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고전 읽기

캐논, 맥주캔에서 혁신의 길 찾다

89호 (2011년 9월 Issue 2)





 



 

편집자주 경영학이 본격적으로 학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경영학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학문이자 현대인의 필수 교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영학 100년의 역사에서 길이 남을 고전들과 그 속에 담겨있는 저자들의 통찰력은 무엇인지 가톨릭대 경영학부 이동현 교수가 ‘경영 고전 읽기’ 에서 전해드립니다.
 
1970, 80년대에 정점을 이뤘던 ‘일본식 경영’에 대한 서구인들의 관심은 1990년대 일본 기업들이 버블경제의 붕괴로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급속히 감소했다. 1980년대까지 일본식 경영에 대한 서구학자들의 접근은 일본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에 기반을 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지금까지도 그런 전통들이 남아 있다.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일본식,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동양식 문화는 색다른 것이었다.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서구식 노사관계의 관점에서는 일본 기업의 평생 고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경쟁과 협상을 중시하는 서구 시각에서 협력과 화합을 강조하는 일본 기업의 하청업체 관리는 특이하기만 했다. 

 

1995년 영문판으로 출간된 노나카(Nonaka)와 다케우치(Takeuchi) 교수의 <지식창조기업(The Knowledge-Creating Company)>은 문화적 특수성으로 상징되던 일본식 경영 연구에 과학적 보편성을 부여한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주저자인 노나카 교수는 당시 일본 학자 중에서는 드물게 1972년 미국 UC 버클리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후 일본 기업의 지식(knowledge) 경영이라는 연구 주제에 몰두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지식과 정보(information)는 거의 유사한 뜻으로 사용되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세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지식은 정보와 달리 신념(beliefs)이나 몰입(commitment)이 필요하다. 지식은 사람이 가진 세계관, 시각, 의도 등에 의해 생성되고 영향을 받는다. 둘째, 정보와 달리 지식은 행동(action)에 관한 것이다. 지식은 행위의 결과인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식은 의미(meaning)를 담고 있다. 즉, 지식은 개인이나 조직이 처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지식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지식을 습득할 당시의 상황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지식창조이론에서는 정보가 가진 객관적인 양적 측면보다는 정보에 담긴 의미를 강조하는 주관적이고 질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모든 정보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접근을 통해 노나카 교수는 혼다, 캐논, 소니, 샤프 등 일본 선도 기업들이 가진 진정한 경쟁우위의 원천을 지속적인 혁신에서 찾았고, 그 혁신의 원동력이 지식을 창조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했다. 
노나카 교수는 플라톤(Plato) 이후 서양 철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였던 지식이라는 보편적인 틀 속에서 일본 기업과 서구 기업의 차이점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형식지(形式知)와 암묵지(暗默知)라는 두 가지 지식 유형을 도출했다. 이 중에서도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내재해 있는 암묵지를 기업 혁신의 원천으로 강조했다. 
‘형식지(explicit knowledge)’는 코드(code)화할 수 있는 지식으로 이해하기 쉽고 전달하기도 쉬운 지식을 의미한다. 교과서에 실린 수학공식이 대표적인 예이며 말이나 글로도 형식지를 이해하거나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에 암묵지(tacit knowledge)는 개인에게 체화됐고 개인이 처한 상황에 특수한 지식을 말한다. 암묵지는 공식화시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도 어렵다. 대표적인 예로 도자기 굽는 도공의 노하우나 요리사의 조리기술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지식들은 각기 개인의 몸에 체화돼 있기 때문에 말이나 글로써 완전히 전수받기 힘들며 오랜 세월 생활을 같이해야만 비로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혁신에서 암묵지의 역할을 잘 나타내주는 예로 오사카에 위치한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Matsushita Electric Industrial Company)의 신제품 개발 사례를 들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마쓰시타는 가정용 제빵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 제빵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밀가루를 반죽하는 과정이었다. 마쓰시타는 일류 제빵 기술자들이 만든 제품을 가져와 엑스레이로 분석까지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신제품 개발이 지지부진할 때 개발 프로젝트팀의 일원이자 소프트웨어 개발 책임자인 다나카(Ikuko Tanaka)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오사카 국제호텔에서 빵을 만드는 주방장을 찾아가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제빵 기술을 배워오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는 오사카 국제호텔 주방장과 함께 생활하면서 관찰과 모방, 연습을 통해 주방장이 가진 제빵에 관한 암묵지를 습득하는 데 성공했다.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이 주방장의 비결은 반죽된 빵을 꽈배기처럼 꼬는 것이었다. 그 후 마쓰시타는 다나카의 노력 덕분에 트위스팅(twisting)기술을 제빵기에 접목해 히트 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지식 중에서도 암묵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노나카 교수의 연구결과는 결국 근로자를 협상과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서구 경영자들의 시각과 달리 근로자를 지식의 원천이자 자산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었다. 경영자가 대단한 아이디어를 내고 종업원들은 상사의 생각을 단순히 실행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종업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경영자는 그들이 많은 아이디어를 제언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채택된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책에 소개된 또 다른 성공사례인 캐논의 미니 복사기나 혼다의 신차 개발의 경우에도 결국 최고경영진의 탁월한 안목보다는 현장 연구원들의 끊임없는 시행착오 끝에 나온 참신한 아이디어가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일본 선도 기업들의 지식창조 메커니즘에서는 현장에서 체득한 종업원들의 암묵지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들 종업원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성과를 창출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노나카 교수는 지식창조기업의 기반은 현장 종업원들의 암묵지이기 때문에  지식을 창출하는 주체는 이들이며, 조직은 구성원들이 활발하게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현업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바람직한 경영진의 역할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게 아니라 촉진자로서 조직 내에서 원활한 정보 교류와 활발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방된 조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지식창조기업이 되려면 경영방식이 최고경영자 중심의 하향식(top-down)이나 탁월한 개인 중심의 상향식(bottom-up)에서 벗어나 중간관리자가 팀의 리더로서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는 미들 업다운(middle-up-down) 방식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미들 업다운 방식은 GE 잭 웰치 스타일처럼 최고경영진의 지시나 3M 연구원들의 자발적인 노력만이 아닌 팀을 중심으로 조직 구성원 전체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새로운 경영방식이다.’
미들 업다운 방식에서는 팀 리더를 맡은 중간관리자들이 최고경영진과 일선 종업원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실무적으로 지식창조를 이끄는 엔지니어 역할을 한다. 즉, 최고경영진의 의도나 목표를 해석해서 현장에 잘 알려주고, 또한 현장의 어려움과 고민을 상층부에 전달함으로써 끊임없이 주어진 과제의 목표와 제약요인 사이의 차이(gap)를 줄여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캐논의 미니 복사기 개발 사례에서 이러한 미들 업다운 방식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미국의 제록스가 주도했던 기존 복사기는 기업이나 큰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복사기였다. 제품 유지 비용도 컸다. 이런 상황에서 캐논의 경영진은 제록스가 장악하고 있는 복사기 시장을 일거에 흔들 수 있는 저가의 미니 복사기 개발을 지시했다. 캐논이 개발하고자 하는 미니 복사기는 개인이나 가정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대형 복사기와는 달리 사용빈도가 낮기 때문에 유지비용이 높으면 경제성을 맞출 수가 없었다. 결국 미니 복사기 개발팀의 가장 큰 난제는 손쉬운 유지보수와 저렴한 비용이었다.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복사기의 카트리지(cartridge)나 드럼(drum)을 어떻게 저렴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었다. 
캐논의 연구개발(R&D) 그룹을 이끌었던 니탄다(Nitanda)는 다양한 부서에서 차출된 젊은 연구원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최고경영진과 일선 연구원들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하며 신제품 개발을 이끌었다. 개발팀은 고민 끝에 캔맥주에서 실마리를 찾았고 팀원들은 알루미늄 맥주 캔을 만드는 제조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값싼 복사기 드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니탄다는 기존 명령계통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확보한 태스크포스팀을 지휘하면서도 연구 결과를 최고경영진이 포함된 운영위원회에 주기적으로 보고해 상층부와 하층부를 조율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글로벌 시대에는 경영방식의 국적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미국식이건 일본식이건 경영 성과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국 기업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보편적인 시사점을 주는 경영이론을 만든 두 일본 교수의 성과가 부러울 따름이다.
 
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dhlee67@catholic.ac.kr
 
이동현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교수로 연구 활동을 벌였다.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경영학 지식을 다양한 조직에 확산하는 일에 역량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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