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트렌드

스타트업 생태계를 깨우는 컴퍼니빌더

247호 (2018년 4월 Issue 2)

지난 회에서는 대기업과 제휴해 스타트업을 키우는 컴퍼니빌더 모델을 소개했다.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에서 스타트업의 성장이 제한되는 것을 보완하고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윈윈’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컴퍼니빌더라는 사업모델이 등장한 지는 약 20년이 지났다. 그런데 컴퍼니빌더가 초기 스타트업을 대기업 등 산업자본과 제휴시켜 키우는 모델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흐름이다. 왜 과거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벤처캐피털이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와 비교했을 때,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은 스타트업의 미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으며 자유로운 사업 모델을 개발하는 데 종종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거래가 그렇겠지만 인수 경쟁이 뜨거울수록 스타트업의 가치도 오르는 법이다. 특정 대기업이 초기 투자로 지분에 대한 우선매수권(RoFR, Right of First Refusal)을 보유한 상태라면 추가 투자자에게는 매력도가 떨어진다. 더구나 지분을 가진 대기업의 입김으로 사업모델 자체가 그 대기업의 목적 달성 외에 별 가치가 없는 방향으로 바뀌면 스타트업의 가치는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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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인 컴퍼니빌더인 패스트트랙아시아의 박지웅 대표도 국내에서는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의 제휴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는다. 박 대표는 “대기업은 임직원의 잦은 인사이동으로 업무 연속성이 끊기고, 스타트업에 필요한 경험과 지식이 전체 계열사에 흩어져 있다. 일부 현업부서원으로 팀을 꾸려도 실제 스타트업에 주는 가치가 미미하다”라고 대답했다. 대기업과의 제휴가 스타트업의 본원적 가치를 증가시키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글에서는 대기업과 제휴하지 않는 오리지널 컴퍼니빌더의 특성을 살펴보자. 컴퍼니빌더는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조력자다. 창업자가 잘 모르는 홍보, 인사, 회계 등의 업무를 대신 챙겨주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자본을 바탕으로 투자 유치도 돕는다. 업계 베테랑들로 구성된 전문 인력들이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에서 스타트업의 사업모델 검증, 피버팅(pivoting, 사업 방향을 전환하는 것)까지 도와준다. 만약 컴퍼니빌더 회사 내부에 이 업무를 수행할 적합한 인력이 없다면 외부 전문가를 끌어와서까지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최초의 컴퍼니빌더는 미국의 아이디어랩(Idealab)으로 알려졌다. 1996년 이 회사를 세운 빌 그로스(Bill Gross)는 인터넷 검색 서비스인 GoTo.com을 창업해 야후에 넘긴 창업자 출신이다. 이후에도 창업에 여러 번 도전했던 그로스는 창업가들을 돕는 전문 회사를 세웠다. 그는 20년 동안 125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만들었고 그중 35개를 상장 또는 매각했다.

그로스는 회사 이름을 아이디어랩이라 지을 정도로 창업 아이디어를 높게 평가했다. IT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에는 아이디어만으로도 상당히 차별화된 서비스와 제품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모바일 산업이 고도화한 지금은 아이디어랩이 출범했던 1990년대와 다르다. 지금의 컴퍼니빌더에는 아이디어 개발부터 창업팀 구성, 사업모델 구체화 및 운영자금 투입, 분사 후 인수합병 또는 기업 상장 과정을 통해 지주회사로 남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

독일의 컴퍼니빌더인 로켓인터넷(Rocket Internet)은 컴퍼니빌더의 새로운 역할을 정립했다. 국내 음식 주문 배달 서비스 ‘요기요’의 최대주주인 독일 회사 딜리버리히어로(Delivery Hero)도 로켓인터넷의 작품이다. 유럽 전역에서 맹활약 중인 딜리버리히어로는 2017년 6월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2007년 설립된 로켓인터넷은 미국에서 성공한 스타트업 모델을 베껴 다른 나라에서 실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언론에도 ‘카피캣’, 모방벤처로 소개된 적 있는데 그 신속한 행보 덕분에 100여 개 회사를 만들어 매각하고 상장시키면서 회사 가치가 5조5000억 원대로 올라갔다. 회사 측에 따르면 그동안 매각하고 상장시킨 회사의 가치는 총 20조 원에 달한다. 로켓인터넷에는 300여 명이 근무하지만 배출한 회사 임직원 숫자를 모두 합하면 3만 명 정도다.

모든 컴퍼니빌더가 로켓인터넷처럼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컴퍼니빌더인 어크리티브(ACCRETIVE)는 양보다 질에 집중한다. 1999년 개소 시점부터 ‘위대한 회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현재 육성 중인 회사는 다섯 개는 기업상장을 했거나 다른 회사에 인수됐다. 현재 육성하고 있는 스타트업은 여덟 개 정도로 소수 정예지만 모두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조금 다른 컴퍼니빌더도 있다. 뉴욕의 베타워크스(BetaWorks)는 언뜻 보면 연회비 2400달러를 받고 작업 공간을 빌려주는 회원제 사무실 공유 서비스 업체다. 그러나 이들이 유명한 까닭은 초기 스타트업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핵심 역량 덕분이다. 이들은 창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도움과 자금, 때로는 영업까지 도와준다.

웹사이트의 주소를 짧게 줄여주는 bit.ly 서비스가 그런 지원 활동의 대표적 사례다. 이 서비스는 원래 베타워크스가 지원했던 모바일 지도 스타트업을 위해 만들었다. 이 스타트업은 사용자가 앱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 생기는 URL(인터넷 주소)이 너무 길다는 점이 고민이었다. 베타워크스 개발자들은 이 스타트업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URL을 짧게 줄여주는 서비스를 직접 개발해 제공했다. 그런데 예상외의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bit.ly는 베타워크스의 별도 사업으로 확대됐다.

특정 산업이나 지역에 특화된 컴퍼니빌더도 있다. 로켓인터넷의 성공에 자극받아 독일 베를린에서 2014년에 설립한 핀리프(FinLeap)는 핀테크 분야에 특화됐다. 현재까지 핀테크 회사 14곳을 출범시켰다. 스타터스쿼드(StarterSquad)는 베타워크스의 네덜란드 버전을 지향한다. 사내에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를 두고 12개의 회사를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자본으로 서비스를 출시하거나 초기 창업자에게 투자한 뒤 자기 서비스처럼 키운다는 공통점이 있다.

패스트트랙아시아는 한국 컴퍼니빌더의 좋은 사례다. 벤처캐피털 심사역 출신인 박지웅 대표가 투자를 받아 2013년에 설립했다.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식자재 배송 업체 헬로네이처를 2016년 12월에 SK플래닛에 매각했다. 이듬해 9월에는 맛집 배달 플랫폼 푸드플라이도 딜리버리히어로에 팔았다.

컴퍼니빌더-스타트업 윈윈하려면

컴퍼니빌더와 스타트업의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위해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창업자가 대주주가 아니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불확실성은 컴퍼니빌딩 모델의 최대 약점이다. 한 기업의 대표라면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컴퍼니빌더라는 대주주가 있으니 창업자가 월급쟁이 사장처럼 눈치를 보게 된다. 헌신적으로 일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왠지 내 사업 같지 않고 남의 논에 물 대는 것 같은 인지부조화의 덫에도 빠질 수 있다. 창업자의 욕심이 크지 않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사업구조지만 욕심이 없는 창업자가 몇 년씩 지치지 않고 스타트업을 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자기모순의 숙명이 있다. 대주주인 컴퍼니빌더와 월급쟁이 사장인 창업자 사이에 갈등이 덜 생기려면 정직한 대화가 필수다.

컴퍼니빌더는 스타트업의 대주주로서 스타트업이 매각되는 시점까지 꼼꼼하게 관리해야 한다. 팀을 꾸리고 베타 서비스 개시까지 3개월, 그리고 6개월가량 더 지나면 서비스의 운영은 어느 정도 안정되기 마련이다. 서비스 개시 후 12∼18개월쯤 되면 숫자, 즉 정량적 지표가 나오니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이 투자금을 마케팅에 쓰면 매출이 오른다. 일반적으로 월 매출 1억 원 선을 넘기면 일단 위험 시기는 넘긴다. 이때 컴퍼니빌더 역할이 중요하다. 조직이 커지며 수면으로 떠오르는 인사관리(HR) 문제를 해결하는 것, 창업자의 성장을 위한 계획을 세워주는 것, 스타트업에 투자를 나선 투자자들의 이견을 조율해주는 것 등도 컴퍼니빌더의 몫이다.

스타트업이 성장 과정의 모든 숙제를 혼자 풀어내는 컴퍼니빌더의 존재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깨우는 신선한 자극이다. 성공한 창업자 출신들이 초기 액셀러레이터 시장을 만들었듯이 국내 컴퍼니빌더의 미래도 연쇄 창업자들이 얼마나 배출되느냐에 달려 있다. 스타트업과 몇 년 동안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일이라 젊고 총명한 창업 경험자가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성공 모델을 말할 때 미국 실리콘밸리 사례를 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감한 투자로 덩치를 키우는 실리콘밸리 모델은 미국이나 중국처럼 거대한 내수시장이 받쳐주지 않는 한 적용이 어렵다. 한국은 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다. 게다가 재벌이라는 거인들이 버티고 있으며 정부의 규제 그물도 촘촘하다. 한국에서는 실리콘밸리에서와 같은 ‘대박’을 꿈꾸는 것이 비현실적임을 인정하고 ‘중박’을 지향해야 한다. 또 사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창업 경험이 많고 자원이 풍부한 컴퍼니빌더에 도움을 청해보는 것도 좋다. 이미 성공한 사업가라면 후배 스타트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컴퍼니빌더 사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편집자주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주목할 만한 흐름과 변화, 그 주역들을 총 6회에 거쳐 소개합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 klee@startupall.kr

이기대 이사는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버팔로 캠퍼스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피치트리컨설팅, 드림서치 대표를 역임했고, IGAWorks에서 COO와 HR 담당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네이버 등 인터넷 선도기업들이 함께 만든 민관협력네트워크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9호 Boosting Creativity 2020년 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