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행동이 인생을 바꾼다

113호 (2012년 9월 Issue 2)

 

“… 긴축과 절약을 이행하여야 되겠소이다. 술이나 담배 중 어느 것이든지 한 가지 끊어야 되겠으니,

나는 이십여 명 식구에 대하여 벌써 금연을 단행하여 실시하는 중이외다.” - 동아일보 1930 12일자 3

 

고 매헌(梅軒) 박승직(1864∼1950)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인 두산그룹의 창업자다. 그가 종로4가 배오개에 자신의 이름을 딴박승직 상점을 낸 것이 1896 8월이었으니 두산은 올해로 창업 116년이 됐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고 파는 행상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한 매헌은 상인으로서 부지런함과 신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가장 대단한 원칙은 철저한 근검절약이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요즘의 관점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과거의 근검절약이 구시대적인 가치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매헌의 근검절약에 대한 철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이십여 명 식구에 대해 금연을 실시 중이라고 밝힌 것은 80여 년 전인 1930 1월이다. 1930년은 매헌이 이미 큰 돈을 번 이후다. 당시는 아직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는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아끼기 위해서 술이나 담배 중 하나는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행상을 했던 1880년대에 매헌은 주막에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사먹은 적이 없다. 그는 삶은 감자를 베수건에 싸서 가지고 다니며 끼니 때마다 먹었다. 삶은 감자가 떨어지면 생감자를 씹었다. 밤이 되면 주막 헛간에서 잠을 잤다. 동료 보부상들이 술을 권해도 절대 마시지 않았다. 몇 달씩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는데 주막에서 음식을 사먹고 편하게 잠을 자는 것이 사업 전체의 성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과소비의 출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매헌은 간파했던 것이다.

이러한 매헌도 사람인지라 쌀밥이 먹고 싶은 적이 있었다. 추석을 앞두고 강원도 산골을 다니며 감자만 먹다가 하루는 너무나 쌀밥이 먹고 싶은 나머지 한 농가에 들어가서 값을 치르고 쌀밥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런데 상에는 하얀 쌀밥 대신 노란 조밥이 올라 있었다. 산골이라 쌀이 없다는 것이 주인의 답이었다. 망연자실하며 조밥을 바라보던 매헌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식사를 마친 뒤 잡곡밥의 소중함을 되새겼다. 이날 이후 그는 명절을 제외하고는 죽을 때까지 쌀밥을 먹지 않았다.

1990년대에 만들어진 해외 공익 광고 중 폐차장에 고급 스포츠카인 포르셰를 몰고온 노 신사가 차에서 내린 뒤 차에 기름을 붓고 성냥을 그어 차를 전소시키는 광고가 있다. 폭발하는 포르셰를 뒤로 하고 폐차장을 걸어 나오는 노 신사가 하는 말은내가 담배만 안 피웠어도 저 차를 살 수 있었어. 수십 년 동안 사 피운 담뱃값이 포르셰 한 대 값과 맞먹는 셈이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2005년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스타벅스 커피를 사 마시는 대신 싼 일반 커피를 마시거나 집에서 커피를 끓여 마시면 30년 동안 약 6000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한 잔에 평균 3달러인 스타벅스 커피를 하루 한 잔씩 주 5일 마시면 연간 700달러가 든다. 그러나 0.2달러짜리 일반 커피를 마시거나 집에서 커피를 끓여 마시면 이자( 6%)까지 계산했을 때 10년 후면 9227달러, 30년 후면 무려 55341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국밥 한 그릇이나 담배 한 갑, 커피 한 잔의 가격은 얼마 되지 않는다. 먹고 마시며 피울 때의 즐거움이 더 크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30년 동안 6000만 원을 모으느니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게 더 큰 가치를 준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도 매헌의 철학과 행동은 의미가 있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학습은 실천을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천과 행동은 지식보다 훨씬 중요하다. 실천은 작은 습관에서 비롯된다. 사소한 행동이 모여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결국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작은 실천이 위대한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매헌의 근검절약 정신이 보여주고 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필자는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인문지리학을 전공하고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2001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문화부, 경제부, 산업부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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