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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 Data Analysis

예전의 ‘명감독’은 잊어라, 데이터가 우승을 이끈다

장원석 | 286호 (2019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이미 십수 년 전에 미국에서 본격화한 후 한국 프로야구에도 도입되기 시작한 데이터 분석 야구와 전략 수립 방법론은 스포츠계, 야구계를 통째로 바꾸고 있다. 다음은 한 야구 전문가가 데이터 중심 구단을 만들기 위해 제시한 조언 네 가지다. 구단이 아니라 ‘기업’이라고 생각해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1. 데이터 자체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2. 올바른 데이터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인프라가 먼저다.
3. 데이터를 통해 측정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설정하고 어떤 통찰력을 얻을지 연구해야 한다.
4. 데이터를 믿는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편집자주
‘빅데이터’나 ‘데이터 과학’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수년 전부터 스포츠 분야에서는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선수 기용과 전략 수립이 당연시돼왔습니다. 영화 ‘머니볼’에도 등장한 세이버 매트릭스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스포츠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집중 연구하고 있는 장원석 연구원이 스포츠 분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얻는 경영 인사이트를 전달합니다.



한국의 빌리1  빈은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스포츠계, 특히 야구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직책이나 역할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MVP 출신 선수? 홈런 타자? 우승 청부사 감독? 각자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 중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필자가 볼 때 앞서 제시한 역할을 가진 사람 그 누구도 이 시점에서는 정답이 아니다. 요새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은 바로 데이터 분석가다. 정말 그럴까 의심이 된다면 다음 사례를 들여다보자.

지난 9월29일 일요일. 삼성 라이온즈의 올 시즌 마지막 경기가 펼쳐졌다. 결과는 0대7 패배. 올 시즌을 끝으로 김한수 감독의 임기가 끝났고, 삼성 라이온즈는 기다렸다는 듯 9월30일 새 감독을 발표했다. 팬들은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치며 새 감독을 반대했다. 새 감독은 전력분석원 출신의 허삼영이었다.

1991년 삼성 고졸 연고 구단 자유계약 선수로 입단해 5년간 현역으로 뛰었고, 1군 통산 성적은 단 4경기, 2⅓이닝, 평균자책점 15.43을 기록. 강속구 투수로 주목받았지만 허리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마쳤다. 하지만 성실함을 인정받아 1996년 훈련지원 요원으로 라이온즈에 입사한 뒤 1998년부터 전력분석 업무를 담당하며 한국프로야구에서 손꼽는 전력분석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20년간 전력분석 업무만 담당해온 전력분석원에게 새로운 감독 자리를 내줬다.

감독으로는 보통 김응용, 김인식, 김성근, 김경문, 류중일 등 우승 감독을 떠올린다. 또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이만수, 선동열, 이승엽, 양준혁 등 스타플레이어 출신 레전드의 이름들을 거론한다. ‘왕조’를 만들어서 3∼4년간 최정상의 자리를 지켰던 감독들과 비교해보면 이번 삼성 라이온즈의 새로운 감독 임명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코치 경험도 없는 새내기 감독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프로야구 팬들에게는 감독이라는 자리에 앉는 그의 이름이 너무나도 낯설 것이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시장의 변화, 야구와 스포츠계의 변화를 제대로 읽었다. 삼성 라이온즈가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스포츠팀의 성적을 좌우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팀을 꾸리고 운영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그리고 1군 감독은 1군 자원들을 활용해 성적을 내는 매니저의 역할이 중요해졌으며, 타자는 타격 코치가, 투수는 투수 코치의 전문 영역이 됐다. 피지컬 트레이닝부터 각종 훈련 역시 각 분야 트레이닝 코치가 담당한다. 구단마다 이처럼 보직의 전문성을 보장하고 있는 이유는 보직 담당자들이 관련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데이터 분석이 중심에 놓이면 이름값이 떨어져도, 심지어 코치 경험이 없어도 감독을 할 수 있다. 사실 얼마 전부터 1군 감독은 투수와 타자들의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 적재적소에 선수들을 배치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가장 핵심이 됐다. 오랜 경험에 의한 ‘감’이나 ‘촉’ 혹은 ‘고집’을 활용하는 전통적 의미의 ‘명장’보다 데이터 활용과 분석을 잘하는 사람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삼성라이온즈뿐 아니라 최근 몇몇 한국프로야구팀은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읽고 적절한 인사를 자리에 앉혔다. ‘스펙’에 따라 결정을 내린 게 아니라 오로지 역할에 적합한 인물을 선정했다. 그 시작은 2017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였다. 신임 감독으로 장정석을 임명했다. 선수 출신이지만 코치 경험조차 없는 인사였기에 많은 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단이 그에게 준 역할은 말 그대로 1군 팀 매니저에 가까웠다. 감독이 전권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타격 코치, 투수 코치, 훈련 코치가 각자의 역할을 하며, 이를 한데 모아 잘 운용하는 역할인 것이다.

장정석 감독2 은 부임 첫해인 2017시즌 7위로, 두 번째 시즌에는 4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올 시즌에는 성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3위로 시즌을 마쳤다. 키움 히어로즈의 세부 성적을 확인하면 더욱 놀라운 결과를 알 수 있다. 2017년 팀 출루율과 장타율은 각각 0.357, 0.437을 기록했고, 2018년은 0.355, 0.448을 기록했다. 2019년엔 최근 3년간 가장 낮은 0.354, 0.414를 기록했지만 팀 성적은 3위로 가장 높았다. (표 1)



모든 결과를 숫자로 판단할 수 없지만 기록들을 봤을 때 2019년 키움 히어로즈는 효율적인 야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심에 전력분석원 출신인 장정석 감독이 있다. 장 감독은 올해 2번째 가을야구를 맞이했다. 첫 가을야구를 경험한 지난해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IA 타이거즈,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를 꺾으며 승승장구했으나 SK 와이번스와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승3패로 한국 시리즈 진출이 좌절됐다. 1년을 기다린 그는 첫 가을을 거울삼아 2번째 가을을 준비했다. 장 감독은 올해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지난해는 정해진 틀을 깨지 못해 엔트리에서 활용하지 못한 선수들도 있었다. 이번 정규시즌을 치르면서 전력분석팀이 준 데이터의 확률이 맞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올가을은 데이터를 보고 결정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장 감독 말대로 키움 히어로즈는 올 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여러 결정적 장면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고 플레이를 진행했다. 브리검이 5⅓이닝 동안 91구를 던지면서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6회 말 1사 1루 최정 타석을 앞두고 투수를 조상우로 바꿨다. 뒤를 생각했다면 불펜 첫 번째 투수로 쓰기는 아까운 교체였다. 장 감독은 “브리검은 데이터상으로 타순이 3바퀴째 돌 때 피OPS3 나 피안타율이 눈에 띄게 올라간다”며 “위기가 오면 교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규시즌이면 교체를 안 했겠지만 플레이오프니까 일찍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득점하지 못하고 있어서 실점하면 진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조상우는 가장 강한 카드라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데이터 기반으로 게임을 준비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현재 키움은 SK 와이번스를 꺾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이렇듯 데이터를 분석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팀의 승리 확률은 높아질 수 있다.


첨단 기술을 통한 데이터 측정: 트랙맨 시스템

2018년 시즌을 앞둔 어느 날,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프로야구 구단 최초로 ‘트랙맨(Trackman) 시스템’을 도입했다. 트랙맨 시스템이란 ‘레이더 활용 추적 시스템’으로 투수에게는 공의 분당 회전수, 상하좌우 릴리스 포인트(공을 놓는 위치), 익스텐션(투수판에서 공을 끌고 나와 던지는 손끝까지의 거리) 등을 알려준다. 타자에게는 타격 시 타구 속도, 발사각도 등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미 보편화된 시스템이며, 미국 마이너리그 경기장에도 설치돼 있다. 한국에서는 삼성 라이온즈를 필두로,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 등도 2018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이 도입된 배경에는 데이터의 중요성 부각과 함께 미국 메이저리그의 성공 사례들이 있다.

2011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맷 홀리데이(Matt Holliday)라는 타자가 있었다. 당시 홀리데이는 전형적인 ‘슬로 스타터’였기에 전반기에는 늘 부진했다. 세인트루이스 구단은 트랙맨 데이터를 통해 홀리데이를 연구했다. 데이터로 보니 전반기와 후반기 발사각도와 발사각도에 따른 타구 속도 차이가 크게 났다. 이를 알아차린 홀리데이는 전반기에도 후반기와 흡사한 스윙을 했고 이후 전반기에도 준수한 성적을 내는 선수가 됐다. 빅리그에서 15년을 활약하고 있는 홀리데이는 통산 타율 0.299 316홈런을 기록 중이다. 하락세로 여겨지는 운동선수 나이 만 30세였던 2011년부터 2018년까지 8년 동안 136홈런을 더했다.

또한, 한 번도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던 땅볼 타자 욘더 알론소(Yonder Alonso)는 트랙맨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생애 첫 28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타자로 성장하기도 했다. (표 2)



트랙맨 데이터의 도움을 크게 받은 투수 사례로 캘리포니아 연고 지역에서 활약하던 한 선수가 있다. 그는 수술과 재활 후 구속과 제구를 모두 되찾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난타를 당했다. 트랙맨 데이터로 보니 공의 회전수가 문제였다. 예전에 회전수가 좋았을 때의 데이터를 제공했고 당시의 공을 던지는 메커니즘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통해 수술 전의 기량을 회복했다. 또 LA 다저스의 리치 힐(Rich Hill)은 투수의 구속보다는 공의 회전이 중요하다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다른 투수들보다 회전수 높은 커브를 자신의 결정구로 구사해 삼진 비율이 몰라보게 증가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대다수 팀이 1군 평가와 2군 육성에 적극적으로 트랙맨을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삼성은 심창민과 최충연 등이 트랙맨에서 집계된 자신의 기록을 참고하며 기량 향상에 큰 도움을 받았다. 이후 삼성은 트랙맨 기록을 투수 육성 및 평가에 중요 지표로 삼았고 트랙맨 데이터 전문 인력까지 고용했다. 외국인 선수 영입에도 트랙맨 데이터를 참고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2018년 외국인 투수 저스틴 헤일리와 덱 맥과이어의 영입을 발표하며 트랙맨 데이터를 첨부한 게 바로 그 예다. 삼성은 “헤일리의 포심패스트볼 기준 릴리스 높이(2.03m)와 익스텐션(2.06m)은 KBO리그에 적용될 경우 최고 수준이라는 자체 평가를 받았다”며 ”헤일리의 공은 상하 무브먼트가 좋고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강조했다. 맥과이어를 두고는 “릴리스 높이와 익스텐션은 리그 평균 수준이지만 포심패스트볼 회전수 2350rpm, 슬라이더 2625rpm, 커브 2652rpm 등 전체적으로 공의 회전수가 뛰어나다”고 밝혔다. 이제는 “공 끝이 좋다” “2층 높이에서 공이 떨어진다”와 같은 추상적인 판단을 배제한 체 데이터로 분석하고 그 결과로 보여주는 시대가 됐다.

트랙맨 데이터는 릴리스포인트 위치부터 구속, 회전수(회전속도), 회전축, 볼 변화량 등이 있으며 배팅과 관련된 데이터로는 타구 속도, 타구각, 비거리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하게 수집할 수 있으며 그 항목 수는 약 40여 가지 정도 된다. 이 데이터를 잘 활용한다면 각 구단에서는 선수 육성뿐만 아니라 팀 전력 강화, 전략 수립, 부상 방지도 가능하다.

데이터 분석과 활용은 이처럼 야구에서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데이터를 활용할지 말지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야구에서 데이터는 전통적인 훈련, 스카우트, 전력 분석처럼 야구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통계 모델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를 위해 선수를 스카우트하고, 현장과 프런트의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것은 이제 모든 프로구단이 당연히 해야 할 일상적이고도 주요한 업무다. 팀 내부에 쌓여 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해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삼성 라이온즈 내부에서 전력분석원을 하며 모든 데이터를 활용하고 분석했던 허삼영이 감독이 되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결정에 대해서 필자가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다.



현대 스포츠와 지금의 야구: 데이터, 데이터, 그리고 데이터

2015년 ‘하드볼타임스’ 필진 빌 페티(Bill Petti)는 그의 칼럼 ‘구단들은 어떻게 분석을 최대한 활용하는가’에서 “10년 전까지만 해도 손에 꼽을 숫자의 팀만이 데이터 분석에 관심을 뒀다. 이제는 사실상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 프런트가 경쟁 구단보다 우위를 누리기 위해, 혹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데이터 분석 기법을 연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라고 단언했다. 이 분야에서 앞서나간 팀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시장의 비효율을 알아채고 이용해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반면 여기서 뒤처진 팀들은 비합리적인 투자나 영입으로 엉뚱한 곳에 돈을 쓴 결과로 경쟁에서 밀려났다. 최근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 시카고 컵스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분석 파트를 운영하는 구단이다. 한 예로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에는 데이터 분석가만 20명이 있으며, 휴스턴 애스트로스 역시 15명을 보유하고 있다.

서두에서부터 언급했듯 한국프로야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올 시즌 순위표를 보면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일찌감치 팀을 꾸린 구단들이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데이터 파트가 아예 없거나 역량이 떨어지는 팀들은 하위권으로 추락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뛰어난 데이터 분석 역량을 보유한 구단은 SK 와이번스다. 선수 영입부터 훈련까지 구단 운영의 모든 분야에 데이터를 활용하며, 분석 파트의 능력도 뛰어나다. 키움 히어로즈 역시 김치현 단장이 국제전략팀장 시절부터 기반을 닦아 놓은 분석 역량을 토대로 지금의 성과를 만들고 있다. 팀 창단 때부터 데이터 중심 조직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던 NC 다이노스는 ‘비선(수)출(신)’ 데이터 팀장에게 스카우트 역할까지 맡기는 파격을 시도했다.

아직 데이터 분석 파트가 없는 팀들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올 정규 시즌이 끝난 스토브리그를 이끌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는 신임 단장으로 국내 프로야구 경험이 없는 시카고 컵스 스카우터 출신 성민규를 임명했다. 그는 데이터 이해에 뛰어난 감독과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2군 육성에 주력하고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팀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성 단장 말대로 되기 위해서는 우선 데이터에 대한 분석 능력과 롯데만의 팀 철학이 있어야 한다. 또한 단장에 뒤이어 임명돼야 할 감독의 캐릭터는 분명하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이거나 우승 경험 조건이 중요한 것이 아닌 코치들과 화합하고, 데이터 분석에 대한 이해와 실행 능력이 있는 운영 책임자여야 한다. 코치 경험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고, 이름값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가 확보한 인력과 데이터 안에서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사람이면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성 단장이 데이터 전문가이니 함께 데이터에 대한 이해를 같이할 사람이면 된다. 성민규 단장을 선임한 롯데 자이언츠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 단장은 취임 기자간담회 당시 “한국에서 흔히 데이터 팀이라 부르는 R&D(Research and Development) 팀의 역량이 중요하다”며 구단의 데이터 분석 역량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구단 프런트의 다른 파트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유독 R&D 파트만은 콕 집어 강조했다. 그는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서 12년간 일하면서 데이터 분석이 구단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지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테오 엡스타인(Theo Epstein) 사장 부임 전까지 컵스는 100년 넘게 우승을 하지 못하고 하위권을 맴도는 구단이었다. 그러나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일명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린 테오 엡스타인 사장이 2011년 시카고 컵스에 부임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엡스타인은 R&D 파트 강화에 역점을 두고 데이터 분석에 대한 채용을 늘리고 인프라를 확충했다. 엡스타인 체제에서 선수 스카우트부터 필드 위 전략까지 모든 영역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팀을 운영하며, 전통적인 세이버 매트릭스 능력치는 물론 첨단 3D 모션 픽처 기술까지 도입해 선수의 기량을 데이터화하고 활용했다. 이런 노력이 마침내 108년간 이어진 ‘염소의 저주’를 깨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국의 통계 전문 매체 ‘파이브서티에이트’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에서 2009년 기준 데이터 분석 인력을 한 명이라도 보유했던 팀은 그렇지 않은 팀보다 2012∼2014년 사이 한 시즌당 7승의 추가 승수를 거뒀다. 또 다른 구단보다 앞서 데이터 분석 인력을 보유한 구단들이 해마다 2승 이상의 효과를 꾸준히 거뒀다는 분석 결과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데이터 분석 역량 강화는 대형 FA(프리에이전트) 영입을 뛰어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데이터 분석가들의 인건비가 선수의 연봉보다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이들이 1년에 최소 2승만 추가로 가져다주더라도 FA 영입에 투자해서 2승을 얻는 비용보다 30배는 효율적이란 설명이다. 이렇듯 데이터 분석은 조직에 성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데이터를 통해 선수의 숨겨진 가치를 알게 되고, 더욱 효율적인 선수 영입을 할 수 있게 된다. 의사결정자들이 시장가 50억 원 이하 외야수에게 80억 원을 주고 영입하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를 결과로 연결하려면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보다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핵심이다.

빅데이터는 현재 팀의 역량을 평가하고, 미래 전력을 구축하고, 앞으로의 시장과 리그 판도를 예측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 필드에서 라인업을 짜고 수비 시프트를 펼치는 데도, 한 번도 맞대결한 적이 없는 투수와 타자의 상대 결과를 예측하고 대응책을 찾는 것도 가능하다. 부상을 최소화하고 효율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짜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데이터는 야구단의 모든 영역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데이터 분석이 곧 ‘마법의 만능 치트키’는 아니다. 빌 페티는 “데이터 자체로는 경기력을 개선할 수 없다. 데이터를 단순한 통찰에서 변화의 시작점으로 만들기 위해선 야구단이 많은 장벽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롯데 자이언츠처럼 데이터 분석 경쟁에서 ‘퍼스트 무버’들의 뒤를 쫓아야 하는 ‘패스트 팔로워’일 경우엔 장애물이 더 많다.


데이터 분석 시스템 도입의 장애물과 기업에 주는 시사점

데이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부분의 구단이 시스템 도입에 중점을 둔다. 그동안 높은 가격 문제로 구단이 도입을 꺼렸던 트랙맨만 해도 리그 9개 구단이 활용 중이다. 그러나 데이터 전문가는 여전히 부족하다. A 구단 관계자는 “각 구단이 데이터 자료를 받아 보고 있지만 이를 활용하고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며 “지방 구단은 관련 전문가를 영입하기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필자가 확인해 본 결과, 데이터를 분석하는 전문가가 많은 구단의 경우는 2명 정도다. 1명이 모든 업무를 전담하는 경우도 있다. 시스템 도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전문가가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 들어 데이터 팀을 꾸린 한 구단 관계자는 “구단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갖춘 인재는 야구단만이 아니라 대기업, 테크 기업에서도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이다. 정말 야구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야구단 일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 특히 지방 구단은 사람 구하기가 더 어렵다”고 털어놨다.

어렵게 우수한 인력을 확보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보수적인 기존 야구단 조직을 데이터 중심 조직으로 바꾸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R&D 파트의 역량이 뛰어나도 현장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의사결정권자들이 활용하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 데이터 기반으로 돌아가는 팀이 되려면 현장 지도자들부터 새로운 정보와 접근법에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변화는 눈여겨볼 만하다. 성민규 롯데 자이언츠 단장은 취임 기자간담회 당시 “기록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기록을 우리 팀이 이기는 데 맞게끔 번역하는 것, 야구인의 시각으로 잘 순화해서 전달하는 것”이라며 현장의 중요성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렇듯 내부의 데이터를 확인하고 분석했던 사람들은 조직 내부에서 퍼스트 무버가 돼 회사의 강점과 약점 파악을 통해 조직이 더욱 탄탄해질 수 있는 전략 설정과 방향 제시가 가능하다. 앞서도 설명했듯 확실히 삼성 라이온즈 허삼영 감독과 성 단장은 데이터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빌 페티는 ‘구단들은 어떻게 분석을 최대한 활용하는가’에서 데이터 중심 조직이 갖춰야 할 4가지 기본 사항을 제시한다. ‘구단’을 ‘기업’으로 바꿔도 그대로 적용될 만한 얘기다.

첫째, 데이터 자체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기에 데이터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조직에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데이터 분석 전문가가 있어야 실패를 최소화하고 데이터가 제시하는 행동과 방향을 읽어낼 수 있다.

둘째, 올바른 데이터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데이터 중심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인프라가 먼저 구축돼야 한다. 올바른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활용 가능한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쉽게 수집할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셋째, 데이터 중심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통해 측정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어떤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삼성 라이온즈와 키움 히어로즈는 타자와 투수의 핵심 지표들을 설정하고 그것을 통해 선수를 분석하고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외국인 선수 영입과 경기 전략을 세우는 데 활용했다.

넷째, 데이터를 믿는 문화가 바탕에 깔려야 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조직문화에 관한 것이며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 전략에 활용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나온 것들을 믿고, 조직 구성원들이 함께 이해하고 합의한 내용대로 전략에 활용해야 한다.

어떠한가? 지금까지 스포츠, 야구 얘기를 해왔지만 결론은 기업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데이터 중심의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현재의 기업들은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데이터의 시대에서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지금 시대의 조직에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이제 그들이 리더가 돼야 한다는 것을 스포츠 사례로 확인했다. 시스템 구축과 데이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 그리고 데이터를 통해 알게 된 것들을 믿고 활용하는 것은 조직 내 데이터 전문가들이, 그리고 리더들이 꼭 실천해야 할 과제가 됐다.


필자소개 장원석 aSSIST 빅데이터연구소 책임연구원 wsjang@assist.ac.kr
필자는 스위스 로잔경영대학원에서 빅데이터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홍기획에서 디지털 광고기획, 마케팅 등의 업무를 거치면서 데이터 분석에 대한 중요성을 배웠다. 문화방송에서 데이터 분석을 통한 신사업 개발 업무를 수행했으며 2018년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MIT Sports Conference에 참가해 스포츠 데이터 분석 트렌드를 배웠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서 스포츠뿐만 아니라 금융, 유통 업계의 데이터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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