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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주의 미술작품의 경영학적 해석: 다니엘 뷔렌의 동아미디어센터 외관아트 전시

미술관 밖으로 나온 미술의 ‘사회공헌’

신형덕 | 269호 (2019년 3월 Issue 2)


개념주의 미술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르셀 뒤샹이 1917년에 출품한 ‘샘’을 접하는 관객은 당황하게 마련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변기를 눕혀 놓고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개념주의 미술의 대표적 작가로 인정받는 다니엘 뷔렌의 작품이 광화문 거리 한가운데에 있는 동아미디어센터 건물 외관에 전시됐다. 다행히 뒤샹의 작품만큼 난해하지는 않다. 다니엘 뷔렌의 예전 작품을 보면 건축물의 외관에 풍경과 어우러지는 규칙적인 줄무늬 패턴으로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현재 광화문에 가면 각층이 색색으로 변한 동아미디어센터 건물을 만나볼 수 있다. 1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뷔렌은 왜 개념주의 미술의 대표적 작가라고 평가될까. 뷔렌은 왜 미술관을 벗어난 공공장소에 이 같은 미술품을 설치했을까. 뷔렌의 전시가 경영학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개념주의 미술
개념주의 미술은 미술작품이 형식과 개념으로 구분된다는 선입관을 극복하고 개념만으로도 미술작품이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미술 사조다. 사실 개념주의 미술작품을 대하는 미술의 문외한들은 매우 당혹스러울 수 있다. 작가가 작품이라고 ‘선택’한 물건(뒤샹의 경우 변기)이 그 자체로 초고가의 작품이 되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속물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물건의 원래 가격을 따져볼 때 왠지 사기를 당하는 느낌까지 갖게 된다.

최근에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뱅크시라는 작가의 작품이 지난해 10월에 소더비 경매장에서 15억 원에 낙찰된 직후, 액자에 설치된 장치에 의해 절반 정도 분쇄됐던 사건이다. 무려 15억 원에 달한 작품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 해프닝은 미리 계획된 것으로 낙찰자도 작품의 분쇄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뱅크시는 반전, 반자본주의, 반권위주의 등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벽에 그라피티로 그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이 분쇄 퍼포먼스를 통해 미술품을 소유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 했다고 한다.

뒤샹, 뷔렌, 뱅크시 같은 작가들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미술작품을 제시할 때 우리는 이전에 친숙했던 물건으로부터 매우 낯선 느낌을 받게 한다. 뷔렌이 사용했던 방식은 일정한 간격의 줄무늬 패턴의 반복이었는데 다양한 공간에 전시된 줄무늬 패턴은 해당 공간을 매우 낯설게 만들었다. 이러한 방식은 미술관에만 한정됐던 기존의 전시 개념을 극복하는 제도비판 미술 분야를 열었고, 뷔렌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미술관 밖으로 나오게 된다.



공공 미술
이렇듯 미술작품은 종종 거리 등 공공장소에 전시된다. 많은 경우 국가나 지자체에서 주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개인이나 또는 민간단체가 주도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가끔 공공의 이익과 충돌하는 ‘공공’ 미술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나치게 표현한다는 이유로, 또는 지나치게 시선을 끌어서 주변과 조화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미술작품이 철거되기도 한다.

다니엘 뷔렌이 공공장소에서 전시를 하게 된 이유는 미술이 미술관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주변 환경과 조화되고 관람객의 일상과 어우러지는 장소성이 중요했던 것이다. 심지어 뷔렌은 미술관을 ‘부르주아의 손에 들려 있는 위험한 무기’라고까지 비판했다고 한다. 미술관을 벗어난 장소에서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미술관 안에서 느끼는 감정과 사뭇 다를 것이다. 게다가 공공 미술은 관람객들의 삶의 현장 안에 존재한다. 공공 미술의 전시 비용은 관람객 대신 전시를 주관하는 기관이 지불한다.

이런 의미에서 공공 미술은 마치 기업이 수행하는 사회공헌 활동과 유사하다. 사회공헌 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은 일반 시민이 향유하는 효익을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 사회공헌 활동은 병원이나 장학사업, 복지시설 운영 등을 통해 다양하게 이뤄지며 이중 문화예술지원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도 존재한다. 중세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을 생각해 보자. 미켈란젤로를 후원한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 시대에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는 피렌체의 예술적 정체성을 마련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은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피렌체를 방문한다. 이 예술적 정체성은 오늘날 경영학에서 가장 중시되는 ‘융합적 창의성’의 근원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창의성은 개인의 유전적 성향이나 지식, 조직문화 등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지만 생활 또는 근무 공간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건축사무소, 게임회사, 컨설팅 기업 등 창의성을 중시하는 많은 기업은 이미 파격적인 근무 환경을 통해 개인의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것을 확장하면 우리가 사는 동네, 도시, 국가의 예술적 아우라가 그곳에 사는 개인의 창의성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뉴욕, 파리, 런던, 팔로알토는 단지 경제적 풍요함만이 아니라 지식기반 도시로 명성이 높고, 이 지역에 몰리는 고급 인력은 현지의 문화예술적 아우라에 매혹된다. 현지의 기업들은 각종 문화시설이나 문화행사를 통해 이러한 문화예술적 아우라에 공헌함으로써 사회에 공헌한다. 또한 이러한 예술적 아우라는 장소의 격을 높여 해당 지역 주민의 자긍심을 올린다. 기업은 삶의 현장에 문화예술을 심고, 대중은 해당 기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최고문화예술경영자
이러한 의미에서 기업은 CFO, CMO, COO 등과 함께 CAO(Chief Arts and Cultural Officer, 최고문화예술경영자)를 둬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해 왔다.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로 이익을 많이 내거나 주가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속에서 경영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미 존 엘킹턴이 제시한 트리플 보텀라인(triple bottomline) 개념은 경제적 성과 이외에도 사회적, 환경적 성과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마이클 포터가 제시한 공유가치 창출 개념은 기업과 사회가 동시에 성과를 거두는 모델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즉, 주주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힘들다는 것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불확실성 관리에 극도로 예민한 최근 경영학계의 화두인 것 같다.

그렇다면 기업은 사회와의 공존을 어떤 방식으로 추구해야 하는가? 앞에서 언급한 병원이나 장학사업, 복지시설 등을 통할 수도 있지만 대중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중의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높여주는 방식이 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여기에서 전시(시각), 공연(시각과 청각), 음식(미각) 등 오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화예술 분야 지원이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다. 또한 문화예술 분야 사회공헌 활동은 기업의 본업과도 연계돼 제품 또는 서비스의 컨셉에 녹아 들어갈 수 있다.

사실 이와 유사한 개념은 그랜트 맥크래켄이 2011년에 저술한 『최고문화경영자 CCO(Chief Cultural Officer)』에서 소개됐다. 이 책에서 맥크래켄은 스포츠의 개념을 경쟁에서 술래잡기 놀이로 바꾼 나이키 광고를 탄생시킨 댄 위든, 단순하고 감정적인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I♡New York’ 캠페인을 탄생시킨 밀턴 글레이저 등을 대표적인 CCO의 예로 소개했다(비록 이 명칭을 정식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학자들은 기업 내 조직문화를 전략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직책으로 CCO를 제안하기도 한다.

필자가 제안하는 최고문화예술경영자는 기업의 성공과 직결된 사회의 문화예술적 흐름을 이해하고 기업 내부의 문화도 관리하는 한편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공헌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으로서 문화예술을 활용하는 고위급 임원이다. 국내 기관으로는 여의도 불꽃축제를 통해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한화그룹(舊 한국화약)과 창작뮤지컬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국민의 문화 향유를 돕는 CJ문화재단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정식으로 CAO의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과 기업 본연의 이익 창출 활동은 문화예술적 접근법을 통해 통합적으로 이뤄질 수 있으며, 이러한 통합 과정을 총괄하는 임원으로서 최고문화예술경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영과 문화예술을 모두 이해하는 훌륭한 최고문화예술경영자가 다수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필자소개 신형덕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장 shinhd@hongik.ac.kr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전략경영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버지니아주 조지메이슨대에서 3년간 가르친 후 2006년 홍익대 경영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된 분야는 전략경영, 국제경영, 창업, 문화예술경영이다. 2017∼2018년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장을 지냈고 현재 관련 학술지인 문화예술경영학연구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올해 3월에는 홍익대에 신설된 문화예술경영대학원의 초대 원장에 취임했다. 저서로는 『기업 윤리와 사회적 책임』 『잘되는 기업은 무엇이 다를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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