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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랑의 비극

강신주 | 39호 (2009년 8월 Issue 2)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면서, 동시에 가장 큰 불행을 안겨주기도 하는 게 바로 사랑의 감정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그도 나를 사랑하길 원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이 우리가 소망하는 가장 행복한 상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상황은 우리 삶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바로 여기에 사랑이 낳을 수 있는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 자체를 후회한다.

그런데 사랑의 감정이 이보다 더 큰 불행을 낳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줬는데도 상대방에게 행복을 안겨주지 못하고, 오히려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다. 장자(莊子, 기원전 369∼기원전 289?)라는 철학자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장자는 사랑이 낳을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을 설명했다. 장자가 우리에게 주는 지혜를 배우기 위해 먼저 ‘바닷새 이야기’라고 불리는 에피소드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는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以己養養鳥)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以鳥養養鳥)이 아니다. - <장자> ‘지락(至樂)’

노나라 임금이 새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이야기다. 바닷새를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몇몇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떠올릴 것이다. ‘바닷새를 궁궐에서 키우지 말고 자연에 풀어줘야 한다. 그러면 바닷새는 아무런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충고를 노나라 임금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가 새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를 자신의 가까이 두고 싶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바닷새를 사랑하려 했다. 그런 노나라 임금에게 바닷새를 자연에 풀어주라는 조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바닷새 이야기’가 얼마나 심각한 딜레마를 갖고 있는지 이제 분명해졌다. 사랑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대상을 죽이지도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닷새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사랑은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법이다. 사랑은 때때로 사랑하는 타자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 어떤 이유로 이런 비극적인 결말이 생겼을까? 노나라 임금이 사랑하는 새에게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오히려 그 새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치명적인 것들이었다. 그가 새에게 베풀었던 애정을 한번 생각해보자. 맛있는 술 권하기, 궁정 음악 연주해주기, 맛있는 고기 먹이기 등.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이런 호의를 받고 기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에게는 이런 것들이 모두 괴로운 시달림에 불과했다. 그래서 결국 사흘 만에 노나라 임금의 애정 표현에 놀란 바닷새는 슬픈 최후를 맞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앞서 그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누군가를 알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알아 나가려고 한다. 우리가 ‘타자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숙고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타자란 우선 나와는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진 존재를 뜻한다. 여기서 우리는 노나라 임금에게 바닷새가 바로 타자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의 속내를 읽을 수 있을까? 

장자의 대답은 ‘허(虛)’나 ‘망(忘)’이라는 표현에 응축돼 있다. ‘허’가 비운다는 뜻이라면, ‘망’은 잊는다는 의미다. 이는 모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타자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비우거나 잊어버려야 함을 말한다. 이제야 우리는 노나라 임금의 심각한 문제를 풀 준비가 된 것 같다. 노나라 임금이 사랑하는 바닷새를 놓아주지 않으면서도 바닷새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우선 ‘이렇게 하면 바닷새가 좋아할 거야’라는 생각을 잊어야 했다. 오직 그럴 때에만 그는 바닷새가 던지는 암호들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마음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소통(疏通)’이란 의사소통을 상징하는 커뮤니케이션 정도로 이해된다. 그런데 ‘트다’라는 뜻의 ‘소(疏)’와 ‘연결한다’는 뜻의 ‘통(通)’이라는 글자로 구성된 소통이라는 개념은 더욱 심오한 의미를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소통은 막혔던 것을 터서 물처럼 잘 흐르게 하는 작용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그래서 ‘통’이라는 개념보다 ‘소’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막혔던 것을 터버리지 않는다면 물은 흐를 수 없는 법이다. ‘소’라는 개념은 우리 마음으로부터 선입견을 비우는 것, 그러니까 장자가 말했던 ‘비움(虛)’이나 ‘잊음(忘)’과 같은 맥락에서 쓰인다. 마음으로부터 선입견을 비워야만 우리는 타자와 연결되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노나라 임금처럼 타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비극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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