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3. 앨프리드 챈들러의 『보이는 손』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경영이란 ‘보이는 손’이 대체하다

244호 (2018년 3월 Issue 1호)

Article at a Glance
앨프리드 챈들러(1918∼2007)는 경영사(business history)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학계에 BC(Before Chandler)라는 구분이 있을 정도다. 그가 1977년 출간한 『보이는 손』은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미국 근대 대기업의 탄생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으로 197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책에서 챈들러는 19세기 초 미국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경영이라는 ‘보이는 손’이 대체하는 과정이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시장을 대신해 기업이 생산과 유통의 상품 흐름을 조율하고 자금과 인력을 배분하는 기능을 담당하게 되면서 근대적 대기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고 봉급을 받는 중간 및 최고경영자 집단이 등장해 새로운 경영자 계급을 형성했다. 오늘날 미국의 경영자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가 뿌리내리게 된 역사적 배경을 제시함으로써 대기업의 존재 의미에 대한 통찰을 준다.

산업혁명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문명이 태동한 이후 오랜 기간 인류는 겨우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소득만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18세기 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후 지난 200년 동안 인류의 생활수준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서 이런 변화가 가능했는지 끊임없이 연구가 이뤄지는 이유다.

산업혁명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했지만 두 번 더 ‘새로운’ 산업혁명이 나타났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진행된 제2차 산업혁명, 197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제3차 산업혁명이다. 로버트 고든 교수는 책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1 에서 인류가 20세기에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산업혁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생산성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볼 때 IT 산업을 중심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3차 산업혁명은 제2차 산업혁명과 비교할 바가 안 된다는 증거를 수없이 제시한다. 우리가 제3차 산업혁명의 시기를 살고 있으면서도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기루를 좇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새로운 기술혁신이 일어나리라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제3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 따른 실망이 큰 탓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제2차 산업혁명은 왜 그렇게 혁신적이었을까? 제1차 산업혁명과 비교할 때 제2차 산업혁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생산 규모의 변화로부터 찾을 수 있다. 제1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산업은 면방직 공업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들에는 동시대인들을 놀라게 하는 엄청난 규모의 면방직 기계와 이러한 기계들이 수십, 수백 대씩 작동하는 대규모 공장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장에서는 수백 또는 수천 명의 노동자가 모여 일했다.

하지만 이런 공장들도 제2차 산업혁명 시기의 대표적인 공장들과 비교해 보면 여러 면에서 초라한 수준이다. 1901년 탄생한 US스틸사는 자본금 14억 달러에 종업원이 10만 명에 달했다. 1920년 말 완성된 헨리 포드의 리버루지(River Rouge) 공장에서는 공장 하나에서 1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근무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중화학공업이 아닌 다른 산업군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진행됐다는 점이다. 예컨대 19세기 말 미국에서 살아 있는 소를 소비지로 가져와 도살하는 대신 생산지에서 도축한 뒤 냉동 기차로 운반하는 포장육 기업이 등장했다.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스위프트컴퍼니의 공장은 미국 각 도시에서 소비되는 엄청난 양의 소를 한 곳에서 도축했다.

제2차 산업혁명 기간 많은 제조업 분야에서 대규모 공장을 경영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앨프리드 챈들러는 이 기업들을 ‘근대적 대기업(modern business enterprise)’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왜 이런 기업들이 등장하게 됐을까?

챈들러가 던진 질문은 사실 19세기만 해도 아예 생각조차 못했던 질문이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으로부터 앨프리드 마셜의 『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Economics)』에 이르기까지 19세기 경제학의 고전들 어디에도 ‘기업의 크기’를 문제 삼는 진지한 논의는 없었다.

이 주제에 대한 본격적 문제 제기는 20세기 초반에 서서히 등장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즈의 기념비적인 1937년 논문 ‘기업의 본질’2 이 이후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주체들은 시장에서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계약을 맺고 교환을 하는 반면 기업 내에서는 명령과 복종이라는 위계질서를 따른다. 코즈는 경제주체들이 어떤 상호 작용을 기업 내에서 할지, 아니면 시장을 통해서 할지 여부를 거래비용의 크기를 고려해서 결정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다.

코즈의 직관은 기업과 보다 넓게는 제도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활동이 기업 내에서 이뤄진다는 것은 시장에서 이뤄질 때보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설명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기업의 존재, 나아가 규모를 설명하는 토대를 제공했다.

챈들러의 『보이는 손(The Visible Hand, The Managerial Revloution in American Business)』은 제2차 산업혁명의 중심인 미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코즈의 직관을 실증적으로 구명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전반까지도 미국에서는 수많은 생산자와 도매상, 소매상,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상호작용을 했던 반면 19세기 말에 이러한 교환 중 상당 부분이 대기업 안으로 흡수된다. 챈들러는 이러한 변화 과정을 대하 역사소설처럼 서술하면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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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대기업의 등장
- 제1부 전통적인 생산 및 유통 과정, 제2부 운송 및 통신 혁명

이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1부는 대기업이 등장하기 전, 즉 대략 1790년부터 1840년까지 미국의 경제 상황과 기업 활동을 개괄하고 있다. 챈들러는 근대적 대기업의 등장을 기업이 시장을 대체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미국은 18세기 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지속적인 경제 팽창을 경험했다. 이민과 출산 등을 통해 인구가 빠르게 증가했으며 동부 해안에 집중돼 있던 인구가 서부로 이동하면서 지리적 팽창이 동시에 진행됐다. 인구 증가와 지리적 팽창은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했던 현상, 즉 시장 규모의 증가가 분업의 심화를 가져온다는 현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제2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는 1880년대 이전 미국에서 생산과 유통은 다른 여느 경제들과 마찬가지로 별개의 영역이었다. 생산자는 제품을 생산했고, 도매상인은 생산자로부터 제품을 넘겨받아 소매업자나 소비자들에게 판매했다. 대개 이러한 과정에서 상품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단계의 거래를 거치기 마련이었다. 분업의 심화는 생산성을 높여 19세기 초 미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이런 상황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 바로 철도의 등장이다.

제2부는 철도 기업의 발전을 다룬다. 국가가 철도 산업을 독점 운영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다수의 민간 기업들이 서로 경쟁하며 최초의 근대적 대기업으로 발전한다. 챈들러는 철도회사들이 수많은 승객과 화물을 제시간에 정확한 지점으로 운송하기 위해 많은 인력을 관리하고 엄청난 양의 정보를 처리하면서 대기업의 내부 구조를 형성하는 경영 위계, 다양한 경영 기법들, 근대적 회계 기법을 최초로 발명했다고 강조한다.

철도회사는 설립 단계에서부터 대규모 자본 조달이 필요했기 때문에 미국의 자본시장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19세기 미국 주요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대부분은 철도 주식이었다. 이처럼 외부로부터 많은 자본을 조달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오늘날 근대적 주식회사의 특징으로 언급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나타났다.

철도망의 확산은 빠르면서도 안정되고 지속적인 물류 흐름을 제공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시장 통합을 가져왔다. 철도기업은 최초의 근대적 대기업이면서 동시에 다른 대기업들을 창출한 모태가 됐다.

근대적 대기업의 발전
- 제3부 유통과 생산의 혁명, 제4부 대량 생산과 대량 유통의 통합

근대적 대기업은 생산과 유통을 통합하고, 중간상인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철도의 등장으로 전국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자 대규모 생산과 전국적인 판매를 통해 엄청난 이윤을 벌어들일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대규모 생산이 이뤄진다고 할지라도 전통적인 유통망은 생산물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결국 기업들은 스스로 유통망을 갖춤으로써 전통적인 유통망을 몰아냈다. 제3부는 전국적 통합 시장을 바탕으로 마침내 대량 유통과 대량 생산, 즉 대기업에 의한 유통과 생산이 가능해진 과정을 그린다.

챈들러는 이 과정을 기업 내 조율이라는 ‘보이는 손(the visible hand)’이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을 대체했다고 묘사하고, 이를 책 제목으로 삼았다. 이러한 유통망을 갖추게 된 기업은 유통망에 투입한 고정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생산을 도모했다. 그리고 늘어난 생산량을 소비하고자 유통망을 더 강화했다. 이처럼 생산과 유통의 결합은 서로가 서로를 증대시키는 힘으로 작동함으로써 기업의 규모를 확장시켰다. 대량 유통과 대량 생산을 통합해 수행하는 복수 사업 단위 기업(multiunit business enterprise)이 등장한 것이다.

아메리칸 토바코는 이런 과정을 잘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례다. 19세기 말까지도 담배의 주류는 시가(cigar) 혹은 씹는 담배였다. 오늘날 가장 보편적으로 소비되는 형태인 궐련(cigarette)은 여성들이 직접 손으로 말아서 제작했고 소비 역시 일부 계층에 국한됐다. 그런데 19세기 말 궐련을 마는 목적으로 개발된 본삭 기계(Bonsack machine)가 이런 상황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1880년 발명가 제임스 본삭이 만든 본삭 기계는 2대만으로도 당시 미국 전체의 궐련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만큼 생산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본삭 기계의 특허를 매입한 제임스 듀크는 이 기계를 이용해 어마어마한 양의 담배를 생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유통이었다. 기존의 시가나 씹는 담배와 다른 궐련을 기존 소매상들은 취급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듀크는 자신만의 담배 취급 소매상 망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제품을 판매했다. 그리고 새로운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알리고자 지방 신문이나 담배 카드 등 다양한 형태의 광고를 이용했다. 이러한 판매 전략이 성공을 거둠으로써 듀크는 세계 최고의 담배 회사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아메리칸 토바코는 근대적 대기업이 등장하게 된 여러 가지 유형 중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반대로 유통이 생산을 흡수하면서 규모가 증가한 사례도 있다. 1870∼80년대부터 등장한 백화점, 연쇄점, 통신판매점은 대규모 유통점이 중간도매 과정, 나아가 생산까지를 흡수했다. 또 오티스 엘리베이터나 맥코믹 하베스터 등은 제품의 특성상 기존 상인과는 다른 자체 유통망을 갖춰야만 했다. 엘리베이터는 단순히 판매만 해서는 안 되고 설치, 나아가 유지보수까지 수반돼야 했기 때문이다. 맥코믹 하베스터의 경우는 농민들에게 농기계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임대를 하는 방식으로 판매를 촉진했다. 제품 판매와 금융을 결합하는 서비스는 기존 소매상이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체 유통망 구축은 필수였다.

챈들러는 미국의 모든 산업 영역에서 대기업이 등장한 경우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유형화한다. 이러한 다양성들을 기술의 특성, 거래비용이라는 관점을 통해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근대적 대기업은 경영 혁신을 통해 생산 및 유통비용을 대폭 절감한 결과 기존 생산자와 유통업자들을 대체했다. 그리고 더 싼 가격에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의 후생을 증진했다. 물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등장한 모든 대기업이 혁신의 결과로 탄생한 것은 아니다. 철도나 석유 등 많은 영역에서는 업체들 간의 극심한 경쟁을 줄이기 위해 카르텔을 형성하거나 합병을 통해 기업 규모를 확대하기도 했다.

4부에서는 대기업 등장 경로를 두 가지 유형으로 대비한다. 흔히 기업이 기업 결합을 통해 규모를 키우는 방식에는 생산 공장을 통합하는 ‘수직 결합’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다른 기업을 합병하는 ‘수평 결합’이 있다. 챈들러에 따르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에서 수직 결합을 통해 등장한 대기업들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지배적 지위에 오른 반면 단순히 규모를 키우고 경쟁을 억제하기 위한 수평결합, 즉 담합(카르텔)으로 탄생한 대기업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카르텔을 통해 생산량을 줄이고 가격 하락을 막음으로써 이윤을 확보하려는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철도 회사들의 경우, 카르텔을 형성하더라도 어떤 회사가 몰래 리베이트 등을 통해 가격을 낮추는지, 아니면 실질적으로 운송품의 가격이 낮아진 결과인지를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카르텔들은 자체 감시기구를 만들고 협약을 위반한 기업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통제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번번이 실패했으며 카르텔들은 오래 가지 못해 붕괴하곤 했다.

챈들러는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무모한 시도였는지를 증언한다. 단순히 독점력에 근거해서 가격을 높이는 정책을 넘어 기업 내부 경영을 단일한 기업 형태로 전환하고 경영 혁신을 이루지 못한 경우, 효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외부와의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붕괴했다. 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운 기업들의 경우 단순한 기업 연합체를 넘어 경영 혁신을 통해 하나의 기업으로 통합, 재편됐을 때만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듀폰컴퍼니3 는 수평적 연합에서 수직결합으로, 공장들 간 느슨한 결합에서 기능적으로 세분화되고 집중화된 구조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환하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챈들러는 듀폰컴퍼니를 1917년 가장 ‘경영이 근대화된’ 산업체로 꼽는다. 소규모의 가족 기업 연합체였던 듀폰은 화학무역협회 소속 회원사들과 주식을 공유하면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1903년 초 하나의 통합 기업 ‘E.I. 듀폰 드 느무아 파우더 컴퍼니’로 합병을 추진하면서 관리 집중화와 수직 결합 정책을 채택했다. 경쟁자를 인수해서 가격을 인하하고 경쟁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비용을 소모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가장 효율이 높은 제조 공장을 가능한 한 안정적으로 최대한 가동시켜 제품 단위당 생산비용을 소규모 경쟁자들이 따라오지 못할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사회의 집행위원회를 중심으로 생산을 통합하고 자체적인 판매와 구매조직을 구축했다. 예컨대 기존 공장들은 생산 부서에, 판매 대리인은 지점망에 배치하고, 구매를 담당하는 ‘필수자재부’ 등을 신설했다. 회사 자산을 관리하는 토목부서, 연구부서, 중앙 인사부를 신설해 본사의 직원과 기능을 확대했다.

특히 챈들러는 듀폰이 재무 사무소를 확대 구축해 원가회계, 자본회계, 재무회계를 효과적으로 통합해 근대적인 자산 회계의 토대를 쌓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한다. 회전율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근대적인 경영이 수익성과 생산성에 기여한다는 점, 즉 생산과 유통 과정의 물품 흐름에 관한 관리적 조율을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음을 역사상 처음 명확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러한 회계 혁신은 경영이라는 보이는 손이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대체한 핵심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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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대기업의 완성
- 제5부 경영과 근대적 대기업의 성장

마지막으로 제5부는 근대적 대기업의 내부 조직을 다룬다. 대규모 생산과 유통을 수행하는 근대적 대기업은 전통적인 기업과는 매우 다른 조직구조를 필요로 했다. 기업 규모의 확대는 단순히 생산직과 판매직 사원의 증가만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이런 대규모 생산과 유통이 이뤄지려면 기업 내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정보가 수집되고, 분석돼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경영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내려져야 했다. 생산직과 판매직 사원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층(middle management), 기업의 전체적인 전략을 설정하고 경영 판단을 하는 최고경영자층(top management)이 형성된 배경이다.

최고경영자들의 경우 경영 관련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별도의 비서진을 갖추게 됨으로써 오늘날 대기업에서 흔히 관찰되는 ‘직계-참모 조직’이 등장했다. 아울러 자본 규모가 큰 산업에서는 기업의 경영과 소유가 일치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기업가 기업(entrepreneurial enterprise)을 넘어 경영자 기업(managerial enterprise)으로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소유자가 기업을 경영하는 전통적 기업과는 다른 차원으로 기업경영을 바꾸었다. 소유자인 경영자들은 단기적 성과나 배당에 집착하는 반면 경영전문가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들은 참모 조직들의 도움을 받아 장기적인 목표를 두고 기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챈들러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기초한 전문경영자들의 탄생이 대기업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봤다.

결국 기업 규모의 확대는 기업 내부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근대적 기업 조직을 형성시켰다. 이 조직은 과거에 시장에서 이뤄지던 많은 거래를 기업 안으로 흡수했다. 시장에서는 경제 주체들이 가격 신호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물건을 사고팔았다. 하지만 근대적 대기업의 경영자들은 경영이라는 ‘보이는 손’의 작용을 통해 기업 내 자원을 배분했다. 궁극적으로 근대적 대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이러한 종류의 기업들이 지배하는 산업 영역이 확대되면서 ‘보이는 손’은 ‘보이지 않는 손’을 대체하게 됐다.

근대적 대기업은 경제를 넘어 사회 모든 영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그 가운데 교육과 연구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를 소개한다. 대기업 조직이 필요로 하는 인력들은 기업 내의 훈련만으로 형성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에서 중요한 교육제도의 변화가 발생한다. 대기업의 관리자층을 교육하기 위해 대학 교육이 보다 확산됐으며 더 나아가 고등교육 기관들은 경영자를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갖추기 시작했다. 1881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시발점으로 경영대학원이 발전했다. 이 책에서 언급하지는 않지만 듀크, 밴더빌트, 스탠퍼드, 카네기-멜론, 시카고 등 오늘날 미국을 대표하는 주요 사립 대학들이 이 시기 대기업 창립자들에 의해 설립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편 중간관리층과 최고경영자층은 수시로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된 모임을 통해 정보를 교환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프레드릭 테일러 같은 근대적인 과학적 경영방식의 창시자들이 등장하고, 아서 리틀, 데이 앤드 짐머맨, 제임스 매킨지 같은 경영 컨설턴트들이 활동했다. 세계적인 경영 관련 학회 등이 등장함으로써 경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이러한 연구가 경영대학원을 통해 교육되며, 이렇게 교육받은 인력들이 대기업에서 활동하면서 새로운 경영을 펼치는 순환 체계가 형성됐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바와 같이 『보이는 손』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일어난 대기업의 등장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려는 대담한 시도다. 나아가 이러한 대기업의 등장이 어떻게 미국 사회를 변화시켰고, 궁극적으로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어내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챈들러 이전 경영사 연구는 그저 유명한 기업에 대한 서술 혹은 그 기업을 일군 기업가에 대한 찬양 일색의 위인전인 경우가 많았다. 반대편에서는 기업이나 기업가들이 했던 악행들을 열거하면서 기업이 민중에 대한 착취로부터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챈들러는 이런 상반된 편향을 넘어서 경영사를 이해하는 종합적인 틀을 고민했고 『보이는 손』을 정점으로 하는 일련의 연구를 통해 제시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이는 손』은 1977년 간행된 이후 경영사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이야기하자면 경영사 혹은 기업사 연구는 챈들러의 『보이는 손』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고 이야기될 정도로 이 책이 가져온 충격은 엄청났다.

『보이는 손』이 발간된 지 40년이 지난 오늘날 관점에서 볼 때 개별 기업에 대한 챈들러의 서술은 오류가 있는 부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또 그가 제시한 틀 역시 비판을 받을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근대적 대기업의 등장과 관련해서 이 책이 보여준 종합적 식견을 대체할 새로운 틀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이 제공한 통찰이 심오하며 오늘날에도 읽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지난 30여 년간 IT 산업을 중심으로 해서 진행 중인 제3차 산업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도 이 책은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보이는 손』은 대기업이라는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한국은 경제 발전 과정에서 재벌이라 불리는 대기업 집단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오늘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해 우리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기업은 왜 존재하는가? 다수의 작은 기업들에 의해 이뤄질 수도 있는 일들을 대기업이 수행하는 것은 어떤 이득이 있을까? 혹은 시장 거래로 이뤄질 수 있는 공정을 하나의 기업이 모두 수행하는 것은 어떤 조건에서 효율을 높이는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경제학이나 경영학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 맹아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의 중심인 대기업 스스로도 생각해볼 만한 주제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이론적 틀과 풍부한 사례가 대기업, 나아가 오늘날 경제를 이해하는 데 많은 정보와 시사점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방식을 언급하고 싶다. 챈들러는 서론과 결론에 자신의 논지를 잘 요약해서 제시했다. 하지만 이 부분만을 읽는 것은 이 책을 가장 잘못 읽는 방식이다. 그것은 마치 실루엣만으로 미인대회 우승자 혹은 피트니스 대회 우승자의 모습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이 책에서 영감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에 담겨 있는 흥미로운 사례들을 찬찬히 음미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수많은 세계적 기업들의 고민을 읽고, 그러한 고민에 대한 챈들러의 통찰을 느끼면서 독자들 스스로 내면화할 수 있을 것이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duolkim@mju.ac.kr

김두얼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경제사, 경제발전, 제도경제학, 법경제학과 관련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Asian Historical Economics Society 회장을 지냈고, 한국법경제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경제사의 재해석』 『경제성장과 사법정책』이 있으며, 앨프리드 챈들러의 『보이는 손』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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