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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창조하는 뇌』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과 앤서니 브란트

창의성의 핵심은 Bending, Breaking, Blending
안전지대에서 나와 ‘경계’에 서라

김윤진 | 289호 (2020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예술과 과학, 전혀 다른 세계에 종사하는 작곡가와 촉망받는 뇌 과학자가 공통적으로 밝힌 인간 창의성의 비밀은 무엇일까. 이들은 예술적 창의성과 과학적 창의성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고 동일한 인지 활동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창의적인 뇌의 핵심 전략을 휘기(Bending), 쪼개기(Breaking), 섞기(Blending)의 ‘3B’로 요약한다. 원형을 뒤틀어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거나, 전체를 부분으로 해체하거나, 두 가지 이상의 재료를 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전략은 창의적인 기업 활동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지식재산권(IP) 보호를 위해 대개 제품이나 서비스에 은밀하게 감춰져 있을 뿐이다. 겉으로 보이든, 숨겨져 있든 기업이 이런 창의성을 계속해서 지켜나가려면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의 경계를 탐색하고, 다양한 옵션을 확보하고, ‘깔때기 접근’을 통해 경쟁력 없는 아이디어를 걸러내야 한다.



‘인간의 창의적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과연 그런 소프트웨어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있다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2019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과학 다큐멘터리 ‘창의적인 뇌의 비밀’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좇는다. 예술과 과학이라는 이질적인 세계를 조명함으로써 분야를 초월한 인간 혁신의 실마리, 창의적인 활동을 할 때 뇌 속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탐구한다. 이 다큐는 ‘뇌과학계의 칼 세이건’으로 불리는 촉망받는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스탠퍼드대 교수)과 하버드대 출신 작곡가 앤서니 브란트(라이스대 교수)가 공동 집필한 저서 『창조하는 뇌(The Runaway Species)』를 원작으로 삼고 제작됐다.

인간 창의성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의기투합한 이 과학자와 예술가는 혁신의 문을 여는 열쇠를 크게 ‘3B’로 정리했다. 두 저자가 꼽은 창의적인 인지 활동의 핵심은 바로 휘기(Bending), 쪼개기(Breaking), 섞기(Blending) 세 가지다. ‘휘기’는 원형을 변형하거나 뒤틀어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 ‘쪼개기’는 전체를 부분으로 해체하는 것, ‘섞기’는 두 가지 이상의 재료를 합하는 것을 뜻한다. 애플의 엔지니어, 포드, 콜리지, 피카소 등이 세상을 재창조한 방식이 언뜻 전혀 달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3B로 압축되는 핵심 전략에서 기인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 전략을 창의적인 기업 활동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밤낮으로 혁신을 갈구하는 기업 리더들은 최신 뇌과학 성과, 예술에 녹아든 인간 정신의 접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DBR이 원작의 공동 저자인 데이비드 이글먼과 앤서니 브란트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창의성을 혁신의 단초로 삼을 수 있을지 물어봤다.

데이비드 이글먼은 스탠퍼드대 신경과학 부교수로 사이언스, 네이처 등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인간의 뇌가 외부 자극에 의해 변화되는 뇌 가소성, 시간 지각, 공감각, 신경 법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이자 뇌 과학을 대중적으로 쉽고 흥미롭게 소개하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이기도 하다. 2015년에는 PBS(미국 공영 방송)가 제작한 TV 프로그램 ‘데이비드 이글먼의 더 브레인’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저서로는 『더 브레인』 『인코그니토』 『썸 SUM』 등이 있다.

앤서니 브란트는 라이스대 셰퍼드 음대 교수로 음악 이론과 작곡학을 가르치는 작곡가다. 칼아츠에서 석사를,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새로운 음악과 다양한 분야의 현대 예술 형식을 통합해 영감을 불어넣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현대 음악 앙상블 ‘뮤지카(Musica)’를 공동 창립했고, 지금까지 5만여 명의 미국 초등학생들에게 뮤지카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했다.


신경과학자와 작곡가가 인간 창의성의 근원을 함께 탐구하게 된 경위는.

오랜 친구인 우리는 과학과 예술이라는 각자의 영역에서 창의력을 연구해 왔다. 약 5년 전 점심을 먹다가 우연히 창의성을 화두로 대화를 나눴고, 서로의 아이디어에 99% 동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둘 다 창의성이 인간의 생물학적 구성에 있어 가장 고유한 부분이자 뇌가 각종 입력을 재구성해 출력하는 자연스러운 소프트웨어의 일부라고 느꼈다. 대부분의 학문 분야가 특수한 지식과 전문성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과학자든, 예술가든 창의성을 발휘할 때에는 동일한 인지적 메커니즘에 근거해 사고한다고 확신했다. 과학적 창의성과 예술적 창의성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메커니즘을 분명하게 밝히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무엇보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그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는 아이들의 창의력 계발과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창의성이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창의성은 이전의 경험을, 이전에 예측하지 못한 형태로 전환하는 작업이다(transformation of prior experience into something previously unforeseen). 상상력이 과거에 보지 못한 것을 예측하는 능력이라면 창의력은 그 예측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뜻한다. 실제로 자연 세계에서 앞날을 예측하는 능력은 중요한 뇌 기능 중 하나다. 동물들이 새로운 영토를 탐험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도 결국은 미래를 더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다. 예측을 실현하기 더 어려울수록, 창의적 사고는 더 기발해진다. 인간의 경우 이런 예측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 피질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훨씬 더 크다. ‘만일 ∼했더라면(What if∼)’이라는 가상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데 쓰는 뇌의 영토(real estate)가 다른 종에 비할 수 없이 크다는 뜻이다.


창조적 뇌의 전략을 3B로 분류한 까닭은.

모든 창의적 사고의 배경에는 공통의 인지 메커니즘이 작용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학자들은 인지 과학자 마크 터너(Mark Turner)와 언어학자 질 포코니에(Gilles Fauconnier)였다. 우리는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터너와 포코니에는 섞기, 즉 여러 아이디어의 재료를 결합하는 것만으로 인간의 모든 창의적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 반면 우리는 휘기, 쪼개기의 개념을 추가했다. 글씨체, 즉 글꼴은 휘기의 좋은 예다. 대체 왜 인간은 똑같은 알파벳을 쓰기 위해 수천 가지의 다른 글꼴을 사용하는 걸까. 바로 원형을 뒤틀어 리모델링하려는 인간의 충동, ‘휘는 상상’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왜 인간은 셀 수 없이 다양한 모양의 파스타 면을 만들까. 어차피 맛은 비슷한데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가구에서 가방,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테마를 끊임없이 변형한다.

쪼개기도 빼놓을 수 없는 창조의 원천이다. 휴대전화를 비롯한 디지털 세계는 쪼개기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셀폰(cellphones)’이라는 명칭의 유래만 따져봐도 알 수 있다. 도시 지역은 수많은 독립적인 통신 지역, ‘셀(cell)’로 분리돼 있다. 단일 송신탑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셀마다 각기 다른 송신탑을 세워 더 많은 사람이 동시에 통화할 수 있게 한다. 이미지를 여러 화소로 나눠 처리하는 ‘픽실레이션(pixilation)’ 역시 컴퓨터 모니터와 LCD TV의 디지털 이미지를 구현한 쪼개기의 대표적 예다.

마지막으로, 하이브리드를 창조해내는 섞기는 발명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 스위스 군용 칼, 하우스 보트, 옥상 정원, 스마트폰, 퓨전 요리 등은 모두 그 결과물이다. 문학의 은유적 표현들도 섞기에서 나온다. 우주 비행사인 버즈 알드린은 “당신의 마음은 낙하산과 같다. 열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는 인간 심리를 낙하산이라는 항공 장비에 빗대어 전혀 다른 재료를 연결한 것이다. 이처럼 세 전략을 포괄적으로 활용하면 익숙한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인지적 모델은 연습과 반복을 통해 학습될 수 있다.


창의성이 기업 활동에 있어서도 중요할 것 같다.

우리는 기업이 고안한 창의적 산물에 둘러싸여 있다. 다만 이런 혁신이 감춰져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유튜브 스트리밍을 예로 들어보자. 유튜브는 일찌감치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면 비디오를 끊김 없이 스트리밍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디오가 중단되면 사용자가 금세 이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화질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비디오 용량이 커서 제대로 스트리밍하려면 넓은 대역폭이 필요한데 대역폭 통제권이 유튜브가 아닌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에 있었기 때문이다. 주파수 범위를 의미하는 대역폭이 너무 좁으면 비디오가 대기 상태로 돌아가 동작을 멈추고, 현실적으로 더 많은 사용자가 고화질 화면을 선택할수록 이 같은 중단이 더 잦아진다. 그렇다면 유튜브는 대역폭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자에게 믿을 만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했을까?

유튜브 비디오는 대개 고화질, 표준화질, 저화질의 세 가지 해상도로 저장된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유튜브 엔지니어들은 서로 다른 해상도 파일을 마치 목걸이 구슬처럼 아주 짧은 클립으로 쪼개어 연결하는 소프트웨어를 고안해 냈다. 언뜻 중단 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수천 개의 작은 클립으로 분할된 비디오를 내보낸 것이다. 사용자들은 진주 사이에 섞인 자갈을 알아채지 못하듯 스트리밍 안에 고화질 클립이 충분히 많으면 저화질 클립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스트리밍 서비스가 더 매끄러워졌다고 느낄 뿐이었다.

이처럼 비디오를 잘게 잘라 잇는 유튜브 엔지니어들의 아이디어는 고화질 비디오의 품질이 100% 완벽해야 한다는 전제에 의문을 던지면서 탄생했다. 사용자들은 쉽사리 감지할 수 없지만 이 고화질 스트리밍 역시 창의성의 산물이다. 이는 ‘은밀한 창의성’의 대표적 예다.


왜 기업은 이런 창의성을 보이지 않게 감추는 건가.

지식재산권(IP)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IP는 회사가 가진 가장 중요한 지적 자본의 일부다. 일례로 애플은 오늘날의 아이폰을 있게 한 터치스크린 개발자에게 단지 비밀유지 계약에만 서명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그 계약을 맺은 것조차 비밀에 부치겠다는 계약에 서명하도록 했다. 어차피 대부분의 제품/서비스를 이용할 때 사용자는 어떤 창의성이 이 같은 경험이나 발명품을 뒷받침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 솔직히 냉장고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는 이유와 여기에 들어가는 핵심 기술을 아는 사람이 있나? 사용자 입장에선 음식이 상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비디오는 스트리밍을 잘하고, 앱은 교통 경로를 잘 업데이트하고, 스마트 워치는 착용자가 계단을 얼마나 많이 오르는지 잘 모니터링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해당 도구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혁신을 드러낼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물론 인류의 역사를 보면 대체로 경쟁자들끼리 서로 배우고 벤치마킹할 때 혁신이 가속화되는 경우가 많다.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나 현대의 실리콘밸리가 혁신의 온상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오픈 소스와 크라우드 소싱이 추진력을 얻게 된 것도 결국 경쟁이 혁신이 원천이라는 공감대가 있어서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선 독점도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다. 오픈 소스가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흐름을 가능케 한다면 독점은 기업가정신과 독립적 사고를 촉발하고 기업이 이니셔티브를 움켜쥐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때문에 예술에서는 창의성이 대개 겉으로 드러나는 데 반해 기업에서의 창의성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게 숨겨지는 경우가 많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기업 리더들이 혁신을 유지하려면.

기업들은 현재 3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고, 많은 아이디어는 사장되고, 심지어 훌륭한 아이디어조차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난관에 대응하려면 가능한 한 경계를 탐색해야 한다. 현재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들의 맨 끝, 가장자리에 무엇이 있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그것이 내일을 위한 관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42년 산업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가 미국 중산층을 위한 호화 버스 여행을 구상했을 당시 미국은 여전히 대공황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유례없이 긴 휠 베이스, 에어컨과 화장실, 색색으로 멋을 낸 시트와 객석 상단 짐칸까지 갖춘 이 다용도 버스 아이디어는 당시로써는 파격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 제조에 필요한 기술도 준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레이하운드(greyhound) 버스’ 경영진은 로위의 디자인에 담긴 가능성에 주목했고,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 경기가 살아난 무렵 바로 아이디어를 채택해 시제품을 제작했다. 그리고 이 버스는 미국의 고속도로망 확충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여행용 버스로 급부상했다. 이렇듯 창의적인 기업이라면 기존의 규범과 상식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로 변화에 대비하고 가능성의 경계에서 움직여야 한다. 아이디어들을 최대한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실현 가능한 선택지들을 넓혀야 한다는 의미다. 단순 반복은 지양하고, 친숙함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포상하는 등 충분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주류가 아닌 경계에서 움직이면 리스크가 크지 않나.

미래에 대한 예측은 종종 빗나가기 때문에 위험하다. 1964년 세계 박람회 예측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쯤 달을 수확하고 수중 호텔에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급변하는 세상에서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 또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블록버스터 비디오의 사례를 봐라. 이 회사는 알고리즘을 활용해 베스트셀러 작품 재고를 충분히 확보해두는 방식으로 홈 무비 대여 사업의 안정적인 우열 전략을 고수했다. 그러나 스트리밍 서비스의 부상을 예측하지 못했고 한때 수천 개에 달했던 블록버스터 비디오 매장은 단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문을 닫았다. 너무 오랜 기간 ‘올바른 답’을 고수했던 대가다.

상업적인 성공이라는 ‘꿀’이 어디에 있는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창의적인 기업이라면 벌집에서 나와 거리로 나가봐야 한다. 예를 들어, 변기 시트 등 가정용품을 판매하는 미국의 대형 소매점 로스(Lowe’s)는 회사 내부에 공상과학(SF) 작가로 구성된 팀을 두고 있다. 미래의 가정생활을 예상하기 위해서다. 고객이 가상 현실에서 직접 자기 집을 개조해볼 수 있는 가상 현실 앱 홀로룸도 이 팀의 작품이다. 앱을 이용해 고객은 로스의 각종 제품을 실제 크기 그대로 3차원에서 테스트해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아기용품 전문점 피셔프라이스(Fisher Price)는 자사의 요람과 유모차, 장난감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면서 기술 발전이 차세대 육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연구한다. 이 회사의 차세대 제품군 중에는 건강 모니터를 내장하고 아이의 키 성장을 추적하는 홀로그램 투사 장치도 있고, 창이 철자 연습용 디지털 칠판이 되는 요람도 있다.


직접 개발한 기술을 토대로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경영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없나.

아무래도 기존에 없던 기술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 몸에 착용하는 감각 장치인 VEST(범용 초감각 변환기, Versatile Extra-Sensory Transducer)는 소리를 상체에 전해지는 진동 패턴으로 변환해 청각장애인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인간의 뇌는 신경 가소성 덕분에 피부에 느껴지는 패턴을 소리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기술의 용도는 무궁무진하지만 어떤 것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때문에 기업이 직면한 첫 번째 어려움은 경쟁이 없는 시장, 망망대해(오픈 워터, open water)에 떠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이 창의적인 기업들을 찾는다고는 하지만 초기 라운드에 투자하게끔 만드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지루한 회사를 원하는 투자자들도 없지만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에 베팅할 만큼 용감한 투자자도 거의 없다.

두 번째 어려움은 메모장에 후속 단계와 사업 확장에 대한 아이디어가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목표 시장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이 기술을 조종사에게 비행기 관련 데이터, 우주 비행사에게 국제 우주 정거장 관련 데이터,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건강 데이터를 전달하는 데 쓸 수도 있다. 그러나 폭넓은 옵션을 마련하되 대다수를 걸러낼 줄도 알아야 한다.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것도 큰 과제 중 하나다.



창의적 실험이 실패했을 때 충격을 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종의 아이디어 깔때기(funnel of ideas) 접근이 유용할 수 있다. 널따란 깔때기에 각종 아이디어를 집어넣고 빠르게 걸러내는 작업이다. 최대한 많은 옵션에 최소한의 금액을 투자한 뒤 수차례의 제품 테스트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옵션은 좁히고 투자액은 늘려가는 것이다. 일찍, 자주, 빠르게 실패하는 게 단일 옵션에 과잉 투자를 했다 망하는 것보다 다시 일어서기 훨씬 쉽다. 가령, 구글 연구 개발 부서 X는 신속하게 실용 모델을 만드는 홈(Home)팀과 잠재 고객에게 최대한 많은 피드백을 얻는 어웨이(Away)팀을 산하에 두고 이런 깔때기 전략을 썼다. 구글 글라스 프로젝트팀의 경우도 여러 버전의 구글 글라스를 빠르게 출시한 뒤 촬영 대상이 되길 원치 않고 사생활에 민감한 사람들의 반응을 목격하자 곧바로 프로젝트를 폐기했다. “실패는 먼저 하면 그 대가가 작지만 마지막에 하면 아주 크다.” 구글 X의 책임자 아스트로 텔러(Astro Teller)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가벼운 뒤틀기부터 급진적 변화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선택지를 확보할 필요도 있다. 창작물이 너무 친숙하면 금세 낡은 것이 돼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반대로 너무 참신하면 추종자들을 충분히 끌어들이지 못한다. 스위트 스폿(sweet spot)은 항상 그 가운데 있지만 불행히도 이를 찾는 마술 공식은 없다.


진공 상태, 즉 무(無)에서 나오는 것은 없기 때문에 모방과 창조를 구별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특허 및 저작권 사무소들은 매일 이 질문과 싸운다. 그래서 IP 보호를 받으려면 단순히 기능 향상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종래 기술에 충분한 참신함을 더해야 한다. 점진적 개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특허청이 선례로부터의 외삽(extrapolation)이 너무 명백하고 공연하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적절한 인용 없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복사, 붙여 넣기 하는 것은 표절이지만 원본을 뛰어넘는 도용은 창의성의 토대가 된다.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율리시스(Ulysses)』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모형으로 삼고, 피카소의 입체주의 화풍이 엘 그레코의 자화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해서 이들을 두고 표절이라 할 수 없다. 둘 다 원작을 디딤돌로 삼아 더 멀리 도약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창의적 제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련의 가계도가 드러난다. 영화제작자 장 루크 고다르(Jean-luc Godard)의 말처럼 ‘중요한 건 어디서 가져왔는지가 아니라 어디로 가져갔는지’다.

오늘날에는 예술가 등이 멋진 작품을 하나 창조하면 IP가 다른 형태와 장르로 확산될 가능성이 예전보다 높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장르에 걸쳐 브랜드를 구축하려는 기업들의 상업적 욕망은 ‘안전한 베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선택은 대중에게는 호소력을 가지지만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은 결과물을 낳는 만큼 경계해야 한다.


AI도 음악을 작곡하고, 시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다. 기계의 창의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우리는 컴퓨터의 속도와 신뢰성을 좋아한다. 무자비하게 많은 연산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서 컴퓨터는 인간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빠르게 정답을 내놓으며 오류도 내지 않는다. 컴퓨터가 아프거나 피곤하진 않을지, 우울하거나 집중력이 저하되지 않을지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창의성은 애초에 정답이 없는 활동이고 불가피하게 모험과 실험을 동반한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컴퓨터가 이런 열린 결말의 활동에 있어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독창적인 해법을 내놔도 수년, 혹은 몇 세대에 걸쳐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할 수도 있는 예술 활동, 즉 주관이 개입되는 영역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최신 신경과학 연구들은 두뇌 영역 사이의 광범위한 상호작용이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말하고 있다. 단순 정보처리 능력에 있어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압도할지 모르지만 이런 광범위한 병렬연결은 인간이 인지 유연성에 있어 비교 우위가 있음을 시사한다. 인간의 뇌는 계속해서 스스로 재조직하고, 학습하고, 적응하면서 감각, 정서 및 지적 데이터를 통합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이며 서로를 놀라게 하고 감동을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종종 암기 실수도 하고 연산은 느리지만 인간이 창조의 가마솥인 이유도 이런 사회적 관계가 창의성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에밀리 디킨스처럼 시를 쓰고, 스티브 잡스처럼 발명하는 데는 매우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다만 AI가 디지털 비서로서 선택지를 탐색하고 빠르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델링하거나 시제품을 상용화하는 데는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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