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심리학
Article at a Glance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말했듯 “너드(nerd)가 지배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서양에서의 ‘너드’는 아시아에서는 ‘오타쿠’, 특히 한국에서는 변형된 용어로 ‘덕후’다. ‘오타쿠’라는 일본어에는 부정적인 개념도 포함돼 있지만 한국의 ‘덕후’는 현재 서구에서 긍정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 ‘너드’와 마찬가지로 ‘건강한 중독, 긍정적 중독’을 가진 마니아 집단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21세기 비즈니스 시장에서 존경받는 기업, 성공하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면 인간의 삶에서의 영원한 핵심 테마이자 ‘덕후’들의 취미활동 기저에 깔린 ‘성(性)’과 ‘공격성’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이를 정신적으로 성숙한 형태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중독을 통해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소비자들이 대거 등장할 수 있다. 그들은 소비자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긍정적 중독’이 사람들의 발상을 바꾸고 혁신을 만들어내며 건강한 중독에 빠진 ‘덕후’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덕후 문화와 뇌의 보상체계 간 관계
일본에서 시작된 ‘오타쿠’ 문화는 한국으로 넘어와 ‘덕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문화현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덕후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경과학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본고에서는 신경과학적 접근을 통해 덕후 문화를 고찰하고 경영자들에게 주는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덕후 문화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는 특정 분야에 남다른 열정과 흥미를 갖고서 매진한다는 점이다. 덕후들은 특정 활동과 관련해서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렬한 욕구(欲求)를 경험한다. 이것은 덕후의 활동에 뇌의 보상추구(reward seeking) 체계가 관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과거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의 특정 행동을 강화시키는 보상 체계가 뇌의 쾌락중추 및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서 유발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전에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면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그러한 활동을 계속 추구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신경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뇌의 보상체계는 ‘원함 체계(wanting system)’와 ‘좋아함 체계(liking system)’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시 말해서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조절하는 뇌 부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그림 1) 기본적으로 쾌락을 즐기는 행동에는 ‘중변연계의 오피오이드 체계(mesolimbic opioid system)’가 관여한다. 이 체계는 자극으로부터 쾌락을 즐기는 행동을 주로 관장한다. 오피오이드(opioid)는 엔도르핀(endorphin)이나 모르핀(morphine)과 같은 마약 제제를 총칭하는 용어다.
대조적으로, 어떤 대상을 간절히 원하는 보상추구 행동에는 ‘중변연계의 도파민 시스템(mesolimbic dopaminergic system)’이 관여한다. 이 체계는 일정한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부여 행동을 관장한다. 이처럼 도파민 체계는 먹는 행동 자체 혹은 섹스 행동 자체보다는 음식을 찾아다니거나 섹스 파트너를 찾아다니는 행동과 관계돼 있다. 이때 대상을 찾아다닐 때처럼 도파민이 활성화된 상태에서는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한다. 단지 먹을 것과 섹스 파트너를 얻기 위한 강렬한 욕구만 체험하게 될 뿐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탐색한 결과, 실제 목표대상을 획득하고 나면 엔도르핀의 작용에 의해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쥐의 원함 체계(도파민 체계)를 차단하면, 주변에 음식이 있더라도 쥐는 먹지 않기 때문에 기아 상태가 된다. 이것은 중독과는 반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하에서도 쥐의 입에 음식을 넣어 주면 쥐는 음식을 즐기는 행동을 나타낸다. 좋아함 체계(오피오이드 체계)를 차단하면 쥐는 맛있는 음식을 덜 맛있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할 경우 쥐는 좋아하는 음식을 봤을 때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행동들, 즉 앞발이나 입술을 핥거나 혀를 날름거리는 것 등의 행동을 보이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적게 먹는다.
게임과 뇌의 보상체계 간 관계
기본적으로 게임과 같은 활동은 ‘중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게임을 하는 동안 중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뇌의 보상추구 체계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1997년 영국의 해머스미스(Hammersmith)병원에서는 역사적인 ‘배틀존(Battlezone)’ 게임 시합이 열렸다. 이 시합이 유명해진 것은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양전자 단층촬영(PET)이 함께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인 실험을 위해 게임 참가자들은 누운 상태에서 스캐너로 들어간 다음 머리 쪽의 스크린을 보면서 손에 쥔 조이스틱으로 탱크를 조종해 게임 속 전장을 누볐다.
배틀존에서 게이머들은 적군의 탱크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적의 탱크를 박살내면서 깃발을 수집하게 된다. 이때 게이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난도가 높은 레벨로 올라가게 되는데 다음 레벨로 이동하게 될 때마다 상금으로 약 1만 원씩 지급받았다.
실험 결과, 게이머들이 적군의 탱크들은 박살내면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을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놀라운 점은 이때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이 필로폰의 주성분인 암페타민(amphetamine)을 주사할 때만큼이나 많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게임과 중독행동 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실험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 해머스미스병원의 연구진은 학계의 스타로 떠오르는 동시에 게임업체로는 수많은 고발과 소송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뇌의 주요 보상체계로 도파민 체계와 오피오이드 체계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라도 도파민 체계 자체는 마약제제 관련 오피오이드 체계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동물들이 무언가를 간절히 찾아다닐 때 도파민 양을 측정하면 상당히 많은 양이 검출된다. 특히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보상받게 될 확률이 50대50 수준일 때, 도파민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두뇌의 보상추구 시스템은 손익을 예측할 수 없을 때 가장 심하게 흥분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예측 가능한 보상보다는 예측 불가능한 보상에 더 강하게 끌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도박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단 찾던 대상을 발견한 후 소비하고 나면 동물들의 뇌는 도파민을 더 이상 분비하지 않는다. 따라서 도파민은 목표의 달성 그 자체보다는 그 과정에 더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실제 목표를 이뤘을 때보다도 그러한 성취에 대한 기대감을 더 크게 갖게 되는 것은 바로 도파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해머스미스병원 연구진의 실험 결과는 덕후들이 특정한 행사 참여 권한을 얻기 위해, 혹은 한정판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행동을 잘 설명해준다. 또한 특정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는 데는 도파민 체계가 관여한다는 점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도파민 체계가 관여한다고 해서 해당 활동이 무조건적으로 정신병리의 하나인 중독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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