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中有訓

승천한 닭과 개, 유쾌한 소통

209호 (2016년 9월 lssue 2)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닭과 개가 날다

이 그림의 하단에 푸른 옷을 입은 아이가 팔을 치켜들어 가리킨다.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면 허공 저 멀리 너울너울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의 발아래에는 개 한 마리, 닭 한 마리가 함께 날아간다. 이 그림의 왼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회남왕(淮南王) ()이 단약을 먹고 대낮에 하늘로 오르는데, 집안의 닭과 개가 단약솥에 남은 것을 핥아먹고 또한 따라 날아올랐다.” 그림의 제목이 이를 말한다. 회남의 닭과 개, 회남계견(淮南鷄犬)’이다.

 

단약을 먹고 수백 년을 살았느니, 반도(蟠桃)를 먹고 수천 년을 살았느니 하는 신선 이야기가 많지만 가축까지 신선이 됐다는 이야기는 다시 들어도 우습다. 그런데 이렇게 코믹한 조선후기 영조대 왕실에서 정성스럽게 만든 시화첩 <만고기관>의 한 장면으로 선정돼 실려 있으니 의아한 일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회남왕의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두루 살펴보면 둘로 갈린다. 대부분의 경우는어찌 모두 함께 하늘로 올라 구름 밖 달빛 속에 개와 닭 소리 들어볼고”(최립(崔岦), 1539∼1612)라며 삶의 고달픔과 인생의 유한함을 한탄할 때 신선이 된 회남왕을 부러워하는 경우다. 또 다른 하나는 구름에서 우는 개와 닭의 이야기에 눈물이 아롱진다고 한 두보(杜甫)의 시구를 떠올리며가슴이 몹시 떨려온다”(허필(許佖), 1709∼1761)고 하는 식의 다소 심각한 토로다. 그 당시 사람들은 회남왕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여 부러워하다가도 문득 이 이야기 속에 가려진 사연을 떠올리며 탄식도 했던 것 같다.

 

 

모반자의 아들, 회남왕

개와 닭을 데리고 승천하는 그림 속 주인공회남왕 안은 역사 속의 실존 인물인 유안(劉安, 기원전179∼122)이다. 유안의 아버지는 유장(劉長)이다. 유장은 한나라 문제(文帝)의 아들로 회남왕(淮南王)에 봉해졌는데 모반(謀叛)을 꾀하다가 발각돼 귀양 가는 벌을 받았다. 유장은 자결했다. 이후 문제는 모반한 유장의 네 아들 모두에게 죄를 묻지 않고 후()에 봉했다. 유안은 회남왕에 봉해졌다.

 

모반자의 아들이었지만 왕이 됐으니 유안이 조심스럽게 직분에 임했다면 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안은 대단한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신선술을 연구하는 방술사 수천 명을 불러 모아 불로장생을 꿈꾸고 신선술비결서를 베개에 넣어 둘 정도로 방술에 관심이 깊었다. 유난히 뛰어난 여덟 명의 팔공(八公)과는 아주 친밀했다. 유안은 또한 많은 학자들을 불러 모아 <주역>의 해석본을 다시 냈고, 산속의 은자들을 부르는 초은(招隱)의 시문을 짓고자 여러 학자들을 불러 시문집을 냈다. 또한 유안은 역사와 전설의 일화와 글이 가득한 <회남자(淮南子)>를 엮었다.

 

 

<회남자> 속 지혜

<회남자> 21권에는 다양한 지혜가 담겨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새옹지마(塞翁之馬, 변방에 사는 늙은이의 말).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기거나 속단하지 말고 급한 마음으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이야기다. 크고 작은 웬만한 일들에 흔들리지 않고 통찰하는 자세를 배우게 된다. <회남자>에는 명문명구가 수두룩하다. ‘지혜는 둥글게(), 행동은 모나게() 하라는 문장도 <회남자>에서 나왔다. 이해는 원만하게 두루하되, 행동은 방정하게 반듯이 하라는 가르침이다. 일시도 잊지 말아야 할 지침이다.

 

회남왕 유안의 최후

그런데 유안은 정말 어떻게 생을 마감했던 것일까?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유안이 모반의 죄를 얻었고, 다급하게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의 소문은 이러했다. 유안은 신선술을 잘 익혀 어느 날 단약을 넉넉하게 끓여서 집안의 수백 명이 모두 승천했고, 개와 닭도 남은 단약을 먹고 함께 오르느라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구름 속에서 요란했다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유안과 가족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정말로 모반행위를 도모했던 것일까. 한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한서(漢書)>에 나오는 무제기(武帝紀)편에 회남왕 유안의 최후는 다음과 같다. “유안은 아버지 장의 봉호를 승습(承襲)해 회남왕(淮南王)에 봉해졌다. 신선술(神仙術)에 능해 무제(武帝)의 신임을 받았으나 반역을 꾀하다가 발각돼 자살했다.” <한서>는 유안의 승천 소문을 이와 같이 일축했다. “회남왕은 불법을 지어 죄를 받았으며, 승천한 일은 없다. 이는 팔공의 무리가 짐짓 이 이야기를 만들어 그의 죄를 가린 것이다.”

 

환상(幻像)을 보는 우리의 뇌는 훌쩍 멀리 여행을 떠나는 즐거운 경험을 맛본다. 다시 현실의 만사를 대하는 여유는 여기서 나온다.

 

유쾌한 코드, 즐거운 소통

오래전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을 상상했고, 그런 사람을 신선(神仙)이라 불렀다. 사람은 결코 신선이 될 수 없지만 신선이 됐다고 믿는 역사적 인물들이 제법 많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우리나라 신라시대 문인 최치원(崔致遠)이 대표적이다. 이백은 달밤에 홀로 달과 대작(對酌)하던 기인이다. 그러다 강 위에 뜬 달을 보고 반가워 물속으로 들어가서는 영원히 나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백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됐다고 한다. 최치원은 어린 나이에 중국에 가서 과거에 합격하고 문장으로 당나라 황제의 칭송을 얻고 신라로 돌아왔다. 그러나 최치원은 홀연히 가족들을 거느리고 가야산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됐다고 믿었다. 남다른 포부와 능력과 매력의 소유자에 대한 사람들의 그리움이 각별하다. 적어도 그들이라도 신선이 됐으리라는 상상으로 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유안이 개와 닭을 거느리고 공중으로 날아가는 그림 앞에서 조선왕실의 왕자들이나 학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그림이 제공하는 것은 무엇보다 보자마자 느껴지는 유쾌함이다. 펼쳐진 장면 속 주인공은 비현실적으로 행복하니, 보는 이의 마음은 어느덧 즐거워진다. 환상(幻像)을 보는 우리의 뇌는 훌쩍 멀리 여행을 떠나는 즐거운 경험을 맛본다. 다시 현실의 만사를 대하는 여유는 여기서 나온다. 그림으로 얻은 즐거움과 만족감으로 사람들은 회남왕 유안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여유 있게 떠올려 볼 것이다. 거듭 읽어 암송하는 <회남자>의 구절, 만천하의 학자와 술사와 즐기다가 수하의 인물에게 밀고돼 급하게 세상에서 사라져간 사람, 그가 평생 누리던 모든 것은 삽시간에 흩어졌지만 그를 보호해준 팔공의 작전으로 죄를 피했던 사연 등. 사실 조선왕실에서는 유장의 아들들에게 죄를 적용하지 않았던 한나라 문제의 너그러움에 대해서만도 이미 수없이 거론하며 논한 바이다. 그런데 그림 속 장면은 하필 개와 닭과 함께 하늘로 오르고 있는 코믹하고 이상한 허구적 해피엔딩일 뿐이라 감상자는 그림이 보여주는 즐거움으로 얼굴을 활짝 펴고 많은 일들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엄숙한 조선왕실에서 제작된 학습용 서적이다. 이 그림을 다시 보면서 우리도 유안에 얽힌 복잡한 역사를 탄식하며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그전에 생각할 것이 있다. 누군가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할 때 전달받는 이가 즐겁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조금 더 유쾌한 소통의 코드를 고안해 보았는가 하는 점이다.

 

 

고연희 서울대 연구교수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 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등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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