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경영

道와 義로 利를 취하라

8호 (2008년 5월 Issue 1)

외환위기 전까지 유교윤리에 기반을 둔 동북아시아의 기업 경영은 ‘전대미문의 경제적 가치 창출’이라는 면에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닥치자 유교는 동북아 지역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몰렸다. 자연히 유교식 기업 경영은 설자리를 잃었고, 효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서구식 경영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서구의 경영 방식은 개인주의 문화를 토대로 형성됐다. 서구의 방식이 개인의 자율성과 효율성 면에서 유교적 경영 방식의 문제점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나치게 효율성을 추구한 서구적 경영방식은 한국 문화와 충돌하면서 기업 경영에 여러 부작용을 초래했다.
 
문화적 기반은 한두 요인이 영향을 준다고 해서 단시간에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은 유교적 가치의식과 대가족제도라는 독특한 문화를 토대로 형성됐고, 이는 서구의 합리주의, 개인주의 전통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런 문화적 기반을 무시하고 서구의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기업 내부에서 큰 마찰과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섣불리 종신고용제를 폐지하고 성과주의를 도입했다가 조직의 성과만 떨어뜨린 일본 기업이 좋은 예다.
 
따라서 기업 경영에서 유교의 가치는 반드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존 유교자본주의가 놓치거나 간과한 유교의 훌륭한 가치를 기업 경영에 반영한다면 참신하고 효과적인 한국적 경영 모델을 찾을 수 있다.
 
유학의 기본을 돌아보자
서구 학자들은 유교자본주의의 특징을 국가주도, 집단주의, 복종과 종속, 연고주의 등에서 찾는다. 이런 특징에는 조직의 안정성, 업무배분의 효율성, 자발적 복종심, 성실, 근면, 책임감 등의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 하지만 비효율적인 인사관리, 무사안일주의, 엄격한 위계질서로 인한 창의력 저하 등의 부정적인 요소도 있다. 부정적 요소는 특히 창의성과 전 조직을 아우르는 지식경영이 중요시되는 21세기에 기업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된다.
 
포스트유교자본주의’의 핵심은 이런 기존 유교자본주의의 단점을 극복하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기본은 유학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Back to the Basic)에 있을지도 모른다.
 
유학은 한나라 왕권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면서 중국의 통치철학으로 부상했으나, 통치철학으로서의 유학은 실질적으로는 중앙집권을 위한 법가 사상에 가까웠다. 이런 과정에 왜곡된 군신관계는 부자, 부부, 장유(長幼) 등의 사회적 관계로 확대돼 남편이 아내를 억압하고, 부모가 자식을 억압하고, 형이 동생을 억압하는 권력관계로 변질됐다.
 
경제발전기 이후 한국 기업에서는 무(無)에서 거대한 부를 창출한 1세대 경영자들이 강력한 카리스마적 권위와 온정주의를 바탕으로 종업원들에게 복종을 요구했다. 이 경영 방식은 봉건시대 동북아의 전제주의적 정치 체제와 매우 유사하다.
 
이런 모델은 산업 발전기에는 어느 정도 효용을 인정받았으나, 사회와 기업이 성숙기에 들어서면서 내외부의 저항에 직면했다. 법가적 경영방식이 짧은 시간 내에 중국을 통일했다가 이내 멸망을 초래한 것처럼 짧은 시간 내에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발전하기는 어려웠다.
 
사실 유가적 경영방식은 군신, 부자, 부부, 장유(長幼), 붕우(朋友)의 관계가 상하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좌우의 수평적 관계를 추구하면서, 군주는 신하를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고, 신하는 군주를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는 것이다. 상대방의 직분에 존중과 사랑으로 협력하면서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이런 전통은 14인의 부사장 협의체가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도요타와 같은 일본 기업들에 잘 살아있다.
 
유학 경영의 근본은 수신(修身)
군주가 자신의 직분을 넘어서 신하의 직분에 간섭하지 않고, 신하도 월권해 군주의 직분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유학은 ‘직분적 개인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직분의 구분만을 강조하면 조직 구성원들 간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법가와 같이 대립과 투쟁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서구 경영 모델이 지나친 직무 구분과 내부 경쟁, 엄밀한 평가 등으로 문제점을 야기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유학은 조직 구성원간의 사랑과 공동목표에 근거해 소통을 추구한다. 즉 양(陽) 속에 음(陰)이 있고, 음 속에 양이 있듯이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립과 갈등의 관계를 해소한다. 각자의 직분을 다하면서도 타인과 소통함으로써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구성원 간 사랑을 바탕으로 공동 목표를 이끌어내는 것이 솔선수범의 리더십이다. 유학에서는 외부적인 무력을 이용해 조직을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수양을 통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 구성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는 점에서 솔선수범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유학의 경영방식은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보고 있으며, 수신이 되지 않으면 치인(治人)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경영자는 권력에 취하거나 그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고 자신을 갈고 닦아야 조직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자신을 갈고 닦으며 천도(天道)와 인도(人道)를 따르는 경영자는 기업경영의 관리자이면서 동시에 도(道)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유자(儒者)가 될 수 있다.
 
유학은 상업적 이익 부정안해
유학의 가치는 왜 기업이 사회에 기여 해야 하는지도 설명한다. 유학은 개인, 가족, 국가, 사회의 관계를 다층적 구조로 본다. 다층적 구조란 하위 집단이 모여 상위 집단을 만들며, 각각의 집단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각자의 직분을 다하는 구조를 말한다.
 
기업은 내부적으로는 주주, 경영인, 종업원 등의 개체로 구성되면서, 외부적으로는 소비자, 정부, 학교 등과 함께 사회의 개체적 집단을 이룬다. 유학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은 사회의 한 조직이며, 기업의 이윤과 사회의 공익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다. 따라서 기업의 이윤은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업은 사회에서의 역할인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부응하여 공익사업, 사회복지사업 등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유학은 또 기업이 자신의 직분을 다해 얻어낸 대가인 이윤도 바른 방법을 통해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흔히 알려진 대로 유학은 상업적 이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도(道)와 의(義)에 따라 그것을 취하기를 권한다. 주자(朱子)도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지 만물이 각각 그 분(分)을 얻으면 이익이다. 임금이 그 임금 됨을 얻고, 신하가 그 신하 됨을 얻고, 아버지가 아버지 됨을 얻고, 아들이 아들 됨을 얻으니, 어찌 이익이 이와 같지 않겠는가? 이(利)란 의(義)의 조화이다. 분별한 뒤에 만물이 각각 제자리를 얻는 것이 화(和)이다. 불화(不和)는 불의(不義)에서 생긴다. 의로우면 화(和)하지 않음이 없고, 화(和)하면 이(利)롭지 않음이 없다. (朱子語類·중국 남송의 여정덕이 주자의 어록을 집대성해 1270년 간행)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유학과 기업 경영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이다. 유학은 낡은 학문이 아니라, 동양 정신의 정수이며 사상적 집약이다. 앞으로 기업이 유학의 사회적 기능을 위한 장을 마련해주고, 유학은 기업이 바람직한 기업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도움을 줘 양자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필자는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에서 성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신라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유가의 경영철학과 기업 경영>, <철학과 경영학의 만남> 등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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