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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서 배우는 경영

納約自牖… 마음의 병 치유할 ‘작은 창문’

박영규 | 368호 (2023년 0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주역에는 마음의 병을 해결하는 세가지 방법이 제시됐다.

1. 나만의 작은 소통 방법인 ‘납약자유(納約自牖)’를 찾아라. SNS에서 친구들의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도 효과적인 납약자유가 될 수 있다.

2. 마음속 울화를 시원하게 쏟아내라. 먹구름이 껴 있다가 비가 내리면 하늘이 맑아지듯 우울한 마음도 한껏 표출해야 해소된다.

3. 필요하다면 스스로 어둠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마음의 병은 습관적으로 되풀이되기 쉽다. 마음의 병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다양한 사람들과 연대하며 마음의 탄력성을 키워야 한다.

주역으로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에 따르면 대답은 ‘그렇다’이다. 융은 주역의 괘들이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는 상징체계라고 말한다. 그래서 주역의 괘를 통해서 인간 내면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의 질병들을 관찰, 분석,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융이 뽑아서 치료에 활용한 점괘 몇 가지를 통해 주역의 심리학적 효용 가치를 한번 따져보기로 하자.

먼저, 산을 뜻하는 간괘(☶)부터 살펴보자. 간괘는 권위나 위엄, 진중함 등과 같이 주로 긍정적인 태도나 마인드를 상징하는 괘로 쓰인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은 첫 전투인 옥포해전에 나서면서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라. 산처럼 무겁고 침착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는 군령을 제1성으로 내놓았다. 주역에 조예가 깊었던 이순신은 주역 간괘의 메시지를 이용해 병사들의 기강을 다잡은 후 군대를 출정시켰다. 그리고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산을 상징하는 간괘가 위, 아래에 겹쳐져 만들어지는 중산간(重山艮)괘는 주로 흉(凶)한 상황을 암시한다. 첩첩산중이라는 표현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꽉 막혀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괘가 중산간괘이다. 중산간괘는 극도의 심리적 중압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고통을 당하거나 충격을 받았을 때 ‘죽고 싶다’거나 ‘가슴이 답답해 미칠 것 같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는데 그러한 상황이 중산간괘다.

이토 히로부미는 중국 대륙으로 떠나기 전 다카시마를 찾아가 출행 점을 쳤다. 다카시마는 일본 내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역학자였으며 이토 히로부미의 정신적 멘토이기도 했다. 다카시마가 뽑은 점괘가 바로 중산간괘였다. 불길한 점괘였으므로 다카시마는 이토 히로부미의 출장을 만류했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는 이를 무시하고 중국으로 출발했고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절명했다. 안중근의 이름에 들어가 있는 중(重)자와 근(根)자에 중산간괘의 중(重)과 간(艮)이 있으니 다카시마의 점괘는 정확했던 셈이다.

물을 상징하는 감괘(☵)가 아래, 위에 중첩돼 있는 중수감(重水坎)괘도 먹구름이 꽉 낀 것 같은 암울한 상황을 뜻하는 괘다. 물 수(水)자가 단독으로 쓰인 감(坎)괘는 부드러움, 유연함, 인자함 등과 같은 긍정적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중수감괘는 주로 험한 물구덩이나 장애물 등과 같이 부정적이고 흉한 일을 암시한다. 심리적으로는 누군가로부터 쫓기는 것 같은 심한 압박감을 느끼는 중증의 우울증 환자를 상징한다.

융이 활용했던 화풍정(火風鼎)괘에 나오는 색(塞, 막히다)이나 기형악흉(其形渥凶, 땀에 흠뻑 젖어 모양이 흉하다) 등의 표현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을 암시하는 효사들이다. 수풍정(水風井)괘에서는 상처 난 마음을 우물에 비유하기도 한다. ‘흘지역미율정(汔至亦未繘井) 리기병(羸其甁) 흉(凶)’, 가까스로 우물에 이르렀지만 두레박의 줄이 끊어져 퍼 올리던 물이 쏟아지니 흉하다는 뜻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뭔가에 의지하려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는 상황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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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이 알려주는 마음 치료법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주역이 제시하는 방법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나만의 작은 소통 방법을 찾는 것이다. 중수감괘에서는 이를 ‘납약자유(納約自牖)’라고 표현하는데 유(牖)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 내는 작은 창문을 뜻한다. 심리적 우울감은 스스로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은 다 잘나가는데 나만 왜 이렇게 초라할까’ 하는 생각이 깊어지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겁이 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통이 단절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마음의 병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한꺼번에 큰 걸음을 내딛기보다는 작은 시도를 통해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해 나가는 것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주역은 조언한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으로 다중과의 연락을 끊더라도 최소한의 가까운 친구들과는 자주 연락하고 그럼으로써 자신만의 숨 쉴 공간을 마련해둬야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주역 수풍정괘에서 말하는 납약자유를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로 볼 수도 있다. 카톡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과 같이 내 손안에 쏙 들어오는 스마트폰 속의 자그마한 SNS 애플리케이션들이 납약자유의 작은 창(牖)과 같은 것이다. SNS에서 친구들의 메시지나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 공감을 표시하는 작은 행위 하나가 마음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묘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마음속의 울화를 시원하게 쏟아내는 것이다. 주역 화풍정괘에서는 이를 방우(方雨)라고 표현한다. 먹구름이 껴 있다가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고 나면 하늘이 쾌청해지듯이 우울한 마음도 그렇게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나 인적이 드문 높은 산 위에 올라가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거나 펑펑 우는 것이 주역에서 말하는 방우와 같은 맥락의 치료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힘들면 가까운 코인 노래방에 가서 정신 줄을 내려놓고 울며불며 애창곡을 실컷 불러보는 것도 방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주역과 장자, 노자 등의 도가사상에 밝았던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방우의 효과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울음이란 하늘과 땅 사이에 있어서 우레와 비교할 만하다. 답답하게 맺힌 감정을 활짝 풀어버리는 데는 소리 질러 우는 것보다 더 좋은 치료법이 없다.” 유명 작가인 공지영도 자신이 SNS에 올린 글이 논란에 휩싸여 마음이 힘들 때 “이해인 수녀님을 찾아가 실컷 울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졌다”며 방우의 효과를 언급하기도 했다. 융은 이런 방법을 쓰면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지고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며 그 효과를 주역 화지진(火地晉)괘의 효사에 나오는 ‘명출지상(明出地上)’에 비유하고 있다. 땅속에 있던 해가 밖으로 나와 세상을 밝게 비추듯이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어두운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다는 의미다.

셋째, 스스로 어두워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방법이지만 정말 앞이 캄캄할 때는 역발상으로 어둠 속으로 깊이 침잠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주역의 지화명이(地火明夷)괘에 이런 지혜가 담겨 있다. 땅속에 불이 숨어들어 세상이 캄캄하게 변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괘가 ‘지화명이’괘인데 명이(明夷)는 밝음이 시나브로 어두워진다는 뜻이다.

『토정비결』로 잘 알려진 토정 이지함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으며 처가마저 역모에 휘말려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 그리고 4남1녀 중 장남은 익사하고, 차남은 호사(虎死)하고, 넷째는 조현의 뒤를 이어 의병장이 됐다가 모함을 받아 불귀의 객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딸이 문둥병에 걸린다. 딸을 데리고 화담 서경덕을 방문하는 길에 나환자촌을 지났는데 그게 화근이 됐던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암울한 상황에서 실의에 빠져 있던 토정은 주역점괘를 뽑아본 후 지화명이괘가 나오자 제 발로 나환자촌으로 들어간다. 스스로 명이(明夷)가 되기로 결심한 토정은 환자들의 손과 발을 자신의 얼굴에 비빈 후 문둥병에 걸린다. 서경덕이 꿈에서 일러준 비법으로 부녀가 모두 문둥병에서 완쾌된 후 나환자촌을 나온 토정은 마포에 토굴을 짓고 그곳에서 주역을 연구하면서 사람들의 상처 난 몸과 마음을 치료해주면서 살았다.

덩치가 큰 메인 프레임을 고집하다가 애플에 실리콘밸리의 왕좌를 내준 IBM은 집단 우울증에 빠진다. 화려했던 영화가 한순간에 무너지자 거대한 심리적 충격이 쓰나미가 돼 조직 전체를 덮쳤던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IBM을 부활시킨 사람이 루이스 거스너 CEO였다. 공룡 조직의 구원투수로 긴급 호출을 받은 거스너는 직원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데 리더십 역량을 총동원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직원들의 의견을 묵묵히 경청했으며 직원들과 적극 소통했다. 직원들은 작은 창에 대고 마음의 울분을 쏟아내듯 거스너에게 조직과 개인이 처한 문제를 털어놓았으며 그러한 방우의 효과로 우울증을 극복해나갔다.

연대하며 마음 탄력성 키워야

우울증을 극복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아도 마음의 탄력성이 떨어지면 또다시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 주역 중수감괘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습감(習坎)이라고 표현한다. 마음의 병이 습관적으로 되풀이된다는 의미이다.

중수감괘 괘사에서는 이러한 습감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도 일러준다. 습감(習坎) 유부(有孚) 유심형(維心亨) 행(行) 유상(有尙), 습감이니 믿음을 가지고 오직 마음을 형통하게 한 후 행동에 나서면 사람들이 그대를 우러러볼 것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마음을 평안하게 한 후 이웃과 사회를 위한 연대에 나서면 사람들과의 소통이 활성화되고 그로써 마음의 병을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주역의 조언이다.

월드 스타가 된 후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던 방탄소년단은 융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자기 정체성을 정립한 후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음악은 방탄소년단의 마음을 치유하는 작은 창이다. 그들은 그 창을 통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극복했다. 그리고 인종과 세대를 초월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습감을 이겨나간다.

“진정한 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누구이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성 정체성이 어떻든, 여러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여러분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여러분의 이름과 목소리를 찾으세요. 우리는 러브 마이셀프 캠페인을 유니세프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연대는 우리를 더욱더 강하게 만듭니다.”

- 방탄소년단 리더 RM, 유엔 연설 중에서
  • 박영규 | 인문학자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chamne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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