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벤’의 철학적 배경은?

32호 (2009년 5월 Issue 1)

‘버냉키, 헬리콥터에 탑승하다.’ 이것은 올해 3월 국내 한 일간지 칼럼 제목이다. 칼럼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은행(FRB) 의장이 “3000억 달러(약 400조 원)의 장기 국채를 사들여서라도 시중에 돈을 풀겠다”고 언급한 내용을 다뤘다.
 
버냉키 의장은 원래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는 2002년 한 강연회에서 “경제 살리기(디플레이션 예방)를 위해서는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야 한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발언을 인용한 후 이 별명을 얻었다. 어쨌거나 버냉키의 통화 정책은 그만큼 과감하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우선, 달러가 흔해지면 ‘세계 기축통화’라는 기존 지위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 향후 발생할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도 어려워진다.
 
그렇지만 세계적 경제학자로 통하는 버냉키가 이런 내용을 모를 리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헬리콥터 정책’의 이면에는 무언가 수긍할 만한 사상과 철학이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버냉키는 세계 50대 경제학자이며, 하버드대를 최우수로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프린스턴대 종신 교수직에 오른 석학이다.
 
버냉키, 대공황 연구에 평생 바쳐
버냉키는 미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던 전임자 앨런 그린스펀의 그늘에 가려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린스펀은 무려 18년 동안 연방준비은행 의장을 지냈다. 심지어 버냉키가 취임한 지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의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 중 무려 67%가 “버냉키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버냉키라는 사람을 이해해야 미국의 금융위기 대응 방안과 앞으로의 경제 정책 및 새로운 금융 질서 재편의 방향성을 예측할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금융 경제 전문가인 에단 해리스의 책 ‘Ben Bernanke’s Fed(번역서: 벤 버냉키의 선택)’는 독자들에게 시의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다. 해리스는 버냉키의 이론적·학문적 배경과 스타일, 시각이 어떻게 연방준비은행의 정책에 영향을 줄 것인지를 분석했다.
 
해리스가 지적한 버냉키 의장의 첫 번째 특징은 그가 ‘대공황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학자란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역할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2가지 초대형 경제 재앙의 재발을 막는 일이다. 그 하나는 1930년대 대공황이며, 다른 하나는 1970년대에 일어났던 악성 인플레이션이다.
 
물론 오늘날 연방준비은행의 역할은 비교적 균형이 잡혀 있다고 하지만, 버냉키는 현재 인플레이션보다는 대공황과 같은 디플레이션(경제 전반의 가격 수준이 떨어져 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현상) 방지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디플레이션의 심각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물가가 떨어지면 소비자들은 구매를 미루고 기다리는 행태를 보인다. 소비 위축은 실업률을 높이고, 이로 인해 소비가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빚이 있는 기업들은 매출 부진뿐만 아니라 자꾸만 올라가는 돈 가치 때문에 대출금을 갚지 못해 파산에 이른다. 디플레이션의 심각성은 특히 통화 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더 커진다. 아무리 경제가 나빠져도 이자율을 0% 이하로 내릴 수는 없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이 심해지면 통화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예 없어진다.
 
두 번째 특징은 학자 시절 버냉키가 신념을 갖고 ‘연방준비은행의 투명성 확보’를 추진했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린스펀 전 의장은 애매하고도 화려한 화법의 ‘연막 전술’을 곧잘 사용했다. “적절한 인플레이션율은 얼마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가계나 기업의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낮고 안정적인 수준의 인플레이션율”이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버냉키는 이런 관행을 뿌리부터 바꾸고자 했다. 그는 연방준비은행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인플레이션 타깃’을 미리 설정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철학을 실천했다. 타깃이 있으면 개별 경제 주체들이 임금이나 가격 인상에 신중해지며, 이는 결과적으로 ‘낮은 인플레이션율 유지’라는 선순환을 가져온다는 믿음에서였다. ‘인플레이션 타킷팅’은 버냉키 자신의 신념을 실현한 것이었으나, 의장의 재량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버냉키가 연방준비은행의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학자 시절 자산 가격의 변화가 통화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 ‘금융 가속도 모델(financial accelerator model)’을 주창했다. 사람들은 주택 등 자산의 가격이 오르면 자신이 훨씬 더 부유해졌다고 느끼며, 이에 따라 소비를 늘리는 경향이 있다. 집값이 1억 원 오르면 소비가 연간 600만 원 정도 늘어난다는 연구도 있다. 집값 상승의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집을 담보로 한 대출을 늘려 경제 전체적으로 ‘버블’을 키울 수 있다.
 
이런 학문적 배경 아래서 버냉키는 자산 가격의 폭등 및 폭락이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유달리 예민해 이와 관련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대공황 연구에 대한 그의 집착은 ‘위기, 특히 금융 시장의 위기는 조기에 강력히 잡아야 한다’는 신념을 더욱 강화했다.

그린스펀보다 강력한 조치 실행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버냉키 의장이 취임한 2005년 이후부터 최근 경제 위기에 이르기까지 연방준비은행이 무슨 이유로,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는지가 어느 정도 일관성 있게 읽혀진다.
 
버냉키가 취임하던 2005년 미국 경제는 디플레이션보다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더 큰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때 버냉키는 명확한 인플레이션 타깃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정책을 펼쳤다. 그는 인플레이션율이 이미 공표된 타깃 범위 밖으로 벗어났을 때만 금리를 조정했고, 시장은 방향성을 예측하고 움직였다.
 
2007년 초에는 금융 버블 조짐이 약간씩 보이기 시작했지만 버냉키는 이렇다 할 위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주택 시장이 붕괴 가능성을 조금 보였지만, 전체 국내 총생산(GDP)에서 주택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6%에 불과했고, 그 외 자산 시장은 아직까지 양호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이 되면서 상황이 급변해 베어스턴스 등 대형 은행들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버냉키는 경제가 디플레이션으로 들어설 기미가 보이자 완전히 달라졌다. 앞서 설명한 대로 ‘대공황 학자’로서 자산 시장의 역할과 영향을 강조하는 그의 리스크 관리가 시작됐다.
 
그린스펀 시절, 연방준비은행은 2000년 초 계속된 자산 가격 버블 논란 속에서도 (물론 14차례에 걸쳐서이기는 하지만) 최소 인상폭인 0.25%p씩만 이자율을 올렸다. 반면 버냉키는 자산 시장이 경색되자, 2007년 8월부터 12월까지 거의 매달 과감하게 0.5%p씩 이자율을 내렸다. 2008년 1월에는 9일 동안 무려 1.25%p를 내려 역사상 가장 큰 금리 변화를 ‘처방’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연방준비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수백 조 달러 규모의 국채 등을 직접 시장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에 직접 돈을 빌려주기 위한 창구도 만들었는데, 이는 대공황 시기에 나타났던 ‘뱅크 런(bank run·은행의 예금 인출이 대규모로 일어나 끝내 은행이 도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처럼 버냉키는 그린스펀이 의장이었다면 했을 조치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조치들을 더 빠르게 실행했다. ‘Ben Bernanke’s Fed’는 이런 신념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리더의 조건은 상황에 따라 변해
그러나 버냉키에 대한 전반적 평가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특히 그린스펀의 명성이나 영향력과는 아직 비교조차 어렵다. 필자는 다만 이 두 사람을 비교함으로써 성공적인 리더의 절대적 조건 같은 것은 없으며, 그 조건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리더지만, 결과만을 놓고 보면 소기의 성과를 거뒀거나 거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린스펀은 연방준비은행 의장이 되기 전 경제 컨설턴트로 일했다. 놀랍게도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그가 했던 인플레이션율 예측의 정확도는 평가 대상 중 최하위였다. 1982년부터 1986년 사이에는 매년 1.2∼2.4%p 정도 인플레이션율을 과대 예측했다. 그린스펀의 발언은 언제나 모호했고, 명확한 인플레이션 타깃도 없었다.
 
이런 그가 18년 동안 연방준비은행, 더 나아가 미국 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상황적 요인 덕분이었다. 그린스펀이 의장이 됐을 당시, 연방준비은행은 정치권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경제 정책을 펴는 것을 제1 목표로 삼았다. 그린스펀은 이를 위해 ‘건설적인 모호함(constructive ambiguity)’으로 정치권의 직접적 간섭을 피하고, 시장에 대한 비밀스러운 영향력을 키웠다. 그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시장에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예측의 정확성보다는 시장의 심리를 활용했다. 그리하여 연방준비은행이 당시 이루고자 했던 숙원, 즉 정치적 독립을 위해 정면 돌파보다는 본인의 장점인 우회적 접근으로 성공을 거뒀다.
 
반면 버냉키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의 독보적인 경제학 지식을 기반으로 보다 학문적이고 과학적인 연방준비은행을 만드는 데 있을 것이다. 이는 그린스펀의 리더십과는 다르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보다 적합한 방식으로 보인다.
 
버냉키와 그린스펀의 사례는 진정한 리더는 정해진 ‘정답’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색깔을 이용해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6호 Leadership for the New Era 2019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