 개인기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좋은 중간관리자 몇 명만 있어도 동료들이 잘 안 나간다. 반대로 조직을 잘 정비해 놔도 중간관리자에 대한 불만이 높으면 직원들이 퇴사할 수 있다.

멘탈 관리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창업가들은 없는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하는지 궁금하다.

사업은 장기전이고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멘탈을 관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이 있고 힘든 일을 겪으면 동요한다. 멘탈이 튼튼하다는 건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의 동요에도 불구하고 끈기와 집요함이 있다는 뜻인 것 같다. 뛰어난 경력과 능력을 갖춘 ‘어벤져스’팀에 투자할 때 신중해지는 까닭도 창업자가 너무 똑똑한 경우 사업을 접어도 갈 만한 선택지가 많아 의외로 끈기가 부족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창업이라는 여정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난제와 맞닥뜨리는 일이기 때문에 창업자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소위 ‘월화수목금금금’ 일하거나 요즘 같은 혹한기에는 여러 고민으로 일주일 내내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수 있으니 지속적으로 가벼운 운동이라도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하라고 권한다. 또한 일요일의 반나절만이라도 사업과 무관하게 다른 생각을 하고 내려놓는 것이 곧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도 말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

100% 실패와 100% 성공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진 전쟁과 이긴 전쟁 모두 그 면면을 살펴보면 일부 전투는 지고, 일부는 이기기 마련이다. 결국 부분적인 실패에서 배워서 절대적인 실패로 만들지 않고 시행착오를 피하는 지혜를 얻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어찌 됐든 리더는 아주 사소한 성공이라도 구성원들이 성공의 경험을 맛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큰 전략의 성공이 아니라 작은 전술의 성공이라도 해봐야 리더는 물론이고 구성원들도 회사의 아이디어가 단순히 가설이 아니라 정말 고객이 필요로 하는 니즈를 해소해줄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는 자신감, 고객에게 소구할 수 있는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실패만 반복하면 무엇이 시장에서 먹히는지, 뭘 해야 성공하는지 감을 잃게 된다. 한 번에 성공하는 기업은 거의 없고 피벗까지는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시행착오는 누구나 겪는다.

큰 시행착오 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스타트업도 있지 않나?

간혹 창업 초기부터 승승장구하는 기업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창업자 개인을 놓고 보면 개인 차원에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패가 밑거름이 돼 단숨에 성공을 일군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매쉬업엔젤스의 포트폴리오 기업 중 ‘캐시워크’라는 서비스를 만든 넛지헬스케어가 그런 사례다. 이 회사는 금전적 보상을 통해 사용자의 건강 습관을 독려하는 캐쉬워크 서비스로 혹한기였던 2023년 상반기에도 3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기본적으로 흑자 기업이고 숫자로 나타나는 지표가 좋기 때문에 투자가 수월했던 것이다.

넛지헬스케어는 창업 초기부터 빠르게 서비스를 성장시키고 영업이익과 매출을 냈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의사 출신 창업가 나승균 대표와 ‘원더래빗’이란 스타트업의 박정신 대표가 같이 만든 조인트벤처(JV)인데 매쉬업엔젤스가 투자했던 모회사인 원더래빗의 초기 스토리는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원더래빗의 박정신 대표 등 창업 멤버들은 원래 브이씨엔씨(VCNC) ‘비트윈’과 비슷하게 커플들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커플릿’ 서비스를 운영하다가 헬스케어 사업으로의 피벗을 고민하던 중 캐시워크라는 작은 서비스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JV로 신사업에 베팅했다. 나승균 대표 역시 예방의학 전문가로 진료실에서 운동, 식단 관리를 권하면서 겪은 개인 차원의 여러 경험을 가지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모든 성공의 배경에는 여러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있는 만큼 작은 실패를 큰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GettyImages-1452511326_[변환됨]


힘든 시기를 못 버티는 기업들의 공통점
혹은 호황기에 리더들이 잘 범하는 실수는?

대외 투자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팀은 아무래도 리더의 욕심이 지나치게 컸던 팀이다. 스타트업이 핵심적으로 갖춰야 할 요소가 ‘성장’이니 대다수 리더가 미래의 성장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먼 미래만 바라보면 화를 입을 수 있다. 결국 언젠가는 수익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제 수익이 나오는지를 예측했을 때 약 10년 뒤에도 불투명하다면 목표가 지나치게 공격적인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매쉬업엔젤스 투자사들의 생존율이 시장 평균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 이유도 우리가 정석대로 단계를 밟는 창업가와 팀을 선호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얌전한 모범생이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꿈은 크되 너무 무모하지 않은 창업자들을 좋아한다.

설령, 조금 무리했더라도 투자 환경이나 생태계가 바뀔 때 그에 맞춰 빨리 경영 스타일을 바꾸는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 ‘비록 적자이지만 앞으로 상황이 개선될 것’이란 낙관론이 통하지 않는 시기인 만큼 당장 흑자를 내는 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적자 규모를 큰 폭으로 줄여 나가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투자자들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장을 강조하더니
이제는 수익 지표만 강조하는 등 기조가 너무 급격히 바뀐 것 같다.


1년 만에 투자자들 태도가 확 바뀌다 보니 간혹 불만을 토로하는 창업가도 있다. 아무래도 후기 투자자들이 숫자로 나타나는 지표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고, 시리즈 B 단계 이상에서부터는 투자자들이 거의 철벽을 치고 심사역들에게 ‘인생 딜이 아니면 가져오지 말라’고 주문하는 VC 대표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투자에 유행이 있을지라도 항상 판단은 스타트업 대표의 몫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투자자의 말이 100% 정답이 아니다. 재무는 어느 정도 공식이 있지만 마케팅이나 전략, 인사는 정답이 없고 창업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물론 투자자도 생태계의 일부이자 주요 주주이므로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고객이기 때문에 고객을 바라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요새 투자 분위기가 움츠러들었다고 초기 스타트업들이 BEP를 맞추기 위해 단기 성장,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 최적화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아직 시장에 대한 가설이 검증되지도 않고 비즈니스 모델이 유효한지도 알 수 없는데 그로스 해킹, 최적화를 해봤자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가령, 월 매출이 1000만 원인데 월 단위로 5%밖에 성장을 못한다면 1년이 지나도 2000만 원까지 도달하기 어렵다. 이 정도 속도는 초기 스타트업에는 용납이 안 된다. 더 큰 성장이 가능한 가설을 검증하는 게 먼저이고, 최적화는 이후의 이슈다. 회사가 생각하는 고객의 문제가 정말 문제가 맞는지, 회사가 생각하는 해결책이 정말 해결책이 맞는지를 확실히 점검하는 게 먼저다.

성장하지 못하고 근근이 생존만 하는
‘좀비’ 기업들도 일단 버티는 게 답인가?

업종마다 다르다. 어떤 시장에서는 버티는 자가 승자가 되기도 한다.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진입장벽이 낮은 대신 살아남는 자가 승자가 되는 업계도 있다. 이런 업계에서는 경쟁사가 사라지고 시장이 성숙할 때 뒤늦게 J커브를 그리는 스타트업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초기에 공격적으로 시장을 선점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업계도 있다. ‘짧고 굵게’ 승부를 봐야 하는 업종과 ‘가늘고 길게’ 가야 하는 업종이 모두 존재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시장의 특성을 미리 알 수 없고 겪어봐야만 안다는 게 문제다. 가령, 미국 대체육 시장에서는 한때 비욘드미트가 공격적인 투자로 시장 주도권을 쥐는 듯했는데 지금은 임파서블푸드가 우세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비욘드미트가 초반에 무리한 물량 공세로 자원을 많이 소진하고 힘을 뺀 것이 판단 착오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식품 사업도 유통 사업마냥 마라톤처럼 오래 꾸준히 영업을 해야 하는 영역인데 초반 선점을 하려던 게 패착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단편적인 조언을 하긴 어렵지만 근근이 버티기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버틸 만큼 버텼다면 연착륙하는 것도 중요하다. M&A, 혹은 인재 인수(Talent Acquisition)의 기회가 있다면 적극 모색해봐야 한다. CEO 입장에서도 폐업하면 연대보증이 있는 빚이 남아 있을 수 있고, 다른 빚이 없더라도 체불된 임금을 1순위로 갚아야 할 책임이 있다. 최대한 채무 부담을 없앨 수 있도록 인력을 필요로 하는 다른 기업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혁신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과 시장의 문제를 잘 찾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이 역시 업종별 차이가 크다. 물론 제품과 시장의 정렬을 뜻하는 PMF(Product-Market Fit)가 업종 불문 중요하긴 하지만 딥테크 기업의 경우 혁신적인 기술이 PMF보다 더 중요할 때도 많다. 기술적 비교 우위가 확실하면 시장의 문제를 못 찾아도 M&A를 통한 엑시트도 가능하다. 이에 반해 기술적 비교 우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PMF가 있어도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패스트팔로워한테 따라 잡히기 쉽다.

하지만 서비스 플랫폼 기업의 경우는 다르다. PMF를 빠르게 맞춰 놓으면 고객 이탈을 방어하는 록인(Lock-in)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기술이 전부가 아니다. 네이버, 카카오도 기술을 갖춘 팀이긴 했지만 고객을 록인하고 진입 장벽을 쌓아서 시장의 승자가 된 것이지 기술이 세계 최고라서 승자가 된 것은 아니다. 기획된 제품을 구현할 기술, 대용량의 트래픽을 받쳐줄 수 있는 백엔드 기술 정도만 갖춰지면 된다는 얘기다. 생성형 AI 시장도 마찬가지다. 압도적인 기술적 격차를 보유하고 해자를 쌓을 수 있으면 기술 싸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누가 더 오픈소스를 최적화하고 응용하느냐로 싸우는 경우에는 PMF를 잘 찾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하나를 중점적으로 보기보다는 투자할 때 업종별로 양쪽의 비중에 우선순위가 다르고,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같이 본다. 리더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나 취약점을 스스로 인지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유연한 태도를 가졌는지에 더 주목한다.

GettyImages-1271367687_[변환됨]


현재 스타트업 시장 분위기와 향후 전망을 알려달라.


벤처캐피털(VC) 대표 모임에 가면 지난 3년 반 동안 늘 나오던 질문이 “올해가 고점이겠지?”였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2022년 상반기가 고점이었던 것 같다. 다만 닷컴 버블 수준으로 거품이 꼈던 것은 아니고 과열된 정도였다는 공감대가 있다. 1990년대 말에는 회사 이름에 ‘닷컴’ 이름만 붙이면 실체 없는 기업도 주가가 오르곤 했는데 지금은 이익을 못 내는 게 문제이지 매출을 못 내는 기업은 없다. 다만 과열 상태에서는 비전만으로도 투자를 받을 수 있으니 리더들이 성장 동력을 만들고 흑자 전환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가 있었는데 지금처럼 후기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 하락으로 손실을 많이 본 상황에서는 캐시버닝(Cash Burning, 현금 고갈) 이 큰 상태에서 성장만을 우선적인 전략으로 가져가는 기업을 기다려줄 만큼 여유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대부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회피할 것이다.

이로 인해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가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견조한 기업들이 있고 허상이 아니라 실체가 있다는 점에서 비관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 때를 기다리면서 창업을 하면 비즈니스 환경과 경기가 돌아섰을 때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텐데 최근에 창업하는 팀이 눈에 띄게 줄어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쿠팡도 오랜 적자를 감내하고 데카콘이 됐듯이 성공 사례를 목격하면서 투자자들의 시야도 더 넓어졌고 장기적인 안목도 생겼다. 과열기의 ‘묻지마 투자’가 줄어들고, 기업의 옥석이 가려지는 동시에 투자자의 옥석도 함께 가려진다면 시장이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상 상황에서도 스타트업 리더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경영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고객이 가장 정확한 심사위원이라는 점이다. 시장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열심히 이용해주는 이들이 만족하면 기업이 잘될 수밖에 없다. 창업가의 아이디어에 부정적이던 투자자도 고객의 반응을 보면 결국 자신들이 틀렸다고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고객에게 집중하고 시장을 고객의 눈높이에서 생각해야 한다. 종종 창업경진대회 심사위원이나 투자자 말을 듣고 특정 아이템에 올인하는 기업들이 있다. 하지만 심사위원이 약 10분간 기업 설명을 듣고 5분간 질의한 뒤 내린 단편적인 평가보다는 현장에서 고객에게 받은 피드백에 귀 기울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창업팀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투자자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즈니스 모델이 논리적으로 합당한 것 같더라도 탁상공론이 되지 않도록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피드백을 구해야 한다.

또한 좋은 팀원을 구하고 후원자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 외부와 커뮤니케이션할 때도 인바운드로 찾아오는 연락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건 유창한 언변과 그럴싸하게 말을 포장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설득력은 오직 진정성에서 나온다. 혼자 성공할 수 있고 1인 대표가 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아웃바운드로 찾아다니면서 좋은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라도 해야 한다. 팀 빌딩을 잘하고 주변 네트워크로부터 배우는 피어 러닝(Peer Learning)을 하는 게 시행착오를 줄이고 성공에 가장 빠르게 다가가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이 경기 반등에 대비해 창업을 할 적기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스스로 리더로서 자질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스스로 창업에 적합한 인물인지 리더의 자질을 판단하는 게 쉽지는 않다. 머리와 가슴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머리’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문제해결 능력, 빠른 학습 능력, 실행력이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이 세 가지가 필요조건인 것 같다. 셋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가슴’으로는 창업을 하고 싶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자문해야 한다. 단지 돈을 벌고 남들한테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 창업하려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외적 동기만으로는 사업의 고비들을 넘는 데 한계가 있고 확실한 내적 동기가 필요하다.

내적 동기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특정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유형이다. 개인적으로도 사업을 꼭 하겠다는 일념은 없었지만 그 대신 인터넷과 웹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고 대부분의 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즉, 인터넷에 거는 기대 하나로 창업한 셈이다. 오늘의집을 창업한 이승재 대표도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돈을 얼마 들이지 않고 멋있게 인테리어를 해 놓은 것을 보고 사업 아이템을 정했다고 한다. 누구나 멋진 집을 꾸밀 수 있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플랫폼을 키워온 것이다. 두 번째는 자기 주도적인 삶을 원하는 유형이다. 구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문제나 사업 구상은 없지만 돈이나 겉멋을 좇으며 타인에게 끌려가는 삶이 아닌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삶을 원해 창업하는 이들이 두 번째에 해당한다. ‘데일리호텔’을 만든 신인식 대표도 아이템 자체는 본인의 전공인 호텔경영을 살려 뒤늦게 정했지만 능동적인 삶을 위해 무조건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본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해줄 무언가가 있는지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길 권한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