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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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봤습니다. 처음엔 그냥 직장인의 고충을 코믹하게 다루는 드라마겠거니 하고 봤는데 1화를 보고 바로 꺼버렸습니다. 마음이 불편해지더라고요. 김 부장 모습이 완전히 남 얘기 같지가 않아서요.
저는 25년 넘게 회사에서 묵묵히 일해 부장까지 달았습니다. 윗선에서 볼 때 저는 ‘안정적인 중간관리자’ 정도일 겁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임원은 요원하고 아래에서는 후배들이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니 마음이 조급해져 무리하게 새로운 일을 벌리게 됩니다.
물론 ‘회사가 인생의 전부다’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건 아닙니다. 회사에만 충성하기엔 회의감이 들었고 그렇다고 대안을 찾기엔 현실이 벅찼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냥 버티고,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해내면서 여기까지 온 거죠. 애매하게 낀 X세대의 삶을 그대로 살아온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여기서 내려가면 그다음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지?’라는 불안이 요즘 따라 크게 밀려옵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합니다. “회사가 전부는 아니지, 다른 일도 찾아봐.” 그런데 딱히 대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막상 회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니 뭐라 말하기 힘든 허탈감 같은 게 있어요. 드라마 속 김 부장이 제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합니다.
Solution I25년 넘게 묵묵히 일하는 것. 누군가에겐 고리타분해 보이는 일일지 몰라도,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 같아도, 그걸 꾸준히 해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드라마 속 김 부장은 “위대한 일”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지금껏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잘될 것이라 단언할 순 없습니다. 그러니 조급해지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홍 부장님의 상황을 생각하다 ‘고원 효과(Plateau Effect)’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추거나 둔화되는 상황을 뜻하죠. 건강이라는 목표를 갖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생각해보죠. 헬스장에 등록해 꾸준히 유산소운동을 하다 보면 초반엔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 아예 안 하던 운동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계속 그렇게 운동하다 보면 곧 한계에 부딪힙니다. ‘고원’에 올라선 거죠. 조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과 다름없이 열심히 노력하는데 더 나아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있죠. 홍 부장님이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닐까요?
상사·후배로부터 변화의 단초를 찾아라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기존과는 다른 방법의 노력입니다. 나 혼자 열심히 하는 운동이 아닌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거나 식단 관리로 운동 효과를 배가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존처럼 열심히만 해서는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드라마 속 김 부장은 상사로부터 질책을 들은 뒤 영업팀원들과 함께 현장 영업을 돌자고 합니다. 이게 진짜 필요한 일인지를 묻는 후배 직원에게 김 부장이 이렇게 답합니다. “9회 말 2아웃에는 그냥 머리 비우는 거야. 내가 좋아하는 공 하나 오겠지 하고 풀스윙하는 거야”라고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뭐라도 보여주고 싶고, 보여줘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은 조직에서도 나에게 ‘풀스윙’을 기대하는지입니다. 회사에선 어떻게 해서든 ‘출루’를 기대하는데 크게 휘둘러 삼진을 당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행동하기 전에 물어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물어야 할 질문은 조직, 즉 상위 리더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입니다. 그것이 나의 변화 방향에 대한 가이드인 셈이죠.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이 필요할 수도, 후배 구성원을 성장시키는 게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침체된 조직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역할을 원할 수도 있고요. 본인은 그 답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시점에 조직이 필요로 하는 걸 상위 리더와의 대화를 통해 파악해 보세요. 상사의 비위를 맞추라는 게 아닙니다. 조직은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잘할 때 건강하게 운영됩니다. 나의 역할은 상위 조직, 즉 상위 리더의 목표 달성을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고원’을 벗어나기 위한 길이 됩니다.상사와의 대화만큼 중요한 건 후배들이 선배인 부장님께 기대하는 게 무엇인지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요즘 세대 직원들은 어떤 조직문화를 원하는지, 무슨 일을 할 때 더 열정을 보이는지 등을 아셔야 합니다. 그게 부장님을 변화로 이끄는 자극이 될테니까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왜 꼭 내가 맞춰줘야 하냐?”며 불만을 표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실적으로 압박하는 윗선에 맞추기도 힘든데 자기주장만 하는 구성원들까지도 내가 이해해야 하냐고 하소연을 하십니다. 끼인 세대 리더로서의 힘듦,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에요. 앞으로의 세상을 만들어 갈 사람들이 후배들이기에 이들의 생각을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이를 위해선 호기심이 필요합니다. 저 직원은 왜 업무할 때 꼭 이어폰을 꽂아야 할까, 저 후배는 왜 출근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할까, 직원들은 왜 회식을 원하지 않을까 등 나와 다른 여러 행동을 궁금해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물론 그런다고 그들의 행동을 다 받아줄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의도와 이유를 알면 그들의 행동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질 겁니다. 나의 과거 경험으로 그들의 행동을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행동에서 앞으로 내가 바뀌어야 할 행동 방향의 단초를 찾아낼 수도 있으니까요.
강점을 바탕으로 ‘고원’을 벗어나라상위 리더와 방향성을 맞추고 후배들의 이야기를 잘 듣기만 하면 변화될 수 있을까요? 다시, 드라마 속 김 부장 이야기로 들어가 볼게요. 김 부장에겐 형·동생처럼 지내는 백 상무가 있습니다. 그는 김 부장에게 계속 자극을 주지만 변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원인은 김 부장 본인의 마음이었습니다. 스스로 충분히 ‘쓸모 있다’고 생각하니 바뀔 필요를 못 느낀 겁니다. 그래서 고원 효과를 벗어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극을 받아들이고 변화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마음과 태도입니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힘듭니다. 특히 잘 모르는 영역, 익숙하지 않은 분야라면 저항은 더더욱 커지겠죠. 불안하니까요.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나의 강점이 발휘될 영역은 분명 존재합니다. 생성형 AI가 일상화되면 많은 일자리, 특히 AI에 친숙하지 못한 시니어 구성원의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었죠. 하지만 AI 시대에 중요한 건 프롬프팅 같은 기술 영역만큼이나 업무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축적된 노하우엔 엄청난 힘이 있거든요. 긴 업무 경험에서 쌓아 올린 나의 강점을 변화된 세상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러니 우선 ‘나는 뭘 잘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것이 내가 현재 서 있는 고원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의 시작점이 될 테니까요.
변화의 시기,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무시하거나 직면해서 바뀌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고민을 드러내 주신 홍 부장님은 직면을 선택하신 셈이죠. 그 직면은 홍 부장님의 변화를 이끄는 시작점이 될 겁니다. 물론 불안하고 힘드시겠지만 나의 강점을 바탕으로 어떤 발전적인 미래를 만들어갈지 설계하고 이를 위한 작은 시도를 이어가길 바랍니다.
Solution II홍 부장님의 사연을 읽으며 제가 코칭해 온 리더분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됐습니다. 홍 부장님이 느끼시는 불안, 착잡함, 복잡한 심정은 결코 본인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조직 내 권력 구조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업무 기반이 AI로 급격히 전환되면서 근무 환경은 젊은 세대에 더 유리해졌습니다. 이 와중에 중간관리자들은 지금까지 회사의 캐시카우였던 레거시 사업들을 우선적으로 챙기느라 막상 새로운 변화에 대처할 시간적 겨를도 없었지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앞으로의 내 직장 생활과 미래는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홍 부장님의 사연은 단순히 ‘승진이 막힌 중간관리자의 고민’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어떻게 더 성과를 내야 할지, 어떤 능력을 더 발휘해야 할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에요. “임원은 요원하고 지금 자리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홍 부장님의 말에서 단순한 조급함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실제적인 불안이 느껴집니다.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관한 크고 심오한 질문인 것이지요.
일단 홍 부장님께서 느끼시는 감정과 상황들을 하나씩 함께 짚어 보시죠. 우선 홍 부장님의 조급함의 실체는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홍 부장님은 지금 자신이 뒤처지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방향성이 사라진 상태에 가깝습니다. 회사 안에서 앞으로 나아갈 다음 역할과 위치가 보이지 않을 때 조급함을 느끼게 되니까요. 그래서 새로운 일을 무리하게 벌이거나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행동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조급함을 느끼는 자신을 보면서 못났다고 스스로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왜냐하면 조급함은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니까요. 미래가 불투명해 보일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신호일 뿐입니다.
‘나만 할 수 있는 핵심 역할’을 다시 정의하라홍 부장님께서 지금부터 대처하실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우선 지금 자리에서의 역할을 다시 점검하는 겁니다. 부장 직급에서 가장 큰 위험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조직 내에서 어떤 공헌을 하고 있는지가 모호해지는 것’입니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핵심 역할은 더 명확해져야 합니다. 일단 지금 맡은 업무 중 ‘회사에 중요하면서 나만 할 수 있는 일’과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일’을 구분하세요. 대체 가능 범주에 있는 일은 과감히 후배에게 맡기셔도 좋습니다. 본인은 조직이 필요로 하는 주요 역할을 선택해 집중하면 되니까요. 단순히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회사가 원하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임원 앞에서 ‘판단의 질’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라두 번째로 임원 등 경영층에 본인의 역할을 부각시키세요.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50대 부장에게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현명한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기대합니다. 이 역할만 명확히 수행해도 자리에 대한 불안이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임원과의 주간 보고에서 “A안과 B안 중 리스크를 고려한다면 지금은 B안이 현실적입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어요. 사업 및 프로젝트와 관련해 향후 6개월 전망을 먼저 제시하실 수도 있고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김 부장님은 이 건이 어떻게 보입니까?”라며 임원이 의견을 물어온다면 더할 나위 없지요. 중간관리자가 가장 빠르게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은 직접 발로 뛰며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이 “여전히 기여도가 높다”는 평가로 이어집니다.
회사 밖에서 나의 시장 가치를 객관적으로 점검하라세 번째로 회사 밖에서 자신의 시장 가치를 확인해 보세요. 퇴사를 준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퇴사 여부와 관계없이 내가 시장에서 어느 포지션에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모호함이 절반 이하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채용 사이트 등에서 본인 경력과 유사한 사람들의 이동 패턴과 몸값을 살펴보세요. 좀 더 적극적으로 커리어 진단을 한번쯤 받아보셔도 좋습니다. ‘내가 시장에서 어느 위치인가’를 객관화하는 과정만 거쳐도 방향 감각이 생기니까요. 물론 이런 작업을 통해 오히려 더 속상함이나 허무함을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무작정 회사만을 바라보며 붙들고 있는 건 현명한 행동은 아닙니다. 회사 안에서 내 정체성이 흔들릴 때 확실한 해법 중 하나는 회사 밖에서의 본인의 위치를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파악하고 준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새 역량 개발에 집중하라네 번째로는 새로운 기술이나 역량을 키우되 하나에만 집중하세요. 중간관리자분들이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이제 새로운 역량을 키워야겠다’면서 다양한 기술과 자격증에 도전하는 겁니다. 젊은 시절엔 퇴근 후 저녁에 학원을 다니면서도 새벽 운동까지 해낼 체력이 있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무리하면 회사 업무에도 차질이 생기고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쉽게 지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12개월 동안 단 하나의 역량만 키운다고 생각해주세요. 그것도 생각 외로 만만치 않답니다. 본인의 전공이나 적성에 맞는 걸로 선택해서 꾸준히 진행해주세요.
버티는 시간 아닌 다시 설계할 시간지금부터의 삶을 구체적으로 다시 설계해 보셨으면 합니다. 중간관리자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그냥 버티는 시간’입니다. 버티는 동안 조직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내 역할은 하루가 다르게 희미해집니다. 지금부터 1년은 커리어의 방향을 명확히 잡는 전환기라고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앞서 말씀드렸던 4가지에 집중해보시길 권합니다. 일단 회사 내부에서 내가 맡을 핵심 역할을 다시 규정하고 임원과의 보고 및 소통 방식을 효과적으로 바꿔보세요. 한편 회사 밖에서의 나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앞으로의 경쟁력을 만들어 줄 역량 하나만 12개월간 집중적으로 강화하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조직을 떠납니다. 그건 특정 세대나 특정 직급만의 일이 아닙니다. 회사를 떠나는 순간의 나 자신을 당당하게 만들기 위해 오늘부터 1년을 준비하시는 겁니다. 부장이라는 직함이 없어져도, 회사라는 울타리 밖에서도 홍 부장님이 가진 경험과 지혜는 여전히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지금 구체적으로 설계를 시작했는가’입니다. 넋 놓고 버티는 시간과 방향을 잡고 움직이는 시간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듭니다. 그리고 지금 선택은 앞으로의 25년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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