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olumn

미래의 리더십, 실패를 먹고 사는 신약 개발 닮아야

340호 (2022년 03월 Issue 1)

우리 몸의 유전자 수는 2만∼2만5000개 정도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은 무한한 항원의 수에 대항하는 항체를 만들어 낸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놀랍게도 항체를 만드는 세포들은 특정 항원에 대항하는 계획된 설계도가 없다. 그저 제한된 수의 유전자 세트들을 무작위로 재조합해 다양한 조합의 항체 생산 세포들을 미리 만들어 둘 뿐이다. 여기에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세포는 제거하고(음성 선택), 외부 항원과 결합 능력이 있는 세포만 살려서(양성 선택) 살아남은 세포들이 항체의 다양성을 완성한다. 핵심은 최대한 다양한 레퍼토리의 조합을 만들어 놓고, 이 무한의 조합으로부터 기능성 항체를 가진 세포만 살려 둔다는 점이다. 양이 곧 질이 되는 순간이다.

신약 개발의 과정 역시 비슷하다. 신약 개발은 후보 물질 연구부터 임상 개발을 거쳐 최종 시판 승인까지 평균 10년에서 15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투입 비용도 약 260억 달러(30조 원)에 달한다. 임상 1상 단계의 후보 물질 중 FDA(미국식품의약국) 허가를 취득해 시장에 출시될 가능성은 7.9%(2011∼2022년 기준)에 불과하다. 10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면 그중 1개도 채 성공하지 못하는 무모한 도전이다. 그렇기에 많은 신약 개발 기업은 다양한 후보 물질을 조기에 확보해 다수의 임상 개발을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각 파이프라인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쌓아가며 가치를 끌어올리되 약의 효능이 입증되지 않거나 임상 과정에서 시장 상황이 바뀌어 그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물질은 빠른 폐기(Quick Fail)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이는 한 종류의 항체를 만들기 위해 무한한 유전자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항체 생산 세포를 몽땅 제거하는 우리 몸의 면역 체계와 비슷한 방식이다. 또한 두 과정은 어찌 보면 극도의 비효율과 수많은 실패가 전제된 전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위 두 사례가 주는 인사이트는 무수히 많은 방식의 성공은 무수히 많은 실패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의 경영 트렌드와도 괘를 같이한다. 최근 많은 기업이 새로운 시도를 강조하고 실패를 축하하며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불완전하더라도 일단 빠르게 부딪혀보는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도 이 같은 실패의 경험이 결국 최종적인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리더십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리더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극대화된 시대, 팀원들에게 더 많은 실패의 기회를 제공해 팀원을 성장시켜줄 수 있는 리더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다. 어떻게 회사 혹은 조직을 성장시킬 것인가가 아닌 직원에게 어떠한 새로운 도전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가 중요해지는 세상이다. 하나의 신약이 개발되고 시판되기 위해 10년 이상의 시간 동안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쌓아 올리는 것처럼 팀원에게도 성공의 경험은 물론 새로운 시도와 이를 통한 실패의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역할의 확장성을 길러주고, 나아가 미래의 리더로 성장시켜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 아닐까. 과거의 방식 그대로 실무형 리더만을 외치며 내가 가진 전문성과 경험들로 팀원들을 안내하는 일이 때로는 팀원의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 리더는 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의 리더십은 실패를 본질적인 특징으로 갖는 항체 생성 과정이나 신약 개발 과정과 닮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긴 시간 동안 새로운 시도와 실패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리더, 그리고 끊임없는 실패의 기회를 제공해 미래의 리더를 키워내는 리더가 돼야 한다. 어떤 경험을 팀원들에게 제공했는가? 그들이 작년과 다르게 일할 수 있도록 나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 팀원들은 어떠한 새로운 시도를 했고, 어떻게 변화•성장했는가? 그 변화가 바로 리더가 제공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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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수 사노피 특수질환 메디컬 리드(이사)•신경과학 박사
필자는 사노피 스페셜티케어 사업부에서 희귀질환 메디컬팀을 이끌고 있다. 베링거인겔하임, 바이엘 임상의학부팀에서 한국 및 아시아 국가의 혁신 신약 도입을 위한 임상 연구와 의과학자문으로 근무했다. KOTRA-Grants4Apps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및 제약사 지원 연계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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