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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Highlight : 기후변화에 대한 인문•사회적 해석

지속가능성이 없으면 ‘발전’이 아니다

김수경 | 316호 (2021년 0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기후변화는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문제이자 정치적 문제다. 좀 더 근본적으로 올라가면 ‘발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기후변화의 기원은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출현과 관계가 깊다.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자본의 축적을 영속시키는 시스템이다. 자본 축적이 곧 성장을 의미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후변화를 막는다는 이유로 개발을 멈추기는 어렵다. 그래서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출발점은 ‘성장’과 ‘발전’의 정의를 다시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이미 우위를 선점한 자들의 반성과 양보가 필요하다.



기후변화. 그건 대부분의 사람에겐 너무 멀고도 거창한 단어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해 결국은 육지가 물에 잠기고 인류가 멸망한다고? 이러한 ‘아포칼립스’ 스토리는 블록버스터급 재난 영화에서나 보던 것들이다. 더구나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누군가 ‘짠∼!’ 하고 나타나 인류를 구원해주지 않는가.

그러나 2016년 여름, 지독하다 못해 처참하다고까지 느껴지는 폭염을 겪으며 문득 생각했다. ‘기후변화는 생각보다 우리 일상 가까이에 와 있는지도 몰라.’ 한 번 신경 쓰기 시작하니 그 뒤로 이상한 일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대프리카’(여름에 아프리카만큼이나 더운 대구를 빗댄 신조어)에선 가정집 베란다에서도 바나나 열매가 열리기 시작했다. 수돗물에선 깔따구 유충이 섞여 나오고, 여름이면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벌레 떼의 습격이 일어났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50일 넘게 이어지는 장마를 겪으며 깨달았다. ‘이러다간 어쩌면 내 눈으로 직접 인류의 멸망을 보겠구나.’

우리가 무관심한 동안 기후변화는 지구를 집어삼키기 직전이다. 북극곰은 이미 2008년 미국 멸종위기보호법(Endangered Species Act)에 의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멸종위기종이 등록된 것은 북극곰이 처음이다. 호주의 대산호초는 수온 상승으로 산호초에 공생하던 갈충조류가 떨어져 나가면서 하얗게 변해버렸다. 알프스 빙하는 기온 상승으로 조류가 번식하면서 분홍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22세기에 어떤 화가가 풍경화를 그린다면 전혀 다른 색의 물감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는 경제적 문제이자 정치적 문제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발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이 근본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 없이 단순히 플라스틱을 철저히 분리수거하는 식의 환경적 실천만으로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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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비유를 들어보자.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에는 원인요법과 대증요법이 있다. 원인요법은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 자체를 없애는 것이고 대증요법은 원인은 그대로 두고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암이라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암세포를 파괴하는 항암 치료도 해야 하지만(원인요법), 암이 유발하는 고통을 줄이기 위한 진통제(대증요법)도 필요하다. 기후변화도 유사하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결과로서 나타나는 환경 파괴를 줄이는 일도 필요하지만 인류가 멸망을 걱정해야 할 만큼 지금의 상황을 만든 원인이 무엇인가를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기후변화의 기원은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출현과 관계가 깊다. 어쨌거나 본격적으로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건 18세기 산업혁명 때부터이니 말이다. 자본주의의 정의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다소 간의 차이가 있지만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자본의 축적을 영속시키는 시스템이다. 모든 경제적 질서와 체제가 자본의 축적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편성되고 이는 곧 인간의 행동 양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용 대비 효용이 최대화되는 선택이 가장 합리적 선택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자원을 절약하는 것보다 소비하는 것이 자본 축적에 유리하다면 자원은 아낌없이 소비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발전의 동력으로 삼기 때문에 규제보다는 시장의 자유경쟁 속에서 더욱 번성한다. 한마디로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규제와는 상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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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경sookim@hs.ac.kr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했다. 스탠퍼드대(Stanford University)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국제 대학원 연구교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쳤다. 현재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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