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등장한 군중이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뒤흔들고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기존 모델을 해체하거나 파괴한다. 기업의 생명줄인 자금 조달도 이런 변화의 흐름을 비켜 갈 수 없다. 이른바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이라는 새로운 방식이다. 크라우드펀딩은 소셜네트워킹과 벤처 산업의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가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 및 교류 방식에 관한 기존의 규칙을 다시 쓴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크라우드펀딩이 장차 기업과 각종 프로젝트의 자금 마련 방식을 재편할 가능성이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사업자금 확보 과정의 민주화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자원을 확보하고 배분하는 과정이 일부 탄탄한 소수의 회사로 제한됐다. 하지만 크라우드펀딩은 인터넷상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집단지성과 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자율권을 제공한다.
“소셜 네트워킹이 시간을 배분하는 방식을 바꾼 것처럼
크라우드펀딩은 자본을 배분하는 방식을 바꿀 것이다.”
- 케빈 로튼(Kevin Lawton)과 댄 마론(Dan Maron)
크라우드펀딩의 현재
크라우드펀딩은 미래에 발생할 일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기업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 자금조달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크라우드펀딩은 오늘날 주요 비즈니스 세계에서 일어나는 네 가지 요소의 복합적 작용으로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행 가능하고 타당한 형태로 구체화됐다.
“서구 역사에서는 수백 년마다 극심한 변화가 발생한다. 수십 년 뒤 사회는 세계관, 기본가치, 사회 및 정치 구조, 예술, 주요 사회기관 등을 재정리한다. 50년 후에는 새로운 세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조부모들이 살았고 부모들이 태어났던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태어나게 된다.”
-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크라우드펀딩을 발생시킨 첫 번째 요소는 인터넷에 등장한 군중이다. 이들은 공식적인 조직을 갖춘 집단이 아니다. 하지만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와 같은 증가추세가 계속된다면 약 5년 후 세계 인터넷 인구만 수십억 명에 이를 것이다. 페이스북을 보라. 그들이 국가라면 지구상에서 3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일 것이다. 군중은 온갖 사업 및 사회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용어가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이다. 크라우드소싱은 무료 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 운동을 통해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점점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인간은 크라우드소싱의 힘을 빌려 독창력에 대한 물리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고 팽창하고 있는 세상에 통합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요소는 ‘상투적인 자금조달 방식의 쇠락’이다. 2003년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북미 지역의 모든 상장 기술기업을 포함해 신생기업들의 재무실적을 연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20곳의 신생기업 중 1곳꼴로 주식을 상장했고, 20곳의 상장기업 중 1곳꼴로 주주가치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즉, 기존 벤처캐피털 산업은 성공기업을 가려내는 데 그다지 탁월하지 못하며 훌륭한 결과도 내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실질적인 참여자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보다 많은 사람들과 협력하는 새로운 펀딩모델을 필요로 한다. 세상은 앞으로 더 복잡해질 것이며 대중들의 집단지성도 발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요소는 ‘시기적절한 아웃사이더의 등장’이다. ‘괜찮은’ 대학에서 ‘괜찮은’ 학위를 받았다면 일을 벌일 벤처자금을 모으는 게 수월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적절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업계획서는 첫 번째 검토 단계에서 걸러졌다. 이런 간단한 방법이 결코 효과적일 수는 없다. 요즘처럼 복잡하고 변화하는 세상에 맞지도 않다. 미국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 경험을 쌓느라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네 번째 요소는 ‘초기단계 자금조달의 출현’이다. 크라우드펀딩의 초기 선구자들은 2005년부터 두각을 보인 창업보육센터였다. 이 기관들은 창업 초기 단계의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공했다. 하지만 보육기관은 한 지역에만 머물러 있거나 특정 유형의 신생기업에만 집중했다. 오로지 사업계획 자금에만 중점을 두는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보다 탄탄하고 강력한 크라우드펀딩의 메커니즘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인상적인 점은 크라우드펀딩이 이미 활약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블렌더재단(Blender Foundation, www.blender.org)이 개봉한 영화 ‘신텔(Sintel)’은 55만 달러의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됐다. 690만 유로의 예산을 들인 ‘스타 레크(Star Wreck)’와 ‘아이언 스카이(Iron Sky)’도 크라우드펀드 영화다. 패션 분야의 사례는 캣워크 지니어스(Catwalk Genius, www.catwalkgenius.com)가 있다. 디자이너들은 이와 같은 사이트에서 자신이 만든 의상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의 가까운 미래
크라우드펀딩은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돼 기존 벤처자금 조달 방식을 구석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새롭고 우수한 자본배치 메커니즘인 크라우드펀딩은 특권을 가진 몇몇 사람이 아닌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의견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이다. 이전의 자본분배 시스템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했던 쏠림도 없다. 크라우드펀딩이 활발해지면서 가까운 미래에 지적, 재정적 민주화를 향한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첫째, ‘가상 인프라 파워의 등장’이다. 크라우드펀딩의 잠재력을 100% 구현하려면 미래 크라우드펀딩 가상 플랫폼이 필요할 것이다. 확실하고 실행 가능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의 핵심적인 특징은 우선 매치메이킹이 탁월해야 한다. 실행 가능하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투자할 잠재적 후원자를 충분히 모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소셜네트워킹의 활력을 응용해야 하며 효과적인 비디오 인프라도 구축해야 한다. 이 플랫폼은 여러 단계를 필요로 하는데 그래야만 사람들이 프로젝트 창설자, 투자자, 전문 분석가 등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플랫폼은 통합된 금융정보를 제공하고 더 투명해질 것이다. 페이스북(Facebook)과 트위터(Twitter)가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수많은 API와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하고 발전할 것이다.
둘째, ‘집단지성 발굴의 가능성’이다. 크라우드펀딩의 명확한 특징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모아 취합하는 능력이다. 사람들의 집단지성은 소수정예의 경영진의 판단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쟁 우위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문제 해결에는 다양성이 중요한데 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런 집단 지성이 ‘의사결정 시장’과 ‘예측 시장’을 형성할 것이다. 예측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라고 질문하면 사람들이 예측을 내놓는 것이다. 좋은 본보기가 현재 예측 시장 플랫폼을 선도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인트레이드(InTrade, www.intrade.com)다. 이 예측 시장에는 매력적인 포상이 있으며 누구나 공모에 참여할 수 있다. 2000년 골드코프(Goldcorp)는 5만5000에이커의 부동산에 대한 모든 지질자료를 공개하면서 금을 채광할 만한 적당한 장소를 찾아내는 사람에게 57만5000달러의 포상금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경쟁에 참여했다. 이 회사는 새로운 발굴지역 중 80% 이상을 이런 방식으로 찾아냈고 상당한 양의 금을 채굴했다. 이 덕분에 골드포크는 800만 온스나 되는 금을 채굴할 수 있었다. 다양한 문제에 대해 군중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살펴보면 트렌드를 초기에 파악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했을 때 최고의 결실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이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참신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때 가치가 생성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셋째,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과의 결합’이다. 크라우드펀드를 받는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금 조달보다는 조언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조언들이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이뤄진다면 상당히 혁신적인 하이브리드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뿐이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크라우드펀딩의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실제 크라우드펀딩이 갖고 있는 잠재성은 이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크라우드펀딩과 크라우드소싱 모두 기본적으로 똑같은 집단 역학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두 가지의 장점을 모두 포섭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하이브리드 모델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새로운 투자 모델의 등장’이다. 크라우드펀딩을 전통적인 자금조달 모델의 ‘대안’으로 설명하는 것은 크라우드펀딩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크라우드펀딩은 이전 벤처 투자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프로젝트 자금 조달 방식이자 참여자에 의한, 참여자를 위한 시장이다. 따라서 비즈니스 금융산업이 다시 일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점진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몇몇 발 빠르게 움직이는 회사(early mover)를 보자. 그로 VC(Grow VC, www.growvc.com)는 초기자금을 마련하려는 신생기업을 위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벤처 자금이나 크라우드펀드가 모두 프로젝트에 접근할 수 있다. 이를 하이브리드 벤처 캐피털/엔젤 투자자/크라우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코펀디트(Cofundit, www.cofundit.com)는 수익원이 입증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하는 스위스 금융회사다.
다섯째, ‘규제 및 정책의 변화’다. 크라우드펀딩의 잠재력이 실현되려면 수많은 규제와 법적 문제들이 해결돼야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채권에 대한 규제는 ‘어떻게’ 투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투자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규제보다는 시장 세력들이 그들의 목표들을 자유롭게 달성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게 더 낫다. 그리고 크라운드펀딩이 그러한 역할에 적합한 모델이다. 크라우드펀딩의 활성화를 위해 풀어야 할 규제도 있다. 예를 들어, 크라우딩 형태의 투자에 참여함으로써 투자자에게 누적되는 자본 수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이나 펀딩 상한선 이하의 프로젝트에 대해-채권 규제에서는 일반적인-크라우드펀딩의 세금 면제, 여러 국가에서 모집된, 혹은 완전히 글로벌화된 크라우드펀드에 대한 규제나 세금 부과 여부 등이 해결돼야 한다. 어떤 국가들이 이런 규제 문제에 대해 가장 적절한 해답을 찾아낼지는 아직까지 불확실하다. 하지만 역사는 산업혁명처럼 사회가 어떤 큰 과도기에 접어들 때마다 새로운 리더들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세계는 지적 분산(intellectual decentralization)의 과도기를 겪고 있다.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편집장
이 책을 쓴 케빈 로튼(Kevin Lawton)은 기업가이자 트렌드 캐스터이며 블로거다. 그는 초창기 시절 PC 가상화 산업에 참여했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작업체에서 근무했으며 두 개의 오픈소스 프로젝트에도 참가했다. 그의 블로그 www.trendcaller.com은 비즈니스와 기술을 다루고 있다. 로튼은 뉴욕주립대 오스웨고(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Oswego) 캠퍼스를 졸업했으며 MIT 우주레이더 및 위성 커뮤니케이션 연구소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국제크라우드펀딩위원회(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Crowdfunding Commissions) 설립을 주도했다. 공동 저자인 댄 마론(Dan Maron)은 현재 학문 연구와 강의에 전념하고 있는 기술 분야 전문가이자 비즈니스 컨설턴트다. 교육 관리 분야의 신생기업 CEO이자 공동 설립자다. 마론 박사는 히브리대(Hebrew University)와 Ha'Universita Ha'Petuha, Universitat Ben Gurion Ba-Negev를 졸업했다. 통신 산업에 관한 정부 부처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