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2.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4차 산업혁명의 기술에 도취한 세상 ‘인간 중심성’ 확고한 신념 없인 미래 없어

244호 (2018년 3월 Issue 1호)

Article at a Glance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 정신이 자본주의를 만들고, 이러한 근대 자본주의의 현대성(modernity)의 핵심은 ‘관료제’라는 주장을 전개했다. 베버가 남긴 수많은 저작에서 도출되는 개념과 이 책에서의 서술을 종합해보면 자본주의적 목적합리성과 관료제는 최고의 효율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우리 인류 자체를 스스로 가둬버리는 문제도 만들어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모두가 기술에 열광하고 새로운 도구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효율성과 성과에 즐거워할 때 막스 베버의 통찰과 경고, 조언을 새겨들어야 하는 이유다. 경영자들은 베버가 관료제 중심 현대 산업사회의 명암을 동시에 간파했듯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양면성을 동시에 보는 균형 잡힌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또 베버가 마르크스의 결정론적 관점을 극복했듯 자칫 지금의 경영자들이 빠질 수 있는 기술결정론의 함정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 역시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가 아닌 우리 인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거대한 변화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일과 직업의 세계뿐 아니라 조직경영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4차 산업혁명이 조직과 경영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고전을 추천하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독일의 위대한 사상가 막스 베버(Max Weber, 1864년 4월21일 ∼ 1920년 6월 14일)의 저술들을 선택할 것이다. 베버는 그가 살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산업사회의 도래에 결정적 역할을 한 현대적 조직의 등장 원인과 본질, 그리고 결과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으로 정확하게 예측했다. 현대적 조직의 전형적 형태인 ‘관료제(bureaucracy)’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비롯해 베버의 저술들은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경영학과 조직이론은 물론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행정학, 리더십, 법학, 역사학, 종교학, 사회철학 등에 폭넓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베버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기업과 같은 현대적 관료제 조직들에 의한 인류사회의 근본적 재구성을 단연 가장 깊이 있고 정확하게 설명하고 예측한 학자다. 베버는 칼 마르크스(Karl Marx)와 더불어 사회이론 분야에서 역대 최고의 거장으로 존경받는 대가인데 학자의 이름 뒤에 ‘∼주의자’라는 표현이 쓰이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뜻의 ‘막시스트(Marxist)’와 베버주의자를 일컫는 ‘베버리언(Weberian)’뿐이다.

베버는 인문사회 전 분야를 망라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베버의 현대적 조직과 경영, 그리고 경제에 대한 관찰과 이론은 3부작으로 편집된 『경제와 사회(Economy and Society)』에 가장 포괄적으로 제시돼 있고, 또한 『조직과 사회에 대한 이론(A Theory of Organization and Society)』에도 압축적으로 정리돼 있지만 19세기 중후반에 등장한 현대적 조직이 초래할 인류 사회의 근본적 대전환을 가장 압축적으로 예언한 것은 베버의 마지막 저술이자 유작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마지막 챕터일 것이다. 10여 쪽에 불과하지만 ‘강철 우리(iron cage)’나 ‘영혼 없는 전문가(specialists without spirit)’ 등 100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촌철살인의 충격을 주는 개념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마지막 챕터를 읽을 때마다 필자는 그의 깊은 통찰력에 전율을 느낀다.

115


현대 산업사회의 도래

베버는 현대 산업사회2 의 핵심 특성은 19세기 말경 출현한 현대적 조직이라는 새로운 개체에 의한 전체 사회의 근본적 재편이라고 봤다. 즉 베버는 ‘관료제(bureaucracy)’로 지칭되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들에 의한 전체 사회의 재조직화를 통해 전통사회와 구분되는 현대사회가 도래했다고 보고 그 원천과 본질, 작동 원리, 그리고 결과를 다각적이고 심층적으로 탐구했다. 조직을 현대사회의 핵심 구성단위로 보는 베버의 관점은 후대 학자들에게 계승돼 조직이론의 거장 퍼로우(Charles Perrow)는 현대 산업사회를 ‘조직들의 사회(society of organizations)’라 부르기도 했다. 즉 퍼로우는 베버가 관료제로 부른 현대적 조직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해 20세기 중반이 되면 사회의 대부분을 흡수해버리면서 현대 산업사회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베버가 규정하는 ‘현대(modern)사회’란 현대적 조직들에 의해 구조화되고 조직화되며 작동하는 사회를 말하며, ‘현대성(modernity)’이란 현대 조직들의 핵심 논리가 사회구성원들의 마인드셋을 지배하는 현상을 말한다. 베버가 정확하게 관찰했듯이 관료제는 기업뿐 아니라 비영리/공공 부문에까지 깊숙하고 폭넓게 확산돼 현대 산업사회의 본질을 규정했다. 본격적인 현대 조직이 출현한 것은 19세기 중후반이었는데 이때 등장한 이 새로운 사회 구성단위는 전대미문의 효율성과 생산성 증대를 촉발하면서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현대적 조직의 확산에 의한 현대 산업사회의 도래는 인류사를 전통사회와 현대사회로 구분하는 분기점이 됐다. 조직경영이론도 이때 탄생했는데 처음으로 조직에 학문적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가장 깊이 있게 탐구한 학자가 바로 베버다. 베버의 관료제의 등장과 확산, 그 결과 도래한 현대 산업사회에 대한 관찰과 설명은 그 후 사회이론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고, 특히 조직경영이론을 탄생시켰으며, 현재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많은 조직이론 패러다임들의 뿌리가 됐다.

현대적 조직의 탄생 배경과 핵심 특성

그렇다면 왜 19세기 중반에 현대적 조직이 탄생하게 됐을까? 베버는 관료제의 등장을 ‘범세계적인 합리화(worldwide rationalization)’ 물결의 결과로 봤는데, 핵심 원인은 그 당시 급속하게 성장하고 성숙하기 시작했던 시장경제의 확산이 합리성과 효율성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각자가 자율적으로 자신의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기 위해 서로 거래하고 경쟁하는 시장은 각 경제행위자에게 어떤 선택이 최대의 이익을 가져올지에 대해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계획하도록 요구하며, 또한 다양한 참여자들과 생산요소들을 효율성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시장경제의 확산은 사회 전반에서 비효율성과 비합리성을 점차 몰아내면서 전체 사회를 합리화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합리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 탄생했는데 베버는 이를 관료제라 불렀다.

그런데 베버는 마르크스가 유물론적 관점에서 모든 역사적 변화의 원동력을 경제적/물질적 조건인 하부구조에서 찾는 것을 비판하고 문화적 가치관의 역할을 동시에 강조했다. 그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제시된 베버의 독특한 이론이다. 베버는 역사적으로 여러 사회가 독특한 궤적을 거쳐 발전해온 배후에는 물질적 조건 못지않게 종교와 같은 문화적 가치관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데,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과정에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경제적 조건 이상의 큰 영향을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즉 칼뱅주의 개신교의 금욕주의와 근면성에 대한 강조,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에 대한 헌신, 내세에서의 구원을 현세에서의 축복으로 미리 알 수 있다는 입장과 연결돼 자본주의 시장경제 발전의 문화적 기반이 됐다고 강조한다. 경제적 하부구조 결정론을 믿던 마르크스와 달리 베버는 특정한 조직이나 경제 시스템의 발전은 단순히 경제나 물질적 조건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반드시 물질적 하부구조와 문화적 상부구조가 상호작용하면서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베버는 ‘합리성(rationality)’이나 ‘권위(authority)’ 같은 상부구조적 개념을 그의 관료제이론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DBR minibox Ⅰ: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어떻게 자본주의 발전을 가져왔는가’ 참고.)
DBR mini box I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어떻게 자본주의 발전을 가져왔는가

거의 모든 정치/경제/사회학자들과 경영학자들이 인용하는 막스 베버 불멸의 명저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베버가 가진 한 가지 의문에서 출발한다. ‘왜 같은 기독교인데도 불구하고 가톨릭이 아닌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인들이 많은 곳에서 자본주의가 융성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베버가 책 내에서도 언급하듯이 당시 이에 대한 일반적인 답변은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비현세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가톨릭 성직자들과 수도사들은 매우 금욕적 삶을 살지만, 개신교인들은 목사들마저도 사유재산을 갖고 결혼도 할 수 있기에 훨씬 세속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베버가 볼 때 이는 잘못된 분석이었다. 가톨릭의 상층부, 즉 신부와 수도사들은 현세로부터 분리돼 신만 보고 살지만, 대부분의 가톨릭 신도들은 그와 무관하게 현세를 즐기면서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버가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평범한 개신교 신자들이 마치 가톨릭의 수도승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금욕주의적이고 수도승 같은 삶을 사는 개신교인들의 윤리로부터 자본주의 정신이 탄생했다는 역설이 담긴 게 바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정신이 근대의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베버가 보기에 자본주의란 근대 서구 유럽에서 나타난 특별한 경제 체제를 뜻한다. 이는 단순히 물질을 추구하는 성향과는 다른 것이다. 탐욕 그 자체, 베버가 책에서 표현하는 ‘황금을 향한 끔찍한 갈망(cursed hunger for gold)’은 인류 역사상 늘 존재하던 것이었다. 베버가 말하는 근대(현대) 자본주의는 이와 완전히 다른 그 무엇으로, 종교적 윤리가 가미된 정신 세계이자 한 인간의 일상과 인생을 지배하는 ‘멘털리티’다. 이러한 독특한 자본주의 정신이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근대 자본주의의 핵심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동기로 인해 돈을 벌고 자본을 축적한다는 것이다. 베버는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을 형성하고 이렇게 형성된 자본주의 정신이 근대 자본주의를 만든다는 일종의 삼단논법을 제시한다.

루터의 소명(calling) 의식과 칼뱅주의의 예정설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개혁과 루터의 소명의식과 칼뱅 신학의 예정설에 대해 알아야 한다. 베버는 이 책에서 꽤 긴 분량을 할애해 두 종교개혁가이자 기독교 이론가들의 입장을 소개하고 있다. 우선 루터는 ‘소명’을 강조하는데, 이는 ‘직업’과 연결되는 개념이다. 루터가 말하는 소명은 신이 인간을 불러서 어느 위치(직업적 위치)에 가져다 놓은 것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적 직업(소명)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신의 재림과 구원을 기다리는 게 인간이 해야 할 일이었다. 루터는 이렇게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인간이 구원받는 이른바 ‘은총’은 언제든 취소될 수 있다고 봤는데, 쉽게 말해 죄를 많이 지으면 은총은 취소되고 이에 대해 회개하고 선행을 행하면 다시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칼뱅은 이런 논의에 극렬히 반대한다. 루터의 구원론은 마치 은행의 잔고와 같은 개념인데, 선행과 악행의 입출금으로 신의 구원을 설명하는 건 ‘신성모독’이라는 주장이다. 이건 인간의 신학이지 진정한 신학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등장하는 게 바로 ‘예정설’이다. 태초의 신이 맨 처음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 때 모든 것을 정해놨다는 것이다. 내가 행하는 현세에서의 선행과 악행은 구원과 무관하다는 뜻이다. 구원은 오직 신의 뜻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그래서 ‘구원은 은총’이라는 설명이다. 구원에서 제외된 인간은 아무리 자신이 선행을 해도 구원받을 수가 없는데 여기에서 억울해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없다. 마치 짐승이 ‘나는 왜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짐승으로 태어났느냐’고 항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 없는 항의라는 것이다.

예정설이 만들어낸 의도하지 않은 결과: 금욕주의의 탄생

예정설이 프로테스탄티즘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이미 구원 여부가 정해져 있다면 현세에서는 무조건 쾌락을 즐기며 선행 따위에 무관심해도 된다. 그게 합리적이다. 어차피 모든 게 이미 정해져 있기에 최대한 즐기는 게 이득인 셈이다. 그런데 중요한 요소 하나가 이 논리를 뒤틀어버린다. 바로 ‘공포’다. 독실한 개신교인들 입장에서는 ‘지옥’에 대한 공포가 ‘내가 구원받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절실하게 구하도록 만든다. 예정설이 만들어 낸 집단적 공포는 ‘간절함’을 낳고, 그 간절함이 신의 징표를 찾도록 만든다. 개신교인들은 ‘신이 의도를 갖고 이 세상을 만들고 개인을 보냈다면, 신이 만든 이 세상에서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면 간접적으로 신의 뜻을 추론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결론을 도출해버린다. 그리고 ‘내가 무엇인가를 잘한다면, 돈을 잘 벌거나 성공을 한다면 그것이 구원의 징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다. 그래서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번다. 베버가 보기에 자본주의 이전 전통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은 ‘수확’에 가까운 것이었다. 필요한 만큼을 얻으면 더 일할 필요가 없었다. 농민의 마지막 세대이기도 했던 초기 자본주의 노동자들이 의식주가 대충 해결되고 나면 너무도 당연하게 ‘결근’을 했던 건 바로 그 전통주의의 ‘멘털리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개신교인들은 ‘신의 은총’을 확인하기 위해 끝없이 일했다. 그리고 한발 더 나간다. 신의 은총의 징표로서 부가 축적되고 있는데, 이렇게 축적된 부를 쓰는 것 자체는 신의 징표를 낭비하는 행위가 된다. 낭비는 죄악이다. 시간 낭비 역시 마찬가지. 이렇게 초기 자본이 축적된다는 게 베버의 설명이다. 정리해보면, 개신교 윤리는 우선 성공을 향해, 돈을 벌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는 사람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축적된 부를 낭비할 수 없기에 부가 축적되는 상황을 만든다.

가벼운 코트(light cloak)와 철의 우리(iron cage)

베버의 모든 저작에 표현된 문장은 굉장히 설명적이고 딱딱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명쾌한 개념정의 이후 역사적 사례와 철학과 신학을 오가며 한 줄 한 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베버의 저작 중 이 책의 마지막 챕터 뒷부분은 거의 유일하게 ‘감정적’이다. 베버가 인류의 미래를 비관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정신과 자본주의 발전, 그 과정에서 근대성 혹은 현대성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관료제. 이것이 인류를 오히려 가두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그의 예감은 10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우리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기도 했다. 그는 종교적 윤리에 의해 시작된 부에 대한 열망과 축적이 처음에는 ‘가벼운 코트’처럼 언제나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윤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부에 대한 열망만이 남아 근대적 관료제와 함께 인류를 가둬버리는 상황이 곧 도래할 것이며, 이 ‘철의 우리’에서 인류는 영원히 탈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적었다.

그렇다면 베버가 현대적 조직의 전형(ideal type)으로 부르는 관료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관료제의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단어 자체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관료제(bureaucracy)’는 문서를 의미하는 ‘bureau’와 지배를 뜻하는 ‘cracy’가 결합된 단어다. 문서화는 공식화를 뜻한다. 즉 관료제는 공식화된 규칙과 절차가 지배하는 조직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관료제가 출현해서 확산되기 이전인 19세기 초까지 경제 활동은 어떻게 조직화됐을까? 베버는 관료제를 전통적 조직화방식인 ‘귀족제(aristocracy)’와 대비시킨다. 특권층을 뜻하는 ‘aristo’와 지배를 뜻하는 ‘cracy’가 결합된 귀족제는 말 그대로 왕이나 귀족, 소유주 등 소수의 상층부 특권계층이 지배하는 조직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전통적 귀족제가 왜 시장경제와 함께 급속히 붕괴되면서 관료제로 대체됐을까?

베버는 귀족제의 비합리성과 비효율성이 19세기 중반 급속하게 확산되고 성숙되던 시장경제의 합리성에 대한 요구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귀족제의 비합리성이 소수 특권층의 ‘임의성(discretion)’과 ‘패거리 인사(nepotism)’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 왕이나 귀족, 소유주 등 특권층이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합리적 사고나 객관적 조건에 상관없이 개인적 선호에 따라, 독단적으로 재량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임의성(discretion)이 가장 심각한 비합리성과 비효율성의 원인이었다는 게 베버의 지적이다. 이런 임의성에 의한 비합리성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 바로 특권층을 구성하는 인사에서 역량이나 자격 요건과 상관없이 자신의 친인척이나 측근들을 등용하는 ‘패거리 인사(nepotism)’였던 셈이다.

베버를 미국 학계에 소개한 사회학자 파슨스(Talcott Parsons)는 전통적인 귀족제에서 권력을 가진 소수 특권층 개인들에 의해 전체 조직이 좌우되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 등장한 관료제는 모든 의사결정에서 속인적 요소들의 영향을 철저히 배격하는 ‘탈개인화(impersonalization)’에 집중했다고 강조한다. 즉 조직의 의사결정과 행동이 특정 개인의 임의적 판단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공식적 규칙과 절차에 의해 이뤄지도록 합리화시킨 것이 관료제이며 이런 새로운 형태의 조직에 의해 전체 사회가 재편되고 합리화된 것이 현대사회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베버는 관료제의 핵심 특성을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관료제의 특성들 중 단연 가장 중요한 것은 ‘공식화’다. 즉 모든 의사결정과 행동을 개인의 임의적 판단이 아닌 미리 문서화된 공식적 규칙과 절차에 따른다는 공식화의 원칙이 관료제를 규정하는 대표적 특성이며 ‘관료제’라는 단어의 의미다.

둘째, 관료제에서는 미리 공식적 규칙과 절차로 문서화돼 있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상급자에게 주어진 ‘합법적 권한(legitimate authority)’에 기반한 결정과 명령에 따른다. 이런 관점에서 베버는 귀족제를 지배하던 소수 특권층 개인이 가진 카리스마적 권위나 과거로부터 계승돼 내려온 전통적 권위가 붕괴되고 대신 각 직책에 공식적으로 미리 부여된 합법적 권위로 대체되는 것이 현대사회의 권력구조라고 강조했다.

셋째, 관료제는 수평적으로는 철저한 ‘전문화’를 강조한다. 즉 각자 자신이 맡은 분야에만 전문화하고 다른 부문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 철저한 수평적 분업이 현대 조직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넷째, 조직과 구성원 간 관계에서 관료제는 전문성에 기반한 ‘계약관계’를 강조한다. 왕이나 귀족과 같은 기존 귀족제의 직책은 능력이나 전문성과 관계없이 특권층의 혈연에 의해 항구적으로 보장됐으나 관료제에서는 각자의 전문적 역량이 조직의 요구를 충족하는 한도 내에서 계약관계로만 조직에 속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관료제에서 구성원들의 동기부여는 ‘상향적 승진’이 중심이 된다. 즉 위에서 제시한 네 가지 요건들을 충족시키는 구성원들은 그 역량의 한계까지 상향적 승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관료제 확산의 결과와 명암

119


이런 관료제의 다섯 가지 특성들은 현재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베버가 이를 관찰하고 기록했던 19세기 후반에는 획기적으로 새로운 전대미문의 현상이었고 역사적 대변동이었다. 이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마지막 챕터에서 관료제의 확산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예측하고 있는데 100여 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 되돌아보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통찰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버는 관료제를 중심으로 한 전체 사회의 재편은 이미 19세기 말에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추세가 됐으며 인류 역사상 본적이 없는 거대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베버는 관료제와 현대 산업사회로의 이행이 되돌릴 수 없는 추진력을 획득한 이유는 다른 대안적 조직화 방식들에 비해 너무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시장경제가 요구하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거의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관료제 형태를 가진 현대적 조직들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면서 인류는 이제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회, 즉 현대사회로의 대전환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또한 베버는 관료제의 합리성과 효율성이 역사상 전례 없는 엄청난 생산성 증대를 가져옴으로써 시장경제가 지속하는 한 앞으로도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베버는 인류사회가 미래에도 관료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면서 “지하에 매장된 마지막 석탄 한 조각을 캐내서 태울 때까지” 관료제는 인류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섬뜩한 예언을 한다.

그런데 베버는 관료제 중심의 현대 산업사회에 대해 합리성과 효율성 같은 긍정적 측면만 본 것이 아니라 비인간화와 도구주의, 경직성 같은 부정적 가능성도 동시에 지적했다. 이런 관점에서 베버는 현대사회의 핵심 구성단위인 관료제를 ‘강철 우리(iron cage)’라는 양면적인 개념으로 표현했다. 즉 강철은 현대적이고 강인하지만 동시에 차갑고 비인간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을 가두고 옥죄는 일종의 감옥이다. 즉 관료제가 주도하는 현대 산업사회는 효율적이고 풍부하지만 동시에 차갑고 비인간적이며 억압적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베버는 또한 관료제의 모든 규칙과 절차는 합리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귀족제의 임의성의 폐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도치 않은 결과로 그 자체가 마치 목적처럼 절대시 되는 수단과 목적의 전도 현상을 경고했다. 이런 관점에서 베버는 관료제가 모든 종류의 조직은 결국 인간을 위한 수단이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 그저 정해진 규칙과 절차에 따라 기계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영혼 없는 전문가(specialists without spirit)’들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베버의 이런 예언은 관료제가 전 세계로 확산된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실현됐다. 따라서 후대 조직이론가들은 베버의 방대한 저술의 다양한 측면들을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대표적으로 머튼(Robert K. Merton)은 관료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관찰되는 상명하복형이며 이기적이고 경직된 관료병리적 성격과 수단-목적 전도 현상을 분석했고, 저커(Lynne Zucker)는 관료제가 원래의 본질적 목적 달성에는 실패하면서 규칙과 절차 준수에는 철저하게 집착해서 생존에는 성공하는 현상인 ‘항구적으로 실패하는 조직(permanently failing organization)’을 연구했다. 또 마이어(John Meyer)는 실제 목적 달성에 상관없이 공식적 규칙과 절차를 지키는 데 집착하는 관료제의 확산은 공식 조직구조는 의례적으로 채택해서 외견상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실제 업무의 수행은 비공식적 루틴에 따르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연구했다. 그리고 디마지오(Paul J. DiMaggio)와 파월(Walter W. Powell)은 신제도이론을 대표하는 그들의 유명한 논문 제목을 아예 ‘강철우리의 재검토(Iron Cage Revisited, 1983)’로 정해서 베버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동시에 베버와 달리 관료제의 확산은 시장경제뿐 아니라 전문가집단과 정부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제도적 동형화(institutional isomorphism)’이론을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의 벽두에서 베버를 다시 읽는다

베버가 관료제의 범세계적 확산을 연구했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는 대량 생산-대량 소비 중심의 2차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베버가 주장했듯이 2차 산업혁명이 현대 산업사회 도래의 주 원동력이 되도록 만든 핵심 메커니즘은 바로 관료제 형태를 가진 기업조직들이었다. 그리고 베버가 예언했던 현대적 조직들의 엄청난 가능성과 심각한 부작용도 지난 100년간 실현됐다.

지금 또 다른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혹은 ‘디지털 변혁(digital transformation)’으로 불리는 엄청난 변화가 지금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사이버-물리시스템 등 데이터기술을 중심으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변화는 일과 조직경영, 인류의 삶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미래와 결과에 대해 긍정적 희망과 부정적 불안이 공존하며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100여 년 전 베버의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토론은 베버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특히 다음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베버가 관료제 중심 현대 산업사회의 명암을 동시에 간파했듯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양면성을 동시에 보는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열 뿐 아니라 이제까지는 걱정할 필요 없던 새로운 위험도 동시에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기술이 극도로 발전해 인간의 지적 활동을 대부분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인데 과연 도덕적 판단을 요구하는 의사결정도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또 아마존, 구글 등 플랫폼기업들의 급성장과 시장지배력이 혹시 새로운 형태의 독과점의 등장이 아닌지도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4차 산업혁명도 역사발전의 한 단계이지 결코 완벽한 최종 완결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부정적 가능성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4차 산업혁명의 가능성에만 열광하는 자세는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DBR minibox Ⅱ: 솜털 같은 구름(cloud)이 디지털 우리(digital cage)로?’ 참고.)
DBR mini box II 
솜털 같은 구름(cloud)이 디지털 우리(digital cage)로?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마지막 챕터에서 물질적인 부와 성공의 추구가 처음에는 오히려 ‘금욕주의’와 연결된 종교적 윤리였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벗어던질 수 있는 가벼운 코트와 같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성공의 동기인 개신교 윤리가 희미해져가면 이것이 철의 우리로 변할 것이고, 인류는 그 철의 우리, 철의 새장 안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클라우드에 모든 것을 저장하고 모든 것이 연결된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연결하고 세상을 혁신할 것이라는 믿음과 연결돼 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고 모든 경영자가 믿고 있다. 문제는 ‘인류의 연결을 돕는 도구이자 비즈니스의 혁신적 도구’로서 언제든 가볍게 활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환경과 AI가 어느 순간 우리를 옥죌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와 ‘영혼 없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 비즈니스가 갇혀 버린다면, ‘디지털 우리(digital cage)’에 기업가적 상상력과 혁신역량이 갇혀 버린다면 그 어떤 경영자도 빠져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 베버의 마지막 챕터에서 경영자들이 곱씹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둘째,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사람들이 베버에게 배울 가장 중요한 교훈은 결정론적 관점의 극복이다. 마르크스가 역사 발전이 경제적 조건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하부구조 결정론을 신봉했던 것과 달리 베버는 문화적 가치관과 같은 상부구조적 요인들이 경제적 조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역사를 만들어나간다는 개방적 관점으로 현대 산업사회의 도래를 설명했다.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는 기술적 가능성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즉 기술결정론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버가 경고하는 것은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은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인간중심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아무리 놀라운 기술적 가능성이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그 가능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즉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는 궁극적 주체인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며, 인간의 선택과 행동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문화적 가치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기술적 가능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관에 기반한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와 같은 역사적 대전환기일수록 유행하는 첨단 기법들을 따라잡는 데 지나치게 함몰될 것이 아니라 베버와 같은 고전으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dshin@yonsei.ac.kr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1

신동엽 교수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과 인문예술 분야 세계적 학술지와 저명한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서울 스프링실내악축제 조직위원장과 한국인사조직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1호 Data Privacy in Marketing 2021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