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5∼18세기 대운하시대 활동했던 10대 상방 중 제일로 꼽히는 상인은 휘주 상인이다. 휘주 상인은 상업이 크게 번성했던 양주 지역에 후발주자로 등장했지만 대운하가 관통하는 물류의 거점이라는 지리적 조건을 십분 활용해 유통망을 복구시켰고, 새로운 왕조의 경제 안정을 도모했다. 휘주 상인은 창의적인 대응 능력과 더불어 빈민 구휼 등 지역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지역의 새로운 엘리트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편집자주 중국 상인을 심층적으로 연구해 온 조영헌 고려대 교수가 ‘대운하 시대, 중국 상인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과도기적 역사 속에서 신속한 대처 능력과 전략적 투자로 입지를 넓혀 나간 역사 속 중국 상인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난세를 극복하는 경영의 지혜를 익히시길 바랍니다.
중국에서 상인은 언제부터 천시받지 않았을까?
오늘날 광범위한 지역에 점포를 개설해 많은 자산을 운용하는 비즈니스맨, 즉 상인을 천시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사회적 영향력은 한 국가를 넘어 글로벌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비즈니스맨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상인의 사회적 위상은 상당히 낮았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똑똑한 자식은 가업을 잇게 하기보다는 공부를 시키려 했고, 수많은 이를 먹여 살린 상인이었더라도 조정에 밉보이는 순간 그동안 쌓았던 부와 명예를 순식간에 잃었다.
그나마 중국의 상인은 한국의 상인보다는 나아 보였다. 물론 중국인은 타고 난 장사꾼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중국의 역사를 봐도 오래전부터 상당한 위세와 영향력을 지닌 상인 혹은 상인 출신의 정치가들이 배출된 바 있다. 은허(殷墟)를 도읍으로 두었던 나라의 이름이 ‘상(商)’이고 상나라 사람들이 물물교환 형태로 이뤄지는 상업에 능했기에 그 후예 가운데 장사꾼들을 ‘상인(商人)’으로 불렀다. 춘추(春秋)시대 제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끌며 도읍지 임치(臨淄)를 전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로 발전시켰던 재상 관중(管仲, ?∼기원전 645)도 상인 출신이었고, 전국시대(戰國時代) 후반 진(秦)나라가 통일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놓았던 재상 여불위(呂不韋, ?∼기원전 235) 역시 대표적인 상인 출신 정치가로 손꼽힌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 중국의 상인들은 사회의 말단 신분이라는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들은 오랜 기간 농업을 ‘본업(本業)’이라 중시하고 상업을 ‘말업(末業)’이라 천시하는 중농억상(重農抑商)이라는 억압적 인식 속에서 인내하며 실력을 연마해 나갔다. 조선시대 중국을 방문했던 사신들의 눈과 감각으로도 명(明)과 청(淸) 왕조는 사회경제적으로 현저하게 발전했고 상인들의 위상도 남달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중국의 상인들 역시 문인층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인내(忍耐)’를 격언으로 삼으며 살아가야 했다.
이러한 인고의 세월 가운데 드디어 상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태도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대체로 명•청 시대에 본격적으로 발생했다고 파악한다. 그래서 일부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는 이 시기를 ‘자본주의 맹아’가 싹텄던 시기로도 불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명나라(1368∼1644)만 해도 276년이고, 청나라(1644∼1911)의 267년까지 합하면 도합 543년이나 되기에 519년간이나 지속됐던 조선왕조(1392∼1910)보다도 더 긴 시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의 시기를 ‘명•청 시대’로 뭉뚱그려 불렀던 이유는 명과 청이라는 두 왕조를 연속성에서 바라보려는 전통적인 생각의 관성과 더불어 더 적합한 시대 구분을 찾기 어렵다는 비(非)수월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세밀하게 나눠 상업에 대한 인식 변화와 상인의 활동상을 규명할 때가 됐다. 게다가 19세기 아편전쟁을 비롯한 잇단 전쟁에서 서구 열강에 패배한 후 반(半)식민지를 경험하게 되면서 중국 사회는 글로벌한 세계 경제와 맞물린 사회경제적인 대변동을 경험했으므로 그 이전까지의 경제 시스템과 한 묶음으로 이해하기에 곤란한 부분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 연재를 통해 살펴보려는 역사 속의 중국 상인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명•청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 용어가 필요하다.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상인의 위상 변화가 보편적으로 감지되기 시작하는 시기이자 외세의 강제적인 영향력인 ‘불평등조약’ 체제로부터 자유로운 시대적인 상황을 오롯이 담고 있는 시기여야 했다. 오늘날 달러와 유사했던 세계의 은(silver)이 중국으로 흡입되며 중국의 상품경제를 한껏 고무시키면서도 전통적인 사회경제적 시스템이 유지되던 마지막 시기가 적합했다. 바로 ‘대운하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