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개발 프로세스

[강대리 팀장만들기] “야호! 기획 끝났다” 이젠 신제품 개발?

12호 (2008년 7월 Issue 1)

드디어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내가 기획한 제품이 세상에 선보일 때가 온 것이다. 제품 기획에만 벌써 만 5개월째. 출산의 고통과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일까. 소비자의 건강과 마음을 다스리는 특수조명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자료 조사로 몇 날 밤을 지새우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던가.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내가 기획한 제품이 시장에 나오게 된다니 생각만 해도 너무 감격스러웠다.


막상 기획안이 통과되고 나니 마음은 더 바빠졌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완벽하게 시제품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임 주임에게는 신제품의 디자인을 최대한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해 달라고 주문하고, 손대수에게는 유통채널 조사를 하도록 했다. 해외 유사제품 사례 수집 및 분석은 유 대리님께 부탁드렸다.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연구소에 기획서를 보내기로 했다. 이전에 연구소에 있을 때는 제품개발계획서만 던져주고 무작정 개발을 해내라는 기획팀 사람들 때문에 짜증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구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엔지니어 경험도 있는 나는 기존의 기획팀과는 다르게 일을 진행하겠다고 결심했다. 게다가 한때 같이 일한 연구소 동료들이 내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가.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어서 오히려 불안할 정도였다.
 
그러면 그렇지. 문제는 또 유 대리님에게서 일어났다. 오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유 대리님이 오후가 되자 갑자기 몸살이 났다면서 먼저 퇴근해야겠다는 것이다. 내 일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입에 발린 사과의 말과 함께….
 
하필 중요한 때에 그러는 게 얄밉긴 했지만 정말 기운이 없어 보이고 이마에는 열도 있는 것 같아서 뭐라고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퇴근을 미루고 유 대리님에게 맡긴 일까지 해야 했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임 주임과 손대수도 함께 남아 줬고, 이 과장님도 도와주셔서 생각보다 빨리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맥주라도 사려고 했는데 이 과장님께서 다른 제안을 하셨다. 유 대리님에게 병문안을 가자는 것. 자꾸만 자기 일을 미루는 유 대리님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직장 동료로서의 신의를 생각해 우리 모두 유 대리님 댁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거금 5만원을 들여 과일바구니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몸살로 집에 누워 있어야 할 유 대리님이 아직 집에 오지도 않았다는 것 아닌가. 아프다던 유 대리님의 말은 또다시 핑계였단 말인가? 애도 아닌 어른이 말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일단 들어와 기다리라는 형수님의 요청을 정중하게 사양하고 집을 나서는데 기분 좋게 취한 유 대리님이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아니, 유 대리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야 하나, 술 취한 사람을 붙잡고 화를 내야 하나.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당황하기는 유 대리님도 마찬가지였다.
아, 아니…. 나, 난 집에 누워 있다가 친구가 요 앞에 온다기에 딱 한잔만 하고 들어오는 길인데…. 여, 여긴 어쩐 일들이야?”
집에 있다가 친구를 만나셨다는 분이 왜 양복 차림에 서류가방까지 들고 계시는 거죠?” 임 주임이 쏘아붙였다.
그게, 내 친구가 다른 분을 모시고 나온다고 해서 말이야. 그런데 왜 남의 사생활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거야?”
유 대리님, 손에 들고 계신 그건 뭐죠? 우리 신제품 보고서 아닌가요?” 손대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이거 말이야? 좀 생각할 게 있어서 내가 들고 나갔던 거야. 친구 기다리는 동안에 좀 보려고 말이야.”

하지만 유 대리님의 얼굴이 약간 발그레해지는 것도 그렇고, 말투에서도 좀 오버한다는 느낌이 배어났다. 그제야 이 과장님이 나섰다.
유 선배, 그런 대외비 자료를 함부로 사외에 들고 다니면 되겠어요? 내일 회사에서 얘기 좀 하시죠.”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병문안은 이렇게 싸늘하게 끝났다. 그나저나 별로 사이도 좋지 않은 유 대리님의 병문안을 가자고 한 이 과장님은 과연 마음이 넓은 것인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던 것인가.
 
다음날 아침 신제품 개발 요청서를 마무리해 연구소에 보내고 나자 너무나 개운했다. 이제 신제품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걸까. 과연 어떤 녀석이 나올지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 런, 데….
이봐, 강 대리. 자네가 연구소에 신제품 개발하라고 했어? 황당하군. 자넨 일의 순서도 몰라? 왜 이렇게 일을 두서없이 하나?”
박 차장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저…, 기획안이 통과됐으니 이제 신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이디어 차원의 기획안 하나 달랑 가지고 어떻게 시제품을 개발하나?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연구소에 있었다는 사람이 그 정도도 몰라? 정말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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