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니키 리
Article at a Glance – 혁신, 자기계발, 인문학
이미 존재하는 목적을 효율적으로 추구하는 행동은 철저한 계산과 분석에 따라 이뤄진다. 차가운 이성의 영역이다. 하지만 새로운 목적을 발견하는 창조적인 행동은 ‘장난스러움’의 영역이다. 그러나 창조적 혁신을 낳는 장난스러움은 무의미한 유희나 ‘백수건달류’의 빈둥거림과는 다르다. 타고난 재능으로 인해 ‘장난만 가득했던 삶’을 살았던 것처럼 보이는 모차르트는 사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워커홀릭이었다. 뉴욕에서 세계 최고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작가 니키 리 역시 ‘치열한 장난스러움’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표현한다. 창조적 혁신을 원하는 조직, 기업들 역시 경계를 넘나들고 발칙한 상상을 멈추지 않는 ‘치열한 장난스러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편집자주
‘21세기 시대정신, ‘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 1부 연재를 마칩니다.
한 젊은 한국 여성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 갤러리. 전시된 작품들은 대부분 한 여성을 중심으로 찍은 인물 사진이다. 머리를 황갈색으로 물들이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청소년들의 사진도 있고, 누가 봐도 전형적 레즈비언으로 보이는 여성 동성애자들의 사진도 있으며, 교복을 얌전하게 차려 입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수다 떠는 여고생들의 사진도 있다. 또 길거리 흑인 힙합걸 모습도 있으며, 스트립바에서 춤추는 반라의 무희들 모습도 보인다. 또 행여 추위에 감기라도 걸릴까 모자를 쓰고 외투를 두껍게 껴입은 푸짐한 몸매의 백인 할머니의 사진도 있고, 월스트리트나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기업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장을 차려 입은 프로페셔널 여성 경영자의 모습도 있으며, 야자수가 드리운 남태평양의 해변에서 화려한 꽃무늬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히스패닉 여성의 사진과 영국 펑크족 사진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진들은 초보가 찍은 듯 함께 찍힌 사람들의 모습이 잘려나간 것들도 다수 있다. 심지어 렌즈 초점을 잘못 맞춰 얼굴 윤곽이 여러 겹으로 번진듯한 이상한 사진들도 있다. 어떻게 보면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앨범을 정리할 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가위로 오려내고 자신의 모습만 남긴 사진 같기도 하다. 또 어떤 것들은 어린 청소년들의 ‘코스프레(코스튬 플레이)’ 장난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실은 이 모든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이 동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타인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끊임없이 정체성을 바꿔가며 사진의 대상이 되는 획기적 창작모델을 선보인 이가 있다. 세계 미술계의 메카 뉴욕 화단에서 백남준 이래 한국이 낳은 최고의 시각예술가라는 극찬을 받은 세계적 아티스트 니키 리다.
장난스러움과 심각한 엄숙주의
‘톡톡 튄다’는 표현이 시사하듯이 예술이나 과학, 기업경영 등 분야를 막론하고 창조적 인재들은 장난끼가 넘치고 엉뚱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게 예측 불가능한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창조적 예술가 중 한 명인 모차르트를 다룬 밀포스 로만 감독의 명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그의 행동은 그야말로 철없는 어린애 수준의 장난으로 점철되고 있다. 왕궁의 동물박제 장식품을 가면처럼 뒤집어쓰며 좋아하기도 하고, 술집에서 만취한 채 친구들에 의해 거꾸로 들려 피아노를 완벽하게 연주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모차르트의 라이벌로 묘사된 살리에르가 작곡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살리에르는 의관을 정제하고 곧은 자세로 피아노 앞에 앉아 엄숙하게 기도를 한 후 마치 전투라도 하는 듯이 심각한 표정으로 작곡에 임하며 좋은 악상이 떠오르면 즉시 감사 기도를 올린다. 평소에도 항상 장난만 치는 백수건달 같아 보이는 모차르트와 정반대로 살리에르의 일상 또한 수도승처럼 한순간의 허비도 없이 엄숙하고 심각하며 권위를 지키려 애쓴다. 그런데 결과는 역설적이다.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시대와 문화권을 뛰어넘어 여전히 전 세계 인류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주는 창조적 음악으로 극찬받는 데 비해 살리에르의 음악은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범작에 그치고 말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백남준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 받는 한국 예술가 니키 리
창조성의 원리에 대해 조직이론의 거장 마치(J. G. March) 교수는 1970년에 저술한 ‘바보스러움의 기술(technology of foolishness)’이라는 짧은 논문에서 이미 존재하는 목적을 효율적으로 추구하는 행동이 철저한 계산과 분석 같은 차가운 이성의 영역이라면 새로운 목적을 발견하는 창조적 행동은 장난스러움(playfulness)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거대한 피라미드형 관료조직이 지배한 20세기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은 바로 주어진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극도로 심각하고 엄숙하며 경건하기까지 한 현대 조직의 분위기에서 장난스러움은 바보처럼 보이기 십상이었으나 21세기 창조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목적을 찾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행동을 위해서는 이런 장난스러움이야말로 진정한 기술이다. 영미권 사람들과의 회의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장난친다(play with ideas)’라는 영어표현을 생각하면 이런 주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적 혁신을 낳는 장난스러움은 무의미한 유희나 ‘백수건달류’의 빈둥거림과는 다르다. 여기에서 말하는 장난스러움은 ‘엄숙주의’나 ‘심각함’의 반대말이다. 즉 치밀하게 꽉 짜여진 기존의 틀과 규칙, 절차에 따라 주어진 일을 정해진 방법대로 기계처럼 수행하는 피라미드형 거대 조직의 분위기는 심각하고 엄숙하다. 이런 거대한 기계 같은 피라미드형 조직에서는 약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으며 철저하게 상명하복의 권위주의 질서가 지배하고, 구성원들은 항상 초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이런 엄숙주의와 권위주의적 질서에 바탕을 둔 거대 피라미드형 조직이 대량생산적 효율성의 핵심 기반이었지만 결코 창조성의 원천이 될 수는 없다.
심각한 엄숙주의의 반대말로서 창조성의 원천이 되는 ‘장난스러움’은 주어진 틀을 훌쩍 벗어나 보고, 정해진 규칙이나 절차를 과감하게 어기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고정관념을 뒤집는 역발상을 서슴지 않고 시도하고, 대세를 거스르는 독특한 선택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행동을 말한다. 엄숙한 권위주의적 기존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이런 자유분방한 행동은 기득권자들과 대다수 일반인들에게는 장난스럽고 바보스럽게 보이겠지만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창조성의 본질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필수 요건이 된다.
치열함이 창조적 장난스러움의 핵심
물론 창조적 장난스러움을 빈둥거림이나 느슨함과 착각해선 안 된다. 이것은 엄숙하고 심각한 권위주의적 질서에 순응하는 기계적 행동이 치열하다고 착각하는 오류의 반대 이미지다. 치열함과 엄숙주의는 전혀 다르며, 오히려 권위주의적 엄숙함은 경직성에 가깝다. 이에 비해 창조적 장난스러움은 모든 기존 질서와 고정관념을 넘어서기 위해 모든 역량과 감각을 총동원하고 집중하는 가장 치열한 행위다. 게으르게 빈둥거리다 운 좋게 떠오른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먹고 사는 건달 정도로 오해받기 쉬운 예술가들은 실은 가장 치열하게 불꽃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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