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中有訓

초택음란: 꼿꼿한 굴원, 탁류에 몸 담글까?

159호 (2014년 8월 Issue 2)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굴원과 어부의 대화

(때는 기원전 3세기, 장소는 중국의 남부 초나라 물가. 굴원(屈原)이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때는 초나라 회왕에게 두터운 신망을 받은 대부였으나 모함을 받고 억울하게 쫓겨난 그였다. 지나가던 어부가 그를 보았다. )

 

어부: 당신은 삼려대부 굴원이 아니시오?

어찌하여 이런 곳을 방랑하고 계시나요?

굴원: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는 홀로 깨끗했지요.

모든 사람이 취하여 몽롱한데,

나는 홀로 깨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쫓겨났습니다.

어부: 세상사에 막히지 말고 어울려 지내라고

성인이 말했습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당신은 왜 흙탕물 휘저어

탁한 파도를 일으키지 않으셨나요?

모든 사람이 술에 취해 몽롱한데

당신은 왜 술지게미와 탁주를 마시지 않으셨나요?

무엇하러 당신 홀로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행동하다 쫓겨나고 말았습니까.

굴원: 머리 감은 사람은 관의 먼지를 털어 쓰고,

목욕한 사람은 옷을 털어 입는다고 하지요.

청결한 내 몸에 더러운 것을 어찌 받겠소.

차라리 저 상강의 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배 속에

묻히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어부: (미소 짓는다. 노 저어 떠나가며 노래한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빨리.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나의 발을 씻으리.

 

굴원

굴원(屈原, 약 기원전 340∼278)은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이며 정치가다. 굴원의 굴()은 초나라 왕족의 성이며, ()은 자이고, 이름은 평()이다. 젊은 나이에 회왕의 좌도(오늘날의 보좌관)에 임명돼 국사를 도모했다. 학식이 높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외교적 수완이 뛰어나 회왕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굴원은 진()나라와 밀탁한 장의에게 밀려나고 회왕은 죽임을 당한다. 이후에 굴원이 다시 정계에 나와 회왕의 원한을 갚아주려 했으나 오히려 사람들의 모함을 받고 쫓겨난다. 이후 굴원은 시를 지으며 배회하다가 끝내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굴원의 시문집 <이소(離騷)>는 중국문학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작품이 됐으며 <초사(楚辭)>에 실려 전한다.

 

위에서 인용한 굴원과 어부의 대화가굴원의 어부사(漁父詞)’로 전해진다. 오늘날 거의 모든 학자들은 굴원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초나라 사람 누군가가 굴원과 어부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위에 인용한 대화는어부사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다. 쫓겨났지만 의연한 굴원의 모습은 그림 제목초택음란(楚澤吟蘭, 초나라 물가에서 난초를 읊조리다)’에도 드러난다. 외딴 물가에서 향기로운 난초를 읊조림은 유배 중에도 임금을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오로지 충성으로 일관했던 굴원은 자살을 택했다. 정말로 물고기 밥이 됐을까. 굴원이 멱라수에서 몸을 던져 죽을 때 그의 나이는 59세였다.

 

굴원은 충성의 귀감이 됐다. ()나라의 역사가 사마천은 굴원을 <사기>에 실었고, 도연명은 역사 속의 아홉 인물을 꼽아 시문을 지을 때 굴원을 포함해 높이 기렸다. 중국의 남방 사람들은 굴원이 숨진 단오날 굴원을 기리는 풍속을 행한다. 조선시대 세종의 명으로 편찬된 <삼강행실도>의 충신 편에도 굴원이 빠지지 않았다. <삼강행실도>에 실린 화면에는 굴원이 멱라수에 몸을 던져 물에 빠지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일렁이는 물결 속에 머리만 내밀고 있는 모습이다.

 

굴원이 될 것인가

만고의 충신 굴원. 그런데 조선의 많은 학자들은 굴원처럼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극단적 태도가 문제였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존경했던 학자 주자(朱子)도 굴원은 본받을 만하지 못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주자가 <초사(楚辭)>에 주를 낸 책 <초사집주(楚辭集註)>의 서문(序文)에는굴원은 그 뜻과 행동이 비록 더러 중용(中庸)에서 벗어난 점이 있어서 본받을 것은 못되지만 모두 충군(忠君)과 애국(愛國)의 진심어린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라고 적혀 있다. 완곡하게 굴원의 문제를 지적한 셈이다.

 

어부가 될 것인가

고개를 돌려 어부를 보자. 굴원의 꼿꼿함과 어부의 부드러움은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다. 어부가 제시하는 삶의 태도는 놀랄 만큼 현실적이며 지혜롭고 또한 생존 지향적이다. 어부는 세상의 맑은 물과 흐린 물을 구분할 줄 알면서 동시에 개인적 자유로움으로 천명을 누리는 인물이다.

 

옛 사람들은 굴원을 존경했지만 어부를 더 좋아했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즐겨 감상한 그림 중에탁족도(濯足圖)’라는 주제가 있다. 어부 혹은 문인이 발 하나를 물에 담그고 태연스럽게 앉아 있는 장면의 그림이다. 이 그림초택음란의 어부가 그러하다. 이는 위의 인용 대화 마지막 구절, 즉 어부가 부른 노래 중창랑의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으리를 그리고 있다. ‘탁족도의 주인공들은 어지러운 세상을 바라보며 발을 씻는다. 세상을 걱정하면서 보신을 꾀하는 은거자의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가 탁족이었다. ‘탁족도는 조선시대 중기부터 말기까지 꾸준히 그려진 고상한 주제였고 실로 많이 그려졌다.

 

오래된 갈등

그러나 어부의 자유로움에도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세상의 잘못에 대해 아무것도 행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무책임이다. 모든 것을 파악하면서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것은 이기적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타적 완벽을 추구하며 완고하게 이를 고수한 굴원의 행동과 명확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굴원과 어부의 대화가 보여주는 갈등은 너무 다른 두 인물의 차이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원칙이냐 타협이냐, 혹은 투쟁이냐 포기냐 등의 다양한 양태로 우리 일상에서 늘 벌어지는 갈등이다. 어쩌면 굴원을 조롱한 어부는 죽기 전에 굴원의 내부에서 일어났다 사라져간 또 다른 자아의 표상이었는지 모른다. 이런 갈등이란 우리의 내면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설령 이 그림이 조선의 왕실에서 제작된 것이라서 굴원을 주인공으로 부각시켜 굴원에 대한 동의를 유도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막상 이 그림을 보고 글을 읽는 이는 굴원에게 동의할 것인지, 어부에게 동의할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간단히 결정하기 힘든 갈등이 고전적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둘 만하다. 맞닥뜨리게 될 다양한 상황 속에서 비춰 심사숙고할 수 있는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고연희 이화여대 강사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 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화여대, 고려대, 연세대 등에서 강의한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등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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