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Philosophy

빅데이터 해독가가 필요한 시대

237호 (2017년 11월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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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라운지에서 누군가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곳에 비치된 잡지를 읽고 있다. 한참 후 자신의 순번이 돌아오자 그는 잡지를 펴 놓은 채 탁자 위에 올려두고 일어섰다. 그 옆에 있던 한 남자는 펼쳐진 페이지를 유심히 바라본다. 그리고 그 페이지에 적힌 단어들을 살피며 그 안에 숨긴 의미를 찾아내려 애쓴다.

대체 무슨 의미를 찾는단 말인가. 그저 글에 적힌 단어들의 조합일 뿐인데 말이다. 그러나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모델이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천재 수학자 존 내시(John Nash, 1928∼2015)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게 이 단어들은 매우 중요한 암호였다.

그는 모든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33번 뒤에 22번 버스가 온다면 보통 사람들에게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겠지만 내시에게는 어떤 암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우연의 산물로 받아들이는 일상이 내시에겐 코드화된 암호책자였다.

결코 평범한 행동은 아니었다. 게다가 내시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환자였다. 그는 실제 존재하지 않은 룸메이트가 존재한다고 믿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의 행동을 마냥 ‘미친 사람’으로 보기엔 억울한 측면이 있다.

내시는 정보이론의 창시자인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 1926∼2001)의 이론을 성실히 따랐다. 섀넌은 정보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그것을 생산해 내는 과정과 방식을 완벽하게 구현한 인물이다.

섀넌에게 정보란 애초에 유의미한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수히 많은 데이터들 속에서 일정한 패턴에 의해서 걸러낸 것이다. 예를 들어, 밤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 있다. 이러한 별들의 군집 속에 애초에 별자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혼란스러운 군집 속에서 유의미한 좌표를 발견하고 그 좌표에 ‘전갈자리’ ‘천칭자리’ ‘북두칠성’ ‘큰곰자리’ 등의 이름을 붙인다. 섀넌이 보기에 정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무수히 많은 데이터들 속에서 패턴을 만드는 것이 코드이며, 이 코드를 해독함으로써 사람들은 그것을 정보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는 그것이 지닌 원래의 내용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을 만들고 코드화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무의미한 현실에서 코드를 발견하고자 하는 내시의 태도는 정신병이 아닌 우리가 정보를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원리와 연관된 것일 수도 있다. 내시는 매 순간 섀넌의 이론을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가 보기에 세상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잠재적인 정보였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의 소설은 내용이 어려운 게 아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파편화된 내용으로 소설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파편화된 내용이 많아지면 그 의미가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허하고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1819∼1880)의 소설 『미들마치(Middlemarch)』를 보면 ‘누구나 죽은 후에 배를 갈라보면 그 속에 쓰다만 몇 권의 소설이 발견될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번쯤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를 쓴다면 정작 이야깃꺼리가 될 만한 순간들은 전체 인생을 통틀어서 얼마나 될까? 막상 이야기를 쓴다면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일상의 기억들을 걸러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세세한 모든 기억들을 담고자 한다면 이야기는 흐름을 잃고 기억들은 그저 무의미한 파편이 되고 말 것이다.

빅데이터도 마찬가지다. 빅데이터는 기계적인 발명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의 결과다. 자신이 경험하거나 경험하는 것 이상의 모든 것을 모두 저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빅데이터를 만든 것이다. 감시의 목적이 아닌 일상의 기록을 목적으로 하는 CCTV나 라이브 액션 캠은 이러한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빅데이터는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사람들이 속기로 기록한 것, 책으로 출간한 것, 영화로 제작한 것, 쇼핑한 기록, 이동한 거리, 방문한 사이트, 심지어 변화하는 매 순간의 모습을 물리적으로 작은 공간에 기록할 수 있다. 메모리 기술 발전의 가속도를 고려하면 앞으로 손톱만 한 크기의 저장매체에 한 사람이 일생 동안 경험한 모든 것을 담고도 남을 만큼의 데이터가 저장될 것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커다란 데이터를 위한 이 데이터 덩어리들은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무의미한 일상과 가까워진다. 내가 오늘 점심에 떡볶이가 아닌 햄버거를 먹은 것이나, 정문에서 연구실까지 4분이 아닌 3분 만에 도달한 것은 우연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약 이 세세한 일상까지 데이터로 기록할 경우 데이터는 의미를 상실한다. 이렇게 무의미한 데이터들은 한갓 쓰레기에 불과하다.

이는 독일의 다다이스트 작가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 1887∼1848)의 ‘정크 아트(Junk Art)’를 연상시킨다. 그는 버려진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 이렇게 만든 작품을 그는 ‘메르츠(Merz)’라고 부르는데 메르츠란 그가 우연히 본 잡지에서 ‘상업(Kommerzbank)’이라는 단어를 보고 거기서 일부를 뽑아낸 우발적이고 무의미한 단어이다. 메르츠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한 데이터, 즉 쓰레기일 뿐이다.

슈비터스의 이 쓰레기 더미가 쓰레기장에 처박히는 신세를 면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미술평론가를 비롯한 일부의 사람들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시대도 마찬가지다. 데이터는 잉여의 상태이므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빅데이터는 현실의 모든 데이터를 많이 저장할수록 역설적이게도 무의미한 ‘메르츠’가 돼 버릴 것이다. 빅데이터가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 쓰레기들을 조합해 코드화하는 암호 해독가들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 존 내시 같은 분열증 환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집자주

사상가와 예술가들의 공유점을 포착해 철학사상을 감각적인 예술적 형상으로 풀어내온 박영욱 교수가 DBR에 ‘Art & Philosophy’ 코너를 연재합니다. 철학은 추상적이고 난해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선사할 것입
니다.

박영욱 숙명여대 교양학부 교수 imago1031@hanmail.net

필자는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대음악과 미술, 미디어아트, 건축디자인 등 구체화된 예술 형식에 주목해 철학 사상을 풀어내는 데 주력해왔다. 저서로는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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